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
-
[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6회)
- 질퍽한 골목의 시학 -묵호 '논골'을 아세요? 이름은 땅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다. 마을 이름, 골목 이름, 고개 이름. 행정이 붙여주는 이름이 있고 삶이 스스로 만드는 이름이 있다. 앞의 이름은 지도 위에 있고 뒤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안에 있다. 지도가 바뀌어도 입안의 이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지명의 질긴 생명력이다. 묵호진동의 언덕 골목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논골'이라 불렀다. 공식 기록에도 구전에도 이 이름은 남아 있다. 동해시 지명지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산 중턱에 논이 있어서 생긴 이름.' 그러나 골목에서 오래 살아온 어르신들의 구전은 조금 다르다. 마을 절반은 뱃사람, 절반 위는 덕장으로 생계를 유지한 마을이라 '질퍽한 흙길 때문에 논골마을이라 불렸다.' 두 가지 해석 중 어느 쪽이 맞는가를 따지는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두 해석 모두 이 땅의 몸을 읽은 결과라는 사실이다. 물이 흐르는 골목 논골 골목이 왜 질퍽했는지를 이해하려면 언덕 꼭대기를 먼저 봐야 한다. 지금은 대부분 장소를 옮기거나 사라진 곳이지만 언덕 가장 높은 곳에는 덕장이 있었다. 오징어와 명태를 말리는 곳. 어부들이 잡아 온 생선을 묵호항에서 덕장까지 나르는 일이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바지게에 지거나 빨간 고무대야에 담아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짐은 무겁다. 그 과정에서 생선 더미에서 떨어지는 바닷물이 골목을 적셨다. 오징어는 특히 물기가 많다. 막 잡아 올린 오징어를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가파른 비탈을 오를 때, 흔들릴 때마다 바닷물이 튀고 흘렀다. 하루에 한 번이 아니었다. 풍어의 계절에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오르내렸다. 골목의 흙은 늘 젖어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젖어 있었다. 그것이 '논골'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이름 안에 당시 마을의 경제 전체가 들어 있다. 골목이 질퍽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선이 많이 오르내렸다는 뜻이고, 생선이 많이 오르내렸다는 것은 어획이 풍성했다는 뜻이고, 어획이 풍성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름 속에 풍요와 고단함이 함께 녹아 있다. 장화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도시의 언어 그래서 생긴 말이 있다. 앞서도 인용했지만, 이 말은 한 번으로 부족하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웃었다. 그러다가 멈췄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묵호에서만 통용되는 실용의 언어였다. 신발이 방수되지 않으면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골목. 젖은 신발로 하루를 보내면 발이 무르고 병이 든다. 장화는 이 마을에서 생존 도구였다. 그리고 이 말은 동시에 비틀린 유머다. 아내보다 장화가 더 필요하다는 과장은, 이 마을에서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웃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묵호 사람들은 그렇게 유머를 썼다. 슬프거나 고단한 것을 직접 말하지 않고, 과장하거나 뒤집어서 웃음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이 마을의 언어 습관이고 생존 미학이다. 논골담길 곳곳에 장화 그림과 장화 소품이 등장하는 것은 이 마을이 통과한 역사의 물질적 상징이다. 아이가 신던 작은 장화에 들꽃을 심어놓은 담벼락 위의 풍경은, 그 장화가 더 이상 질퍽한 골목을 걸을 필요가 없어진 시대를 살고 있는 마을이 과거에 바친 조용한 헌사다. 논골담길이라는 이름을 정하던 날이 생각난다. 2010년 봄, 한국문화원연합회 공모사업에 응모하기로 결심하고 지역 작가들과 머리를 맞댔다. 마을 이름이 논골이니 거기서 시작하자는 것은 금방 합의됐다. 문제는 그 뒤였다. '논골길'은 너무 밋밋했다. '논골마을길'은 길다. '논골산책로'는 이 마을의 결을 배신하는 이름이었다. 산책은 여유 있는 자들의 행위다. 이 골목은 여유가 아니라 생존으로 오르내린 사람들의 땅이다. 산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그 역사를 지우는 일이었다. 글 담당으로 참여한 김정호 작가와 긴 논의 끝에 '담(談)'이라는 글자를 끌어왔다. 이야기가 있는 길. 담장의 담(墻)이 아니라 이야기의 담(談).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소리로 읽으면 '담'은 담장으로도, 이야기로도 들린다. 이 중의성이 좋았다. 담장이 있는 골목이고, 이야기가 있는 골목이고, 그 이야기들이 담장 위에 그림으로 새겨지는 골목. 세 가지 뜻이 하나의 소리 안에 겹쳐 있었다. 논골담길. 입에 올려보니 발음이 자연스러웠다. 기억하기도 쉬웠다. 취재 기자들이 반응했다. "길 이름이 왜 이래요?"가 아니라 "이름이 좋네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이름은 첫 번째 기획이다. 좋은 이름은 설명하지 않아도 방향을 가리킨다. 논골 골목은 좁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어려운 곳이 많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간다. 보면 어느새 다른 골목으로 빠져 있다. 미로처럼 얽혀 있다. 처음 온 사람은 길을 잃는다. 나는 이것이 결점이 아니라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예측을 잃는다는 것이다. 예측을 잃으면 감각이 살아난다. 다음 모퉁이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발걸음이 느려진다. 느린 발걸음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한다. 논골담길을 처음 기획할 때 코스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다. 지도를 주되 헤매도록 내버려두자는 것. 나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완성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완성되는 과정을 돕는 것. 그것이 이 마을이 여행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었다. 실제로 논골담길에서 가장 좋은 장면을 만나는 사람들은 코스를 벗어난 곳에서 그것을 만난다. 해설사가 안내하는 경로 밖에 있는 담벼락, 예상치 못한 골목 끝에서 불쑥 열리는 묵호항의 전망. 길을 잃어야 찾게 되는 것들이 있다. 논골이 바로 그런 종류의 장소다. 질퍽함의 미학 물기가 있는 땅은 생명력이 있다. 건조한 땅에서는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 질퍽한 곳에서 식물이 무성해진다. 논골이 질퍽했던 것은 생선의 물기 때문이었지만, 그 질퍽함은 동시에 이 마을이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마을이 쇠퇴하면서 덕장이 사라지고 골목을 오르내리는 지게꾼이 사라졌다. 