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9회)

입력 : 2026.03.17 10: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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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조의 고양이, '백설이'와 '예나'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 9회 삽화.png
하이브리드 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 9회. "징조의 고양이, '백설이'와 '예나'"사진=김남수 제공

 

2 '더파든'의 장


'더파든'의 고양이(2)


고양이 '예나'와 '백설이'는 두 달 반 전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났다. 


허민이 농장정원 '더파든'을 조성한 이래 평균적으로 십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살아왔다. 거의 전부가 '코리안 숏헤어'로 분류되는 고양이들이었다. 줄여서 '코숏'으로 불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색, 검정색, 호피무늬, 얼룩이 같은 녀석들이었다. 


허민의 아내는 고양이들의 생김과 행동 양태에 따라 일일이 이름을 붙여 주었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의 주인공인 '잭 스패로우'를 연상시킨다고 '잭스패로', 노란 갈색이라고 '라니', 목과 배 부위가 유난히 하얗다고 '비앙카', 달의 여신을 떠올리게 한다고 '루나', 턱시도를 입은 것 같다고 '턱시', 온몸이 검다고 '올리브', '블래키'라는 이름들을 주었다. '야니'도 있었다. 대꾸 잘 하는 고양이 '야니'. 그녀가 "야옹" 하고 소리를 내면 "야아~아옹"이라고 대답했던 녀석.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의 구절이 있다. 그럼 '그녀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녀에게로 와서 더파든의 고양이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것은 사건이었다. 두 달 반 전 어느 날, 허민이 정원에서 장미 오벨리스크를 손보고 있을 때였다. 산자락 쪽에 있는 식당사장의 텃밭 울타리를 넘어가는 하얀 짐승의 모습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아니, 고양이인가? 우리나라 들판에 하얀색 고양이도 사나?"


그런데 고양이였다. 다음 날 '집게의 집'(소나무 열 그루가 있는 터에 지은 집, 집게가 짊어지고 다닐 만큼 작은 집이라고 허민이 붙인 이름)의 데크에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한국 고양이 '코숏'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잡티 하나 없는 하얀색 긴 털에 약간 어두운 푸른빛이 도는 하늘색 눈을 갖고 있는 녀석. 그래서 사진을 찍어 전문가에게 문의하였다. 


"긴 하얀 털에 하늘색 눈동자. 영락없는 터키쉬 앙고라 종입니다. 그런데 들에서 발견되었다고요? 거 이상하네요. 국내에서는 매우 찾아보기 힘든 종이거든요. 집에서 기르던 개체가 탈출했다? 그런데 집이 거의 없는 한적한 들판에서 희귀 종이 발견되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이 고양이는 '백설이'로 명명되었다.


사건은 연이어 발생했다. '백설이'가 오고 이틀 후 이번에는 고양이 '예나'가 '더파든'에 나타났다. 푸른색이 도는 회색 몸에 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신비스러운 고양이. 몸집도 여느 고양이들보다 훨씬 커 위풍당당했다. 역시 전문가에게 물어보았다.


"러시안 블루 종이 확실합니다. 푸른색이 도는 회색 몸통과 녹색 눈동자. 정확히 일치합니다. 아니? 또 거기 들판에서 발견되었다고요? 거 참! 저도 이해가 안 돼요. 국내에서는 키우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 녀석이 거기 어떻게 갔는지 전들 알 수 있나요? 뭐 녀석의 태생이 러시아이니까 거기서 왔겠죠. 거 왜 러시아 블라디에서 오는 배 있잖아요? 킹크랩 싣고 속초로 오는 배요. 그 배에 몰래 승선하여 속초항으로 와서 백두대간 타고 강릉으로 왔겠죠. 뭐 선생께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수임무라도 수행하려는 걸까요? 하 하 하…"


그래서 이 녀석에게는 '예나'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러시아의 여자 황제 '예카테리나 2세'를 줄인 이름. '예카테리나'는 궁중 쿠데타를 일으켜 자기의 남편인 '표트르 3세'를 쫓아내고 러시아 제국의 제8대 차르에 오른 여걸이었다. 발견 당시 '예나'는 약간 초췌한 모습에 무언 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며칠 되지 않아 '더파든'의 최강자로 상황을 정리해버리는 정복자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괜히 '예카테리나'이겠는가?   


이것이 우연일까? 고양이 전문가도 이해하기 어려운 희귀한 고양이 두 마리가 나타난 것, 그것도 거의 동시에 나타난 것. 우연이라면 얼마의 확률일까?

그리고 이것. 이 꿈. 이틀에 한번 꼴로 찾아오는 꿈. 꿈이 시작된 시점이 고양이 '백설이'와 '예나'가 나타난 때와 정확히 일치하는 힌두쿠시 전사의 꿈.


그날 저녁 허민은 그가 요즘 푹 빠져있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기 위해 TV를 켰다. 독일에서 제작된 냉전시대의 동유럽을 무대로 하는 스파이 물 시리즈. 그런데 화면에 국내 공중파 방송의 뉴스 화면이 떴다. 그는 요즘 국내 공중파는 물론 종편 방송도 일절 보지 않는다. 열불을 지르는 것들을 굳이 가까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의 아내가 트롯 경연 프로를 보고나서 화면을 전환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파키스탄이었다.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난민 캠프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세력 간에 충돌이 발생하여 마을들이 불타고 수백 명의 주민들이 무자비하게 학살되었으며 다수의 난민이 유입되고 있다는 보도였다. 그리고 카메라는 난민 캠프를 비추고 있었다.


순간 허민은 소름 끼치는 공포를 느꼈다. 스파이 생활 삼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 그의 별명 허밍(Humming)을 한순간에 날려 버리는 공포.


고양이였다. 난민 캠프 철제 담장 위에 앉아있는 하얀 고양이. 

그날 아침 '더파든'의 카페 앞 철제 담장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백설이'를 닮은 고양이. 

그의 꿈속에서 죽어가던 힌두쿠시 전사의 눈에 비쳤던 초승달을 닮은 푸른 눈을 가진 고양이. 


'더파든'의 고양이 '예나'와 '백설이'. 힌두쿠시 전사의 꿈 속 고양이. 그리고 파키스탄 난민 캠프의 고양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인가? ■

 

 

 

 

<편집자주>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작가.png
'더파든의 스파이'를 연재하는 김남수 작가. 사진=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 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김남수 작가 swordro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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