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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_천안(3)] 밥심으로 올린 기억의 지붕⋯농기구 전시장에 깃든 양곡리 '어벤저스'의 협동 경제학
마을의 '어벤저스', 낡은 쟁기의 집을 짓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 양곡리. 평소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이 작은 마을이 지난 2026년 3월 14일과 15일, 양일간 생동감 넘치는 금속음과 활기찬 목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잠자던 마을을 깨운 건 다름 아닌 '공동체'의 힘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쉼터이자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펜션 옆 빈터에,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쓰던 낡은 농기구들을 모아둘 '옛날 농기구 전시장'을 세우기 위해 마을의 '어벤저스'가 집결했기 때문입니다. 이름하여 양곡리 '어벤저스'. 이들은 평소에는 논밭에서 흙을 만지며 묵묵히 각자의 삶을 일구는 평범한 농부이자 이웃입니다. 하지만 마을 일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낡은 작업복을 갖춰 입고 현장으로 모여듭니다. 이번 공사는 사라져가는 농촌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공터에 지붕을 올리고 전시 구조물을 세우는 대공사였습니다. 전문가를 불러도 족히 일주일은 걸릴 규모였지만, 양곡리 주민들에겐 불가능이란 없었습니다. 그 복잡한 공정의 중심에는 이장님의 리더십이 빛났습니다. 도면도 없이 머릿속에 설계도를 그린 듯, 이장님은 복잡한 작업 속에서도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주민들은 그 명쾌한 지시와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마치 정밀하게 설계된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60평 지붕 아래 담긴 마을의 역사와 재능 기부 전시장이 들어설 부지의 지붕 면적은 약 60평(약 198㎡)에 달했습니다. 철골을 새로 세워 뼈대를 잡고, 그 위에 지붕재를 씌워 비바람으로부터 낡은 농기구들을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집을 만드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전시물들을 돋보이게 할 전기 배선까지 새로 깔아야 하는 고난도의 공정이 병행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공사 현장이라면 수천만 원의 견적서가 날아왔을 법한 일이지만, 이번 양곡리의 공사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가치'를 일궈냈습니다. 그 비결은 주민들의 '재능 기부'였습니다. 마을 안에 숨어있던 용접 전문가, 전기 기술자, 목수들이 제 일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자본의 논리나 시장의 가격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오직 끈끈한 공동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협동 경제'의 살아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열 명 남짓한 주민들이 쏟아낸 땀방울 덕분에, 60평의 지붕은 단 이틀 만에 웅장한 위용을 갖추고 농기구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기술자의 손발이 된 잡부, 그리고 부엌의 어벤저스 농막 생활을 하며 양곡리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저 역시 이번 작업에 '잡부'라는 이름으로 동참했습니다. 전문 기술자들의 뒤편에서 무거운 자재를 나르고, 현장의 잔해를 부지런히 치우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공구를 제때 건네주는 역할이었습니다. 기술자가 높은 곳에서 아찔한 불꽃을 튀기며 용접봉을 휘두를 때, 아래에서 지지대를 단단히 받쳐주는 잡부의 조력이 없다면 공정은 순식간에 멈추고 맙니다. 잡부는 단순히 보조자가 아니라 전체 공정의 흐름을 읽는 ‘현장의 윤활유’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열기를 지탱해 준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점심 식사를 준비해 준 마을 부녀회 회원들입니다. 밖에서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부엌에서는 그에 못지않게 경쾌한 칼질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부녀회 어머니들은 이른 아침부터 장을 봐오고, 솥뚜껑만 한 냄비에 정성을 가득 담아 국을 끓여냈습니다. 땀에 젖어 내려온 작업자들에게 내어준 갓 지은 밥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반찬, 그리고 직접 담근 아삭한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고된 노동을 위로하는 따뜻한 응원이었고, 멈췄던 기운을 솟게 하는 강력한 '밥심'이었습니다. "많이들 들어요, 힘 써야지!"라며 투박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 현장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지붕을 올린 것이 기술자의 손이었다면, 그 손에 힘을 불어넣은 것은 부녀회의 정성스러운 손맛이었습니다. 기억을 보관하는 공간, 미래를 비추는 등대 작업이 진행될수록 기술자와 잡부, 그리고 부녀회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안전을 살피고, 힘에 부쳐 숨을 몰아쉬는 이가 있으면 말없이 다가가 어깨를 내어주었습니다. 마지막 전등이 환하게 켜지고, 새롭게 단장된 지붕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피로감보다 깊은 자부심이 역력했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세우고, 내 이웃이 지어준 밥으로 힘을 내어 만든 마을의 전시장. 