- COMEX 2월물 4837.5달러 마감·장중 4891달러 급등, 1979년 이후 최강 상승세
- 그린란드 관세 위협·일본 국채 붕괴·탈달러화 '3중 불길'…골드만삭스 "가장 확신하는 자산"
숫자 자체가 역사다. 21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2월 인도분 금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1.5%(71.7달러) 상승한 온스당 4,837.5달러에 장을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장중에는 4,891.1달러까지 치솟으며 5,000달러 돌파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전날 4,700달러를 처음 넘어선 데 이어 하루 만에 100달러 이상 추가로 올라 금값은 이틀 연속 역사를 새로 썼다. 금 현물 가격 역시 이날 종가 기준 4,831.73달러로 마감하며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값은 지난 1년 동안 75% 상승했고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50회 이상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1979년 이후 가장 강력한 상승세라는 평가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값이 과거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온스당 4,000달러를 돌파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5,000달러를 바라보고 있다"며 "상승의 핵심 원인은 약달러 우려와 저금리 기조"라고 진단했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트럼프…그린란드 관세 위협과 안전자산 쏠림
이날 금값 급등의 직접 도화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對)유럽 관세 위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그린란드 합병 구상을 재차 강조하며 이에 반대하는 유럽 국가들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하자 글로벌 무역전쟁 재점화 공포가 시장에 번졌다. 위험 자산에서 이탈한 자금이 안전자산인 금으로 집중됐다. 미국 경제전문 방송 CNBC는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실질금리 하락, 투자자·각국 중앙은행의 탈달러화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금이 '궁극적인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단단히 굳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번 급등을 트럼프 변수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좁게 보는 것이다.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터진 충격파가 금 수요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4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2007년 발행 이래 처음으로 4%를 돌파하면서 글로벌 채권시장 전반에 불안이 번졌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조기 총선 선언과 감세 공약이 일본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고, 채권 투매와 주식 급락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에서 어디에도 안착할 곳을 찾지 못한 자금이 금으로 몰렸다. 주식도 채권도 더 이상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때 금의 '최후의 안전자산' 지위는 더욱 빛을 발한다.
3개월 만에 1,000달러 추가 상승…역사상 가장 빠른 가속도
금의 상승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국제 금 선물 가격은 2025년 초 온스당 2,641달러에서 연말 4,341달러까지 단 한 해 만에 64.4% 급등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만 53차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들어서도 강세가 이어져 불과 3주 만에 11% 이상 추가 상승했다. 4,000달러를 처음 돌파한 것이 지난해 10월이었는데 그로부터 석 달 남짓 만에 4,800달러를 넘었다. 800달러에 달하는 상승폭이 단 3개월에 이루어진 셈이다.
역사적으로 이 속도는 유례가 없다. 2000년대 중반 금 강세장에서 1,000달러를 돌파하는 데 걸렸던 시간과 비교해도 지금의 가속도는 현격히 빠르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금값 기준으로도 현재 가격은 1980년 이후 최고치를 넘어섰다. 귀금속 시장의 한 전문가는 "올라서는 안 될 가격대라고 했던 구간들을 금이 속속 돌파하고 있다"며 "시장이 금의 적정 가격 개념 자체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달러화 물결…중앙은행이 국채 대신 금을 선택하는 이유
금 강세의 저변에는 단기 투기 세력보다 훨씬 크고 지속적인 힘이 자리 잡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대규모 금 매입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13개월 연속 금을 사들이고 있다. 러시아, 인도, 튀르키예, 폴란드 등 신흥국 중앙은행들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을 줄이고 금 보유를 늘리는 탈달러화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UBS는 2025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 규모가 863톤에 달했으며, 올해에는 950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금협회(WGC)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은 1999년 72%에서 현재 57% 수준으로 낮아진 반면 금 비중은 꾸준한 상승 궤도에 있다. 왜 중앙은행들은 달러 자산을 줄이고 금을 선택하는가. 미국의 재정 적자 확대와 국가 부채 급증이 달러 자산의 장기 신뢰성에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 제재 이후 미국이 외국 정부의 달러 자산을 동결할 수 있다는 선례가 생기면서 신흥국들은 서방의 통제 밖에 있는 실물 금을 선호하게 됐다. 금은 어떤 정부도 동결하거나 해킹할 수 없는 자산이다.
개인 투자자와 기관의 금 ETF 수요도 덩달아 증가 추세다. UBS는 올해 글로벌 금 ETF로의 자금 유입이 825톤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가 900명 이상의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36%가 올해 말까지 금값이 5,000달러를 넘을 것으로 답했고 33%는 4,500~5,000달러 구간을 예상했다. 두 그룹을 합하면 70% 이상이 올해 금값 추가 상승에 베팅한 셈이다. 상승 원인으로는 중앙은행 매입(38%)과 재정 불안(27%)이 가장 많이 꼽혔다.
