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픔이 전혀 다른 이름을 갖게 될 때

기차 픽사베이.jpg

기차. 사진=픽사베이

 

깃털을 싣고 달리는 기차

 

 

지정애

 

 

 

기차가 기차로 출발할 때

비의 밧줄에서 풀려난 커다란 동물은

사바나인 듯

휙휙

 

기차에서 솟아나는 아침으로

비는

아이들의 입과 눈을 커다랗게 만든다

푸르고 눈부시게 섞이는

비의 허리와 아이들의 다리

실로폰이 되고 뛰는 나무가 된다

 

기차의 엔진은 지평선을 뚫고

밤의 내장에 갇혀 있던 욕망

차창 밖으로 날아간다

한 아름 드라이플라워로

 

기차가 기차의 좌석이 되는 동안

구름으로 구름의 입모양을 만든다

고양이의 잠처럼 고요하고

낮은 침묵의 의자

 

공중의 울대에서 우렁찬 노래 흐를 때

금요일의 맥주 거품은 내일의 태양

어제의 입술이 되고

거리를 배회하는 영혼은

해안선에 젖으며 꿈을 더듬는다

 

기차가 기차의 끝에 이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슬픔은

다른 이름을 갖게 된다

 

한 계절의 혀끝에서 사라지는

글라디올러스

 

 

 

슬픔이 전혀 다른 이름을 갖게 될 때


기차가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갈 때면, 그 속도에 기대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목적지를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올라탄 삶이라는 기차 안에서, 저는 종종 창밖의 흐린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면 유난히 마음이 어지러운 날들이 있습니다. 쉽게 가시지 않는 우울함이나, 마음속 깊이 숨겨둔 무거운 고민들 말입니다. 그런 감정들은 비구름처럼 몰려와 일상을 짓누르기도 합니다. 기차의 진동을 느끼며, 저는 늘 그 버거운 감정들을 어떻게든 혼자 끌어안고 버텨내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쉼 없이 바뀌는 창밖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답답함도 어느새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뒤로하는 동안, 무거웠던 마음도 천천히 무게를 덜어냅니다. 기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에 맞춰, 버겁기만 하던 미련과 우울도 마침내 마른 잎사귀처럼 가벼워져 날아갈 준비를 합니다.

 

어쩌면 산다는 건 이 길을 지나며, 내 안의 슬픔이 조금씩 가벼워지기를 기다리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종착지에 다다를 때쯤이면, 남몰래 앓던 마음의 통증도 더 이상 날 선 상처로만 남아있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도 결국 인내나 용서, 혹은 애틋함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 있을 테니까요.

 

지금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도 결국엔 다 지나가고 차분해지는 순간이 올 겁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 덜컹거리는 삶의 흔들림에 가만히 몸을 맡겨보려 합니다. 창밖으로 낡은 감정들을 털어내고, 조금 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내일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편집자주>

 

 

김조민_프로필.jpg
<김조민 시인의 시의 정원>을 연재하는 김조민 시인. 사진=프로필

 

 프로필 


2013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미래서정문학상, 조지훈문학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한국예술위원회 문학창작산실 지원금 수혜. 웹진 시인광장 디카시 주간, 유튜브 (시읽는고양이) 크리에이터.



주요 작품

시집 『힘없는 질투』, 디카시집 『편복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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