골목은 건조해졌다. 비가 올 때만 질퍽해지고, 비가 멈추면 곧 말라버리는 보통의 골목이 됐다. 사람이 줄고 집이 비면서 마을은 점점 건조해졌다. 논골담길이 시작됐을 때 골목에 다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작가들이 왔고 사진가들이 왔고 관광객들이 왔다. 골목이 다시 소리를 냈다. 발소리와 말소리와 웃음소리. 그것은 오징어 물기와는 다른 질퍽함이었지만, 마을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어떤 수분이었다. 문화 기획이 마을에 공급하는 것이 결국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아카이브로서의 지명 지명은 가장 오래된 형식의 아카이브다. 문자가 생기기 전부터 사람들은 장소에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 안에 지형이 있고 역사가 있고 삶의 방식이 있다. 논골이라는 이름 안에 오징어 물기로 젖은 골목이 있고, 지게를 진 남자들이 있고, 빨간 고무대야를 이고 오른 어머니들이 있다. 논문을 쓰면서 나는 지역문화 아카이브의 공공영역이라는 주제를 오래 붙들고 있었다. 아카이브가 공공의 것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전문가만 접근할 수 있는 보관소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를 찾아 읽을 수 있는 살아 있는 기록이 되려면. 논골이라는 이름은 그 답의 일부다. 별도의 데이터베이스가 없어도,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이 없어도, 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 역사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논골담길이라는 길 이름 속에 새겨지고, 해설사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벽화와 이야기로 거듭 태어날 때, 지명 아카이브는 공공의 것이 된다. 이름이 먼저 왔다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이름이 먼저 온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야기 발굴이 있었고, 먼저 마을의 삶이 있었고, 그것을 담을 그릇으로 이름이 만들어졌다. 역순이 아니었다. 이름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내용을 채운 것이 아니었다. 많은 마을 재생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름이 먼저 생기는 것이다. 00 아트빌리지, 00 감성마을, 00 문화거리. 이름이 그럴싸하면 마을의 현실이 거기 맞춰져야 한다는 압력이 생긴다. 마을은 이름의 틀에 끼워 맞춰지고, 결국 이름이 마을을 배신하거나 마을이 이름을 배신하는 사태가 온다. 논골담길은 반대였다. 마을이 먼저였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먼저 모였고, 그 이야기들이 어떤 성격인지를 확인한 뒤에야 이름을 붙였다. 그러니 이름이 마을을 배신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그 이름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논골은 오래전부터 그들의 입안에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 '담길'을 붙인 것뿐이었다. 논골 골목의 흙이 마르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집이 더 비고 사람이 더 떠나면, 언젠가는 오르내리는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름은 남는다. 논골이라는 이름이 남는 한, 한때 이 골목이 오징어 물기로 질퍽했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문화기획이 할 수 있는 일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을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시는 흥하고 쇠한다. 그것이 도시의 운명이다. 그러나 이름을 새기는 것,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가능하다. 묵호가 언젠가 지금과 전혀 다른 도시가 되더라도, 논골담길이라는 이름이 살아 있는 한 이 질퍽한 골목의 기억은 살아 있다. 이름이 집보다 오래 살고, 사람보다 오래 산다. 논골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이 마을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필자 소개> 조연섭 -문화 기획자, 브치 작가, 논골담길 기획 조연섭 작가는 숨겨진 원형을 발굴해 현대적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문화 기획자이자 작가다. 언더그라운드 방송 DJ와 아나운서를 거친 방송인 출신으로, 2004년 동해문화원 공채 사무국장으로 임용 한국문화원국장협의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하고 2025년 12월30일 퇴직했다. 그는 그동안 지역의 역사와 유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구 소멸 시대의 실천적 해법을 제시해 왔다. 그의 기획력은 공간 재생과 로컬 브랜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묵호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청와대에서 창조경제 성공 사례를 발표하며 문화 담론을 주도했다. 또한, 방치된 양조장을 커뮤니티 거점으로 복원한 '강원막걸리학교(막걸리 익는 홍월평)'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와 공동체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구축했다. 예술적 감각 또한 남다르다. 국가유산청 공모로 뮤지컬 '동해의 선선 심동로'와 '동해랑'을 기획하여 지역민에게는 자긍심을, 관광객에게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로컬 콘텐츠의 전형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원상 '창의 인재상'을 받았으며, 전국 문화원 임직원을 대상으로 추진한 지역 문화경영 고급 아카데미 전국 1위와 함께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공론장 '논골담길 커먼즈'와 함께 24시 문화 순환 체계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브런치 작가로서 《논골담길》, 《맨발 걷기》 등의 브런치 북을 발간하며, 현장의 기록을 글에 담아 사람과 공간을 잇는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 사회
-
[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6회)
-
-
[퓨처 Eyes(126)] 소행성 류구에서 생명의 알파벳 5종 완전 발견
