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룩을 넘나드는 화마⋯북미·유럽·아마존·아시아 등 산불에 신음하는 지구
- 2025년 전 세계 산불 피해 면적 사상 최대치 경신
- 경북 대화재·LA 화재·아마존 화재, 같은 뿌리에서 자란 재난
2025년 3월, 경상북도 의성에서 시작된 불씨 하나가 149시간 동안 타올라 서울 면적 1.6배에 달하는 숲을 삼키고 2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같은 해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역사상 가장 비싼 산불이 1400억 달러의 피해를 남겼고, 유럽연합(EU)에서는 산불 피해 면적이 100만 헥타르를 돌파하며 2006년 집계 이후 최악의 시즌으로 기록됐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세계기상귀속(WWA) 연구팀은 기후변화가 이들 산불의 발생 조건을 수십 배 높였다고 분석한다. 산불은 이제 기후위기의 결과이자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촉매가 됐다. 본지는 북미·유럽·중남미·아프리카·아시아·한국 6개 권역의 산불 실태와 기후적 연관성을 분석하고, 2025년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기후재난형 산불'의 실체와 구조적 과제를 추적했다.
산불과 기후위기의 피드백 루프-서로를 먹이는 악순환
기후변화와 산불은 서로를 먹이는 '피드백 루프'를 형성한다.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할수록 가뭄과 열파가 잦아지고, 토양과 식생의 수분이 말라붙는다. 바싹 마른 숲은 작은 불씨에도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불이 나면 대량의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기로 방출되고, 이는 다시 온난화를 가속한다. 더 뜨거운 지구가 더 큰 산불을 낳고, 더 큰 산불이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드는 구조다.
세계자원연구소(WRI)는 최근 24년간 산불로 인한 산림 손실이 연간 4만 7200헥타르씩 증가했다고 밝혔다. 2024년에는 열대 원시림에서만 670만 헥타르가 사라졌다. 이는 2023년의 두 배에 달하며 파나마 국토 면적에 필적한다. 사상 처음으로 농업 개발이 아닌 산불이 열대 원시림 소실의 최대 원인(48%)을 차지했다.
지난 20년 사이 산림 화재 면적은 약 40% 늘었고, 극단적 화재의 강도는 2배로 뛰었다.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를 비롯한 국제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산불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화석연료 배출량에 필적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북미-'산불 시즌 밖의 산불'이 현실이 됐다
2025년 1월 로스앤젤레스를 휩쓴 산불은 이름 그대로 '계절을 잃은 재난'이었다. 겨울철 강수 부족과 강력한 산타아나 바람이 겹치면서 LA 역사상 최악의 화재로 기록됐다. 사망 30명, 15만 명 대피, 피해액 1400억 달러. WWA 연구팀은 이 화재의 소각 면적이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25배 작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캐나다는 더 구조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2023년 780만 헥타르를 태운 캐나다 산불은 연간 평균의 6배에 달했고, 2024년에도 400만 헥타르가 소실됐다. 북방 침엽수림(보레알 숲)은 지구 육상 탄소의 30~40%를 저장한다. 이 거대한 탄소 창고가 조용히 불에 타고 있다. 단순한 산림 피해가 아니라 지구 탄소 균형의 근간이 흔들리는 문제다.
유럽-지중해 '불의 고리'가 북방으로 확산된다
그리스는 2024년 8월 아테네 북부 교외까지 산불이 번지며 수만 명이 대피했다. 2025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베리아반도의 약 1%가 불길에 휩싸였다. EU 전체 산불 피해 면적은 100만 헥타르를 돌파하며 2006년 집계 이후 최악의 시즌을 기록했다. 스페인에서 올해 8월까지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1768만 톤으로, 위성 관측이 시작된 200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크로아티아의 2023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웃도는 규모다.
WWA 소속 테오도어 키핑 박사는 "기온 상승으로 식생이 빠르게 건조해지면서 가연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더 크고 치명적인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프레디 오토 기후과학 교수는 "화석연료 연소를 중단했어야 할 시점은 이미 10년 전이었다. 지금은 1.3도 상승만으로도 소방대원들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경고했다. 주목할 것은 지중해에 국한됐던 산불이 핀란드·스웨덴 등 북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U 집행위원회는 2022년과 2023년 시즌이 모두 역대 최악 5위 안에 든다고 밝혔다.
