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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3회)
- 맑음주 한 사발과 그 밤, 논골담길 시작 천하일미라는 이름은 내가 붙이지 않았다. 그 집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이름이었다. 천하제일의 맛. 허풍처럼 들리지만, 막상 그 평상보다 편한 뒷방에 앉아 한 사발 받아 들면 그 허풍이 사실이 된다. 내가 그 장소를 5년 정도 드나들며 친구들과 보탠 이름은 따로 있다. 맑음주. 이름 없이 팔리던 그 막걸리에 내가 붙여준 이름이다. '맑다'는 형용사가 막걸리에 붙으면 이상할 것 같지만, 그 술은 실제로 맑았다. 탁하지 않고, 무겁지 않고, 마실수록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묘한 술. 한참을 마시다 배부르면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바람을 한번 훔치면 특유의 알코올은 달아난다. 천하일미에서만 생산하는 묵호의 바닷바람을 닮은 유일한 막걸리다. 2010년 초, 나는 그 뒷방에서 묵호를 고민하고 있었다. 고(故) 김인복 통장을 처음 만난 것도 그 집이었다. 통장이라는 직함이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작았다. 그는 묵호 논골을 손바닥처럼 꿰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 집이 언제부터 비었는지, 어느 골목이 예전에 어떤 소리를 냈는지, 누가 이 언덕에서 태어나 이 언덕에서 늙어가는지. 그 기억들이 그의 몸 안에 살아 있었다. 나는 그날 밤 그 기억을 막걸리 안주 삼아 들었다. 그가 훗날 10년이 넘도록 논골담길 해설을 무료로 해주리라는 그것을 그때는 몰랐다. 스타 해설사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논골 이야기는 관광 안내가 아니었다. 증언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목소리로 전하는, 그 언덕의 시간 들. 방문자들은 그의 해설을 들으며 사진을 멈췄다. 마포에서 방문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마포종점', 춘천에서 오시는 손님들에게는 '소양강 처녀'를 불러주던 그분, 우리는 늘 박수로 환영하며 맞이했다. 그것이 논골담길이 다른 골목과 달랐던 이유 중 하나였다. 지금 그는 없다. 그 목소리는 이제 이 골목 어딘가에 스며서, 바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날 밤 천하일미 뒷방 원탁에는 몇 분의 통장님들이 더 계셨다. 이름을 일일이 부르지 않아도, 그 자리의 무게는 기억한다. 막걸리가 몇 순배 돌았고, 말이 많아졌다가 적어졌다가, 다시 많아졌다. 묵호 이야기가 나왔다. 떠나는 사람들 이야기, 빈집 이야기, 아이들이 없어지는 이야기. 누군가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웃었다. 그 웃음이 슬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듣는 사람이었다. 기획자로서가 아니라, 그냥 막걸리를 앞에 둔 한 사람으로. 그러나 그 듣기가 기획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좋은 기획은 언제나 듣기에서 시작한다. 말하기에서 시작한 기획은 대부분 무대가 되고, 듣기에서 시작한 기획은 간혹 장소가 된다. 그 밤이 길어질수록, 나는 이 골목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이 골목이 사라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 차이가 크다. 전자는 기획자의 언어이고, 후자는 사람의 언어다. 그날 밤 천하일미에서 나는 기획자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며칠 후 나는 공모사업 공고를 찾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함께 진행하는 생활 문화 전승 공모사업이었다. 지역의 생활 문화를 발굴하고 전승하는 사업. 나는 묵호 논골을 떠올렸다. 이 언덕 위의 삶, 이 골목의 냄새와 소리, 통장님들의 목소리 안에 살아있는 기억들. 이것이 생활 문화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기획서를 썼다. 그 기획서의 첫 문장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다. 한 줄은 기억난다. "묵호 사람의 절반은 무덤이 없다"였다. 하지만 그 기획서를 쓰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천하일미 뒷방 원탁과 묵호의 먹태와 검은 막장, 맑음주 한 사발, 그리고 고 김인복 통장의 목소리. 공모에 선정되었다. 그것이 논골담길의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논골담길은 공모사업으로 시작했지만, 공모사업 따라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막걸리 한 사발 때문에 생겼다. 밤새 이어진 묵호 이야기 때문에, 한숨과 웃음이 섞인 그 자리 때문에, 떠나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 때문에. 공모사업은 그 마음에 예산을 붙여준 것이었다. 마음이 먼저였다. 그 순서가 중요하다. 지역 재생 사업의 많은 실패는 예산이 마음보다 먼저 왔을 때 생긴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기획이 왜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앞질러 갈 때, 공간은 무대가 되고 사람은 소품이 된다. 나는 그 순서를 천하일미에서 배웠다. 맑음주 한 사발이 가르쳐준 기획론이었다. 지금 천하일미는 아랫마을 부곡 로터리 작은 언덕으로 자리를 옮겼다. 평상과 뒷방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술맛은 아직도 그 맛이다. 이름은 내가 붙였지만, 맛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그 집 고유의 맛이 있고, 그 맛이 지금도 사람들을 천하일미로 이끈다. 논골담길이 유명해진 후에도 그 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격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 변하지 않음이, 이 동해에서 가장 믿음직한 것 중 하나다. 나는 가끔 그곳을 다시 앉는다. 맑음주 한 사발을 앞에 두고, 지금은 없는 목소리들을 생각한다. 고 김인복 통장이 해설하던 목소리, 통장님들이 나누던 이야기들, 그리고 그 밤, 이 언덕에 울려 퍼지던 묵호의 소리. 기획은 그 소리에 빚지고 있다. 나는 아직 그 빚을 다 갚지 못했다. <필자 소개> 조연섭 -문화 기획자, 브런치 작가, 논골담길 기획 조연섭 작가는 숨겨진 원형을 발굴해 현대적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문화 기획자이자 작가다. 언더그라운드 방송 DJ와 아나운서를 거친 방송인 출신으로, 2004년 동해문화원 공채 사무국장으로 임용 한국문화원국장협의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하고 2025년 12월30일 퇴직했다. 그는 그동안 지역의 역사와 유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구 소멸 시대의 실천적 해법을 제시해 왔다. 그의 기획력은 공간 재생과 로컬 브랜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묵호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청와대에서 창조경제 성공 사례를 발표하며 문화 담론을 주도했다. 또한, 방치된 양조장을 커뮤니티 거점으로 복원한 '강원막걸리학교(막걸리 익는 홍월평)'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와 공동체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구축했다. 예술적 감각 또한 남다르다. 국가유산청 공모로 뮤지컬 '동해의 선선 심동로'와 '동해랑'을 기획하여 지역민에게는 자긍심을, 관광객에게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로컬 콘텐츠의 전형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원상 '창의 인재상'을 받았으며, 전국 문화원 임직원을 대상으로 추진한 지역 문화경영 고급 아카데미 전국 1위와 함께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공론장 '논골담길 커먼즈'와 함께 24시 문화 순환 체계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브런치 작가로서 《논골담길》, 《맨발 걷기》 등의 브런치 북을 발간하며, 현장의 기록을 글에 담아 사람과 공간을 잇는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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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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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펜타곤, 앤스로픽에 AI 무기화 통제 철폐 최후통첩
- 인공지능이 인간의 최종 승인 없이 살상 무기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가. 미래전의 근본적인 교전 수칙을 둘러싸고 미국 국방부 심장부와 실리콘밸리 최고 기술 기업 간의 전례 없는 충돌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군의 AI 무기화에 제동을 건 앤스로픽을 향해 이번 주 금요일(27일)을 시한으로 제시하며 전면적인 제재를 예고했다고 악시오스와 CNN 등 주요 외신이 25일(현지 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국방물자생산법 압박과 마두로 체포 작전의 이면 미 국방부 수뇌부와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최고경영자의 긴급 회동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 국방부는 앤스로픽의 최첨단 AI 모델 클로드가 자율 살상 무기 체계와 대규모 민간인 감시에 사용되는 것을 금지한 사내 윤리 가이드라인을 전면 철폐하고, 군의 모든 합법적 작전에 무제한적 접근을 허용할 것을 요구했다.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가 이를 거부하자 헤그세스 장관은 전시 상황에 준하는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해 앤스로픽이 군의 요구에 맞게 모델을 강제로 수정하도록 명령하겠다고 압박했다. 아울러 국방부와의 거래를 전면 단절하고 앤스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 명단에 오를 경우 미국 국방부와 연계된 수많은 방산 대기업들은 자사 시스템에서 앤스로픽의 기술을 의무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갈등의 이면에는 미군 기밀망 내에서 클로드가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상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펜타곤의 1급 기밀 시스템 내부에서 작동하는 프론티어급 AI는 클로드가 유일하다. 특히 지난달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생포 작전 당시 방산업체 팔란티어의 시스템을 통해 클로드가 작전 통제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AI의 작전 개입 수위를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은 극에 달했다. 대체재 찾는 미군 지휘부와 한국 방산업계의 딜레마 펜타곤은 금요일 최후통첩 시한을 앞두고 클로드를 대체할 플랜B 가동에 착수했다. 사이버 공격 방어 등 특정 군사 분야에서는 클로드가 여전히 압도적인 성능을 보이고 있으나, 일론 머스크의 xAI가 이미 기밀망 진입 계약을 맺었고 구글의 제미나이 역시 국방부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급진전시키고 있다. 윤리적 장벽을 스스로 허문 빅테크들이 앤스로픽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바다 건너에서 벌어지는 펜타곤과 실리콘밸리의 교전 수칙 주도권 다툼은 한국군과 국내 방산업계에도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육군의 아미 타이거(Army TIGER) 등 유무인 복합전투체계(MUM-T)를 구축 중인 국내 방산 생태계 역시 무인기나 전투 로봇에 독자적인 교전 권한을 어디까지 부여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내부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국방 AI 분야의 한 전문가는 미군 지휘부가 단 1초의 연산 지연이 승패를 가르는 전장에서 AI의 윤리적 족쇄를 완전히 풀고자 하는 것은 전술적 필연이라며, K방산 무기 체계에 국산 AI 솔루션을 본격 이식하기에 앞서 자율성과 인명 살상 통제에 대한 우리 군만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확립해야 향후 서방 세계 수출 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엠바고 리스크를 차단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금요일로 다가온 펜타곤의 최후통첩 시한은 다가올 로봇 전쟁 시대의 도덕적 나침반이 어느 방향을 가리킬지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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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펜타곤, 앤스로픽에 AI 무기화 통제 철폐 최후통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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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3회)
- 1 스파이의 장 버려진 스파이(2) 얼마되지 않아 진짜로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그가 분석파트로 옮긴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그의 짤막한 보고서 한 건 때문에 난리가 났다. A4용지 삼분의 이 분량의 짤막한 보고서. '앞으로 대통령에게 올리는 모든 보고서는 이렇게 작성하라'는 대통령실 지시와 함께, 그가 작성한 보고서가 샘플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긴 보고서는 거들떠보지 않아 그동안 비서실에서 별도 요약을 하거나 구두보고를 해왔는데, 그의 보고서에는 완전히 반해 버렸다는 것이다. 다음 날 열린 안보장관 회의의 대통령 지시사항은 그의 보고서 내용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보고서를 들고 가서 그대로 읽었던 것이다. 그의 보고서는 짧다.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데이터를 거론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긴박한 작전현장에서 행동을 결정할 때 이것저것 생각이 길어지면 내가 적에게 당한다. 순식간에 판단하고, 판단과 행동이 동시에 이루어져야한다. 살아남기 위해 체화된 그의 사고와 행동의 방식이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그 후 그의 경력은 탄탄대로였다. 2년도 채 되지 않아 부부서장이 되고 6개월 후 특별인사에서 부서장으로 승진하더니, 대통령실 비서관으로 불려갔다. 1년 10개월 후 회사에 복귀하면서는 '바이스 디렉터' 세컨드맨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부회장'이라 불렀다. 그와 그의 아내는 행복했다. 이대로 쭉 나아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행운은 오래가지 않는다. 스파이에게는 더욱 그렇다.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잊는 순간에 위기가 찾아온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어느 이른 봄 날이었다. 그가 운동을 마치고 휴게실 소파에 앉아 막 생수병을 입으로 가져가려 할 때였다. 대형 TV 모니터에 그 사건을 알리는 자막이 뜨고 있었다. 그의 부하들이었다. 해외도 아니었다. 국내였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아니, 큰 문제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희생의 제물을 찾고 있었다. 그들의 정치 굿판에 올릴 제물. 언론의 지면과 화면을 채워 줄 뉴스거리, 광고단가를 올리기 위한 저열한 수단. 