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A 합법 투기 기록 드러나⋯알칼리성 폐기물 누출로 해저 pH 12까지 상승
- 백색 고리 수천 년 지속 가능성⋯미생물 붕괴·생태계 장기 교란 우려
미국 정부 기관과 기업이 수십 년 전 심해에 투기한 독성 화학 폐기물이 현재까지 해저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어스닷컴이 보도했다. 녹슨 드럼통 주변에서 확인된 백색(브루사이트) 고리는 강알칼리성 화학물질이 유출되며 형성된 흔적으로, 해저 퇴적층과 미생물 군집에 장기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스크립스 해양연구소(Scripps Institution of Oceanography) 연구진은 로스앤젤레스 인근 샌피드로 분지(San Pedro Basin) 약 58제곱마일(약 150㎢) 해역을 대상으로 심해 조사를 실시했다. 무인 잠수정이 음향 탐지와 카메라를 활용해 해저를 정밀 스캔한 결과, 이 일대에서 7만4천여 개의 잔해 목표물이 확인됐고, 이 가운데 약 2만7천 개가 드럼통 형태로 파악됐다.
연구진은 일부 드럼통 주변 퇴적층에서 어두운 진흙과 대비되는 흰색 경화 고리와 분말 흔적을 발견했다. 퇴적 코어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이 백색 고리는 강알칼리성 폐기물이 유출되며 형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퇴적층의 산성·알칼리성을 나타내는 pH 수치는 약 12에 달해, 일반 해수(pH 약 8)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해수 속 마그네슘은 이 강염기성과 반응해 퇴적물을 단단한 테두리 형태로 굳혔다. 특히 수산화마그네슘 광물인 브루사이트(brucite)가 형성되며 고리를 장기간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다. 연구진은 이 광물이 매우 느린 속도로 용해되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알칼리성 환경이 수천 년간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했다.
미생물 생태계 변화도 뚜렷했다. 백색 고리 인접 퇴적층에서는 유전자 물질이 거의 검출되지 않았으며, 통상적인 해저 미생물 군집과는 전혀 다른 조성이 나타났다. 강알칼리 환경에서 생존하는 알칼리성 세균이 우세를 차지했고, 미생물 다양성은 현저히 감소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질소와 황의 순환 과정에 영향을 미쳐 해저 저서 생물에도 파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그동안 드럼통 내용물로 의심됐던 살충제 DDT는 이번 분석에서 새로운 유출원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DDT는 1972년 미국에서 사용이 금지됐으나 해저 퇴적층 전반에 걸쳐 높은 농도로 남아 있었으며, 드럼통과의 거리와는 무관한 분포를 보였다.
미 환경보호청(EPA) 기록에 따르면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남부 캘리포니아 연안에는 최소 14곳의 심해 투기 지점이 운영됐다. 정유 부산물, 화학 폐기물, 저준위 방사성 물질, 군사용 폭발물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사용된 얇은 강철 드럼은 장기 해저 보관을 전제로 제작되지 않아 현재 대부분 부식된 상태다.
연구진은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드럼통 주변에서 백색 고리가 관찰됐다고 밝혔다. 이는 일부 드럼이 이미 내용물을 유출했음을 시사한다. 다만 어떤 드럼이 여전히 밀봉 상태인지, 어떤 물질이 추가로 확산됐는지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특히 퇴적층 내 금속이 용출돼 어류와 패류 등 먹이사슬로 이동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정화 작업 역시 난제로 남아 있다. 수심 약 900미터(3,000피트)에 이르는 해역에서의 작업은 로봇 장비에 의존해야 하며, 부주의한 조치는 오히려 부식된 화학물질을 더 넓게 확산시킬 위험이 있다. EPA는 추가 조사와 시료 채취를 진행 중이나, 전체 폐기물의 성분과 양에 대한 완전한 목록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PNAS Nexus'에 게재됐다. 녹슨 드럼과 그 주변의 백색 고리는 과거 산업 폐기물 투기가 해저 화학 환경을 장기적으로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증거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정밀 지도화와 신중한 표본 채취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개입에 따른 위험과 방치의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