이것은 단순한 건축 행위를 넘어, 농촌의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이곳은 단순히 낡은 도구를 모아둔 창고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고 마을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이자 화합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양곡리가 가르쳐준 것들 양곡리에서의 뜨거웠던 이틀은 제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당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현장에서 때로는 빛나는 기술자로, 때로는 묵묵히 뒤를 받치는 잡부로, 혹은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밥을 짓는 이로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역할에 매겨진 높낮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얼마나 진실하게 마음을 모으고,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느냐는 점입니다. 농기구 전시장이라는 '기억의 집'을 짓기 위해 모였던 양곡리 어벤저스의 협동심과 부녀회의 헌신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우리가 되찾아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낡은 농기구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새 집을 마련해주었듯, 우리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공동체의 가치도 다시금 빛을 발하길 소망합니다. 오늘 당신 곁에 있는 이웃에게 따뜻한 눈인사 한 번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그 작은 연결이 모여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튼튼한 지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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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레이더] 코스피 5,780선 강보합 마감…코스닥은 삼천당제약 급등에 1.6% 상승
코스피가 20일 미국·이란 전쟁의 조기 종식 기대감에 힘입어 강보합으로 장을 마쳤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7.98포인트(0.31%) 오른 5,781.20에 거래를 마감했다. 장중 한때 5,833.68까지 상승하며 투자심리 회복 조짐을 보였으나,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세에 밀려 상승폭을 상당 부분 반납했다. 시장은 개장부터 낙관론이 우세했다. 지수는 전장 대비 57.25포인트(0.99%) 오른 5,820.47로 출발해 오전 중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간밤 뉴욕 증시가 다우 -0.27%, S&P500 -0.27%, 나스닥 -0.28%로 약보합 마감했음에도 종전 기대감이 미국발 약세를 상쇄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급 구도는 뚜렷한 '내외 엇갈림'을 보였다. 외국인은 1조 8522억원을 순매도하며 차익실현에 나섰고, 이에 맞서 개인이 1조 5310억원, 기관이 2765억원을 순매수해 지수 방어에 성공했다. 특히 기관은 장 초반 매도 우위였다가 오전 9시12분을 기점으로 매수세로 전환해 시장 안정의 축 역할을 했다. 업종별로는 바이오·제약이 강세를 주도했고 방산·반도체는 혼조세를 나타냈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0.45% 하락한 19만 9600원, 2위 SK하이닉스는 0.69% 내린 100만 6000원에 장을 마쳤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1.07%)와 두산에너빌리티(+3.95%)는 상승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93% 급락했다. 코스닥 시장은 바이오 대형주의 견인으로 한층 강한 상승세를 보였다. 코스닥 지수는 전장 대비 18.04포인트(1.58%) 오른 1,161.52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1,165.96까지 오르기도 했다. 코스닥 시장의 최대 화제는 삼천당제약이었다. 경구용 인슐린 후보물질의 유럽 임상 진입 기대감이 부각되며 주가가 14.72%(11만 7000원) 급등, 91만 20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에코프로와 알테오젠을 제치고 코스닥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다. 이달 초 시총 4위에서 불과 보름 만에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장 대비 0.4원 내린 1,500.6원으로 마감해 소폭 강세를 보였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5거래일 만에 외국인과 금융투자가 합산 2000억원 규모 순매수에 나선 점이 긍정적"이라며 "바이오 대형주 중심의 개별 종목 모멘텀이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미니해설] 종전 랠리의 속살…외국인은 왜 팔았나 종전 기대감, 시장은 이미 '반 발짝' 앞서 움직였다 20일 서울 증시의 강세는 '이란 전쟁 종식'이라는 단일 변수에 거의 전적으로 기댄 것이었다. 간밤 뉴욕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음에도 코스피가 1% 가까이 갭 업으로 출발한 것은 아시아 시간대에 흘러나온 종전 협상 진전 소식 때문이다. 시장은 '전쟁이 끝나면 유가가 빠지고, 원자재 비용 부담이 줄어들며,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완화된다'는 연쇄적 기대를 주가에 선반영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기대가 아직 '시나리오'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휴전 합의문이 체결된 것도, 양측이 공식 성명을 발표한 것도 아니다. 장 초반의 환호가 오후 들어 점차 식어간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기대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코스피가 장중 고점 5,833에서 장 마감 5,781로 50포인트 이상 밀려난 궤적 자체가 이 날 시장의 심리적 등고선을 보여준다. 외국인 1.8조 순매도…차익실현인가, 경계 신호인가 가장 주목해야 할 숫자는 외국인의 1조 8522억원 순매도다. 지수가 오르는 날 외국인이 이 규모로 빠지는 것은 통상적이지 않다. 해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 단순 차익실현이다. 