- 인류가 우주 공간에서 직접 퍼 올린 소행성 류구 암석 가루에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모든 유전 알파벳이 발견됐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탐사선 하야부사 2호(Hayabusa2)가 소행성 류구(162173 Ryugu)에서 채취해 지구로 귀환시킨 시료에서, DNA와 RNA를 구성하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우라실(U) 등 다섯 가지 핵심 염기가 모두 확인됐다. 해양연구개발기구(JAMSTEC) 소속 생물지구화학자 코가 토시키(Toshiki Koga) 박사가 이끈 연구팀이 이러한 분석 결과를 지난 16일(현지 시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천문학(Nature Astronomy)》에 발표했다(DOI: 10.1038/s41550-026-02791-z). 지구 생명체의 기원이 척박한 우주 공간에서 날아온 암석에 있다는 이른바 외인성 유기물 전달 가설(exogenous delivery hypothesis)에 또 하나의 강력한 물증이 더해진 셈이다. 이미 지난해 NASA의 오시리스-렉스(OSIRIS-REx) 탐사선이 소행성 벤누(Bennu)에서 가져온 시료에서도 동일한 5종 염기가 검출된 바 있어, 이번 류구 발견은 생명의 분자적 재료가 태양계 전역에 보편적으로 분포하고 있음을 독립적으로 재확인한 결정적 성과로 평가된다. 핵염기란 무엇인가…'생명의 알파벳'을 이해하는 기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DNA(디옥시리보핵산)와 RNA(리보핵산)라는 유전 물질을 설계도로 삼아 생명 활동을 영위한다. 이 정교한 설계도를 작성하는 글자가 바로 핵염기(nucleobase)다. 아데닌과 구아닌은 이중 고리 구조의 퓨린(purine)계, 시토신과 티민 그리고 우라실은 단일 고리 구조의 피리미딘(pyrimidine)계로 분류된다. DNA에서는 아데닌이 티민과, 구아닌이 시토신과 짝을 이루어 이중 나선 구조의 가로대를 형성하고, RNA에서는 티민 대신 우라실이 아데닌과 결합한다. 이들 5종 염기에 당(sugar)과 인산(phosphate)이 결합하면 뉴클레오타이드가 되고, 뉴클레오타이드가 사슬처럼 이어지면 DNA와 RNA라는 거대 분자가 완성된다. 또한 핵염기는 아데노신삼인산(ATP) 등 세포의 에너지 통화를 구성하는 데에도 핵심적으로 관여한다. 한마디로, 핵염기는 생명 현상의 정보 저장·전달·에너지 대사를 관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분자 부품이다. 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거대한 인쇄소를 떠올려 볼 수 있다. 타자기를 친 적이 없는 무인도에서 다섯 가지 핵심 알파벳이 새겨진 금속 활자 블록이 완벽한 세트로 발견된 것과 같다. 글을 쓰는 주체인 지적 생명체가 없더라도, 글자를 구성하는 블록 자체는 우주의 극한 환경에서 화학적 반응만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아미노산이 생명체의 벽돌이라면, 이번에 발견된 염기 5종은 그 벽돌을 어떻게 쌓을지 지시하는 건축 설계도에 해당한다. 20밀리그램의 기적…극소량 시료에서 끌어낸 5종 염기의 완전한 세트 코가 박사 팀이 분석에 사용한 류구 시료는 총 약 20밀리그램에 불과했다. 이는 하야부사 2호가 2018~2019년 류구 표면의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터치다운(착지) 방식으로 채취한 것으로, 첫 번째 지점의 시료와 두 번째 지점의 시료 모두에서 5종 염기가 검출됐다. 연구팀은 극소량 시료에 최적화된 추출 프로토콜을 새로 개발했는데, 뜨거운 물과 염산으로 유기물을 추출한 뒤 액체 크로마토그래피와 고해상도 질량분석법을 결합해 핵염기를 분리·동정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볼티모어카운티캠퍼스(UMBC)의 우주화학자 해나 맥레인(Hannah McLain) 박사(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소속)는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외부 전문가로서, 코가 박사 팀이 기존의 확립된 추출 공정을 극소량 시료에 맞춰 정밀하게 개량한 방법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연구팀은 동위원소 분석 등을 통해 검출된 핵염기가 지구 기원의 오염물질이 아니라 류구 고유의 물질임을 교차 검증했다. 46억 년의 타임캡슐 류구…지구 오염 원천 차단한 '순백의 증거' 이번 발견이 지니는 압도적인 학술적 가치는 샘플의 출처인 류구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류구는 태양계가 처음 형성되던 약 46억 년 전의 물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탄소질(C형) 소행성이다. 지구와 화성 사이의 궤도를 도는 이 팽이 모양의 천체는 지름 약 900미터로, 그 광물학적·원소적 조성이 가장 원시적인 운석 그룹인 CI 콘드라이트와 유사하다. CI 콘드라이트는 초기 태양계의 원소 조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어, 류구를 분석한다는 것은 곧 태양계가 막 태어나던 시절의 화학 조건을 직접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과거에도 지구에 떨어진 운석에서 아미노산이나 일부 염기가 발견된 적은 있다. 1969년 호주 빅토리아주에 떨어진 머치슨(Murchison) 운석이나 1864년 프랑스 남부에 떨어진 오르괴유(Orgueil) 운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운석들은 지구 대기권을 통과해 땅에 떨어지는 과정에서 지구의 토양 미생물이나 화학 물질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지구의 생명 물질이 묻은 것인지, 본래 우주에서 품고 온 것인지 확언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반면 류구 시료는 하야부사 2호가 우주 공간에서 직접 소행성 표면의 흙과 암석을 채취한 뒤, 완벽하게 캡슐에 밀봉하여 2020년 12월 5일 호주 우메라(Woomera) 사막에 착지시킨 것이다. 총 5.4그램의 시료는 극도로 엄격한 무균 환경에서 보관·분석되었다. 다만 2024년 11월 발표된 후속 연구에 따르면, 실험실 환경에서도 지구 미생물이 시료에 급속히 침투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류구 시료의 취급에 여전히 극도의 주의가 필요함이 재확인됐다. 그럼에도 우주 공간에서의 채취-밀봉이라는 과정 자체가 오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점에서 류구 시료의 과학적 신뢰도는 지상 수집 운석과는 비교할 수 없다. 소행성마다 다른 '화학적 레시피'…암모니아가 쥔 미지의 열쇠 코가 박사 팀은 류구의 분석 결과를 머치슨 운석, 오르괴유 운석, 그리고 NASA의 오시리스-렉스 탐사선이 소행성 벤누에서 채취해 온 시료와 정밀하게 대조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차이점이 드러났다. 류구는 퓨린계 염기(아데닌·구아닌)와 피리미딘계 염기(시토신·티민·우라실)의 비율이 엇비슷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퓨린 대 피리미딘 비율 약 1.1~1.2). 반면 머치슨 운석은 퓨린계 염기가 훨씬 풍부했고(비율 약 3.4), 벤누(약 0.55)와 오르괴유 운석(약 0.10)은 피리미딘계 염기를 더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머치슨 운석의 높은 퓨린 비율이 시안화수소(HCN) 중합 경로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는 한편, 류구·벤누·오르괴유에서 나타나는 낮은 퓨린/피리미딘 비율은 HCN 중합과는 다른 대안적 합성 경로가 주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발견은 따로 있었다. 류구, 베누, 오르괴유처럼 광물학적·원소 조성이 유사한 시료들에서 퓨린 대 피리미딘 비율이 암모니아 농도와 강한 역상관관계(R²=0.89)를 보였다는 것이다. 암모니아가 많을수록 피리미딘이 더 풍부해지는 패턴이었다. 