중남미-아마존은 이미 탄소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남미에서는 볼리비아의 산불이 세기 최고의 탄소 배출을 기록했고, 세계 최대 습지 브라질 판타날은 평균의 6배에 달하는 탄소를 방출했다. 산불로 인한 미세먼지 오염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의 최대 60배에 달해 수억 명이 독성 연기에 노출됐다.
아마존은 '지구의 허파'로 불리지만, 탄소를 흡수하는 대신 배출하는 전환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열대우림은 원래 강수로 자연 소화가 되지만, 기후변화로 건기가 길어지고 강수량이 줄면서 한 번 불이 나면 광역으로 번진다. 칠레는 2024년 산불로 137명이 사망하고 43억 9000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고온·건조·강풍의 복합 조건이 남미 전역을 점점 더 위험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아프리카·아시아-통제 가능했던 불이 통제 불능이 됐다
아프리카는 매년 세계 최대 규모의 산불이 발생하는 대륙이다. 사바나와 건기의 주기적 교차로 전통적으로 '관리되던 화재'가 기후변화로 통제 불가능한 규모로 커지고 있다. 콩고 분지는 아마존에 이은 세계 2위 열대우림 지대로 비교적 화재에서 자유로웠으나, 장기 가뭄과 불법 벌채 이후 건조해진 숲이 산불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2024년 화재로 34명이 사망했다.
한국 2025-기후재난형 산불의 공식 원년
2025년 3월 22일 오전 11시 24분,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산기슭에서 성묘객의 불씨가 번지기 시작했다. 극도로 건조한 대기(평년 강수량의 52~65% 수준)와 초속 25미터를 넘나드는 강풍이 맞물리면서 불은 의성·청송·안동·영양·영덕 5개 시·군을 집어삼켰다. 149시간 동안 타오른 불길은 서울 면적 1.6배에 달하는 숲을 소각하고, 28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천년 고찰 고운사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정부는 경북·경남·울산 3개 광역 자치단체에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피해 8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긴급재난지원금 26억 원이 집행됐고, 피해 지역 도민 27만 명에게 1인당 30만 원의 긴급지원금이 지급됐다.
기후변화가 키운 불-KAIST·그린피스 분석
이번 대화재를 단순한 자연재해로 볼 수 없는 근거가 과학적으로 확인됐다. KAIST 김형준 교수 연구팀(그린피스 의뢰)이 '산업화 이전 지구'와 '현재 지구'를 비교한 결과, 기후변화로 인해 연간 산불 위험일(위험지수 20 이상)이 최대 120일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증가 지역은 경북이었다. 전국 평균 산불위험지수는 산업화 이전 대비 10% 이상 올랐고, 봄철 산불 시즌이 4월에서 3월로 한 달 앞당겨졌다.
"산불 위험 시기가 4월에서 3월로 앞당겨진 것 자체가 기후위기의 증거다."-부경대 김백민 환경대기학과 교수
WWA 분석에 따르면 2025년 봄 한국의 화재 기상 조건은 산업화 이전 대비 2배 이상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
구조적 취약성-예고된 재난이었다
과학이 경고하는 동안 현장은 준비되지 않았다. 의성군에는 산불 CCTV가 단 한 대도 없었고, 영남 지역 전체 산불 감시 카메라는 10년째 43대에 불과했다. 한국 산림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붙어 있어 수관화 현상을 유발하고 불꽃을 수백 미터 날리며 급속 확산을 돕는다. 전문가들은 최소 20년 전부터 경북 지역 대형 산불 가능성을 경고했으나 예방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번 재난을 계기로 '산불 대응 패러다임의 전환'을 공식 권고했다.