코스피는 2월 중순 저점 대비 이미 상당 폭 반등한 상태였고, 종전 기대감으로 지수가 장중 5,800선을 넘기자 외국인 입장에서는 '팔기 좋은 가격'이 형성된 셈이다. 최근 수주간 누적된 매수 포지션의 일부를 정리하는 자연스러운 수급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좀 더 구조적인 시선이다. 외국인 자금의 상당 부분이 글로벌 매크로 펀드인데, 이들은 '이벤트 확정' 이전 단계에서 포지션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 종전이 현실화되더라도 그 이후 중동 재건 비용, 에너지 시장 재편, 미국의 대이란 제재 해제 속도 등 변수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즉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파는" 전형적 패턴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개인과 기관이 합산 1조 8000억 원을 매수해 외국인 매도를 정확히 상쇄한 것은 인상적이지만, 이 구도가 지속 가능한지는 별개 문제다. 기관의 매수 전환이 오전 9시12분으로 비교적 이른 시점인 것을 감안하면 프로그램 매매의 영향이 클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다음 주 초 환매 압력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코스닥의 '삼천당 돌풍'…바이오 쏠림의 명과 암 코스닥의 1.58% 상승은 사실상 '삼천당제약 효과'로 압축된다. 경구용 인슐린 후보물질의 유럽 임상 진입 기대감은 분명 강력한 모멘텀이다. 글로벌 당뇨 치료제 시장이 연 700억달러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구 투여형 인슐린이 상용화될 경우의 시장 잠재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다만 '시총 4위에서 보름 만에 1위'라는 급등 궤적은 양면이 있다. 기대감이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리는 속도가 임상 데이터의 축적 속도보다 훨씬 빠를 때, 주가는 본질적으로 취약해진다. 유럽 임상 진입은 '기대'이지 '결과'가 아니다. 1상→ 2상→ 3상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에서 어느 단계에서든 좌초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코스닥 시총 상위 10개 종목 중 레인보우로보틱스(-9.19%), 리노공업(-4.44%), 알테오젠(-1.67%)이 동반 하락한 것은 자금이 삼천당으로 '몰리는' 쏠림 현상을 방증한다. 코스닥 시장 특유의 '테마 순환'이 다시 작동하고 있으며, 이 흐름이 과도해질 경우 시장 전반의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거래량 급증 종목이 말해주는 것 이날 코스피 거래량 급증 상위 종목 리스트는 흥미로운 시그널을 담고 있다. SNT에너지(+29.96%), 한신공영(+29.99%), DL이앤씨(+27.55%) 등 건설·에너지 관련주가 대거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는 종전 이후 중동 재건 수요에 대한 기대가 이미 개별 종목 차원에서 반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계룡건설(+13.76%), 금호건설(12.89%), 태영건설(+8.40%) 등 중소형 건설주까지 줄줄이 거래량이 폭증한 것은 '재건 테마'가 시장의 새로운 투자 내러티브로 부상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재건 테마 역시 종전 자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선취매라는 점에서 리스크가 크다. 실적 기반 없이 기대감만으로 거래량이 10배 이상 폭증한 종목군은, 기대가 실현되지 않을 경우 급격한 되돌림에 직면할 수 있다. 오늘의 시장은 '종전'이라는 거대 서사와 '차익실현'이라는 냉정한 자금 흐름이 교차한 하루였다. 코스피가 5,780선에 '안착'한 것인지, '걸친' 것인지는 다음 주 외국인 수급과 실제 종전 협상 진전 여부에 달려 있다. 삼천당제약의 코스닥 왕좌 등극은 바이오 섹터의 폭발적 잠재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기대'에 의존한 투자의 양날을 환기시킨다. 건설·에너지주의 거래량 급증은 새로운 테마의 싹이자, 과열의 전주곡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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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27회)
제27회 미상 씨의 쿠팡 카플렉스 담당구역에는 장위동 재개발지역이 포함돼있다. 그러다 보니 빈집이 많고 방치된 쓰레기와 폐가구들로 골목마다 어지럽다, 빈집과 빈집이 연이은 음산한 골목이 이어지는 곳이라 귀신이 주문한 배송상품을 배송하느라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에 식은땀이 솟았다는 동료의 카톡이 가끔 나타난다. 같은 캠프에서 일하는 카플렉서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잡담방'이라는 단톡방이 있는데, 어제는 그곳에 이런 메시지가 떴다. "캄캄한 골목 안으로 서랍장 두 개, 이 리터 여섯 개 들이 생수 두 박스, 단프라 다섯 개 들고 들어갔다가 두 시간 넘겼어요. 후덜덜." '단프라'라는 포장 용기는 보통 폴리프로필렌 수지로 만든 골판지 박스로 그 안에 부피 작은 배송상품을 담는다. 그 메시지 아래에 달린 메시지에는 그 골목의 지번이 적혀 있고, 그 지번 막다른 골목에 있는 연립주택의 이름을 밝혔다. "영접연립." "으악! 그 연립주택 현관문도 없는 흉간데." "정말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온몸에 왕소름이 돋고…… 목구멍이 팍팍하고 아주 죽는 줄 알았어요. 불빛도 없고 인적도 없는데 자꾸 말하는 소리 들리고……." "그래서 배송상품은 어캐 했어요?" "현관 문앞에 쌓아둘 수 없으니 어떡해요. 각층 계단까지는 날랐죠. 거기서 사진 찍고는 배송완료!" "나는 그 동네 골목에서 하얀 패딩 입는 처녀 귀신 두 번 만났다능." 아쉽게도 미상 씨는 처녀 귀신이고 노파 귀신이고 귀신을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미상 씨에게 무서운 대상은 귀신이 아리라 악천후와 찾기 힘든 주소다. 일월이 가고 이월이 시작되면서 연이틀 눈이 내렸다. 큰 눈은 아니지만 카플렉서에겐 성가시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고의 위험이 있다. 늘 다니던 길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조심 새겨 디뎌야 한다. 