연구 제1저자인 코가 토시키 박사는 "기존에 알려진 어떤 염기 합성 메커니즘도 이러한 관계를 예측하지 못했기에, 이는 초기 태양계 물질에서 핵염기가 형성되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경로가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퓨린/피리미딘 비율이 탄소질 소행성과 운석 간의 핵염기 화학적 차이를 구별하는 새로운 분자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뉴질랜드 빅토리아대학교 웰링턴캠퍼스의 모건 케이블(Morgan Cable) 박사는 이 암모니아-염기 비율 간 상관관계 발견을 '독특한(unique) 성과'로 평가하며, '이 발견이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분자들이 최초에 어떻게 형성되어 지구에서 생명의 탄생을 촉진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논평했다. 요소(Urea)의 발견과 'RNA 세계 가설'의 연결고리 이번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지만 과학적으로 중요한 또 하나의 발견은 류구 시료에서 상당량의 요소(urea)가 검출됐다는 점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살반(Salvan) 박사는 이 결과에 특히 높은 관심을 표명하며, '우리 연구팀은 오랫동안 요소가 RNA 구성 블록의 필수 전구체라고 제안해 왔으며, 이번 연구는 우주에서 직접 채취한 시료에 기반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이는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 중 하나인 'RNA 세계 가설(RNA World Hypothesis)'과 직결된다. RNA 세계 가설은 DNA와 단백질이 등장하기 이전에, RNA가 유전 정보의 저장과 촉매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최초의 자기 복제 시스템을 구성했다는 이론이다. 2026년 2월 《사이언스》에 발표된 최신 연구에서는 불과 45개 뉴클레오타이드로 구성된 초소형 RNA 효소(리보자임)가 다른 RNA 가닥을 복제하는 중합효소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이 밝혀져, 자기 복제 RNA 분자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류구에서 발견된 5종 핵염기와 요소는 이러한 RNA 세계의 출발점이 우주 공간에서 이미 준비되어 있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핵염기에 당류와 인산이 결합하면 RNA 분자가 조립될 수 있고, 요소는 이 과정의 핵심 전구체 역할을 한다. 초기 지구에 쏟아진 소행성들이 이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배달했다면, RNA 세계로의 진입 문턱은 종전의 예상보다 현저히 낮아지는 셈이다. 베누와의 비교…두 소행성이 완성하는 퍼즐 이번 류구 연구 결과는 지난 2025년 1월 발표된 벤누 시료 분석 성과와 짝을 이루며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의 대니얼 글래빈(Daniel Glavin) 박사팀이 이끈 베누 분석에서는 5종 핵염기뿐만 아니라 지구 생명체가 단백질 합성에 사용하는 20종 아미노산 가운데 14종, 그리고 예외적으로 풍부한 암모니아가 함께 검출됐다. 베누 시료에서는 이전에 어떤 운석이나 소행성 귀환 시료에서도 발견된 적 없는 15번째 단백질 구성 아미노산인 트립토판(tryptophan)이 잠정적으로 검출되기도 했다. 베누 시료의 질소 함유 헤테로고리 화합물 농도는 류구보다 5~10배 높았으며, 질소-15 동위원소 농축 패턴은 암모니아와 기타 질소 함유 용해성 분자들이 저온의 분자운(molecular cloud)이나 원시행성계 원반의 외곽 영역에서 형성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베누의 모체(parent body)가 목성 궤도 너머의 태양계 외곽, 즉 토성 궤도 이원(以遠)의 극저온 지역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결정적으로, 지구 오염 가능성이 배제된 순수 우주 시료에서 5종 핵염기가 확인된 것은 이제 류구와 베누, 두 곳에서 독립적으로 재현된 결과다. 코가 토시키 박사는 Sky & Telescope와 인터뷰에서 "류구와 베누라는 두 탄소질 소행성 모두에서 5종 핵염기가 검출되었다는 사실은, 이 분자들이 태양계 원시 천체들에 광범위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핵염기가 운석과 소행성 충돌을 통해 초기 지구에 전달되어 생명의 기원에 필요한 유기물 목록에 기여했을 가능성을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생명까지의 거리…여전히 남은 과학적 간극 류구와 베누의 발견이 아무리 흥분되는 성과라 하더라도, 핵염기의 존재가 곧바로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짚을 필요가 있다. 코가 박사 자신도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결과가 류구에 생명이 존재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생명에는 핵염기 외에도 당류(리보스, 디옥시리보스), 인산 화학, 세포막을 구성하는 지질, 에너지 기울기, 그리고 자기 복제로 나아가는 경로 등 훨씬 더 많은 요소가 필요하다. 핵염기가 더 큰 생체 시스템에 어떻게 통합되었는지, 소행성 충돌이라는 극단적 에너지 환경에서 이 분자들이 의미 있는 양만큼 온전하게 지구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도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또한 류구와 베누의 화학 조성이 서로 다르듯, 어느 하나의 소행성이 초기 태양계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핵심적인 메시지는 분명하다. 생명의 설계도 분자가 생물학적 과정 없이도 우주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합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 탄생에 필요한 분자적 전제조건이 지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태양계 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충족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음 목적지…하야부사 2호의 연장 임무와 MMX의 화성 위성 탐사 이 연구 성과를 낳은 하야부사 2호는 아직 임무를 끝내지 않았다. 류구 시료 캡슐을 지구에 투하한 뒤 남은 연료로 연장 임무(Hayabusa2#, SHARP)에 돌입한 이 탐사선은 2026년 7월 S형 소행성 토리후네(98943 Torifune, 구 2001 CC21)에 고속 근접 비행(플라이바이)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 플라이바이는 소행성 충돌 궤도 유도 기술의 시험대로, 지구방위(Planetary Defense) 기술 개발에 직접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후 2031년에는 직경 수십 미터에 불과한 초소형 고속 회전 소행성 1998 KY26과 랑데부할 계획이다. 최근 1998 KY26은 중력 외의 가속이 관측되는 '암흑 혜성(dark comet)'일 가능성이 제기되어 더욱 과학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소행성 시료 귀환 탐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JAXA는 2026년 회계연도에 화성 위성 탐사선 MMX(Martian Moons eXploration)를 발사할 예정이다. 