산림청은 '산불대응시스템 대전환'을 선언하며 야간 산불 대응 드론·무인진화 로봇 도입, 산불 대피 표준 매뉴얼 개정, 대형 산불 진화 전용 소방차 개발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단기적·파편적 대응만으로는 기후재난형 대형 산불을 막을 수 없다. 화석연료 감축이라는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 해결 없이는 산불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그린피스 기후재난 담당자
글로벌 대응-진화보다 예방이 먼저다
UN환경계획(UNEP)은 '화재 대응 예산의 3분의 2는 사전 예방·복원에, 3분의 1은 진화에 써야 한다'는 '화재 준비 공식(Fire Ready Formula)'을 제시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가 이 비율을 뒤집어 진화에 집중하고 있다. 예방에 1달러를 투자하면 진화에 드는 비용 최대 100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예산 우선순위는 바뀌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는 예방 투자가 실제로 효과를 낸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다. 이탄지 복원과 조기경보시스템 강화를 통해 2024년 심각한 가뭄 속에서도 산림 손실을 줄였다. 볼리비아의 원주민 주도 화재 예방 지역(차라구아 리암바에)도 주변이 불탈 때 지역 내 산불을 막아냈다.
파리협정의 REDD+ 프레임워크는 산림 보호를 기후 대응의 핵심으로 삼지만, 자발적 탄소 시장에 등재된 산림 탄소 프로젝트의 18%가 이미 산불 위험에 노출돼 있다. 넷제로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산불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 기자의 시각-산불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책 실패의 기록이다
이 기사를 취재하는 내내 기자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산불 자체가 아니었다. 불편함의 본질은 따로 있었다. 경북 대화재는 예고된 재난이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소 20년 전부터 경북 지역의 대형 산불 가능성을 경고했다. KAIST 연구팀의 분석은 기후변화로 인해 경북의 산불 위험일이 최대 120일 늘어났음을 수치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의성군에는 산불 감시 CCTV가 단 한 대도 없었다. 영남 지역 전체 감시 카메라는 10년 동안 43대로 유지됐다. 경고는 있었지만, 투자는 없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기사에서 추적한 북미·유럽·중남미·아프리카·아시아의 산불 모두 같은 패턴을 보인다. 과학이 위험을 경고하고, 현장 전문가들이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며, 정작 예산과 정책은 '진화'에 집중하고 '예방'은 뒷전에 둔다. 인도네시아가 예방 투자로 산림 손실을 줄인 사례는 역설적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그 반대의 선택을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한국 산림청이 이번 재난 이후 '산불대응시스템 대전환'을 선언했다. 그러나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선언 이후의 예산 배분이다. 드론·무인로봇·소방차 개발 같은 진화 기술에 집중하는 방향이라면, 그것은 UNEP이 경고하는 '잘못된 우선순위'의 반복이다. 예방·복원에 3분의 2를 투자하라는 국제 권고는 단순한 원칙이 아니라 비용 대비 효과가 검증된 전략이다.
기후위기와 산불의 피드백 루프를 끊는 근본 해법은 온실가스 감축이다. 그러나 그것이 수십 년의 시간을 요구한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다. 소나무 편중 산림 구조를 바꾸고, 감시 인프라를 확충하고, 이주민·고령 인구 밀집 지역의 대피 매뉴얼을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28명이 목숨을 잃은 경북 대화재에서 사망자 상당수는 고령이었고, 대피 정보를 제때 받지 못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였다.
경북 의성의 불씨는 결국 두 가지를 동시에 고발하고 있다. 하나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구조적 실패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경고를 수십 년간 외면한 정책의 실패다. 두 번째 실패는, 첫 번째 실패와 달리, 지금 당장 바로잡을 수 있다.
【참고 자료】
Global Forest Watch / WRI: 세계 산림 손실 2024 데이터 / ECMWF(European Centre for Medium-Range Weather Forecasts): 국제 산불 배출량 분석 / World Weather Attribution(WWA): LA 산불·한국 산불 기후귀속 분석 / 그린피스 한국·KAIST 김형준 교수팀: 한국 산불 위험지수 분석 (2025.3) /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2025년 경북 산불 피해 현황 보고서 / 대한민국 산림청: 2025 산불 대응 현황 및 개선계획 / 국회입법조사처: 산불 대응 패러다임 전환 권고 (2025) / EU Copernicus Climate Change Service: 2024 세계 기온 보고 / UN환경계획(UNEP): Fire Ready Formula 보고서 / EU 산림 화재 정보 시스템(EFFIS): 2025 유럽 산불 통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