일 년 반 동안 미상 씨는 같은 동네 야간배송을 고수했다. 게다가 백 건 내외의 적당량을 배당받았으므로 이제는 웬만한 집은 척척 찾아간다. 보아 하면 쿠팡을 이용하는 고객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 집이 그 집이다. 그러나 어제오늘은 미상 씨를 시험하듯 알 수 없는 낯선 주소지의 배송상품이 나타났다. 석관동과 장위동과 월곡동이라면 어느 골목이든 자신 있는 미상 씨지만, 생소한 주소로 주문한 신입 고객의 배송상품이나 엘리베이터 없는 연립주택 꼭대기 층에서 주문한 무게 나가는 배송상품에는 당황하게 된다. 게다가 진눈깨비 내리는 새벽이라면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미상 씨는 자신을 기다리는 희정 씨를 생각하며 힘을 낸다. "어서 배송을 마치고 희정 씨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자." 어제는 진눈깨비가 내렸다. 그 와중에도 용기백배 새벽배송이 거의 끝날 때였다. 현관문 비번을 알 수 없는 연립주택의 현관을 통과하는 문제부터, 그 연립주택 사층 꼭대기 위 옥탑방까지 날라야 하는 이 리터 여섯 개들이 생수 여섯 묶음은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생수 여섯 묶음이 하나의 상품으로 분류돼 모두 배송해봤자 배송료 천 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견디고 이겨야 한다. 희정 씨의 조심하라는 당부의 목소리를 연상하며 미상 씨는 힘을 냈다. 알 수 없는 현관문 비밀번호는 쿠팡 카플렉스CS 소통방과 동료의 잡담방을 오가며 가까스로 알아냈고, 생수 여섯 묶음 배송은 힘과 끈기로 달려들어 끝장내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새벽 맞닥뜨린 낡은 사층 건물의 오층이라는 배송지는 미상 씨로 하여금 서럽게 울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실제로 미상 씨는 펑펑 함박눈 내리는 장위동 언덕바지에 스치로폼 박스 세 개를 껴안은 채 소리 내 울었다. "하나님…… 하나님…… 아이고 하나님……." 송이눈 처연히 내리는 이월의 첫날 새벽녘, 뜨거운 눈물 철철 흘리며 하나님을 부르던 미상 씨가 그 하나님께 물었다. "도대체 이 사층짜리 연립주택에 무슨 오층이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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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동맥 끊긴 신흥국⋯이란 전쟁에 산업·물가 동시 강타
이란 전쟁 여파로 세계 천연가스 공급망이 크게 흔들리면서 LNG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이 경제적 직격탄을 맞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19일(현지시간) 신흥국들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다시 닥친 가스 위기로 타격을 받고 있으며 산업 수요가 회복 불가능할 수도 있는 수준으로 위축될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2위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인 카타르는 최근 이란의 공격으로 LNG 수출능력의 17%에 해당하는 연 1280만톤 규모 설비가 손상됐고, 복구에는 3~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까지 겹치며 아시아 현물 LNG 가격은 최근 3년래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이에 카타르산 LNG의 80% 이상을 수입하는 아시아에서는 인도 기업들이 비료용 가스 공급을 제한하고 식당·호텔들이 휴업 위기에 몰렸으며, 파키스탄도 전력수급 불안을 경고하고 있다. 유럽 역시 2022년 가스대란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가운데 재고 재축적 부담과 아시아와의 물량 확보 경쟁에 직면했다. 한국 정부는 카타르산 의존도가 약 14% 수준이라며 대체 물량 확보가 가능하다고 설명하면서도 석탄·원전 활용 확대 등 대응에 나섰다. [미니해설] '제2의 가스 쇼크' 시작…신흥국, 왜 먼저 흔들리나 이번 가스 위기의 핵심은 원유보다 천연가스가 더 취약한 공급망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란의 공격으로 카타르 라스라판 단지의 LNG 설비 일부가 손상되면서 카타르 수출능력의 17%, 연간 1280만톤이 시장에서 빠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카타르에너지의 사드 알카비 CEO는 복구에 3~5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일시 차질이 아니라 글로벌 가스시장 구조 자체를 흔드는 충격이다. 카타르는 세계 2위 LNG 수출국이고, 이 시설이 멈추면 세계 가스 교역의 핵심 축 하나가 사실상 장기 훼손되는 셈이다. 게다가 모든 카타르 LNG 화물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설비 손상과 해협 리스크가 동시에 겹치면서 시장은 공급 감소를 단기 이슈가 아닌 장기 변수로 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곳은 역시 아시아 신흥국이다. 카타르산 LNG의 80% 이상이 아시아로 향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미 아시아 현물 LNG 가격은 전쟁 이후 두 배 가까이 뛰어 3년 만의 고점 수준에 올라섰다. 문제는 신흥국일수록 값비싼 현물 시장에서 유럽이나 동북아 선진국과 경쟁할 자금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계약 물량이 흔들리면 결국 비싼 가격을 감수하거나, 아예 수요를 줄여 공장과 발전소 가동을 축소하는 수밖에 없다. 로이터는 호르무즈 통항이 사실상 멈추고 카타르 출하가 중단되면서 아시아 전력회사들이 연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석탄발전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기후 대응을 이유로 석탄에서 가스로 옮겨간 국가들일수록 타격은 더 크다. 인도는 그 취약성이 가장 먼저 드러난 사례다. 로이터에 따르면 인도 기업들은 중동 충격으로 카타르 공급이 흔들리자 비료 부문을 포함한 국내 가스 공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어 식당·호텔 업계는 취사용 LPG 부족으로 영업 차질과 휴업 가능성을 경고했다. 