누구도 그들이 요구하는 제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군다나 그들이 배고픈 하이에나의 무리라면. 농경의 여신 '데메테르'의 저주를 받아 끝없는 굶주림으로 결국은 자기의 몸까지 먹어버리는 그리스 신화의 '에리식톤(Erysichthon)' 같은 존재라면. 그는 기꺼이 그들의 제물이 되어주기로 했다. 버텨봐야 추해지고 상처만 깊어진다. 머뭇거리지 말아야한다. 판단과 동시에 행동이 이루어져야한다. 그는 자기 발로 걸어서 사라졌다. 스스로 사라진다는 자존감이 그나마 위로로 주어졌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곧 정권이 바뀌면서 새로이 칼자루를 쥐게된 자들은 신선한 먹잇감이 필요했다. 정권 초기부터 희생제물을 바치는 자욱한 연기로 온 세상을 덮기로 했다. 서초동의 언덕은 그들의 골고다가 되었다. 회사 출신들만 사백여 명이 불려나가 곤욕을 치렀다. 그중 사십여 명은 더 큰, 말 하기도 슬픈 그런 아픔을 겪었다. 그런데 그들을 더욱 슬프게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서초동 언덕배기에 웅거하고 있는 자들의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인 소위 증거자료라고 하는 것들. 그들의 발목을 잡고 손목을 비틀고 목덜미를 조으는 것들은 모두 회사에서 제공한 것들이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조직. 충성을 했던 조직. '목숨까지 바치겠다, 모든 것을 무덤까지 가져 가겠다'는 '진실의 방' 선서를 요구했던 회사가 그들을 요리하라고 식자재와 레시피까지 제공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요리되어 차례 차례 하이에나 무리들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졌다. 종이조각도 가죽신발도 양념만 잘하면 화려한 요리가 된다. 그 남자 '허민'도, 동료들의 '허밍'도, 코드네임 '벌새'도, 미국인들의 친구 '험비'도 버려졌다. 버려진 스파이가 되었다. ■ <편집자주>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 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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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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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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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2회)
- 1 스파이의 장 버려진 스파이(1) 그의 이름은 허민. 그의 동료들은 그를 '허밍(Humming)'이라고 불렀다. 목숨이 걸린 위험한 임무에도 콧노래를 부르며 달려드는 그를 보면 벌새 허밍버드(Hummingbird)가 연상된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그의 코드네임은 '벌새'가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CIA 특수작전팀 친구들은 그를 '험비(Humvee)'라고 불렀다. 작전지에서 왼쪽 어깨와 오른팔 관통상을 입고도 중상을 입은 CIA 파트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반 이탈한 그에게 이 이름을 주었다. 그들의 존경을 담은 이름이었다. 미군의 고기동 다목적 차량(HMMWV,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의 애칭 험비(Humvee). 그가 파키스탄의 미군 후송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추가 수술을 위해 귀국할 때 미국인 친구들은 그에게 험비의 상용 버전인 허머(Hummer)를 선물했다. 그가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사랑하는 동료에게 새생명을 선물한 은인에 대한 아주 작은 선물이라고 우기는 데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틀 후 그가 한국의 권위 있는 대학병원의 수술대 위에 있을때 파트너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 허머(Hummer)가 그의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어떻게? 괜히 천하의 CIA이겠는가? 3개월 후 그는 회사에 복귀했다. 업무와 재활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주어진 업무는 현장요원들의 보고서를 분류하여 평가부서에 전달하는 간단한 일이었다. 한두 시간이면 충분한 업무를 마치고는 곧바로 재활 및 적응훈련장으로 직행하여 저녁 늦게까지 땀을 흘렸다. 어깨의 회복은 순조로웠다. AK47 칼리시니코프의 7.62미리 탄두가 견갑대의 핵심구조를 용케 피해 구멍만 내고 빠져나간 덕분이었다. 문제는 오른팔이었다. 탄두가 상완부를 관통하며 근육과 힘줄, 신경계통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 때문에 회복이 더디었다. 회사의 재활치료 전문가는 최대 6개월을 더 지켜보자고 했다. "부상 부위에 대한 초동 처치와 후속 수술은 완벽했음. 재활치료 과정에서 치료 프로그램의 설계와 운용도 효율적이었음. 특히 치료와 재활에 임하는 대상자의 의지와 노력은 경이로웠음. 그러나 탄두가 상완부를 관통하며 심부 연부조직을 광범위하게 손상시킨 데다 굴곡과 신전 기능을 담당하는 힘줄과 말초신경이 부분적으로 절단된 것이 제한요소로 작용하였음. 이로 인해 손가락의 미세 운동과 감각 피드백이 저하되었으며, 방아쇠 압력 조절과 격발 후 복귀 동작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음. 이는 단발사격은 가능하나 연속사격 시 총기 조작의 일관성이 무너지고 오 조작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의미임. 실제로 특수환경 하 사격활동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부각되었음. 탄창 교환과 슬라이드 볼트 조작, 그리고 장전 불량 발생 시 즉각적인 조치 능력에 있어 동작 지연과 오류가 동반되는 사례가 수차 확인되었음. 결론적으로 대상자는 장기간 재활과 훈련에도 불구하고 정밀사격, 특히 근접전투 상황에서 임기표적에 대한 즉각적인 총기조작 같은 스트레스 하 반복 사격 능력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임. 다시 한번 치료와 재활, 이어진 복귀훈련 과정에서 보인 대상자의 경이로운 의지와 노력에 대해 경의를 표함. (복무적성평가위원회)" 보고서 한 장으로 그의 현장 경력은 끝났다. 이제 버마(미얀마) 아웅산에서 28살 터질듯한 장단지에 토카레프의 7.62미리 탄두를 영접하지 않아도 된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밀림의 벌목지에서 남북 합동으로 인질 구출 작전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연길에서 시작하여 내몽골을 거쳐, 네팔에서 모사드의 특별기를 구걸하여 탄자니아로 날아가는 일은 영화에서나 볼 것이다. 거기 탄자니아 커피농장 외진 곳에, 미사일 기술자 남편의 탈북 성공을 기다리다 죽은 가여운 북한 여인의 무덤을 만드는 일 따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불가능할 것이라는 인질 구출 협상에 성공하고도, 다른 경쟁 무장세력의 기습공격 같은 것, 상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AK 탄두가 신체 두 군데를 동시에 통과하는 행운은 더 더군다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정말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그에게 정보분석 파트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회사는 그가 아내 다음으로 사랑하는 글록17을 데려가고 가장 혐오하는 노트북을 안겨주었다. 외부 반출 절대 엄금 및 외부환경 작동 불능, 세이프박스 노트북. 회사를 그만 두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아내와 두 아들을 둔 가장이. 생계형 스파이에게 선택은 없다. 회사만이 선택하고 결정한다.■ <편집자주>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 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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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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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2회)
- 묵호는 어떤 도시인가? 우리는 도시를 정의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에 대해서 그 도시에 무엇이 살아남았는가를 본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항지이자 희망의 땅 묵호였다. 개발이 비껴간 자리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무엇이 버티고 있는가. 묵호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살아남은 것들 앞에서 멈춘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무언가. 낡음인데 낡음이 아닌, 쇠락인데 쇠락이 아닌 그 감각. 묵호는 그 감각의 도시다. 그렇다면 묵호는 어떤 도시인가. 나는 이 질문을 나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언어에서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작가 김훈은 바다에 대해 이렇게 썼다. 바다는 육지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그 말을 묵호에서 떠올리면 이상하게 잘 맞는다. 묵호는 강원도 동해안의 끝자락에 붙어 있다. 지도 위에서 보면 육지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자리에 항구가 있다. 그 끝에서 배가 출발하고, 그 끝에서 파도가 돌아온다. 끝이 시작되는 곳. 묵호는 그런 도시다. 끝과 시작이 같은 자리에 있는 도시는 독특한 기질을 갖게 된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므로 버티는 법을 먼저 배우고, 버티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모이므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묵호 사람들의 말투에는 그 기질이 배어 있다. 과장이 없고, 빠르지 않고, 무겁지 않다. 바다를 옆에 두고 사는 사람들의 언어는 대체로 그렇다. 바다가 이미 매우 크기 때문에, 의외로 바닷가 사람이면서 말을 크게 할 필요가 없다. 철학자 가스통 루이 바슐라르는 그의 책 『공간의 시학』에서 장소가 인간의 내면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장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소 또한 사람을 만든다는 것. 어떤 공간에서 오래 살면 그 공간의 논리가 몸 안에 들어온다. 묵호라는 공간의 논리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경사라고 생각한다. 이 도시는 평평한 공간이 도로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항구에서 논골까지, 바다에서 언덕 꼭대기까지, 묵호는 끊임없이 오르거나 내려간다. 그 경사가 이 도시 사람들의 몸에 들어갔다. 쉬운 길을 찾지 않는 습관, 가파른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 묵호 사람들은 비탈을 평지처럼 걷는다. 바슐라르의 말을 더 빌리면, 집은 우주의 첫 번째 세계다. 그렇다면 항구는 무엇인가. 나는 항구가 세계의 첫 번째 문이라고 생각한다. 나가는 문이기도 하고, 돌아오는 문이기도 한. 묵호항은 그 문이 아직 열려 있는 도시다. 새벽에 배가 나가고, 저물녘에 배가 돌아온다. 그 반복이 수십 년 쌓인 자리에 묵호가 있다. 노벨상에 빛나는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바다는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친다고 했다. 파도가 아무리 거세도 결국 돌아오고, 아무리 잔잔해도 언제든 뒤집힌다는 것. 그 앞에 서면 인간이 얼마나 작은지를 배운다. 동해는 지중해보다 거칠다. 묵호의 바다는 특히 그렇다.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자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겸손해진다. 자신이 설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바다가 매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내가 논골담길을 기획하면서 가장 자주 부딪혔던 것도 그 겸손이었다. 아무리 좋은 기획이어도 이 도시의 논리를 이길 수 없다. 묵호는 외부의 언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카뮈의 말처럼, 이 도시 앞에 서면 기획자도 겸손해진다. 그것이 이 도시의 첫 번째 가르침이었다. 박경리는 소설 『토지』에서 장소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썼다. 어디서 태어났는가, 어떤 땅 위에서 살았는가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그 통찰을 묵호에 적용하면, 묵호에서 태어나 묵호에서 자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보인다. 오징어 건조대가 있는 골목을 걸어서 학교에 가는 것, 방파제를 오후 산책 코스로 아는 것, 새벽 경매 소리를 자장가처럼 듣고 자라는 것. 그 감각들이 쌓여 한 사람의 세계관이 된다. 묵호 출신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만나면 느껴지는 것. 덜 꾸미고, 덜 서두르고, 불필요한 그것을 채우려 하지 않는 어떤 태도. 그것이 이 도시가 사람에게 입히는 기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장소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면, 묵호는 버티는 사람을 만드는 도시다. 시인 정지용은 바다를 처음 본 순간을 이렇게 노래했다. "넓고 넓은 바다는 끝이 없고, 그 앞에 선 자신이 어린아이처럼 작아진다"라고. 묵호의 바다도 그런 바다다. 지금 글을 쓰는 동해시 일출로 121번지 논골담길 커먼즈 역시 그런 곳이다. 묵호는 어느 골목 모퉁이를 돌아도 문득 바다가 나타나는 도시. 시야가 갑자기 열리고, 수평선이 쏟아지고, 자신이 지금까지 걷던 골목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그 갑작스러운 열림이 묵호를 나 홀로 여행지로 만든 이유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좁고 가파른 골목을 혼자 걷다가 갑자기 열리는 수평선. 그 대비가 주는 감각은 혼자일 때 더 강하게 온다. 둘이면 그 순간 말이 나온다. 혼자면 그 순간 침묵이 온다. 그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안의 무언가와 대면한다. 묵호가 비움의 도시가 되는 것은 그 지형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묵호는 어떤 도시인가. 나는 여러 사람들의 언어를 빌려 이 질문에 답하려 했지만, 결국 내 답은 이렇다. 묵호는 7번 국도를 이어가는 강원 영동 남부의 끝자락에 있는 도시인데 끝이 아닌 도시다. 천천히 변하는 도시, 원형이 남아 있는 도시고 원형이 힘인 도시다. 경사진 도시인데 그 경사가 기질이 된 도시다. 바다가 겸손을 가르치는 도시이고, 골목이 버팀을 가르치는 도시다. 그리고 지금, 혼자 오는 사람들에게 비움을 허락하는 도시다. 이 도시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그것은 오만한 일일지 모른다. 묵호는 정의되기를 거부하는 도시다. 정의되는 순간 소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묵호 사용 설명서 이번 회에서 답을 내리는 대신 질문을 계속 열어두기로 한다. 묵호는 어떤 도시인가. 이 연재가 끝날 때, 독자 각자의 답이 생겨 있기를 바란다. 장소는 결국 그 장소를 경험한 사람의 수만큼 다른 이야기를 가진다. 묵호도 그렇다. <필자 소개> 조연섭 -문화 기획자, 브런치 작가, 논골담길 기획 조연섭 작가는 숨겨진 원형을 발굴해 현대적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문화 기획자이자 작가다. 언더그라운드 방송 DJ와 아나운서를 거친 방송인 출신으로, 2004년 동해문화원 공채 사무국장으로 임용 한국문화원국장협의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하고 2025년 12월30일 퇴직했다. 그는 그동안 지역의 역사와 유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구 소멸 시대의 실천적 해법을 제시해 왔다. 그의 기획력은 공간 재생과 로컬 브랜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묵호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청와대에서 창조경제 성공 사례를 발표하며 문화 담론을 주도했다. 또한, 방치된 양조장을 커뮤니티 거점으로 복원한 '강원막걸리학교(막걸리 익는 홍월평)'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와 공동체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구축했다. 예술적 감각 또한 남다르다. 국가유산청 공모로 뮤지컬 '동해의 선선 심동로'와 '동해랑'을 기획하여 지역민에게는 자긍심을, 관광객에게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로컬 콘텐츠의 전형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원상 '창의 인재상'을 받았으며, 전국 문화원 임직원을 대상으로 추진한 지역 문화경영 고급 아카데미 전국 1위와 함께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공론장 '논골담길 커먼즈'와 함께 24시 문화 순환 체계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브런치 작가로서 《논골담길》, 《맨발 걷기》 등의 브런치 북을 발간하며, 현장의 기록을 글에 담아 사람과 공간을 잇는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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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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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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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1회)
