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26회)

입력 : 2026.03.19 10: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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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에 업힌 사랑, 후원으로 향하는 가장 따뜻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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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 26회. "등에 업힌 사랑, 후원으로 향하는 가장 따뜻한 길" 사진=챗GPT 5.3 생성 이미지


제26회


 

"창덕궁 후원이라니까 왜 자꾸 비원이래요?"


"나는 비원이라는 이름이 좋아요. 창덕궁 후원이라는 본래 이름이 있고 비원은 일본인이 지은 이름이라지만 나는 비원이 더 멋진 이름이라 생각해요. 어쩐지 은밀하고 농염한 사연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 그런 이름이잖아요."


지난 일 년 동안 미상 씨는 작품집을 출간했고 중고 승용차를 샀고 쿠팡 카플렉서로 돈을 벌며 소설을 썼다. 그러면서 희정 씨와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루는 맑은 날에 하루는 흐린 날이라는 말은 희정 씨의 건강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요트는커녕 북한산 둘레길도 갈 형편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멀쩡하다가도 어떤 날은 기진맥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병원 진료가 점심시간 전에 끝나요. 그럼 걸어서 비원을 갈 수 있어요."


희정 씨의 지정병원은 창덕궁과 창경궁이 가까운 대학병원이다. 맑은 날이면 좋겠으나 설명 비 오는 날이라도 미상 씨는 비원을 관람하기로 했다.


"승용차에 휠체어를 싣고 갈게요."


휠체어라는 말에 희정 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뇨. 걸어갈래요. 오늘부터 컨디션 조절을 잘해 그날은 걸어갈 수 있도록 하겠어요."


"괜찮아요, 희정 씨. 희정 씨가 힘들면 내가 업고라도 갈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웃으면서 미상 씨가 덧붙여 말했다.


"희정 씨 업고 먼 길을 가는 꿈을 수시로 꾸거든요. 어떤 날은 산을 오르고 어떤 날은 보랏빛 꽃이 만발한 바닷가 벌판을 걸어가요. 무겁다는 느낌은 없어요. 언제나 기쁘고 들뜨고 행복하죠. 내 등에 희정 씨를 업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해요."


희정 씨도 웃었다. 꿈속에서 자신을 업고 어디론가 간다는 미상 씨의 고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실제로 희정 씨는 미상 씨의 등에 업힌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사랑 때문이 아니라 아팠기 때문이지만 사랑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누군가를 업어주고 누군가의 등에 업히는지 모르겠어요. 요즘엔 아무도 누군가를 업지 않고 누군가에게 업히지도 않죠?"


"그래요. 요즘엔 아이 엄마도 아이를 업는 경우가 없어요."


미상 씨의 단언에 희정 씨가 응수했다.


"유모차가 있기 때문인가 봐요. 그래서 아이는 엄마 등의 따뜻함을 느낄 기회가 없어졌어요."


"그래도 아이들은 유모차를 싫어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희정 씨는 휠체어라면 질색을 하는군요. 왜?"


여전히 웃음기 띈 얼굴로 희정 씨가 말한다.


"전 이미 엄마의 따뜻하고 너른 등에 중독된 아이니까요. 그러니 쇠로 만든 휠체어라는 기계를 좋아할 리 없어요."


미상 씨의 눈을 바라보며 희정 씨는 못을 박는다.


"그러니 날 휠체어에 태울 생각을 마세요. 난 내 발로 걸어가던가 엄마 등에 업혀 가든가, 아니면 미상 씨 등에 업혀 가든가 그 세 가지 방법밖에 몰라요."


벽에 걸린 커다란 숫자의 달력을 바라보며 희정 씨는 또 말한다.


"다음 주 수요일은 이월이네요. 너무 춥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짧은 한숨을 쉰다.


"벌써 이월이니 봄도 멀지 않았군요. 봄이 오면 날 업어주시던 우리 엄마 생신이 있어요. 그날은 해마다 아주 환한 봄날이었답니다. 올해도 반드시 맑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온갖 꽃이 만발한 날일 겁니다."


돌아가신 희정 씨 엄마의 생신은 사월이다. 희정 씨는 그날만큼은 잊지 않고 가장 밝은색 옷을 입고 경기도 북부에 있는 공동묘원으로 간다.


"올해 봄에도 지난해 봄처럼 미상 씨 등에 업혀 엄마를 만나러 가겠어요."


희정 씨 엄마의 생신이 있는 봄이 지나면 희정 씨 생일이 있는 여름이 온다. 지금 희정 씨의 처연한 눈빛에는 다가오는 봄과 여름을 건강한 몸으로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담겨 있다.■

 

심상대 작가 coversal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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