은(銀)도 폭주 중…95달러 고점, 산업 수요가 불씨를 키웠다
금과 나란히 은(銀)도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국제 은 현물 가격은 지난 20일 온스당 95.89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21일에는 소폭 조정을 받아 94.58~95.04달러 범위에서 마감했지만 올해 들어 은의 상승 탄력은 금을 웃도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은값은 두 배 이상 오르며 금과 나란히 역대 최고가 행진을 이어갔다.
은 강세에는 금의 안전자산 수요에서 비롯된 공통 동력 외에 은만의 독자적 상승 요인이 더해진다. AI 서버, 전기차, 태양광 패널, 로봇 등 차세대 첨단 산업에서 은이 핵심 소재로 쓰이는 만큼 산업용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지질조사국이 지난해 11월 은을 '중요 광물'로 공식 지정하면서 그 전략적 가치가 제도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금값 부담을 느낀 개인 투자자들이 가격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은으로 눈을 돌리는 흐름도 은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현재 금·은 교환 비율(금 1온스를 사는 데 필요한 은의 온스 수)은 51배 수준으로 역사적 평균인 65배를 크게 밑돌아, 은의 상대적 강세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월가의 목표가 경쟁…골드만삭스 4900달러에서 7150달러까지
금 강세에 대한 월가의 전망치 경쟁도 뜨겁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말 금 가격 목표를 온스당 4,900달러로 제시하며 금을 현재 "가장 확신하는 롱(매수) 또는 기본 시나리오 자산"으로 규정했다. 다안 스트루이벤 골드만삭스 글로벌 원자재 리서치 공동대표는 "금이 현재 다년간의 강세장에 있으며 글로벌 정책 불확실성을 헤지하려는 민간 투자자들이 올해도 보유분을 매도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이 수요가 가격 전망의 출발점 자체를 높이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JP모건체이스는 더 앞서나가 올해 마지막 분기에 금값이 온스당 5,5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런던금시장협회(LBMA)가 실시한 연례 귀금속 전망 설문에서는 응답 애널리스트들이 올해 금 평균 가격이 5,000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가운데 ICBC스탠다드은행의 줄리아 두 수석 원자재 전략가가 가장 공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금 가격이 온스당 최고 7,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가벨리 골드 펀드의 공동 포트폴리오 매니저 크리스 만치니는 "연준이 올해도 금리를 계속 낮춘다면 금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이 더욱 줄어들어 투자 매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건스탠리는 올해 말 금값이 4,400달러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보수적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 전망치의 편차가 크지만 공통점은 있다. 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 유지, 중앙은행의 구조적 매입, 지정학적 불안의 만성화 중 어느 하나라도 지속되는 한 금의 상승 여력이 쉽게 꺾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조적 상승의 3대 엔진…금리·탈달러화·지정학적 리스크
전문가들이 현재의 금 강세를 단순한 투기 버블이 아닌 구조적 상승으로 보는 근거는 세 가지 동력으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실질금리 하락이다. 미 연준은 2025년 금리 인하 사이클에 진입했다. 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금리가 낮을수록 보유 매력이 커진다. 연준이 올해도 추가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시장이 기대하는 한, 금의 기회비용은 계속 낮아진다.
두 번째는 달러 패권의 구조적 균열이다. 미국의 재정 적자 확대와 부채 한도 갈등,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이 맞물리면서 달러 자산의 신뢰가 서서히 흔들리고 있다. 달러 인덱스는 최근 97대 초반으로 내려앉으며 약세 흐름을 타고 있다. 달러가 밀리면 달러 표시 금값은 자동으로 오른다.
세 번째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만성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중동 불안, 미·중 갈등에다 이번에는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긴장까지 더해졌다. 국제 정치 불안이 일상이 되면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에 금을 항구적으로 편입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위기가 터질 때마다 금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금을 기본 자산으로 들고 가는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국내 금값 1돈 90만 원 돌파 목전…골드뱅킹 2조 원 시대
국제 금시장의 열기는 국내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 3곳의 골드뱅킹(금통장) 잔액은 최근 2조 원을 처음 돌파했다. 금통장 계좌 수도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한국거래소(KRX) 금 현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순금 1돈(3.75g) 가격도 90만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금거래소에서 판매하는 골드바는 수요가 공급을 웃돌며 매진 사례가 잇따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 방법도 다양해졌다. KRX 금 현물 계좌는 매매 차익에 비과세가 적용되는 데다 부가세도 면제돼 세후 수익률 측면에서 가장 유리한 투자 수단으로 꼽힌다. 금 ETF를 통한 간접 투자는 소액으로도 접근이 가능해 입문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KB국민은행은 최근 금융 리포트를 통해 "현 가격대에서는 단기 차익 실현보다 분할 매수를 통한 자산 배분 관점의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