- 1회. 묵호로 가는 이유? 혼자니까 묵호다 작당들이 24시 문화 순환을 연구할 공간에 앉아 있다. '논골담길 커먼즈'. 내가 직접 기획하고 이름까지 붙인 4평 공간의 하얀색 의자 위다. 골목을 타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딱 하나였다. 발소리가 하나뿐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둘 이상이면 반드시 낮은 말소리라도 섞이기 마련이니까. 묵호를 혼자 걷는 사람은 말이 없다. 그 침묵이 겹겹이 쌓여 이 골목의 결이 되었고, 그 결이 지금의 묵호를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장소로 만들었다. 참 묘한 일이다. 나는 묵호의 중심이 된 이 공간 논골담길을 기획한 사람이다. 2010년, 이 언덕에 처음 올랐을 때 여기는 누구나 찾는 명소가 아니었다. 빈집이 늘고, 젊은이들은 떠나고, 그저 짠 오징어 냄새만 바람에 실려 다니는 동네였다. '지역 소멸'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이었지만, 이 골목은 이미 그 쓸쓸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기획자라는 명함을 들고 그 냄새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지금 나는 잠시 그 사실을 잊어보려 한다. 문화 기획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게 차가운 설계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동선, 시선이 머무는 곳,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감동은 어느 정도일지. 그런 계산을 내려놓고 그냥 여기 앉아 있을 때, 비로소 이 골목이 내게 다르게 말을 건다. 마치 내가 오늘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여행자인 것처럼. 사람들은 왜 하필 묵호에 혼자 올까? 이 질문을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품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묵호는 관광지로서 화려한 맛은 없다. 강릉이나 속초처럼 세련된 카페나 편의시설이 깔린 그것도 아니다. 여전히 낡았고, 비탈길은 가파르며, 바람은 거칠고 오징어 냄새가 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온다. 혼자서. 낡은 카메라 하나, 배낭 하나 달랑 메고. 거리를 걷다가 내린 답은 이렇다. 묵호는 누군가에게 위로받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기어이 혼자가 되기 위해 오는 곳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천지 차이다. 위로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채워달라는 부탁이라면, 혼자가 되겠다는 건 내 안의 소음들을 비워내겠다는 단호한 선택이다. 묵호의 골목은 무언가를 채워주지 않는다. 그저, 마음껏 비워도 괜찮다고 가만히 등을 토닥여줄 뿐이다. 이 시대는 왜 이토록 비움에 목말라 있을까. 묵호로 향하는 발걸음은 일반적인 여행의 유행이 아니다. 24시간 연결된 지치고 피로한 사회에서 '나 홀로'라는 상태를 외로움이 아닌, 내 의지로 선택한 소중한 시간으로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길을 떠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묵호는 그 마음에 딱 맞는 풍경을 내어준다. 세련되지 않아 오히려 솔직하고, 번화하지 않아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수 있는 곳.' 혼자니까 묵호다.' 이 말은 그래서 나왔다. '논골담길'도 그런 비움의 공간이길 바랐다. 처음 이곳을 구상할 때 가장 겁냈던 건 '보여주기식 행정'이었다. 마을 재생이라는 번지르르한 이름 아래 수많은 골목이 천편일률적인 벽화로 덮이고 억지스러운 포토 존이 생기는 걸 너무 많이 봐왔다. 그것들은 대개 주민을 위한 그것이 아니었다. 관광객을 위한 무대였고, 그곳에 원래 살던 사람들은 배경이나 소품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공간을 기획한다는 건 결국 윤리의 문제다. 어떤 이야기를 살리고, 어떤 기억을 지울 것인가. 누구의 삶을 공공의 자산으로 만들 것인가. 기획은 곧 긍정 권력을 나누는 일이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 나쁜 결과를 낳는 건, 대개 그 권력이 누구에게 가 있는지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골목에서 그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지고 싶었다. 내 노력이 성공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 이 연재가 끝날 때쯤에도 정답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다. 발소리가 멈췄다. 공론장 커먼즈 입구에 서른쯤의 여자가 서 있었다. 배낭 하나, 카메라 하나. 그녀는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한참 동안 입구를 바라보다가, 다시 천천히 골목 북쪽 어달, 대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무엇을 비우러 이 먼 묵호까지 왔을까. 그리고 이 투박한 골목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여백을 허락해 주었을까. 묵호는 그런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항구다. 정답을 툭 던져주지는 않지만, 질문을 오랫동안 품고 있을 힘을 준다. 공간은 완성되는 순간 기획자의 손을 떠난다. 그 뒤로는 공간과 사람이 만나는 수많은 우연이 그곳의 의미를 매일 새롭게 써 내려간다. 나는 2010년부터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내가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끈질기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이 골목은 살아남았다. 나는 다시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기획자로서의 나와, 그저 쉬러 온 방문자로서의 내가 슬며시 겹친다. 그 겹친 마음이 바로 이 연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항구는 혼자 오는 사람을 기억한다. 나는 이제 그 기억의 방식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러 왔다. <필자 소개> 조연섭 -문화 기획자, 브런치 작가, 논골담길 기획자 조연섭 작가는 숨겨진 원형을 발굴해 현대적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문화 기획자이자 작가다. 언더그라운드 방송 DJ와 아나운서를 거친 방송인 출신으로, 2004년 동해문화원 공채 사무국장으로 임용 한국문화원국장협의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하고 2025년 12월30일 퇴직했다. 그는 그동안 지역의 역사와 유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구 소멸 시대의 실천적 해법을 제시해 왔다. 그의 기획력은 공간 재생과 로컬 브랜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묵호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청와대에서 창조경제 성공 사례를 발표하며 문화 담론을 주도했다. 또한, 방치된 양조장을 커뮤니티 거점으로 복원한 '강원막걸리학교(막걸리 익는 홍월평)'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와 공동체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구축했다. 예술적 감각 또한 남다르다. 국가유산청 공모로 뮤지컬 '동해의 선선 심동로'와 '동해랑'을 기획하여 지역민에게는 자긍심을, 관광객에게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로컬 콘텐츠의 전형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원상 '창의 인재상'을 받았으며, 전국 문화원 임직원을 대상으로 추진한 지역 문화경영 고급 아카데미 전국 1위와 함께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공론장 '논골담길 커먼즈'와 함께 24시 문화 순환 체계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브런치 작가로서 《논골담길》, 《맨발 걷기》 등의 브런치 북을 발간하며, 현장의 기록을 글에 담아 사람과 공간을 잇는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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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핫이슈] 美 대법원 '철퇴' 맞은 트럼프 관세⋯'플랜B' 무역법 122조 꺼내며 전면전 예고
- 미국 연방 대법원이 2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강행해 온 상호 관세 정책에 최종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무역 적자 해소와 미국 제조업 부흥을 명분으로 이 관세 정책을 도입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 전반에 10퍼센트 기본 관세를 매기고 특정 국가를 겨냥한 보복성 세금을 부과하면서 세계 무역 질서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트럼프 행정부 국정 운영 동력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품 전반에 부과한 광범위한 관세 조치가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 위법 행위라고 6대 3으로 판결했다. 이 판결로 지난 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관세 부과에 쓰이지 않았던 비상경제권한법을 앞세운 상호 관세는 즉각 법적 근거를 상실했다. 다수 의견을 집필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헌법이 세금과 관세를 매길 권한을 오직 입법부인 의회에만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닐 고서치 대법관 역시 보충 의견에서 "입법 과정의 숙고적 특성이야말로 자유를 지키는 방파제"라며 의회를 우회하려는 행정부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근거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관세를 매겼다. 하지만 대법원은 해당 법률이 대통령에게 수입을 규제할 권한을 주지만 관세를 부과할 명시적 권한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가 경제와 정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의회가 명확하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는 법리를 엄격하게 적용해 행정부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이번 소송은 갑작스러운 관세 폭탄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미국 내 수많은 기업과 12개 주 정부가 연합하면서 시작됐다. 핵심 국정 과제가 무력화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반발하며 법망을 우회하는 대안을 찾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판결 직후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결정을 "수치스럽다"고 비난했다. '대법관들이 외국 세력에 부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이날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제롬 파월 의장을 향해 "정치적 이유로 고금리를 선호하는 무능한 인물"이라며 불만을 터트리는 등 경제 정책 전반에 걸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어 본인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미국을 착취하던 외국 국가들이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겠지만 그 춤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기존 관세를 대체할 새로운 수단으로 1974년 무역법 122조를 발동해 3일 안에 새로운 10퍼센트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위법 판결을 받은 관세 정책 대신 불공정 무역 관행을 조사하는 무역법 301조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을 제한하는 무역법 232조를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두 법안은 대통령 선에서 바로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다만 효과가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다. 무역법 122조는 심각한 국제 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대통령이 최대 150일 동안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낡은 조항이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이러한 대체 법안을 동원하면 올해 미국 정부가 거둬들이는 관세 수입은 기존과 거의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대한 환급대란 예고 대법원 판결은 당장 미국 경제 전반에 거대한 환급 대란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와 전국소매연맹 등 주요 경제 단체는 기업들이 신속하고 원활하게 관세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급심 법원이 명확한 환급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조세재단 부사장 에리카 요크는 대법원이 위법으로 판단한 법률을 근거로 미국 정부가 징수한 관세 규모가 최소 1600억 달러(약 232조 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날 대법원 판결을 살펴보면 법관들은 관세 환급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내놓지 않았다. 