다른 로이터보도에서는 "수천㎞ 떨어진 전쟁이 인도 가정의 식탁과 식당 메뉴를 좌우하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생활경제 충격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인도는 세계 4위 LNG 수입국으로, 공급의 약 3분의 2를 카타르·UAE·오만 등 중동에 의존한다. 즉 이번 위기는 단순한 연료비 상승이 아니라, 비료 생산·음식점 영업·물류비·가계생활비가 한꺼번에 흔들리는 복합 충격이다. 파키스탄도 상황이 가볍지 않다. 로이터는 파키스탄 전력의 약 10%가 LNG 발전에서 나오며, 특히 저녁 피크 시간대 전력망 안정에 LNG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미 카타르 공급 차질 이후 아시아 국가들이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파키스탄 같은 경제는 더 비싼 현물 화물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력난이 장기화하면 섬유 등 수출 제조업이 직접 타격을 입고, 이는 외화 수입 감소와 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LNG 현물 확보에 실패하며 정전과 공장 가동 차질을 겪었는데, 이번 충격은 공급선 자체가 장기 훼손됐다는 점에서 더 구조적이다. 유럽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EU는 전체 가스 수요의 4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했다. 이후 수입선을 다변화했고 러시아 비중은 2025년 13%까지 낮아졌지만, 그 대가로 LNG 의존도가 커졌다. 지금 유럽은 혹한기를 지나며 재고가 줄어든 상태에서 향후 몇 달 안에 저장고를 다시 채워야 하는 상황인데, 카타르 공급 차질과 아시아의 물량 사냥이 겹치면서 재충전 비용과 조달 난도가 동시에 올라가고 있다. 로이터는 유럽 가스 가격이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두 배로 뛰어 3월 19일 한때 메가와트시당 74유로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아직 2022년 정점보다는 낮지만, 유럽이 다시 "누가 더 비싼 값을 부르느냐"의 경쟁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한국과 대만도 예외가 아니다. 블룸버그와 로이터에 따르면 아시아 각국은 카타르산 손실분을 메우기 위해 미국산과 기타 스팟 물량 확보전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은 카타르산 의존도가 2026년 기준 약 14%로 상대적으로 낮고, 법정 비축 이상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가스발전 비중이 2025년 27%였다는 점에서 가격 충격까지 피할 수는 없다. 정부가 석탄발전 운영한도를 높이고 원전 정비를 앞당기겠다고 한 것은 가스 부족 자체보다 발전연료 믹스 재조정이 더 현실적인 대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급량 부족보다 가격 급등이 먼저 전기요금과 산업원가를 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사태의 승자와 패자도 뚜렷해지고 있다. 패자는 중동산 LNG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현물시장 경쟁력이 약한 남아시아·동남아 신흥국이다. 반대로 반사이익을 얻는 쪽은 미국과 러시아다. 로이터는 미국이 이미 유럽의 최대 LNG 공급국이 됐고, 카타르 공백이 길어질수록 미국산 화물의 협상력이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도 유럽 시장 상실 이후 중국으로의 가스 판매 확대를 노리고 있는데, 중동발 공급 불안은 중국의 러시아산 가스관 프로젝트 추진 명분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안보가 다시 지정학의 핵심 무기가 되는 순간, 천연가스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국가 간 힘의 균형을 바꾸는 전략 자산으로 돌아왔다고 봐야 한다. 이번 가스 쇼크가 더 위험한 이유는, 신흥국 산업 수요가 한번 꺾이면 쉽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비료·섬유·세라믹·식품 서비스처럼 가스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원가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면 가동률을 낮추거나 생산 자체를 줄여야 한다. 이는 곧 고용과 수출, 물가로 연쇄 전이된다. 2022년의 가스대란이 유럽 산업을 흔들었다면, 2026년의 충격은 신흥국 생활경제와 제조업 기반을 먼저 파고드는 양상이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카타르 설비 복구에 3~5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위기는 단기 가격 급등이 아니라 몇 년짜리 공급 재편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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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엔솔 "전기차는 위기, ESS는 기회"⋯김동명, '밸류 시프트' 정면돌파 선언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최고경영자(CEO)가 전기차 시장 둔화를 위기로만 보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CEO는 20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 뒤 "지금은 밸류 시프트, 즉 가치 재편의 기간"이라며 "전기차 측면에서는 위기지만 에너지저장장치(ESS) 입장에서는 기회"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23조6718억원, 영업이익 1조3461억원을 기록했다. 전기차 시장 위축 속에서도 ESS 확대를 통해 실적 둔화를 방어했다는 평가다. 회사는 북미에 5개 ESS 생산 네트워크를 확보했고, 올해 말까지 글로벌 ESS 배터리 생산능력을 60GWh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ESS·신사업 비중도 현재 20% 수준에서 향후 40%대 중반까지 높인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90GWh였던 신규 수주도 올해는 이를 웃도는 사상 최대 수준을 목표로 잡았다. 