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내리는 새벽, 지하에 숨은 501호
제28회
장위로11길 좁은 골목으로 펑펑 함박눈이 떨어져 내린다. 미상 씨는 지금 스치로폼 상자 세 개를 껴안고 있는데, 스치로폼 상자 위에는 대파 한 단이 든 투명한 비닐봉지가 올라앉아 있다. 그래서 미상 씨는 두 손으로는 스치로폼 상자를 쳐들고 턱으로는 대파가 든 비닐봉지를 누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그의 군밤장수 모자 위로 눈송이가 떨어진다. 또 하나 다른 눈송이는 눈물 젖은 미상 씨의 눈앞으로 천천히 흘러내린다.
이미 두 번이나 올라갔던 현관도 없는 사층 연립주택의 옥상을 쳐다본다. 아무리 살펴봐도 오층은 없다. 그런데 이 스치로폼 상자와 대파 한 단의 배송지는 오층이다. 사층은 없고 사층이 오층인 그런 건물이 있기에 미상 씨는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건물로 들어서서 층계를 오른다.
슬퍼하지 않으려 했으나 슬프다. 명색이 소설가에 대학과 병역을 다 마친 젊은이로서, 어느 하루 어느 한 가지 법도에 어긋나게 살아오지 않은 자신이 왜 이런 하찮은 곤경에 처해야 하는지 억울하고 야속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지금은 운명의 곡절을 한탄할 때가 아니다. 어서 이 새벽의 배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곳에서 미상 씨의 빌라까지는 한달음에 닿을 거리다.
삼층을 지나고 사층까지 올라 네 개의 문을 하나하나 지나며 호수를 적은 문패를 살펴봤건만 401, 402, 403, 404라는 숫자가 적혀 있을 뿐이다. 이번만이 아니라 좀 전에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이 사층 복도에서 미상 씨는 이러한 검색의 과정을 거쳤다. 미상 씨는 또 한 번 옥상으로 통하는 층계를 오른 뒤 한 손을 이용해 간신히 철문을 열고 옥상에 올랐다. 그러나 옥탑방은 없다.
문패가 있고 없고 간에 이곳에 어떤 건물이 있다면 그 건물은 오층이 맞다. 하지만 아무런 건물도 없는 눈에 덮인 사각의 슬라브 지붕 만이 두 손으로 스치로폼 상자를 안고 턱으로 대파 비닐봉지를 누른 미상 씨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울지 않으려 해도 눈물이 그치질 않는다. 생각 같아선 엉엉 소리 내 울고 싶지만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으니 울기도 싱겁다. 게다가 이 한밤 함박눈 내리는 새벽녘에, 스치로품 상자를 껴안은 쿠팡 심야배송 카플렉서가 엉엉 소리 내 울기란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미상 씨는 생각했다. 그러나 저절로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쩔 수 없다.
다시 땅으로 내려온 미상 씨 눈에 얼핏 연립주택 뒤편으로 돌아가는 작은 골목이 보였다.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담벼락과 건물의 바람벽 사이 좁은 골목일 뿐 그곳은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치고는 너무 좁다. 그러나 미상 씨는 어떤 조건이든 달려들어 뒤져봐야 하는 처지다.
생각 같아서는 스치로폼 상자와 대파를 눈 위에 내려놓고 맨몸으로 들어가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에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다시 오고 가는 시간이 아까우니 이번에도 미상 씨는 스치로품 상자를 껴안고 골목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미상 씨는 그 골목의 끝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발견했다. 기막힌 일이지만 그 문 위에는 50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곳을 지하101이라거나 B1이라거나 B101이라 칭해야 하지만, 이 문은 어떤 이유에선지 자신의 이마에 501이라는 호수를 붙이고 있다.
억울하다는 생각보다는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미상 씨를 안도하게 했다. 그래서 드디어 자신 앞에 나타난 501호 문 앞에 스치로폼 상자 세 개를 크기 순서대로 쌓고 그 위에 대파가 든 비닐봉지를 올린 뒤 사진을 찍었다.
이제 두 시간이 남았고 배송상품도 바닥이 훤할 만큼 줄어들었다. 서둘러야 한다. 오늘 아침엔 배송을 끝내고 이십사 시간 문을 여는 오패산로의 해장국집에 들러 육천 원짜리 뚝배기선지국을 포장해 가야 한다. 그 뚝배기선지국 일 인분을 둘이 나누어 먹자고 희정 씨와 약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