반대 의견을 낸 브렛 캐버너 대법관은 "이미 수입업자가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한 상황에서 수십억 달러를 환급하는 과정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직 아마존 브랜드 매니저이자 컨설턴트인 마틴 호이벨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유통 공룡들이 이번 판결을 빌미로 납품 단가 인하를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국채 시장에서는 정부가 관세 수입 감소로 구멍 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채권 발행을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퍼지면서 장기물 금리가 소폭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피치 레이팅스 소속 경제학자 올루 소놀라는 "이번 판결로 올해 부과된 관세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소멸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한국 등 주요 교역국 대미 투자 재협상 가능성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독단적인 관세 행보에 제동이 걸리면서 관세 면제를 대가로 미국과 새로운 무역 합의를 맺었던 한국 등 주요 교역국이 마주한 불확실성도 덩달아 커질 전망이다. 관세를 무기로 각국을 압박하던 미국의 협상 지렛대가 사라지면서 국제 사회는 새로운 무역 역학 관계 재편을 서둘러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관세 면제를 대가로 미국과 새로운 무역 합의를 맺었던 주요 교역국들은 일제히 복잡한 계산에 돌입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유럽연합 등 여러 국가는 상호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건네며 새로운 무역 합의를 체결했다. 구체적으로 한국은 3500억 달러(약 507조 원), 일본은 5500억 달러(약 797조 원), 유럽연합은 6000억 달러(약 870조 원) 규모 투자를 압박받았다. 그러나 관세를 무기로 각국을 압박하던 미국의 협상 지렛대가 사라지면서 국제 사회는 새로운 무역 역학 관계 재편을 서둘러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기존 합의를 둘러싼 정당성 논란과 전면 재협상 요구가 분출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유럽연합 의회는 판결 직후 미국과 맺은 무역 협정 이행을 연기할지 논의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주식 시장에서는 미국의 높은 관세 장벽에 고전하던 스텔란티스와 BMW 등 유럽 자동차 기업과 럭셔리 기업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다. 도미닉 르블랑 캐나다 통상 장관은 이날 대법원 판결을 두고 "미국의 관세 부과가 정당하지 않다는 캐나다 입장을 명백히 뒷받침해 준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더그 포드 온타리오주 총리 역시 "트럼프 대통령 관세에 맞서 싸워 거둔 중요한 승리"라며 "백악관 후속 조치를 주시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앞서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상호 관세 무효 판결이 나올 경우 미국과 합의를 맺은 다른 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면서 상황에 따라 최적의 판단을 해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미국 정치권은 행정부 권한 팽창을 저지한 사법부 판단을 두고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공화당 소속 돈 베이컨 하원의원은 "헌법이 정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했다"며 대법원 결정을 반겼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마이크 펜스 역시 이번 판결을 "삼권분립의 위대한 승리"라고 치켜세웠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인 버니 모레노 상원의원은 "판결이 터무니없다"며 "의회가 직접 나서 트럼프 대통령 관세 정책을 즉각 입법화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대법원 판결조차도 트럼프 관세가 남긴 거대한 경제적 상처를 되돌릴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보수 진영에서는 관세 수입 증발로 미국 국가 부채가 2조 달러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체 수단으로 내세운 무역법 301조와 122조 조항들은 적용 기한이 짧고 조사 절차가 복잡해 이전처럼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관세 부과 효과를 거두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법적 허점을 끊임없이 파고들어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억지로 연장하려 시도할 수록 세계 무역 시장 불확실성은 한동안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Key Insights] 트럼프 관세에 대한 미 대법원의 위헌 판결은 관세를 무기로 각국을 압박해 온 미국의 협상 지렛대가 법적으로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이 관세 면제를 조건으로 미국과 맺었던 막대한 규모의 투자 합의(약 507조 원)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명분을 제공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법 122조 등 우회로를 통해 10% 보편 관세를 강행할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한국 정부와 기업은 환급 소송 등 단기적 법적 대응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150일 주기로 변동성이 극대화될 미국의 ‘꼼수 관세’ 리스크에 대비한 시나리오 경영을 펼쳐야 한다. [Summary]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앞세워 부과한 광범위한 상호 관세에 대해 행정부의 권한 남용이라며 6대 3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을 맹비난하며 무역법 122조를 발동해 3일 내 새로운 10%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는 '플랜 B'를 선언했다. 이번 판결로 미국 내에서는 최소 232조 원 규모의 초대형 관세 환급 대란이 예고됐으며, 관세 면제를 대가로 막대한 대미 투자를 약속했던 한국과 EU 등 주요 교역국들의 전면적인 재협상 요구가 분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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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핫이슈] 美 대법원 '철퇴' 맞은 트럼프 관세⋯'플랜B' 무역법 122조 꺼내며 전면전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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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1회)
-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편집자주> 더파든의 스파이-프롤로그 그는 오늘 새벽에 또 그 꿈을 꾸었다. 대략 두 달 반 전부터 이틀에 한 번꼴로 찾아오는 꿈. 그 고양이 두 마리가 농장 정원 '더파든(The Farden)'에 나타난 즈음에 꿈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어떤 우연과 필연의 연결고리일 수도 있다는 그런 불안한 예감을 주는 꿈. 고대의 전쟁터에 있었다 아마 힌두쿠시 어디쯤일 것이다 하늘의 문은 닫히고 땅의 어둠은 깊다 삼 주야를 싸웠다 투구가 깨어지고 갑옷의 줄도 잘렸다 피와 땀에 절은 가슴에 적장의 칼끝이 닿았다 이제 날카로운 칼은 해진 옷을 뚫고 가슴을 헤집을 것이다 "지친 내 심장을 가져가라" 희미한 심장의 온기마저 사라지면 영혼은 서늘한 밤하늘에 이를 것이다 기우는 달과 푸른 별빛이 아득하리라 깃털처럼 가벼워진 영혼 이내 훌훌 나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가슴 먹먹한 나의 집으로 그리고 대의의 깃발을 들었던 그곳으로…… 운명이 우리를 찾는가? 우리가 운명의 문을 여는가?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 순간에도 운명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곧잘 잊는다. 그러나 운명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 운명에 끌려가지 않고 운명 속으로 담담히 걸어 들어가는 사람. '운명'을 '자유 의지'로 승화시키는 사람. 그리하여 운명을 자신의 서사로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남기는 '운명적 서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이제 나는 자신의 운명 속으로 담담히 걸어 들어간 어떤 전직 스파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 전직 스파이가 누구인가요?"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당신이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해두자. 이미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일 수도 있겠고, 언젠가 당신이 읽었을 신문 기사의 배후에 존재하였던 익명의 헌신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SNS나 탐사보도 매체에 잠시 올랐다가 바로 사라져 버린(어디에서 기사 삭제에 개입했을 수도, 팩트 체크에 실패했을 수도 있는) 기사의 주인공이거나 외신 발 카더라 소식에 등장하는 인물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당신 주변에 있을 수 있는, 또는 있었던 일이라고 해두자. 어차피 이 이야기는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이니까.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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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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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3)] 뇌 속 '청소부' 깨우니 치매 단백질이 사라졌다⋯항체 주사 대체할 '알약' 길 열려
- 인류에게 '암(Cancer)'이 정복해야 할 산이라면, '알츠하이머 치매'는 서서히 차오르는 물과 같다. 전 세계 고령화 속도와 비례해 환자 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물을 퍼낼 확실한 바가지조차 갖지 못했다. 최근 FDA 승인을 받은 '레켐비' 같은 항체 치료제들이 등장했지만,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과 뇌부종 같은 부작용, 그리고 정맥 주사라는 번거로움은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그런데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공동 연구진이 최근 이 장벽을 한 번에 허물 수 있는 '뇌 속의 숨겨진 스위치'를 찾아냈다. 외부에서 비싼 용병(항체)을 투입하는 대신, 우리 뇌가 본래 가지고 있던 '청소부'를 깨워 치매 원인 물질을 스스로 없애는 혁신적인 치료법의 길이 열린 것이다. 뇌 속의 '쓰레기 소각장'을 다시 가동하라 알츠하이머병은 뇌 속에 '아밀로이드 베타(Aβ)'라는 독성 단백질 찌꺼기가 쌓이면서 시작된다. 마치 하수구가 막히면 집안이 물바다가 되듯, 이 찌꺼기가 신경세포 사이를 막아 기억과 인지 기능을 파괴한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의 뇌에는 이 찌꺼기를 잘게 잘라 없애는 천연 효소, '네프릴리신(Neprilysin)'이 존재한다. 일종의 '단백질 가위'이자 뇌 속의 '자체 소각장'이다. 문제는 나이가 들거나 치매가 시작되면 이 가위가 녹슬고 소각장이 멈춰버린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멈춰버린 이 소각장을 다시 가동할 '전원 스위치'를 찾아냈다. 바로 뇌의 해마(Hippocampus) 부위에 있는 '소마토스타틴 수용체(SST1, SST4)'다. 연구진이 유전자 조작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는 명확했다. 이 스위치(SST 수용체)를 제거하자, 청소부(네프릴리신)가 사라졌고 쥐의 뇌에는 순식간에 쓰레기(아밀로이드)가 쌓였다. 반대로 약물을 통해 이 스위치를 강제로 'ON' 시키자, 네프릴리신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뇌 속에 쌓여있던 독성 단백질이 분해되어 사라졌다. 실험 쥐의 기억력 또한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탱크 대신 오토바이…'혈액-뇌 장벽'을 뚫어라 이번 연구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진짜 이유는 '약의 형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외부 물질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혈액-뇌 장벽(BBB·Blood-Brain Barrier)'이라는 아주 촘촘한 검문소를 가지고 있다. 현재 시판되는 항체 치료제들은 분자의 크기가 거대하다. 비유하자면 '탱크'와 같다. 화력은 좋지만 덩치가 너무 커서 이 좁은 검문소(BBB)를 통과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고용량을 혈관에 쏟아부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뇌혈관이 터지거나 붓는 부작용이 생긴다. 반면, 연구진이 타깃으로 한 SST 수용체는 '소분자 화합물(Small molecule)'로 자극할 수 있다. 소분자는 항체에 비해 크기가 매우 작다. 탱크가 아니라 날렵한 '오토바이'다. 검문소(BBB)를 아주 쉽게 통과해 뇌 속 깊숙한 곳까지 약효를 전달할 수 있다. 연구를 주도한 페르 닐손 박사는 "우리가 찾은 방식은 주사 바늘이 필요 없다"며 "환자가 집에서 물과 함께 삼키는 작은 '알약(Pill)' 하나로 뇌 속의 청소 시스템을 가동해 치매를 치료하는 미래가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치료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은 물론, 환자의 삶의 질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변화다. 실패 확률 낮은 '익숙한 길'로 간다 신약 개발은 흔히 '도박'에 비유된다. 10년을 연구해도 실패할 확률이 90%가 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성공 확률이 높은 '익숙한 길'을 택했다. 연구진이 찾아낸 SST 수용체는 'G단백질 연결 수용체(GPCR)'라는 거대한 단백질 가문에 속한다. 이 가문은 제약업계에서 가장 연구가 많이 된, 일종의 '베스트셀러 타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처방되는 의약품의 약 30~40%가 바로 이 GPCR을 조절하는 약물이다. 즉, 맨땅에 헤딩하듯 새로운 물질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안전성과 작동 원리가 검증된 시스템을 이용해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만든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번 동물 실험에서 부작용은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치매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 치료는 '외부의 힘'으로 억지로 찌꺼기를 긁어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뇌가 본래 가지고 있던 '자정 능력(Self-cleaning)'을 복원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치료법임을 증명했다. 1년에 수천만 원이 드는 주사제가 아니라, 매일 아침 비타민처럼 챙겨 먹는 알약으로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세상. 