최근 미국 정부가 확인한 테슬라와의 43억달러, 약 6조4000억원 규모 ESS 배터리 공급 계약도 성장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니해설] 전기차 침체의 역설…LG엔솔이 ESS에서 찾은 새 성장축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CEO의 이날 발언은 배터리 산업의 무게중심이 빠르게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핵심은 "전기차는 위기, ESS는 기회"라는 한 문장이다. 지금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단순한 업황 부진이 아니라 수요의 방향이 바뀌는 구조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는 게 LG에너지솔루션의 판단이다. 김 CEO가 이를 '밸류 시프트'라고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기차(EV) 중심으로 짜였던 성장 방정식이 흔들리는 대신, 전력망 안정화와 AI 데이터센터 확산, 재생에너지 확대를 배경으로 ESS 시장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적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23조6718억원, 영업이익 1조3461억원을 기록했다. 전 세계 전기차 수요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선방한 성적표다. 시장은 EV용 배터리 출하 둔화가 실적을 크게 압박할 것으로 봤지만, 회사는 ESS 사업 확대를 통해 둔화 충격을 상당 부분 상쇄했다. 배터리업계가 전반적으로 전기차 수요 부진과 재고 조정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제품 포트폴리오와 생산기지 활용 전략으로 대응한 셈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북미 전략이다. 김 CEO는 LG에너지솔루션이 현재 북미 지역에 총 5개의 ESS 생산 네트워크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일부 공장은 이미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특히 그는 기존 EV 자산을 ESS로 신속히 전환해 활용하면서 "유일한 비중국 현지 ESS용 LFP 배터리 생산 업체"로서 고객들의 '논-PFE(Non-PFE)' 공급망 수요를 빠르게 충족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생산량 확대가 아니다. 미국 시장이 중국산 배터리 의존도를 낮추려는 흐름 속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지정학과 통상환경 변화까지 사업 기회로 연결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럽 전략도 비슷하다. 김 CEO는 폴란드 공장에 대해 "의미 있는 수준으로 ESS 전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역시 에너지 안보와 전력망 안정, 재생에너지 연계 수요가 커지면서 ESS 현지 조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즉,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에서는 비중국 공급망, 유럽에서는 현지화 생산이라는 두 축으로 ESS 입지를 넓히려는 것이다.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ESS용으로 전환하는 방식은 신규 투자 부담을 줄이면서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효율적이다. 중장기 숫자도 공격적이다. 회사는 ESS와 신사업 비중을 현재 약 20% 수준에서 향후 40%대 중반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는 매출과 수익 구조를 전기차 일변도에서 벗어나 보다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구조로 바꾸겠다는 선언과 같다. 배터리 산업은 특정 완성차 고객이나 전기차 판매 사이클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ESS 비중을 40%대 중반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는 그 변동성을 줄이는 동시에, 전력 인프라 시장이라는 장기 성장 분야에서 확실한 입지를 차지하겠다는 포석이다. 수주 목표도 강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신규 수주 목표를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90GWh를 웃도는 수준으로 제시했다. 생산능력도 올해 말까지 글로벌 ESS 배터리 기준 60GWh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보다 2배 가까운 수준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수주와 생산능력 확대가 동시에 제시됐다는 것은 회사가 ESS를 단순한 보완 사업이 아니라 향후 실적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다. 테슬라와의 협력도 눈길을 끈다. 최근 미국 정부는 LG에너지솔루션과 테슬라 간 43억달러, 우리 돈 약 6조4000억원 규모의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공식 확인했다. 김 CEO는 "테슬라와는 오래 관계를 맺어왔고, 전기차 쪽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ESS도 협력하고 있듯이 이 같은 관계를 지속 확대하며 발전적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이는 테슬라가 단순한 EV 고객을 넘어, 에너지 사업 부문에서도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테슬라의 에너지저장 사업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만큼,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EV 침체를 상쇄할 대형 고객 기반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차세대 제품 투자도 병행된다.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 중인 46시리즈 전용 공장은 현재 설비 세팅이 진행 중이며 올해 말 가동이 목표다. 46시리즈 배터리는 원통형 시장의 고성능 수요와 맞물려 향후 주요 성장 동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즉 LG에너지솔루션은 한편으로 ESS를 키우며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세대 폼팩터 투자를 이어가며 EV 시장 회복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방어와 성장, 두 전략을 동시에 굴리는 셈이다. 