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청객에게 건네는 첫인사
안녕, 파킨슨
박종명
사진 속 펼쳐진 책이 말을 걸어 온다
가운데 책장이 둥글게 말아져 만나니 딱 하트 모양이다
하트 갈피 사이 박주가리 씨앗이 솜털 같은 날개를 펴고 있다
책과 씨앗 외에 아무것도 등장하지 않는 사진이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안녕, 파킨슨
느리고 둔하게 멀어진 일상이지만
책갈피 사이 마음을 모으니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생긴다고
마음이 기울 때 두 손을 잡으라고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내 손 아닌 남의 손 쥐고
밤새도록 공들인 숨결이
탁자 위에서 호흡을 고르고 있다
펼쳐진 책갈피마다 내려앉은 마음
미완의 설렘*으로
날갯짓하는
누군가의 깊숙이 숙인 아침 인사를 듣는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하트작가 유병완 사진전
불청객에게 건네는 첫인사
살다 보면 주문하지 않은 택배가 문 앞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반송할 수도, 모른 척할 수도 없는 거대한 짐. 그것은 때로 병(病)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이별이나 실패라는 이름으로 예고 없이 우리의 거실을 차지하곤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문을 걸어 잠그고 소리칩니다. "왜 하필 나야?" "잘못 찾아온 거야." 하지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저 불청객은 끈질깁니다. 온몸으로 문을 막아설수록 소진되는 건 결국 내 쪽입니다.
그때 필요한 건 버티는 힘이 아니라, 빗장을 여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고, 그 두려운 대상을 향해 담담히 "안녕"이라고 말해주는 것. 그것은 굴복이 아닙니다. 내 삶에 일어난 일을 비로소 내 것으로 받아안겠다는, 가장 주체적인 선언입니다.
태풍 속의 나무가 꼿꼿해서가 아니라 부드럽게 휘어져서 부러지지 않듯이, 우리를 지탱하는 중심은 강인함이 아닌 유연함 속에 있습니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기울면 기우는 대로. 그 위태로운 춤을 추면서도 우리는 기어이 삶이라는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 평생을 틈 없이 살아온 책장들이 둥글게 몸을 말아 서로에게 기댄 풍경이 있습니다. 가장 약한 것들이 만나 만든 그 하트 모양의 공간이 말해줍니다. 조금 떨려도 괜찮다고,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말입니다.
오늘, 당신을 두렵게 하는 그 불청객에게 조용히 차 한 잔을 내밀며 인사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안녕, 그래, 왔구나."
<편집자주>
프로필
2013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미래서정문학상, 조지훈문학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한국예술위원회 문학창작산실 지원금 수혜. 웹진 시인광장 디카시 주간, 유튜브 (시읽는고양이) 크리에이터.
주요 작품
시집 『힘없는 질투』, 디카시집 『편복의 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