이 탐사선은 화성의 두 위성 가운데 안쪽 위성인 포보스(Phobos)에 착륙하여 표면 물질 10그램 이상을 채취한 뒤 2031년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보스가 포획된 소행성인지, 아니면 화성에 거대 충돌이 일어나 생겨난 파편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핵심 목표로, 만약 전자라면 류구·벤누에서와 유사한 유기물이 발견될 수 있고, 후자라면 화성의 원시 물질에 대한 창을 열게 된다. 나아가 JAXA는 2030년대에 혜성으로부터의 시료 귀환을 목표로 하는 차세대 소천체 시료 귀환 미션(NGSR)도 구상 중이다. 우주는 생명의 씨앗으로 가득 찬 역동적 공간 태양계 형성 초기, 소행성들이 탄생한 위치나 겪어온 열과 물의 작용 등 진화 역사가 제각각이었다. 우주의 다양한 환경에서 각기 다른 비율로 유기물이 합성되었고, 이 다채로운 화학적 다양성을 품은 거대한 암석들이 초기 지구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면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최적의 '원시 수프(primordial soup)'를 완성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호주 커틴대학교의 지구화학자 클리티 그라이스(Kliti Grice) 교수는 《더 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이번 성과의 의미를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 행성 생명의 이야기는 지구의 고대 진흙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주를 떠돌던 차갑고 원시적인 암석의 화학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척박한 암석 덩어리 위에서도 생명의 설계도 분자가 자연적으로 조립될 수 있다면, 적당한 온도와 물을 갖춘 외계의 어느 행성에서도 생명이 싹트지 못할 이유는 없다. NASA의 오시리스-렉스 프로젝트 과학자 제이슨 드워킨(Jason Dworkin) 박사가 남긴 물음이 여운을 남긴다.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제이슨 드워킨(Jason Dworkin) 박사는 "오시리스-렉스의 데이터는 생명의 가능성으로 가득 찬 태양계의 그림에 굵직한 붓질을 더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구에서만 생명을 보고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하는 이유, 그것이야말로 진정 매혹적인 질문이다"고 말했다. 우주는 텅 비어 있는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언제든 생명을 피워낼 준비를 마친 유기물 씨앗들로 가득 찬 역동적인 공간으로서의 본질을 증명해 내고 있다. 【논문 출처】 Toshiki Koga et al., “A complete set of canonical nucleobases in the carbonaceous asteroid (162173) Ryugu,” Nature Astronomy (2026). DOI: 10.1038/s41550-026-02791-z 관련 핵심 선행 논문 • Y. Oba et al., “Uracil in the carbonaceous asteroid (162173) Ryugu,” Nature Communications 14, 1292 (2023). • D.P. Glavin et al., “Abundant ammonia and nitrogen-rich soluble organic matter in samples from asteroid (101955) Bennu,” Nature Astronomy (2025). • Prebiotic organic compounds in samples of asteroid Bennu indicate heterogeneous aqueous alteration, PNAS (2025). 참고 보도 및 기사 Space.com, Phys.org(AFP), C&EN(미국화학회), The Conversation, Smithsonian Magazine, Sky & Telescope, Gizmodo, ZME Science, The Register, Nature Asia, Scimex, JAMSTEC 보도자료, JAXA ISAS
-
- IT·과학
-
[퓨처 Eyes(126)] 소행성 류구에서 생명의 알파벳 5종 완전 발견
-
-
[글로벌 밀리터리] 獨 '스웜 바이오택틱스', 생체 로봇 바퀴벌레 개발⋯전장 침투의 신지평
- 하늘을 뒤덮은 드론이 현대전의 양상을 바꾼 지 불과 몇 년 만에, 이제 전장의 눈은 인간의 시야가 닿지 않는 '미시적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다. 독일 카셀(Kassel) 소재의 방산 스타트업 스웜 바이오택틱스(SWARM Biotactics)가 살아있는 바퀴벌레와 최첨단 로봇 기술을 결합한 '바이오 하이브리드(Bio-Hybrid)' 정찰 로봇을 선보이며 전 세계 국방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더 디펜스 포스트, 펀자브 케사리 등 외신들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기술은 이미 실험실을 벗어나 NATO 동맹국과의 현장 실증을 완료한 단계에 이르렀다. SF가 현실로…'사이보그 곤충'의 탄생 전장에 바퀴벌레를 투입한다는 발상은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 기술적 배경은 생각보다 오래되고 깊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이미 2006년부터 'HI-MEMS(Hybrid Insect Micro-Electro-Mechanical Systems)' 프로그램을 통해 곤충의 신경계에 전자 장치를 이식하는 연구를 추진해 왔다. 미시간대, 코네노대, 유니콘별레 등 다양한 곤충을 대상으로 원격 조종 실험에 성공했으나, 배터리 수명과 소형화의 벽을 넘지 못해 실전 배치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스웜 바이오택틱스는 이 20년 간의 연구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결정적으로 한 발 더 나아갔다. 2024년 창업한 이 회사는 불과 1년 만에 총 1300만 유로(약 223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술을 연구실에서 건져내 실전 배치 단계로 이행시켰다. 슈테판 빌헬름(Stefan Wilhelm) CEO는 지난 2월 "1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술이 오늘날 NATO 고객에게 현장 테스트를 완료한 상태로 배치되고 있다"고 밝혔다. 어떻게 작동하나…'백팩' 속에 집약된 첨단 기술 이번에 공개된 기술의 핵심은 바퀴벌레의 등에 장착되는 초소형 전자 '백팩'에 있다. 주로 사용되는 곤충은 마다가스카르 휘싱바퀴벌레(Madagascar Hissing Cockroach)로, 체구가 크고 내구성이 강하며 최대 3g의 페이로드를 운반할 수 있어 이 임무에 최적화된 종이다. 통제된 환경에서 2~5년까지 생존할 수 있어 장기 임무에도 적합하다. 백팩에는 다섯 가지 핵심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첫째, 생체전자 신경 인터페이스(Bioelectronic Neural Interface)를 통해 바퀴벌레의 더듬이에 부착된 전극에 미세한 저전압 전기 자극을 가해 이동 방향을 유도한다. CBS 뉴스 60 Minutes에 출연한 빌헬름 CEO는 이를 "바퀴벌레에게 백팩을 지워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살짝 넌지시(nudge)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둘째, 모듈형 센서 페이로드다. 백팩은 임무 성격에 따라 마이크로 카메라, 마이크, 환경 센서(가스·온도 감지), 보안 통신 모듈 등을 자유롭게 교체·조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한 군집 내에서도 개체별로 역할을 분담할 수 있어, 어떤 바퀴벌레는 영상을 찍고, 다른 바퀴벌레는 통신 중계나 위치 파악을 담당하는 식이다. 