경쟁사와의 기술 경쟁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각형 배터리 양산 추진을 둘러싸고 삼성SDI와의 특허·폼팩터 경쟁 가능성이 거론되자 김 CEO는 "저희도 같은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정도의 특허를 가지고 있다"며 "어긋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기술특허를 방어막으로 삼고, 국내 경쟁사와의 경쟁에서도 법적 분쟁 가능성을 낮추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날 김 CEO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전기차 시장 둔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것이 곧 성장 정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매출 23조6718억원, 영업이익 1조3461억원의 실적 위에서, 북미 5개 생산거점, 연말 60GWh 생산능력, ESS·신사업 비중 40%대 중반, 지난해 90GWh를 넘는 신규 수주 목표, 테슬라 43억달러 계약까지 숫자로 제시된 전략은 꽤 구체적이다. 전기차 침체를 버티는 수준이 아니라, 산업 판이 바뀌는 틈에서 ESS를 새 성장축으로 키우겠다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방향 전환이 본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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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5개월째 유지했지만⋯정부, 중동 변수에 하방위험 다시 꺼냈다
정부가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정경제부는 20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 3월호에서 소비 등 내수 개선과 반도체 중심 수출 호조를 근거로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 연속 '경기 회복'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중동 상황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미국의 관세 부과 영향, 건설투자 회복 지연, 취약부문 고용 애로 등이 겹치며 물가 상승과 민생 부담 확대, 경기 둔화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경제동향 보고서에 사실상 '경기 하방 위험' 취지의 표현을 담은 것은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만이다. 정부는 아직 최근 지표에는 중동 리스크가 본격 반영되지 않았다고 보면서도 추가경정예산을 신속히 편성하고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중심으로 24시간 점검 체제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미니해설] 숫자는 회복을 가리키는데…정부가 8개월 만에 '하방위험'을 다시 꺼낸 이유 재정경제부가 20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 3월호에서 우리 경제에 대해 "소비 등 내수 개선과 반도체 중심 수출 호조로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 연속 '경기 회복'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미국의 관세 부과 영향, 건설투자 회복 지연, 취약부문 고용 애로 등을 이유로 물가 상승과 민생 부담 확대, 경기 하방 위험 증대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사실상 '경기 하방 위험'을 언급한 것은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만이다. 실제로 1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2.3% 증가했고, 2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28.7%, 일평균 수출액은 49.0% 늘었다. 반도체(161%), 컴퓨터(222%), 선박(41%)이 수출 증가를 이끌었다. 정부는 중동 충격의 확산을 막기 위해 추경을 신속히 편성하고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중심으로 24시간 모니터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3월 그린북에서 내놓은 메시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지표는 좋아지고 있지만, 바깥 충격이 커지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째 '경기 회복' 판단을 유지했다. 실제 수치만 보면 그렇게 볼 만한 근거가 적지 않다. 1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2.3% 증가했다. 내구재, 준내구재, 비내구재 판매가 모두 늘었다. 2월 소비 흐름도 카드 국내 승인액 증가율 확대와 소비자심리지수 상승을 감안하면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정부는 판단했다. 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12.1로 전월보다 1.3포인트 올랐고, 국내 카드 승인액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6.3% 증가했다. 내수가 바닥을 찍고 조금씩 회복되는 조짐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수출은 더 선명하다. 2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28.7% 증가했고, 조업일수를 감안한 일평균 수출액은 49.0% 급증했다. 주력 품목별로 보면 컴퓨터 수출이 222% 늘었고, 반도체는 161%, 선박은 41% 증가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가 다시 강하게 살아나면서 전체 경기지표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뜻이다. 물가도 아직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0% 올라 전월과 같은 상승률을 유지했다. 특히 석유류 물가는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2.4% 떨어졌다. 고용도 개선됐다. 2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3만4000명 늘어 1월 증가폭 10만8000명을 크게 웃돌았다. 