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코인 4.88% 급락 7만8983달러…8만·7만9000달러 선 연속 붕괴
- 이더리움 11% 폭락·리플 8.5% 급락…주말 청산 폭풍이 낙폭 키워
- 1분기 -11.7%, 2015년 이후 최악…'트럼프 기대주'서 '거시 피해주'로 전락
"안전자산인가, 위험자산인가." 비트코인이 오래 미뤄온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6일(현지시간) 비트코인은 위험자산 편에 섰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이날 CBS 뉴스에 출연해 "상호관세는 9일 예정대로 부과될 것이며 며칠, 몇 주 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못 박자, 암호화폐 시장은 일제히 무너졌다. 글로벌 코인 시황 사이트 코인마켓캡에서 비트코인은 전거래일보다 4.88% 급락한 7만8983달러에 거래됐다. 8만 달러 선에 이어 7만9000달러 선도 연이어 허물어진 것이다. 지난 1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 대비로는 약 34%가 증발한 수준이다.
러트닉의 한마디…실낱 같은 기대를 끊다
시장은 관세 협상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붙들고 있었다. 미국 주요 교역국들이 협상 의향을 내비치자 관세 부과 시점이 일부 조정될 수 있다는 기대가 주말 동안 암호화폐 가격을 잠시 떠받쳤다. 전날인 5일(토요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미국 증시가 폭락하는 와중에도 피난처로 부각되며 일시적으로 반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기대는 하룻밤을 넘기지 못했다. 6일 러트닉 장관이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해 "9일 강행"을 확인하는 순간 시장의 방어막이 무너졌다. CNBC는 "트럼프 관세로 세계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이 모든 위험자산을 매도했다"며 "24시간 쉬지 않고 거래되는 암호화폐를 불안에 떨던 이들이 주말 내내 처분했다"고 분석했다.
4월 6~7일 이틀간 선물 강제 청산 규모는 약 4억8000만 달러에 달했다. 과거 주요 충격 국면과 비교하면 제한적인 수준이지만, 주말 특유의 얇은 유동성 환경이 실제 낙폭을 증폭시켰다.
코인판의 '주말 쇼크'…청산 연쇄가 낙폭을 배가하다
비트코인의 폭락이 주식시장보다 훨씬 가파른 이유는 암호화폐 파생상품 시장의 구조적 특성에 있다. 비트코인 선물 시장에는 최대 수십에서 수백 배에 이르는 레버리지 포지션이 공존한다. 가격이 특정 임계치 아래로 밀리면 거래소가 자동으로 매도를 실행하는 강제 청산이 발생하고, 이 청산이 추가 하락을 유발해 다음 구간의 청산을 다시 촉발하는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 8만 달러 선이 뚫린 뒤 단시간에 7만8000달러대까지 밀린 배경에 이 메커니즘이 작동했다. 주말에는 현물 매수 자금 유입이 줄어드는 만큼 청산 매물만 쏟아지면 낙폭이 과장되기 쉽다.
시총 2위 이더리움의 하락폭은 비트코인의 두 배를 넘어섰다. 11.07% 폭락한 1587달러로 마감했다. 시총 4위 리플(XRP)도 8.51% 급락한 1.94달러를 기록했다. 솔라나·도지코인·에이다 등 주요 알트코인도 두 자릿수 하락을 연출했다. 가상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빚어낸 거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자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2015년 이후 최악의 1분기…'트럼프 기대주'에서 '거시 피해주'로
NYDIG 데이터가 전하는 수치는 더욱 아프다. 비트코인은 올해 1분기(1~3월) 동안 11.7% 하락했다. 2015년 이후 꼭 10년 만에 가장 나쁜 1분기 성적표다.
역설적이게도 이 부진의 출발점은 극도의 낙관이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 이후 비트코인은 '친암호화폐 행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상 최고치를 향해 질주했다. 트럼프는 미국을 '세계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올해 3월에는 실제로 전략 비트코인 보유고 설치를 명령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행정명령의 내용이 신규 매입 계획 없이 기존 몰수 자산을 보관하는 데 그치자 시장은 즉각 실망 매물을 쏟아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의 충격도 깊어지는 법이다.