뇌 속의 작은 스위치 하나가 그 거대한 변화의 문을 열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 알츠하이머와의 전쟁에서 인류는 이제 '방패'가 아닌 '검'을 쥘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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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3)] 뇌 속 '청소부' 깨우니 치매 단백질이 사라졌다⋯항체 주사 대체할 '알약' 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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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핫이슈] 트럼프 행정부, USMCA 탈퇴 검토…북미 무역협정 파기 위기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첫 임기 때 주도했던 북미무역협정(USMCA)의 탈퇴 가능성을 비공개로 저울질하며 글로벌 통상 환경에 거대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멕시코와 캐나다를 상대로 한 다자간 협정 대신,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양자 협상으로 판을 새로 짜겠다는 노골적인 압박으로 풀이된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USMCA의 효용성 깎아내리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참모진에게 2019년 체결된 USMCA를 언급하며 왜 우리가 여기서 탈퇴하면 안 되는가라고 반문하는 등 협정의 존속 가치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멕시코 및 캐나다와의 무역 관계 재정립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역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2019년의 합의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캐나다 및 멕시코와 각각 별도의 양자 협상을 추진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백악관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탈퇴 논의 여부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민을 위해 더 나은 거래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최종 결정권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7월 연장 심사 앞두고 북미 통상 질서 안갯속 USMCA는 오는 7월 1일 협정 연장 여부를 결정짓는 의무 검토 시한을 맞이한다. 당초 외교가에서는 이 과정이 형식적인 절차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잇따른 불만 표출과 새로운 요구 조건 제시로 인해 거대한 무역 갈등의 진원지로 돌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USMCA를 향해 무의미하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으며, 캐나다와 멕시코의 제품이 미국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미국의 탈퇴 가능성을 일축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외환 시장에서는 캐나다 달러와 멕시코 페소가 즉각적인 약세를 보이는 등 시장의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Key Insights] 미국의 USMCA 탈퇴 검토는 다자주의 무역 체제를 무너뜨리고 철저히 미국의 이익만을 좇는 양자 협상으로 통상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신호탄이다. 멕시코나 캐나다를 북미 수출의 우회 기지로 활용해 온 한국 자동차 및 부품, 배터리 기업들은 관세 면제 혜택 박탈이라는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한 만큼, 기업들은 북미 현지 생산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공급망 다변화 등 컨틴전시 플랜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 [Summary]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2019년 체결했던 북미무역협정(USMCA)의 탈퇴를 비공개로 검토하며 양자 협상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는 현행 협정이 국익에 맞지 않는다며 캐나다, 멕시코와의 개별 협상 추진을 예고했다. 오는 7월 1일로 예정된 USMCA 연장 검토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을 무의미하다고 깎아내리면서 북미 3국 간의 통상 갈등이 고조되고 있으며, 글로벌 외환 시장과 경제의 불확실성도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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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핫이슈] 트럼프 행정부, USMCA 탈퇴 검토…북미 무역협정 파기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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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장 "가상자산 잔고·장부 실시간 연동해야"⋯빗썸 사태에 제도 전면 보완 촉구
- 가상자산 거래소의 내부통제 체계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실시간 잔고·장부 연동 의무화와 2단계 입법 강화를 공식화했다. 빗썸 사태를 계기로 거래소의 전산 통제 수준을 전통 금융회사에 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으로, 가상자산 산업 전반의 규제 지형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지 주목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빗썸 사태 긴급 현안질의'에서 가상자산 거래소의 실제 보유 잔고와 장부 수량을 실시간으로 대조하는 연동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업비트의 5분 단위 상시 대조 시스템에 대해서도 "5분도 짧지 않고 굉장히 길다"고 지적하며 실시간 일치 체계가 안전성 확보의 전제라고 강조했다. 빗썸이 하루 1회 대조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원장은 2018년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를 언급하며 총발행 주식 수를 초과 입력할 수 없도록 전산을 정비한 사례를 들었다. 아울러 현행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미비점을 지적하며 2단계 입법에서 전자금융거래법·지배구조법·금융소비자보호법 수준의 규율을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니해설] 가상자산 규제 2단계 입법 가속…'실시간 통제'로 전환점 맞나 빗썸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 거래소의 내부통제와 전산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재점검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보유 잔고와 장부 수량은 실시간으로 일치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단순한 운영 개선 요구를 넘어, 가상자산 산업 전반의 규율 체계를 전통 금융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현재 국내 주요 거래소는 고객 자산의 실제 보유 수량과 장부상 기록을 주기적으로 대조하는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업비트는 5분 단위로 상시 대조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고, 빗썸은 하루 1회 점검하는 구조다. 그러나 금감원장은 이마저도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5분도 길다"고 지적하며, 시스템상 입력 단계에서부터 실제 보유 수량을 초과하는 거래가 원천적으로 차단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원장이 언급한 2018년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는 상징적 사례다. 당시 전산 오류로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 대량 발행되며 시장 혼란이 발생했고, 이후 총발행 주식 수를 초과하는 입력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시스템이 전면 개편됐다. 가상자산 시장 역시 이와 같은 구조적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현행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규율 강도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이 원장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허술한 부분이 있다"고 평가하며, 2단계 입법에서 전자금융거래법,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기존 금융 규제 체계를 전면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가상자산 사업자를 단순 플랫폼이 아닌 금융회사에 준하는 기관으로 간주하겠다는 방향 전환을 시사한다. 특히 수탁 자산 보호와 관련한 80% 분리 보관 규정도 도마에 올랐다. 현행 제도는 고객 자산의 80%를 분리 보관하도록 하고 있으나, 나머지 20%는 일정 부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 원장은 유럽연합(EU)의 미카(MiCA) 법을 참고해 보완 방안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미카법은 가상자산 발행·유통·보관 전반에 걸쳐 자본 요건과 내부통제, 공시 의무 등을 촘촘히 규정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역시 규율 강화에 무게를 실었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상시적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2단계 입법에 강제력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배구조법 24조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금융회사와 동일 수준의 내부통제 책임을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날 이재원 빗썸 대표는 60조원 규모의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와 관련해 패닉셀 및 강제청산으로 발생한 손실을 피해 구제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이벤트 오지급 사고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최종 책임자로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코인 오지급으로 장부상 수량이 증가한 부분을 적시에 탐지·차단하지 못한 내부통제 미비를 인정했다. 현재까지 1788개 비트코인이 매도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패닉셀과 약 30여명이 겪은 강제청산을 구제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향후 금융감독원 검사와 민원 접수 결과를 반영해 피해 구제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금감원은 현재 진행 중인 빗썸 검사 결과를 이번 주 내로 보고받겠다고 밝혔다. 해외처럼 '준비금 증명 시스템(Proof of Reserves)'을 도입하지 않은 사업자에 대해 갱신 수리를 거절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의 판단 사안이라면서도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상자산 시장은 빠른 기술 혁신과 함께 성장해 왔지만, 내부통제 체계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정비돼 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논의는 단순한 특정 거래소의 문제를 넘어, 가상자산 산업을 제도권 금융과 동일한 책임과 투명성의 틀 안에 편입시키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2단계 입법의 구체적 내용과 속도가 향후 시장 신뢰 회복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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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장 "가상자산 잔고·장부 실시간 연동해야"⋯빗썸 사태에 제도 전면 보완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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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핵전쟁 나면 땅속에서 솟구친다⋯소련의 '지하 발진 전투기' 야망과 좌절