셋째, 엣지 AI 처리 칩과 군집 자율성 소프트웨어가 탑재되어 있다. 초소형 AI 칩이 수집된 데이터를 사전 필터링해 통신 부하를 줄이고, 군집 조율 알고리즘을 통해 수십 마리의 바퀴벌레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다. 작전 지휘관은 개별 바퀴벌레를 일일이 조종할 필요 없이 목표 지점만 지정하면 군집이 자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전략적 함의…드론이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을 장악하다 군사 전문가들이 이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존의 소형 드론이나 지상 로봇은 붕괴된 건물 내부, GPS 신호가 차단된 지하 시설, 잡초가 무성한 붕괴 현장 등 접근 불가능한 환경에서 물리적 한계를 노출한다. 반면 바퀴벌레는 이러한 환경을 자연스럽게 통과한다. 음향·시각적 신호가 거의 없어 적의 방공망이나 감시 체계에 탐지될 확률이 극히 낮으며, 별도의 배터리나 연료 없이 생체 에너지로 움직이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도 기계식 로봇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빌헬름 CEO는 CBS 인터뷰에서 "이 기술은 다른 어떤 시스템도 제공할 수 없는 능력을 부여한다"며, "거의 탐지가 불가능하고,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되며, 거의 무제한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기계식 로봇은 공장 생산에 의존하지만, 생체 로봇은 원리적으로 번식을 통해 규모를 확장할 수 있어, 대량 배치 시 비용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이점이 있다는 평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기술이 독일 국방비 대폭 확대와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2029년까지 국방비를 1750억 달러(약 262조 원) 규모로 증액하고 NATO 권고 GDP 대비 3.5% 목표를 충족할 계획이며, 빠른 구매 절차를 위한 새로운 법률도 추진 중이다. 스웜 바이오택틱스는 이러한 독일의 방산 혁신 가속화 정책의 직접적 수혜자로 꼽힌다. 전장 너머…재난 구조·산업 검사까지 '이중 용도' 플랫폼 이 '사이보그 바퀴벌레'의 쓰임새는 비단 전쟁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웜 바이오택틱스는 처음부터 군사 정찰, 재난 구조, 산업 시설 검사라는 세 가지 핵심 활용 분야를 제시했다. 지진이나 폭발로 붕괴된 건물에서 매몰된 생존자를 찾는 임무가 대표적이다. 겹겹이 쌓인 잔해 사이를 뚫고 들어가 생존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내장된 센서로 화학물질 누출 여부나 산소 농도 등 환경 데이터를 수집해 구조팀에 전달함으로써 인명 구조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화학물질, 열, 방사선 등 위험한 환경에서도 바퀴벌레는 강한 생존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구역에서의 임무 수행에 특히 강점을 보인다. 한편, 스웜 바이오택틱스는 바퀴벌레에 국한하지 않고 향후 메뚜기와 베짱이 등 다른 곤충으로의 확장도 검토 중이며, 비둘기나 상어 등 더 큰 생물체에 센서를 장착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리적 쟁점과 미래 전망 물론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동물 복지 문제가 가장 먼저 제기되지만, 독일 동물보호법상 곤충은 포유류와 달리 보호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법적 제약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상황이다. 빌헬름 CEO는 "바퀴벌레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며, 임무를 잘 수행하려면 건강하고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며 동물 복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더 민감한 문제는 무기화 가능성이다. 빌헬름은 현재 회사가 정찰과 감시에 집중하고 있으며 폭발물 탑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으나, 미래에 법적 틀 안에서 그러한 활용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사이버 보안 취약성, 무허가 감시 오남용 가능성, 생물무기 규제 프레임워크의 부재 등은 국제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바이오 로보틱스가 더 이상 SF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드론이 하늘을 지배한다면, 바이오 로봇은 적의 발밑과 벽 너머의 정보를 장악할 것이다. 모리츠 슈트루비(Moritz Strube) CTO는 "우리의 목표는 어떤 지형, 위협, 임무에도 적응할 수 있는 확장 가능한 이중 용도 정보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미래 비전을 밝혔다. '살아있는 기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
- IT·과학
-
[글로벌 밀리터리] 獨 '스웜 바이오택틱스', 생체 로봇 바퀴벌레 개발⋯전장 침투의 신지평
-
-
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26회)
- 제26회 "창덕궁 후원이라니까 왜 자꾸 비원이래요?" "나는 비원이라는 이름이 좋아요. 창덕궁 후원이라는 본래 이름이 있고 비원은 일본인이 지은 이름이라지만 나는 비원이 더 멋진 이름이라 생각해요. 어쩐지 은밀하고 농염한 사연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 그런 이름이잖아요." 지난 일 년 동안 미상 씨는 작품집을 출간했고 중고 승용차를 샀고 쿠팡 카플렉서로 돈을 벌며 소설을 썼다. 그러면서 희정 씨와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루는 맑은 날에 하루는 흐린 날이라는 말은 희정 씨의 건강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요트는커녕 북한산 둘레길도 갈 형편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멀쩡하다가도 어떤 날은 기진맥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병원 진료가 점심시간 전에 끝나요. 그럼 걸어서 비원을 갈 수 있어요." 희정 씨의 지정병원은 창덕궁과 창경궁이 가까운 대학병원이다. 맑은 날이면 좋겠으나 설명 비 오는 날이라도 미상 씨는 비원을 관람하기로 했다. "승용차에 휠체어를 싣고 갈게요." 휠체어라는 말에 희정 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뇨. 걸어갈래요. 오늘부터 컨디션 조절을 잘해 그날은 걸어갈 수 있도록 하겠어요." "괜찮아요, 희정 씨. 희정 씨가 힘들면 내가 업고라도 갈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웃으면서 미상 씨가 덧붙여 말했다. "희정 씨 업고 먼 길을 가는 꿈을 수시로 꾸거든요. 어떤 날은 산을 오르고 어떤 날은 보랏빛 꽃이 만발한 바닷가 벌판을 걸어가요. 무겁다는 느낌은 없어요. 언제나 기쁘고 들뜨고 행복하죠. 내 등에 희정 씨를 업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해요." 희정 씨도 웃었다. 