여기에 2월부터 미국과 캐나다·멕시코·중국·EU 사이에 관세 전쟁이 격화되면서 비트코인은 정체성 전환을 강요받았다. '트럼프 기대주'에서 '거시경제 피해주'로의 변신이었다. 관세 충격이 경기 침체 공포를 불러올 때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팔아치우는 자산이 레버리지가 쌓인 고변동성 위험자산이다. 비트코인은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디지털 금' 서사의 균열…전통 금과 엇갈린 행보
비트코인이 오래도록 자랑스럽게 내세워온 정체성이 있다. 인플레이션 헤지이자 달러 패권에서 자유로운 '디지털 금'이라는 서사다. 그러나 이번 관세 충격 국면에서 그 서사에 선명한 균열이 생겼다.
국제 금 현물 가격은 같은 기간 사상 최고치 랠리를 이어가며 온스당 3100달러를 돌파했다. 지정학·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전통 금은 수천 년간 증명해 온 안전자산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반면 비트코인은 금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올해 들어 금이 19% 이상 오르는 동안 비트코인은 11.7% 하락했다. 두 자산 사이의 성과 격차는 30%포인트를 넘어섰다.
이 엇갈림의 핵심 원인은 투자자 기반의 구조 변화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지난해 1월 미국에서 승인된 이후 월가 기관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됐다. 기관들은 대규모 위험 회피 국면에서 비트코인을 나스닥 기술주와 묶인 '위험자산 바스켓'으로 분류해 일괄 처분한다. 비트코인이 금처럼 '안전자산 바스켓'에 분류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올해 들어 비트코인은 무역 전쟁과 금리 추세 같은 거시경제 흐름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대형 기관 자금이 유입되면서 대규모 유동성 이탈에도 취약해졌다"는 분석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교역 상대국의 반격…보복 관세의 연쇄가 시작됐다
비트코인을 더욱 옥죄는 것은 미국 관세에 대한 각국의 맞불이다. 중국은 미국산 수입품에 34%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이미 예고했다. EU도 미국산 제품에 대한 대응 조치를 구체화하고 있다. 관세와 보복 관세의 순환이 본격화될 경우 세계 교역 규모 자체가 쪼그라들고, 이는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다.
경기 침체 전망이 강화될수록 연준의 통화정책 경로도 꼬인다. 관세발 인플레이션이 물가를 밀어올리는 동시에 수요 충격이 성장을 끌어내리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연준은 금리를 쉽게 낮출 수 없다. 비트코인 강세론의 핵심 전제 중 하나였던 '연준의 금리 인하→달러 약세→비트코인 상승'이라는 도식이 작동하지 않는 환경이다.
남은 질문…9일 이후 시장이 찾는 방향
러트닉 장관이 못 박은 9일이 다가오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지금 집중하는 변수는 세 가지다.
하나는 관세 부과 이후 각국의 외교적 대응이다. 협상 채널이 열리거나 관세가 일부 조정될 것이라는 신호가 포착된다면, 극도로 위축된 위험 선호 심리가 되살아날 수 있다. 둘은 연준의 시그널이다. 다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앞두고 연준 위원들의 발언이 비둘기파적으로 전환된다면 달러 약세와 함께 비트코인도 숨통이 트인다. 셋은 비트코인 ETF 자금 흐름이다. 월가 기관 투자자들이 ETF를 통해 추가로 매도하면 낙폭이 심화되지만, 반대로 현 수준을 저점 매수의 기회로 본 자금이 유입된다면 하단을 지지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세계 암호화폐 수도'를 약속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신의 관세 정책이 비트코인의 최대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전략 비트코인 보유고 서명으로 쌓은 기대감이, 관세 전쟁으로 불러온 거시 공포에 의해 남김없이 지워지는 아이러니가 7만8000달러대의 차트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