- 냉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절, 미국과 소련의 군사 전략가들은 '최후의 날(Doomsday)'을 대비한 시나리오에 골몰했다. 적의 핵미사일이 빗발쳐 모든 활주로가 파괴된 상황에서도 전투기를 띄울 수 있을까? 소련 엔지니어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지하 미사일 사일로에서 수직으로 발사되는 전투기'라는,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 야심 찬 계획은 물리 법칙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브라질 언론 클릭 페트롤레우 이 가스는 지난 4일(현지시간) "소련이 핵 공격 이후에도 살아남아 반격할 수 있도록 고안했던 '지하 사일로 발진 Yak-36M' 프로젝트는 공중전의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인 사례"라며 그 흥망성쇠를 집중 조명했다. 활주로가 사라져도 뜬다…'지하 전투기'의 탄생 1950년대 이후 소련 전략가들의 최대 공포는 '제1격(First Strike)'이었다. 미국의 핵 선제 타격이 시작되면 지상의 공군 기지와 활주로가 1순위로 삭제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관하는 지하 사일로(Silo)에 전투기를 숨기는 방식이었다. 두꺼운 강화 콘크리트와 지하 깊숙한 곳은 핵폭발의 충격과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했다. 문제는 '어떻게 이륙하느냐'였다. 소련은 당시 개발 중이던 수직이착륙(VTOL) 기술에 주목했다. 실험기였던 Yak-36M은 별도의 활주로 없이 제자리에서 떠오를 수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미사일처럼 사일로 뚜껑을 열고 수직으로 솟구쳐 올라 즉시 적을 요격할 수 있는 완벽한 플랫폼이었다. 현실의 벽 1. "기름 먹는 하마"…뜨자마자 추락 위기 하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컸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연료 효율'이었다. Yak-36M은 수직 이륙을 위해 주 엔진 외에 별도의 리프트 엔진을 가동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연료를 소모했다. 매체는 "단지 사일로를 빠져나오는 데에만 연료의 상당 부분을 써버려, 정작 전투를 치를 항속 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공중 급유도 불가능한 핵 전쟁 상황에서, 뜨자마자 연료 부족 경고등이 켜지는 전투기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현실의 벽 2. "좁은 굴뚝 속의 화약고"…조종사의 무덤 좁은 사일로 내부 환경도 기술적 난제였다. 제트 엔진이 뿜어내는 수천 도의 고열과 배기가스, 엄청난 음압이 밀폐된 공간 안에서 역류하며 기체와 조종사를 위협했다. 또한 당시의 아날로그 비행 제어 시스템으로는 좁은 통로를 수직으로 통과하는 정밀한 자세 제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륙 중 아주 사소한 실수나 기계적 결함만 있어도 전투기는 사일로 벽에 충돌해 거대한 화염병이 될 운명이었다"고 매체는 분석했다. 결국 바다로 간 Yak-36M…'포저'의 전신이 되다 결국 소련 군부는 이 무모한 계획을 백지화했다. 대신 항공기의 분산 배치나 고속도로 활주로 이용 등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했다. 지하 요새의 주인이 되지 못한 Yak-36M은 이후 해군용 함재기로 방향을 틀어, 소련 최초의 실용 수직이착륙기인 'Yak-38(나토명: 포저)'로 다시 태어났다. 비록 Yak-38 역시 짧은 항속 거리와 부족한 무장 탑재량으로 '평화의 비둘기(적을 공격할 능력이 없어서)'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최소한 땅속에 묻히는 운명은 피했다. 매체는 "지하 사일로 발사 전투기 개념은 기술이 전략적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했던 냉전 시대의 단면"이라며 "생존을 위해 물리학의 한계까지 도전했던 엔지니어들의 집념만큼은 인정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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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핵전쟁 나면 땅속에서 솟구친다⋯소련의 '지하 발진 전투기' 야망과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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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반도체 관세, 대만은 면제 윤곽⋯한국은 다시 협상 테이블로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 부과 계획을 구체화하면서 한국이 대만에 준하는 관세 면제를 확보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BBC 등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5%로 인하하는 대신, 대만의 반도체 국내 생산 확대를 전제로 수천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유치하는 데 합의했다. BBC는 이번에 적용된 15% 반도체 관세율이 현재 미국이 일본, 한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무역 파트너 국가에 적용하고 있는 관세율과 동일하다고 전했다. 이 관세율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처음 제시한 관세 협상 구상에서 도출된 것으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전반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한편, 미국 내 투자를 조건으로 관세 부담을 경감해주는 이른바 '관세 상쇄 프로그램'을 공식 정책으로 확정했다. 미국은 이날 대만과의 무역 합의를 통해 대만 반도체 기업이 미국 내 생산시설을 신설할 경우, 공장 건설 기간에는 해당 생산능력의 2.5배까지, 완공 이후에는 1.5배까지 반도체 수입에 대해 관세를 면제하기로 했다. 이 같은 조건은 향후 주요 반도체 생산국과의 협상에서 사실상 기준선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한미 무역 협상 당시 반도체 관세 정책이 확정되지 않아 구체적인 면제 조건을 협의하지 못했다. 다만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는 '반도체 교역 규모가 한국 이상인 국가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약속받은 만큼, 정부와 업계는 대만과 최소한 동등한 수준의 관세 면제를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니해설] 트럼프, 대만에 반도체 관세 면제 기준 제시…한국은 본격 협상 국면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관세 정책이 본격적인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양대 축인 대만과 한국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를 국가 안보의 핵심 전략 품목으로 규정하고,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광범위한 관세 부과 권한을 확보한 상태다. 다만 일률적인 고율 관세 대신 '투자 연계형 차등 면제' 방식을 채택하며 국가별 협상 여지를 남겨뒀다. 이번에 가장 먼저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된 대상은 대만이다. 미국은 대만 반도체 기업이 미국 내 생산시설을 신설하거나 증설할 경우, 투자 규모에 연동해 대규모 관세 면제를 허용하기로 했다. 공장 건설 기간 동안에는 신규 생산능력의 2.5배까지, 완공 이후에는 1.5배까지 무관세 수입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대만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 확실히 묶어두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 합의의 중심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3월 TSMC가 발표한 1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직접 거론하며 추가 투자를 압박해왔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역시 "상무부가 투자 계획을 승인하면 해당 물량의 2.5배까지 반도체를 무관세로 수입할 수 있다"며 협상 주도권이 미국 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원칙적 약속'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서 미국은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 "한국을 다른 주요 반도체 교역국보다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이는 교역 규모상 한국의 최대 경쟁국인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의미하지만, 이를 어떤 수치와 방식으로 구현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투자 규모를 놓고 보면 한미 간 온도 차도 뚜렷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이 민간 기업 중심으로 2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대만 정부가 동일한 규모의 신용보증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15일 CNBC 인터뷰에서 "목표는 대만 반도체 공급망과 생산의 40%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것"이라며,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을 경우 관세율이 100%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역시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제시했지만, 이 가운데 1500억달러는 조선업 전용이며 나머지 2000억달러도 반도체에 한정된 투자는 아니다. 민간 차원의 반도체 투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 투자 계획을 확대해 2030년까지 총 37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투자 규모가 대만에 적용된 '2.5배 무관세' 기준에 어느 정도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관건은 협상의 시간표와 정치 일정이다. 반도체 관세는 미국이 주요 생산국과의 협상을 마친 뒤 부과될 예정이어서 단기 충격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관세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고율 관세는 미국 내 전자제품과 자동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정치적 부담이 크지만, '투자 유치의 대가'라는 명분을 내세울 경우 정책 추진 동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를 '최종 목표'가 아닌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의 적법성을 둘러싼 사법적 리스크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품목별 관세 확대 가능성을 사전에 드러내는 신호라는 해석이다. 한국의 선택지는 분명하다. 대만과의 합의를 협상 기준선으로 삼아, 투자 규모와 전략적 가치에 걸맞은 관세 면제 조건을 구체적으로 끌어내야 한다. 반도체가 한국 최대 수출 산업이자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핵심 축이라는 점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라는 문구는 선언적 문장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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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반도체 관세, 대만은 면제 윤곽⋯한국은 다시 협상 테이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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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 신기술(217)] 유체 기어, 마모 없는 로봇 구동의 문을 열다
- 톱니가 맞물리는 것이 아닌, 물로 맞물리는 마모 없는 기어가 개발돼 로봇 구동이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구진이 마모와 걸림 현상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물 기반 기어(water-driven gear, 유체 기어)'를 개발했다고 인터레스팅언지니어링과 웹 사이트 Phys.org가 보도했다. 유체 기어는 고체 톱니 대신 유체의 흐름으로 동력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로봇과 기계 설계의 오랜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 뉴욕대학교(NYU) 연구팀은 유체역학을 이용해 회전 속도와 방향을 제어하는 새로운 기어 메커니즘을 고안했다고 13일(현지시간) 밝혔다. 이 기어는 맞물리는 톱니가 없어 부품 간 직접 접촉이 발생하지 않으며, 마찰·마모·이물질로 인한 고장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를 이끈 준 장(Jun Zhang) 교수는 "고체 톱니를 맞물리게 하는 대신, 회전에 의해 형성된 유체의 흐름으로 동력을 전달하는 새로운 기어를 만들었다"며 "회전 속도는 물론 방향까지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기어는 인류 문명과 함께해 온 대표적 기계 요소다. 기원전 3000년 무렵 청동기 시대부터 금속·목재·플라스틱 톱니가 동력을 전달해 왔고, 이는 고대 전차에서 현대 로봇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원리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어는 정밀한 정렬이 요구되며, 작은 결함이나 모래 알갱이 하나에도 걸림이나 파손이 발생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NYU 연구팀은 이러한 취약점을 근본적으로 피하기 위해 '무접촉 기어' 개념을 제시했다. 공기와 물이 터빈을 구동하는 원리에 착안해, 정밀하게 설계된 유체 흐름이 물리적 톱니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했다. 실험에서는 물과 글리세린을 섞은 점성이 높은 액체 속에 두 개의 원통을 담갔다. 첫 번째 원통을 회전시키자 주변 유체가 소용돌이치며 움직였고, 원통 간 거리와 회전 속도에 따라 두 가지 상반된 동작이 나타났다. 원통이 가까이 있을 때는 유체가 미세한 '가상 톱니'처럼 작용해 두 번째 원통을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켰다. 반대로 거리를 벌리면 유체가 보이지 않는 벨트처럼 감기며 같은 방향 회전을 유도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성이 기존 기계식 기어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제어 자유도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부품이 서로 닿지 않기 때문에 파손될 요소가 없고, 이물질이 유입되더라도 유체가 이를 감싸 흐르며 작동을 유지할 수 있다. NYU 레이프 리스트로프(Leif Ristroph) 교수는 "일반 기어는 톱니가 정확히 맞물려야 하며, 작은 결함이나 먼지 하나만으로도 작동이 멈춘다"며 "유체 기어는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고, 속도와 방향을 기존 기계식 기어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소프트 로보틱스 분야에서 특히 큰 잠재력을 지닌다고 보고 있다. 금속 부품을 유체 기반 구동으로 대체하면, 부드럽고 유연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기계 설계가 가능해진다. 유체의 점성이나 흐름 조건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기어비를 즉각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1월 13일자에 실렸다. 연구진은 향후 로봇, 마이크로 기계, 의료용 장치 등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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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 신기술(217)] 유체 기어, 마모 없는 로봇 구동의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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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월가, 파월 수사도 넘겼다⋯'정치보다 숫자'에 베팅
