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오는 골목에서 핸드카트를 되찾은 미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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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 6회. 눈 내리는 골목에서 핸드카트를 되찾아 기뻐하는 미상 씨. 사진=챗GPT 5.2 생성 이미지

 

제6회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친구를 남겨두고 돌아서는 미상 씨의 심정은 찢는 듯 아팠다. 그 고통의 내막은 친구에 대한 연민과 함께 자신에게 가하는 자책 탓이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믿어지지 않겠으나, 외로움을 병으로 앓아본 사람이나 가혹한 버림받음에 치를 떨어본 사람이라면 지금 미상 씨의 상태와 그 증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운전석에 앉은 미상 씨는 콘솔박스에 넣고 다니며 아스피린처럼 복용하는 성서의 구절을 읽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한복음 18장에서 20장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경청하는 제자들처럼 미상 씨는 그 말씀으로 인하여 평화를 구하였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날은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천천히 사랑제일교회 앞을 떠나 우회전한 미상 씨의 승용차는 곧장 장위로40다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 미상 씨는 살과 같이 빠른 몸놀림으로 치고 던지고 뿌리며 금방 동방고개에 당도했고 곧 배송완료를 보고했다. 다른 날은 이렇게 하루 일을 끝내고 바로 곁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으나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서둘러 사랑제일교회 앞으로 돌아갔고 장위2동 주민자치회 건물 앞에서부터 지나온 배송지를 역주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상 씨는 저기 멀리 연립주택 현관 옆에 서 있는 자신의 핸드카트를 보았다. 핸드카트는 골목 안으로 질주하는 찬바람과 그 바람이 몰고 오는 가루눈을 맞으며 단단히 서서 미상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핸드카트를 들어 품에 안은 미상 씨가 복음을 외었다. 평소 코코와 초코를 껴안듯이, 두 팔에 힘을 줘 친구를 꼭 껴안은 미상 씨는 야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되뇌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나는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런 다음 미상 씨는 인간의 음성으로 다시 친구에게 말했다.

 

"카트야. 미안해. 내가 정신이 없었다. 응, 카트야?"

 

그곳은 돌곶이로22길 골목 안 연립주택 현관 앞이었다. 그곳으로 돌아오기까지 미상 씨는 여러 군데 골목을 헤집고 수십 군데 배송처를 찾아 이 집 저 집 현관을 드나들었으며 3층으로 4층으로 오르내렸다. 자신의 핸드카트를 껴안고 선 미상 씨는 이마와 등을 적신 땀이 식어 내리는 서늘함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느덧 날이 밝아 눈 내린 시가지는 희고 환하고 평화로웠다. 자신은 어느 날보다 더 행복한 하루를 맞이했다고 미상 씨는 생각했다.


"그래, 희정 씨와 함께 노래방에 갈 수 있겠다. 그런 기분이 든다. 카트야."

 

다른 날엔 해치백을 열고 맨 뒷자리 구석에 놓아두던 핸드카트를 지금은 조수석에 올려놓았다. 차 바닥으로 흘러내릴까 안전벨트까지 매어줬다. 그런 뒤 미상 씨와 승용차와 핸드카트는 희정 씨와 코코 초코가 기다리는 집을 향해 출발했다.


미상 씨와 희정 씨가 세 들어 사는 낡은 빌라는 가파른 언덕길 꼭대기에 있다. 월곡산 바로 아래 달동네에 위치한 그들의 빌라에 당도하려면 사람도 자동차도 부들부들 떨며 이리저리 가파른 언덕길을 헤집고 올라야 한다.

 

 

 

 <편집자 주>


심상대는 196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고 고려대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0년《세계의 문학》봄호에 단편소설 세 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설집 여섯 권과 산문집 두 권, 중편소설 『단추』와 장편소설 『나쁜봄』,『앙기아리 전투』,『힘내라 돼지』를 출간했습니다. 2001년 단편소설「美」로 현대문학상, 2012년 중편소설「단추」로 김유정문학상, 2016년 장편소설『나쁜봄』으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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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을 연재하는 심상대 작가. 사진=송가은/2017

 

프로필 요약

출생: 1960년 1월 25일, 강원도 강릉시.


학력: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수료.


등단: 1990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소설 3편 발표.


주요 수상

2001년 현대문학상(단편 「美」).


2012년 김유정문학상(중편 「단추」).


2016년 한무숙문학상(장편 『나쁜봄』).


주요 작품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덟 편의 소설 』,『명옥헌』, 『망월』, 『심미주의자』, 『떨림』, 장편 『나쁜봄』, 『앙기아리 전투』, 『힘내라 돼지』, 중편 「단추」 등.


작품세계 짤막 소개

심상대의 소설은 치밀한 문장과 심미적 감각,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이 결합된 "심미주의자"적 세계관으로 자주 설명됩니다. 초창기 단편에서는 감각적이고 실험적인 서사와 미학이 두드러졌고, 「단추」 같은 중편에서는 비정규직 청년, 시간강사, 가난과 실업 등 현실의 불안을 다루면서도 꿈과 악몽, 알레고리를 통해 삶의 근원적 의미를 묻는 방식이 특징입니다.


장편 『나쁜봄』과 『힘내라 돼지』에서는 개인의 죄의식, 사회적 폭력, 수용소·교도소 같은 극단적 공간을 배경으로 절망 속에서 인간 존엄과 희망을 찾는 서사를 보여 줍니다. 전반적으로 현실의 피폐함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고독과 사유를 통해 고통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탐구하는 냉정하면서도 서늘한 문학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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