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24회)

입력 : 2026.03.17 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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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음 속에 스며든 인연, 그리고 미상 씨의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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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 24회. "웃음 속에 스며든 인연, 그리고 미상 씨의 또 다른 이야기" 사진=챗GPT 5.3 생성 이미지

 

제24회


 

"그게 우리 아빠가 자랑하는 지식이죠."


지영은 자기 아빠를 자랑할 줄도 알았다. 지영의 말을 들은 뒤부텨 미상 씨는 우 선생님의 이상한 소리를 가볍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길 가는 사람 셋이면 그 가운데 스승이 있다는 옛말처럼, 같은 빌라에 사는 세 가구의 이웃 가운데 누군가는 미상 씨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 희정 씨는 사랑하는 사람 이상의 좋은 인연이었다. 카카오와 코코와 초코를 반려로 삼게 된 저간의 조력자 역시 희정 씨였고, 그해 가을 멋진 단편소설을 썼고 그 작품이 신춘문예에 당선하게 된 기반도 희정 씨가 마련해줬다. 희정 씨는 미상 씨의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인생의 은인이며 운명의 반려자였다. 미상 씨가 신춘문예 당선작인 「행인」을 쓰게 된 계기는 희정 씨와 대화를 나누던 중 흘린 단순한 이야기였다.


"저는 어쩌면 연극배우가 될 뻔했어요. 소설가가 되겠다는 확고한 뜻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신인 탤런트가 됐을지도 모르죠."


미상 씨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 잠시 연극 동아리에 가입했었다는 얘기를 했다.


"제 의지라기보다는 친구 따라갔어요. 저는 대학신문사에 가고 싶었는데 그 친구가 하도 연극 동아리로 같이 가지고 끌길래 끌려갔어요."


"미상 씨는 연극을 해도 잘할 사람인데요?"


"그렇지 않아요. 나처럼 에고로 움직이는 사람은 금방금방 변신하기 어려워 연기가 되질 않아요. 그리고 나는 연출이니 촬영이니 하는 그런 보조역할에는 전혀 욕심이 없거든요. 저는 지금도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 생각해요."


"그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미상 씨를 끌고 간 그 친구."


"그 친구도 나처럼 숫기가 없어 일찍 탈락했어요. 연극반 그만두고 취업시험 준비에 몰두하더니 지금은 대기업 사원."


미상 씨는 친구와 함께 소품 담당과 홍보 담당으로 잡일을 하며 단역으로 출연했던 학년 말 공연을 이야기했다.


"행인 일, 행인 이, 행인 삼, 행인 사가 있었거든요. 나하고 친구는 행인 삼, 행인 사였어요. 대사는 전혀 없고 좌우를 기웃거리며 지나가는 그런 행인이죠.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네 번 공연했는데 저는 토요일에만 출연했어요. 일요일엔 나 대신 조명보조 하던 친구와 역할을 바꿨으니까요. 조명보조 하던 친구나 나 대신 행인 삼을 했어요."


"어땠어요. 연기 좋았어요? 박수를 치던가요?"


깔깔깔 웃으면서 희정 씨가 물었고 역시 활짝 웃는 얼굴로 미상 씨가 대답했다.


"토요일 저녁 뒤풀이에서 엄청 욕을 먹었어요. 사학년 선배가 연출이었는데 어이없는 표정으로 막말을 했죠."


돌연 미상 씨는 태도를 바꿔 그 연출가 선배의 표정과 대사를 연기했다.


"야야, 니는 임마 행인이 아니라 행상이더라. 응? 무슨 행인이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지나가냐, 응? 행인 아니야, 행인! 그냥 슥 지나가는 거야. 왜 두리번거리며 마치 그 공간이 네 인생 전부를 차지하는 곳인냥 첨벙거려?"


선배의 말을 연기한 미상 씨는 즉시 본래의 자기로 돌아왔다. 정색을 한 미상 씨가 자신의 행인 연기에 대한 연출가 선배의 혹평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맞는 말이었어요. 제가 너무 오버했죠. 주인공 두 사람이 서 있는 거리 한쪽으로 지나가고 지나가고 두 번 지나가는 동안 내가 액션을 너무 크게 했어요."


대학교 신입생 미상 씨에서 사학년 선배 연출가로 변신했다가, 연극의 엑스트라 행인 삼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 미상 씨의 짧은 연기에 희정 씨는 배꼽 빠져라 웃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연기 좋은걸요."


"토요일 뒤풀이에선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 일요일 쫑파티에선 엄청난 호평을 받았어요. 내가 아니라 다른 애가 나 대신 출연했는데 내게 연기 좋았다고 칭찬을 칭찬을 하는 겁니다. 어이가 없어서……."


의자에 앉은 미상 씨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던 희정 씨는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자신이 겪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온몸으로 연기하는 미상 씨의 무표정한 태도가 너무 웃겼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쓰러진 채 미상 씨에게로 얼굴을 돌린 희정 씨는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심상대 작가 coversal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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