- 미국 뉴욕증시가 연방준비제도(연준·Fed) 독립성 논란과 금융 규제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월가는 정치적 불확실성보다 물가 지표와 기업 실적이라는 '숫자'에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12일(현지 시각)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장중 6980선을 돌파하며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나스닥도 상승 흐름을 보였다. 이는 미 법무부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신용카드 금리를 1년간 10%로 제한하겠다고 밝힌 이후 나온 움직임이다. 금융주는 직격탄을 맞았다. 씨티그룹과 JP모건체이스, 캐피털원 등 카드 비중이 큰 은행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금리 상한이 시행될 경우 저신용 대출 축소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반면 월마트와 일부 대형 기술주는 상승하며 지수 방어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이 단기간에 통화정책 경로를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이번 주 시작되는 대형 은행 실적과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쏠려 있다. 물가 안정과 실적 개선이 확인될 경우, 연초 랠리는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미니해설] 월가는 왜 정치 리스크를 무시했나 이번 국면의 핵심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월가가 그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가'다. 연준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는 중앙은행 독립성이라는 미국 금융 시스템의 근간을 건드리는 사안이지만, 주식시장은 공포 대신 신고가로 반응했다. 이는 월가가 정치 리스크를 가볍게 본다기보다, "당장 숫자를 바꾸지 않는 변수는 뒤로 미룬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제롬 파월 의장은 수사가 통화정책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다수의 정책·시장 전문가들도 연준의 단기 금리 결정이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카드 금리 상한, 은행보다 무서운 건 '소비 둔화' 트럼프 대통령의 카드 금리 상한 발언은 금융주에 즉각적인 타격을 줬다. WSJ가 인용한 분석에 따르면, 금리 상한이 현실화될 경우 약 2500억 달러 규모의 저신용 카드 대출이 사라질 수 있다. 이는 은행 수익성 문제를 넘어 소비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변수다. 다만 월가는 아직 이를 '정책 리스크'가 아닌 '정치적 제스처'에 가깝게 본다. 실제 입법 여부와 적용 방식이 불투명하고, 기업 실적이나 물가 지표에 즉각 반영될 단계는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다시 말해, 리스크의 방향은 인식했지만 행동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본 셈이다. 월가의 초점은 '두 숫자' 월가의 시선은 명확하다. 물가와 은행 실적이다. 먼저 12월 CPI다. 시장은 물가 상승률이 3% 안팎에서 안정될 경우, 연준이 당장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더라도 연내 완화 여지를 완전히 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물가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 연초 강세장은 빠르게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둘째는 은행 실적이다. JP모건 체이스를 시작으로 공개되는 대형 은행들의 실적에서 시장이 확인하려는 것은 연체율과 대손충당금, 그리고 소비자 대출 흐름이다. 이는 ‘소비가 실제로 버티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가장 직접적인 지표다. 로이터가 전한 표현처럼, 은행은 여전히 '경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금과 은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은 것은 연준 독립성 훼손에 대한 장기적 불안을 반영한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아직 그 불안을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할 신호'로 해석하지 않았다. 월가는 현재 '정치보다 숫자'를 택했다. 다만 CPI나 은행 실적이 기대를 벗어나는 순간, 이 선택은 빠르게 수정될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주 월가 레이더가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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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월가, 파월 수사도 넘겼다⋯'정치보다 숫자'에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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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핫이슈] 중국, 일본 이중용도 물자 수출 금지
- 중국 정부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을 문제 삼아 일본에 군사 목적의 이중용도 물자(민간용으로도 군용으로도 활용 가능한 물자) 수출을 금지하는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6일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 군사 사용자와 군사 용도 및 일본 군사력 제고에 도움이 되는 기타 최종 사용자 용도의 모든 이중용도 물자 수출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대일 수출 통제 조치는 이날 즉시 시행된다. 중국 상무부는 다른 국가·지역의 조직·개인이 중국의 조치를 위반해 중국이 원산지인 이중용도 물자를 일본의 조직·개인에 이전·제공할 경우 법적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방침도 발표문에 명시했다. 상무부 대변인은 "일본 지도자가 최근 대만 관련 잘못된 발언을 공공연하게 발표해 대만해협에 대한 무력 개입 가능성을 암시했다"며 "(이는) 중국 내정에 난폭하게 간섭한 것이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심각하게 위배한 것으로 성질과 영향이 극도로 나쁘다"고 이날 조치의 배경을 밝혔다. 중국은 작년 11월 다카이치 총리가 중의원(하원)에서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한 이후 일본을 거칠게 압박해왔다. 대만 문제를 '핵심이익 중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에 발언 철회를 요구하면서 중국인 관광·유학 자제령과 중국 내 일본 영화·공연 제한(이른바 '한일령'<限日令>),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 취소 등 보복 조치를 차례로 꺼내 들었다. 이에 앞서 중국은 지난 2010년 영유권 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충돌한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규제한 바 있어 이번 중일 갈등 국면에서도 전략 물자 수출 통제 카드가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이번 조치는 희토류라는 특정 품목들이 아니라 이중용도 물자 전반의 수출 통제라는 점에서 중국이 과거보다 압박 수위를 끌어올린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분쟁을 거치면서 최근 수년 동안 보복 수단으로 활용 가능한 이중용도 품목 관리를 강화했다. 이날 발표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전날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이후 나온 것이기도 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전날 회담에서 한중 양국의 항일 역사를 공통분모로 부각하면서 중일 갈등 국면에서 한국을 중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제스처를 취했고 일본 매체들은 중국이 이 대통령의 방일 등 추후 일정을 염두에 두고 한미일 3국의 분열을 꾀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을 내놨다. 일각에선 중국이 한국에 유화적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전략 자원 수출 통제라는 '실력 행사'로 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한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이런 가운데 중국 외교부는 다카이치 총리가 전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안보 정책의 근간인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통한 방위력 강화에도 재차 의욕을 나타낸 것을 두고 "일본의 재군사화를 가속하는 위험한 동향"이라며 "중국은 평화를 사랑하는 전세계 국가·인민과 함께 일본 우익 세력이 역사의 차를 거꾸로 모는 것과 군국주의가 부활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Key Insights] 중국의 대일 이중용도 물자 수출 금지는 단순한 무역 보복을 넘어 대만 문제에 개입하려는 동맹국들의 안보 공조를 직접 타격하겠다는 노골적인 위협이다. 특히 한중 정상회담 직후 일본을 겨냥한 경제 제재를 발표한 것은 한미일 삼각 공조에 균열을 내고 한국을 압박하려는 고도의 외교 전술이다. 한국은 대만 해협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국내 첨단 산업의 공급망 차단으로 불똥이 튀지 않도록 중국발 수출 통제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을 시급히 가동해야 한다. [Summary] 중국 정부가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에 반발해 일본을 상대로 모든 이중용도 물자의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도 통제하는 초강경 조치로, 과거 희토류 수출 제한보다 압박 수위가 높다.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항일 공조를 부각하며 한국을 회유하는 동시에 일본의 재군사화 행보를 맹비난했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중일 간의 갈등이 통상 전면전으로 번지며 동북아 안보 및 공급망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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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핫이슈] 중국, 일본 이중용도 물자 수출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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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CES 2026서 'AI 일상 동반자' 선언⋯TV·가전·헬스케어 하나로 잇는다
-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 개막을 앞두고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미래 전략을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윈 호텔에서 '당신의 AI 일상 동반자'를 주제로 프레스 콘퍼런스를 열고, 전 제품군과 서비스에 AI를 적용해 일상 속 AI 경험의 대중화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노태문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삼성전자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AI를 적용해 고객이 의미 있는 AI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고객의 일상 속 AI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TV를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컴패니언', 가전을 아우르는 '홈 컴패니언', 건강 관리 영역의 '케어 컴패니언' 등 세 가지 AI 비전을 제시했다. 2026년형 TV 전 라인업에는 차세대 HDR 표준 'HDR10+ 어드밴스드'와 구글과 공동 개발한 '이클립사 오디오'가 적용된다. 가전 부문에서는 스마트싱스를 기반으로 한 AI 가전 생태계를 강화하고, 냉장고·세탁기·로봇청소기 등에 스크린과 카메라, 음성 인식 기능을 확대 적용한다. 삼성전자는 AI 기반 홈 케어와 헬스케어 서비스로 일상 전반을 아우르는 AI 생태계 구축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미니해설] 삼성전자 '더 퍼스트룩' 개최⋯전시와 콘퍼런스를 하나로 삼성전자가 CES 2026을 앞두고 제시한 AI 전략의 핵심은 기술 과시가 아닌 '일상 침투'다. 단일 기기나 특정 기능 중심의 AI 경쟁에서 벗어나, 가전·TV·모바일·헬스케어를 관통하는 생활 밀착형 AI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보는 AI'에서 '함께 사는 AI'로 삼성전자가 내세운 'AI 일상 동반자'는 사용자의 명령에 반응하는 기존 AI를 넘어, 맥락을 이해하고 선제적으로 도움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개념이다. 노태문 사장이 강조한 ‘AI 경험의 대중화’는 AI를 특정 고가 제품이나 전문 영역이 아닌, 누구나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생활 인프라로 만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삼성은 이를 위해 TV, 가전, 모바일, 웨어러블 등 자사 주력 제품군 전반에 AI를 공통 언어처럼 적용한다. 기기별로 흩어져 있던 기능을 AI로 연결해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이해하고, 기기 간 협업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TV, 콘텐츠 소비 기기에서 '엔터테인먼트 컴패니언'으로 TV는 삼성 AI 전략의 출발점이다. 삼성전자는 20년간 유지해온 글로벌 TV 시장 1위의 위상을 AI 중심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비전 AI 컴패니언'은 사용자의 질문과 상황을 이해해 정보를 제공하고, 콘텐츠 소비 방식 자체를 바꾸는 역할을 맡는다. 2026년형 TV 전 라인업에 적용되는 HDR10+ 어드밴스드는 밝기·명암·색상·모션 표현을 종합적으로 개선한 차세대 화질 표준이다. 여기에 구글과 공동 개발한 '이클립사 오디오', 하만 브랜드 전반으로 확장된 '큐 심포니'까지 더해지며, TV는 시청각 몰입 경험의 허브로 진화한다. 특히 세계 최초 130형 마이크로 RGB TV는 삼성의 디스플레이 기술력과 AI 영상 처리 역량을 집약한 상징적 제품이다. 백라이트를 RGB LED로 세분화해 색 재현력과 명암 표현을 극대화했다. '집안일 해방'을 겨냥한 홈 컴패니언 전략 가전 분야에서는 '홈 컴패니언' 비전이 전면에 등장했다. 삼성전자는 AI 가전의 목표를 단순 자동화가 아닌, 집안일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정했다. 스마트싱스를 중심으로 냉장고, 세탁기, 조리기기, 청소기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해 맞춤형 동작을 수행한다. 스크린·카메라·보이스를 결합한 폼팩터 전략도 눈에 띈다. 냉장고를 넘어 세탁·조리 가전으로까지 스크린 적용이 확대되고, 카메라와 비전 기술로 식재료·오염·장애물 인식 정확도를 높였다. 2026년형 비스포크 AI 패밀리허브 냉장고에 구글의 최신 AI 모델 ‘제미나이’를 탑재한 것도 개방형 AI 전략의 일환이다. 레시피 추천, 식재료 관리, 식생활 리포트 제공 등은 가전을 정보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세탁·건조·의류 관리까지 통합한 비스포크 AI 에어드레서와 AI 콤보 역시 가전 간 경계를 허무는 흐름을 보여준다. 헬스케어까지 확장되는 AI 생태계 삼성전자는 AI 전략의 종착지로 '케어 컴패니언'을 제시했다. 삼성 헬스를 중심으로 수면, 운동, 영양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의료 플랫폼 '젤스'와 연동해 전문 상담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특히 웨어러블과 모바일 기기의 생체 신호를 활용한 뇌 건강 관련 기술은 삼성 AI 전략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일상 속 미세한 행동 변화를 분석해 인지 저하를 조기에 감지하려는 시도는 의료·복지 영역과의 경계를 더욱 좁힌다. '기술 리더십'에서 '책임 있는 AI'로 삼성전자는 AI 확산에 따른 윤리와 신뢰 문제도 함께 강조했다. 노 사장은 "글로벌 기술 리더로서 책임 있는 윤리 기준을 바탕으로 AI 생태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AI가 일상 깊숙이 들어올수록 개인정보 보호, 데이터 활용 투명성, 안전성 확보가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는 판단을 반영한다. CES 2026을 앞둔 삼성전자의 전략은 단기 신제품 경쟁을 넘어, 향후 10년을 겨냥한 생활형 AI 플랫폼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TV·가전·헬스케어를 하나의 AI 생태계로 엮는 시도가 실제 사용자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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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CES 2026서 'AI 일상 동반자' 선언⋯TV·가전·헬스케어 하나로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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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기술주 질주에 사상 최고치 문턱⋯뉴욕증시, 연말 랠리 불씨 살렸다
