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의 시의 정원-모래시계

입력 : 2026.02.21 15: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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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 파편 위를 걷는 맨발의 시간
모래시계 픽사베이.jpg
모래시계. 사진=픽사베이

 

모래시계



백현 



검은 머리통들이 지하철 환승구를

물밀듯 쏟아져 내린다

병목을 다투어 빠져나가는

모래의 비명이 귀속에서 웅웅거린다


시간 앞에서 인간이 바치는

온몸이 떨리는 갈증과 조바심


피 흐르고 불타던 전장의 잔혹함이 묻히고

사구를 흐르는 모래 물결과

느릿한 낙타의 발자국이 이어지고

오직 모래의 무심을 빌어 다시 채워지는

병 속의 시간


한 알 한 알 모래가

떨어져 내리는 순간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모래를 끌어 내리는 중력이

나를 빨아들이고

무수한 모래가 칼끝이 되어 살갗을 파고든다


시간의 병 속에 담겨있는 내 머리가 보인다

망치를 들어 모래시계를 깨트린다

발밑에서 천 개의 시간이 번뜩인다


천 개의 나를 딛고 선다


 


유리 파편 위를 걷는 맨발의 시간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알람 소리에 놀라 이불 밖으로 쏟아지고, 현관문을 열고 거리로 쏟아지며, 다시 좁은 지하철 문틈으로 몸을 구겨 넣습니다. 거대한 중력이 등 떠미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를 밀어내는 건 '늦으면 안 된다'는 스스로의 조바심일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있어도 늙어간다는 사실이 때론 참을 수 없이 억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좁은 병목을 통과하려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며 깎여나가는 모래알처럼, 우리는 매일 조금씩 더 작아지고, 더 고운 가루가 되어갑니다. 그렇게 부드러워진다는 건, 어쩌면 나를 잃어간다는 말의 다른 표현 아닐까요.


문득, 나를 가두고 있는 이 투명한 벽이 숨 막히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정해진 구멍으로 얌전히 빠져나가기를 거부하고,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중력을 거스르고 싶어집니다.


흐르는 대로 휩쓸려 가는 대신, 차라리 멈춰 서서 와장창 그 벽을 깨뜨리는 상상을 합니다. 비록 날카로운 파편 위에 맨발로 서게 될지라도, 누군가 뒤집어주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딛고 선 그 찰나의 순간을 온전히 움켜쥐고 싶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시간의 틀을 깨고 나온 사람만이 비로소 자신의 발바닥으로 설 수 있습니다. 그 바닥이 비록 피가 흐르는 유리밭이라 해도 말입니다.


당신의 시계는 지금 흐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그 시계를 쥐고 있습니까.

 

 

 

<편집자주>

 

 

김조민 시인.jpg
<김조민 시인의 시의 정원>을 연재하는 김조민 시인. 사진=프로필

 

 프로필 


2013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미래서정문학상, 조지훈문학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한국예술위원회 문학창작산실 지원금 수혜. 웹진 시인광장 디카시 주간, 유튜브 (시읽는고양이) 크리에이터.



주요 작품

시집 『힘없는 질투』, 디카시집 『편복의 잠』


김조민 시인 blue21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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