꿈속에서 자신을 업고 어디론가 간다는 미상 씨의 고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실제로 희정 씨는 미상 씨의 등에 업힌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사랑 때문이 아니라 아팠기 때문이지만 사랑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누군가를 업어주고 누군가의 등에 업히는지 모르겠어요. 요즘엔 아무도 누군가를 업지 않고 누군가에게 업히지도 않죠?" "그래요. 요즘엔 아이 엄마도 아이를 업는 경우가 없어요." 미상 씨의 단언에 희정 씨가 응수했다. "유모차가 있기 때문인가 봐요. 그래서 아이는 엄마 등의 따뜻함을 느낄 기회가 없어졌어요." "그래도 아이들은 유모차를 싫어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희정 씨는 휠체어라면 질색을 하는군요. 왜?" 여전히 웃음기 띈 얼굴로 희정 씨가 말한다. "전 이미 엄마의 따뜻하고 너른 등에 중독된 아이니까요. 그러니 쇠로 만든 휠체어라는 기계를 좋아할 리 없어요." 미상 씨의 눈을 바라보며 희정 씨는 못을 박는다. "그러니 날 휠체어에 태울 생각을 마세요. 난 내 발로 걸어가던가 엄마 등에 업혀 가든가, 아니면 미상 씨 등에 업혀 가든가 그 세 가지 방법밖에 몰라요." 벽에 걸린 커다란 숫자의 달력을 바라보며 희정 씨는 또 말한다. "다음 주 수요일은 이월이네요. 너무 춥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짧은 한숨을 쉰다. "벌써 이월이니 봄도 멀지 않았군요. 봄이 오면 날 업어주시던 우리 엄마 생신이 있어요. 그날은 해마다 아주 환한 봄날이었답니다. 올해도 반드시 맑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온갖 꽃이 만발한 날일 겁니다." 돌아가신 희정 씨 엄마의 생신은 사월이다. 희정 씨는 그날만큼은 잊지 않고 가장 밝은색 옷을 입고 경기도 북부에 있는 공동묘원으로 간다. "올해 봄에도 지난해 봄처럼 미상 씨 등에 업혀 엄마를 만나러 가겠어요." 희정 씨 엄마의 생신이 있는 봄이 지나면 희정 씨 생일이 있는 여름이 온다. 지금 희정 씨의 처연한 눈빛에는 다가오는 봄과 여름을 건강한 몸으로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담겨 있다.■
-
- 사회
-
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26회)
-
-
국제유가, 이란전쟁 격화로 원유공급 차질 우려에 급등세
- 국제유가는 18일(현지시간) 이란전쟁 격화로 인한 원유공급 차질 우려에 급등세를 나타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글로벌 벤치마크인 북해산 브렌트유 5월물은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3.8%(3.96달러) 오른 배럴당 107.3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일시 109.95달러까지 치솟았다. 브렌트유는 시간외거래에서는 7%이상 오르며 배럴당 111달러대에서 거래됐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4월물은 0.1%(11센트) 상승한 배럴당 96.3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선물은 중동정세 격화로 장중에는 99달러 중반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국제유가가 급등세를 보인 것은 이스라엘이 이란 최대 가스전에 폭격을 가하고 이란이 주변국 에너지 시설에 반격하면서 중동원유 공급 감소에 대한 우려가 재부각된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스라엘은 이란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와 이와 직결된 이란 남서부 해안 아살루에의 천연가스 정제시설 단지를 폭격했다. 이스라엘이 테헤란의 연료 탱크를 공격한 적은 있어도 이란의 에너지 생산시설을 공격한 것은 처음이다. 이스라엘의 이란 에너지시설 공격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정권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고 미국 뉴스사이트 액시오스가 전했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지난 13일 이란의 원유수출거점인 하르그섬의 군사시설을 공습했다고 발표했으나 에너지시설은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란혁명수비대는 가스전 공습에 대한 보복 대응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겠다며 즉시 대피하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날 이란은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량의 20%를 담당하는 카타르의 가스 시설 밀집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카타르 내무부에 따르면 이란의 공격으로 북부 해안에 위치한 산업도시 라스라판의 국가 핵심 가스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인 카타르 에너지는 이란의 공격으로 가스 시설에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석유·가스 시설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은 전 세계 원유 해상 공급량의 약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상황에서 에너지 공급 차질 문제는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라이스퓨처스그룹의 필 플린 선임애널리스트는 "가스전이외에도 이란의 에너지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씨티은행은 브렌트유 가격이 며칠 내 배럴당 12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4월까지 하루 1100만∼1600만 배럴의 공급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에너지 시설에 광범위한 공격이 발생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간 폐쇄될 경우엔 브렌트유 가격이 올 2분기와 3분기에 평균 130달러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트럼프 정부가 원유가격의 억제책을 단행하자 원유가격은 점차 상승폭을 줄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과의 전쟁으로 불안해진 석유 시장 안정을 위해 100년간 시행된 미국의 해운법인 존스법(Jones Act)을 6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시적으로 외국 국적의 선박이 미국 연안을 다닐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미국 재무부는 이날 베네수엘라 석유회사와의 특정거래를 승인했다. JD 반스 미국 부통령은 이날 1~2일 내에 추가적인 고유가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미국매체들이 보도했다. 19일에는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장관과 에너지업계 고위관계자들이 면담할 예정이다. 미국 정부가 여름에 대비해 가솔린의 환경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가 이날 발표한 주간 석유재고통계가 유가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원유재고는 시장예상이상으로 증가했지만 가솔린 재고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국제금값은 달러강세와 미국 기준금리 동결 등에 하락반전했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물 금가격은 2.2%(112.0달러) 내린 온스당 4896.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제금값 선물은 시간외거래에서 일시 온스당 4822.7달러까지 떨어지며 지난 2월 초순이래 최저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