숫자만 놓고 보면 경기 회복이라는 정부 표현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 보고서에 굳이 '경기 하방 위험 증대 우려'라는 표현을 넣었다.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만이다. 왜일까. 핵심은 지금 나오는 지표가 아직 최근 중동 충격을 본격 반영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현재 발표되는 소비, 물가, 수출 수치는 중동 리스크가 본격화하기 전의 흐름을 상당 부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2월까지의 숫자는 괜찮지만 3월 이후는 다를 수 있다는 경고다. 조성중 경제분석과장도 이란 전쟁이 성장률과 물가에 미칠 영향에 대해 "사태가 얼마나 장기화하고 심화할지 예단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정부가 숫자보다 선행 위험을 먼저 보고 있다는 의미다. 가장 민감한 변수는 역시 국제유가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다. 중동 긴장이 길어져 국제유가가 오르면 수입물가가 뛰고, 그 부담은 곧바로 생산비와 물류비,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나아가 생활물가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이번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로 안정됐고 석유류 물가가 2.4% 하락한 것도, 결국 유가가 본격 반등하기 전의 결과일 뿐이다. 앞으로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이어가면 지금의 안정적인 물가 흐름은 유지되기 어렵다. 정부가 이번에 "물가 상승, 민생 부담 증가 및 경기 하방 위험 증대 우려"를 한 문장에 묶은 것도 이런 이유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통계보다 서민 체감에 먼저 반영된다. 소비 지표도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카드 승인액 전체는 6.3% 증가했지만 할인점 카드 승인액은 오히려 10.6% 감소했다. 이는 소비가 회복되더라도 모든 계층과 업태에 고르게 퍼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일부 서비스 소비나 온라인 소비는 살아나고 있지만 생활 밀착형 소비에서는 여전히 부담이 이어질 수 있다. 소비자심리지수 112.1 역시 숫자상으론 개선이지만, 중동 변수와 유가 충격이 체감되기 시작하면 다시 꺾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내수 회복은 아직 초기 단계이고, 외부 충격에 견딜 체력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수출 역시 구조적으로는 취약성이 남아 있다. 2월 수출 28.7% 증가, 일평균 수출 49.0% 증가라는 성적표는 매우 강하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반도체와 컴퓨터 같은 IT 품목 쏠림이 크다. 반도체 161%, 컴퓨터 222% 증가가 전체를 견인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회복의 폭이 넓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미국의 관세 부과와 통상환경 악화가 현실화하면 수출 회복세는 예상보다 빨리 둔화할 수 있다. 정부도 국제경제 상황에 대해 "중동상황, 주요국 관세 부과에 따른 통상환경 악화 등으로 국제금융시장 및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고 교역·성장 둔화가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수출이 좋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고용도 숫자와 체감 사이 간극이 있다. 2월 취업자 수가 23만4000명 늘어 1월의 10만8000명보다 크게 개선된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취약부문 중심의 고용 애로"를 공식 언급했다. 이는 전체 고용 증가가 일부 업종이나 연령대에 집중돼 있고, 건설·제조 일부나 취약계층에서는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건설투자 회복 속도 역시 정부가 별도로 우려하는 변수다. 건설은 고용과 내수, 지방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분야다. 이 부문이 기대만큼 살아나지 못하면 전체 경기 회복의 온기가 넓게 퍼지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이번에 단순 진단에 그치지 않고 대응책도 함께 내놨다. 중동 상황의 영향 최소화를 위해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신속히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중심으로 각 부문을 24시간 모니터링하면서 이상징후 발생 시 신속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는 이번 하방 위험을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 관리 대상 리스크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추경을 서두르겠다는 메시지는 유가와 환율, 금융시장 변동성이 민간의 자생 회복만으로 흡수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정부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3월 그린북은 '회복'과 '경고'가 동시에 담긴 보고서다. 1월 소매판매 2.3% 증가, 2월 소비자심리지수 112.1, 카드 승인액 6.3% 증가, 수출 28.7% 증가, 일평균 수출 49.0% 증가, 반도체 161% 증가, 컴퓨터 222% 증가, 소비자물가 2.0%, 취업자 23만4000명 증가라는 숫자들은 분명 회복을 가리킨다. 그러나 할인점 카드 승인액 10.6% 감소, 취약부문 고용 애로, 건설투자 부진, 미국 관세 리스크, 중동발 유가 급등 가능성은 그 회복의 바닥이 아직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정부가 8개월 만에 다시 ‘하방위험’을 꺼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좋아지는 중이지만, 동시에 매우 쉽게 흔들릴 수도 있는 회복 국면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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