- 미국 뉴욕증시가 기술주 강세에 힘입어 4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 문턱까지 올라섰다. 연말 휴장 주간 속에서도 인공지능(AI) 관련 종목이 지수 전반을 끌어올리며 산타클로스 랠리에 대한 기대를 키웠지만, 견조한 경제 지표와 금리 경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히 부담 요인으로 남아 있다. 23일(현지시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 대비 0.4% 오른 6,907선에서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6,920선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시험했고, 종가 기준으로도 기존 최고치(6,901)에 바짝 다가섰다. 나스닥종합지수는 0.5% 상승했고,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도 108포인트(0.2%) 올랐다. 기술주가 상승장을 주도했다.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이 각각 2% 안팎 상승하며 나스닥 강세를 이끌었다. 다만 엔비디아의 경우 거래량은 30일 평균을 크게 밑돌아, 연말 특유의 얇은 유동성 속 상승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반면 러셀2000지수는 0.6% 하락하며 대형주와 중소형주 간 흐름은 엇갈렸다. 이날 증시는 예상보다 훨씬 강한 경제 성장 지표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 기대를 크게 후퇴시키지 않았다. 미 상무부는 3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연율 기준 4.3%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3.2%)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발표 직후 증시는 흔들렸지만, 이후 다시 상승세를 회복했다.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에서는 여전히 내년 두 차례 금리 인하 가능성이 반영되고 있다. 아폴론웰스매니지먼트의 에릭 스터너 최고투자책임자는 CNBC에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시장이 당장 두 차례 인하 기대를 접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차기 연준 의장 지명이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미니해설] 사상 최고치 앞둔 월가…확신보다 '조건부 낙관'이 지배한다 이번 상승장의 직접적인 동력은 기술주였다. 엔비디아·브로드컴 등 AI 핵심 종목이 연말 랠리의 불씨를 살렸다. CNBC는 최근 기술주 흐름을 "휴장 주간 속에서도 시장이 놓지 않는 마지막 성장 스토리"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반등은 거래량이 얇은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강한 추세라기보다는 연말 수급과 기대가 맞물린 랠리에 가깝다. 중소형주가 동반하지 못했다는 점도 상승의 폭과 깊이가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4.3% 성장’과 금리 인하 기대의 공존 WSJ는 이번 장세의 핵심 배경으로 3분기 GDP 서프라이즈를 꼽았다. 미국 경제는 2년 만에 가장 빠른 성장 속도를 기록했으며, 소비 지출이 가장 큰 기여 요인으로 나타났다. 통상 이런 지표는 금리 인하 기대를 약화시키지만, 이번에는 시장 반응이 달랐다. 연준의 향후 행보에 대한 시선이 이미 2026년으로 이동해 있고, 정부 셧다운으로 왜곡된 데이터에 대한 신중론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WSJ는 "강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연준이 즉각 긴축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금·원자재의 질주가 던지는 메시지 주식시장 낙관론과 동시에 안전자산 선호도 강해지고 있다. 금 가격은 이날 장중 트로이온스당 4,500달러를 돌파하며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연간 상승률은 70%를 넘어섰다. 은과 런던 시장의 구리 가격도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이는 위험자산 선호가 완전히 회복됐다기보다는, 주식·원자재·귀금속으로 분산된 복합적 포지셔닝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WSJ는 이를 두고 "랠리를 믿되, 한 방향에 베팅하지 않는 시장"이라고 표현했다. 연말을 바라보는 월가의 시선 S&P500은 사상 최고치 바로 아래까지 올라섰지만, 시장 분위기는 환호보다는 신중에 가깝다. 차기 연준 의장 인선, 금리 인하 시점, AI 투자 수익화 논쟁이라는 세 가지 변수가 여전히 상단을 제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연말 뉴욕증시는 흔들리면서도, 아직 꺾이지 않았다. 이번 랠리는 "얼마나 더 오를 수 있느냐"보다 "어떤 종목이 살아남느냐"를 가르는 시험대다. 월가는 지금, 사상 최고치보다 그 이후를 더 의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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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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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기술주 질주에 사상 최고치 문턱⋯뉴욕증시, 연말 랠리 불씨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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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 '천무' 에스토니아 첫 수출⋯3억유로 계약으로 북유럽 방산시장 교두보
- 한국형 다연장 로켓 천무가 발트 3국 가운데 하나인 에스토니아에 처음 수출되며 북유럽 방산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21일(현지시간) 에스토니아 탈린 전쟁박물관에서 에스토니아 국방부 산하 방산투자청(ECDI)과 천무 다연장 로켓 시스템 공급을 위한 정부 간(G2G) 수출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에 따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총 3억유로(약 5200억원) 규모의 천무 발사대 6문과 미사일 3종을 향후 3년간 에스토니아에 공급한다. 천무 수출은 유럽에서는 폴란드에 이어 두 번째이며, 발트해 국가를 상대로는 처음 성사된 사례다. 코트라는 이번 계약이 향후 에스토니아 방산 프로젝트 후속 수주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미니해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에스토니아에 5천억원 규모 다연장로켓 '천무' 수출 이번 천무 수출 계약은 단순한 무기 판매를 넘어 K-방산의 북유럽 진출 전략이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발트해 국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장거리 정밀 화력과 억제력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런 안보 환경 변화가 천무 도입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계약은 유럽 안보 지형 변화와 맞물린 상징적 성과로 평가된다. 천무는 한반도 유사시 북한의 방사포와 장사정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우리 군의 핵심 화력 자산이다. 최대 사거리 80㎞에서 고폭 유도탄과 분산 유도탄을 운용할 수 있어 신속한 대량 타격과 정밀 공격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장거리 화력의 중요성이 재확인된 이후,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기존 화력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주목받아 왔다. 이번 계약은 2018년 에스토니아의 K9 자주포 도입 이후 이어진 신뢰 관계의 연장선에 있다. 에스토니아는 당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의 계약을 시작으로 총 36문의 K9 자주포를 도입하며 K-방산과 협력 기반을 구축했다. 이후 양국은 지속적으로 방산 협의를 이어왔고, 지난 10월 서울에서 국방장관 간 천무 획득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이번 계약의 토대를 마련했다. 주목할 부분은 계약 방식이다. 이번 천무 수출은 코트라가 우리 정부를 대표해 계약 당사자로 참여하는 정부 간(G2G) 방식으로 진행됐다. G2G 계약은 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코트라가 국내 기업을 대신하거나 함께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로, 계약서 작성부터 협상, 법률 검토, 구매국 정부와의 소통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이 방식은 기업 간 계약에 비해 이행보증과 지연배상금 부담이 낮아 수출기업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코트라는 이번 계약과 함께 향후 10년간 장기 공급을 전제로 한 천무 수출 포괄계약도 체결했다. 단발성 수출에 그치지 않고 유지·보수, 추가 도입까지 포괄하는 구조적 수출 기반을 구축했다는 의미다. 아울러 에스토니아 국방부와 비즈니스혁신청(EIS)과 각각 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G2G 계약 활성화와 현지 방산 생태계 연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에스토니아의 국방 투자 계획 역시 천무 수출의 성장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국방개발계획 2026~2029(KMAK)'에 따라 향후 4년간 100억유로(약 17조3500억원) 이상을 국방 역량 강화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는 발트해 지역 전체가 군비 확충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K-방산 기업들에 중장기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다. 강경성 코트라 사장은 "2018년 K9 자주포 수출 이후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양국 방산 협력이 확대돼 왔다"며 "이번 천무 계약을 계기로 북유럽 시장에서 K-방산의 입지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무의 에스토니아 수출은 단순한 실적을 넘어, K-방산이 유럽 안보 시장의 실질적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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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 '천무' 에스토니아 첫 수출⋯3억유로 계약으로 북유럽 방산시장 교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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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판매 4년 만에 반등⋯내수 회복 신호탄
-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국내 소매판매가 4년 만에 상승 흐름으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15일 발표한 '최근 소매판매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소매판매액 경상지수 누적 증가율은 1.9%로 집계됐다. 2021년 이후 3년 연속 감소하던 흐름이 반등한 것이다. 가격 변동을 제거한 불변지수도 3분기 누적 기준 0.4% 증가해 2023년과 2024년의 감소세에서 벗어났다. 특히 3분기 경상지수 증가율은 3.2%로 2022년 4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승용차 판매가 회복세를 주도했으며, 의약품과 일부 내구재 판매도 증가했다. 다만 면세점과 대형마트, 화장품 등은 여전히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미니해설] 경총 "올해 1∼3분기 소매 판매 4년만에 반등" 국내 소매판매가 4년 만에 상승 전환에 성공하면서 침체됐던 내수 회복에 대한 기대가 일부 살아나고 있다. 16일 경총 분석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소매판매액 경상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했다. 2021년 이후 2024년까지 하락세가 이어졌던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변화다. 실질 구매력을 반영하는 불변지수 역시 0.4% 증가해 감소 국면에서 벗어났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2%)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특히 회복세는 3분기에 집중됐다. 3분기 경상지수 증가율은 3.2%로 2022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불변지수도 1.5% 증가하며 3년 반 만에 플러스로 전환됐다. 이는 일시적 반등을 넘어 소비 흐름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회복의 중심에는 승용차 판매가 있다. 승용차 부문은 누적 기준 경상지수 12.9%, 불변지수 14%로 15개 품목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특히 3분기에는 증가율이 16%를 넘어섰다. 고금리·고물가 환경 속에서도 신차 수요와 친환경차 교체 수요가 소비를 견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업종별로 보면 승용차 및 연료 소매점이 3분기 누적 기준 경상·불변지수 모두에서 8개 업종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반면 면세점은 -14.4%로 큰 폭의 감소세를 이어갔고,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잡화점도 각각 -2%대의 부진을 기록했다. 유통 채널별로 소비 회복의 온도 차가 뚜렷한 셈이다. 품목별로는 의약품과 난방기기 등 일부 내구재가 증가했지만, 가전제품, 준내구재, 화장품 등은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소비가 전반적으로 확산되기보다는 특정 품목에 국한된 선택적 회복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경총은 소매판매 회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내수의 지속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소비뿐 아니라 투자의 동반 회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승용 경총 경제분석팀장은 "소매판매가 회복세로 돌아선 것은 다행이지만, 내수를 보다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규제 완화와 기업 지원 입법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소매판매 반등이 구조적 회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금리 부담 완화, 가계 실질소득 개선, 기업 투자 회복이라는 세 축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의 회복세는 분명 긍정적 신호이지만, 내수 전반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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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판매 4년 만에 반등⋯내수 회복 신호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