- 세계
-
국제유가, 이란전쟁 격화로 원유공급 차질 우려에 급등세
-
-
국제유가, 이란전쟁 격화 등 영향 큰 폭 반등
- 국제유가는 17일(현지시간) 이란전쟁 격화로 인한 원유공급 차질 우려로 급등세로 돌아섰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4월물은 2.9%(2.71달러) 오른 배럴당 96.2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북해산 브렌트유 5월물은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3.2%(3.21달러) 상승한 배럴당 103.4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제유가가 상승한 것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푸자이라 항이 계속해서 이란의 공격을 받으면서 UAE의 산유량이 대거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자 원유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부각된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란은 지난 주말에 이어 재차 UAE의 석유 허브인 푸자이라 항구를 공격했다. 호르무즈 해협 근처 오만만에 위치한 푸자이라 항구는 하루 100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할 수 있는 곳이다. 사실상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의 우회로이기도 하다. UAE는 OPEC(석유수출국기구)에서 세 번째로 많은 석유를 생산하는 나라이지만 수출길이 막히면서 석유 저장고가 포화 상태가 되고 이에 따라 석유 생산 감축이 불가피해졌다. 산유량을 절반 이상 줄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UAE가 '수출길 봉쇄→석유 저장고 포화→원유 생산 감축'이라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은 이날 이란 국방·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알리 라리자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라리자니는 미국과 이란간 핵협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란전쟁의 외교적 해결이 한층 더 멀어졌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한 이란의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중재국을 통해 전달받은 긴장완화 제안을 거부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만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의 발언에 오전장 한때 98달러대까지 급등했던 WTI 선물은 이후 상승 폭을 줄였다. 장중 93달러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해싯 위원장은 CNBC와 인터뷰에서 "이미 유조선들이 해협을 조금씩 통과하기(dribble through) 시작했고, 이는 이란의 역량이 얼마나 제한됐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이란 전쟁과 관련해 "우리는 아직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떠날 것"이라고 했다. TD증권의 원자재 전략가인 댄 갈리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우려하며 "이 정도로 큰 구멍(공급 부족)을 메울 마개는 없다"면서 "장기적으로 불안정한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더욱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IG의 시장 애널리스트인 토니 시카모어는 보고서에서 "리스크는 여전히 매우 크다. 단 하나의 이란 민병대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유조선에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기뢰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상황이 다시 격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국제금값은 달러약세 등에 5거래일만에 반등했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물 금가격은 0.1%(6.0달러) 오른 온스당 5008.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
- 세계
-
국제유가, 이란전쟁 격화 등 영향 큰 폭 반등
-
-
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24회)
- 제24회 "그게 우리 아빠가 자랑하는 지식이죠." 지영은 자기 아빠를 자랑할 줄도 알았다. 지영의 말을 들은 뒤부텨 미상 씨는 우 선생님의 이상한 소리를 가볍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길 가는 사람 셋이면 그 가운데 스승이 있다는 옛말처럼, 같은 빌라에 사는 세 가구의 이웃 가운데 누군가는 미상 씨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 희정 씨는 사랑하는 사람 이상의 좋은 인연이었다. 카카오와 코코와 초코를 반려로 삼게 된 저간의 조력자 역시 희정 씨였고, 그해 가을 멋진 단편소설을 썼고 그 작품이 신춘문예에 당선하게 된 기반도 희정 씨가 마련해줬다. 희정 씨는 미상 씨의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인생의 은인이며 운명의 반려자였다. 미상 씨가 신춘문예 당선작인 「행인」을 쓰게 된 계기는 희정 씨와 대화를 나누던 중 흘린 단순한 이야기였다. "저는 어쩌면 연극배우가 될 뻔했어요. 소설가가 되겠다는 확고한 뜻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신인 탤런트가 됐을지도 모르죠." 미상 씨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 잠시 연극 동아리에 가입했었다는 얘기를 했다. "제 의지라기보다는 친구 따라갔어요. 저는 대학신문사에 가고 싶었는데 그 친구가 하도 연극 동아리로 같이 가지고 끌길래 끌려갔어요." "미상 씨는 연극을 해도 잘할 사람인데요?" "그렇지 않아요. 나처럼 에고로 움직이는 사람은 금방금방 변신하기 어려워 연기가 되질 않아요. 그리고 나는 연출이니 촬영이니 하는 그런 보조역할에는 전혀 욕심이 없거든요. 저는 지금도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 생각해요." "그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미상 씨를 끌고 간 그 친구." "그 친구도 나처럼 숫기가 없어 일찍 탈락했어요. 연극반 그만두고 취업시험 준비에 몰두하더니 지금은 대기업 사원." 미상 씨는 친구와 함께 소품 담당과 홍보 담당으로 잡일을 하며 단역으로 출연했던 학년 말 공연을 이야기했다. "행인 일, 행인 이, 행인 삼, 행인 사가 있었거든요. 나하고 친구는 행인 삼, 행인 사였어요. 대사는 전혀 없고 좌우를 기웃거리며 지나가는 그런 행인이죠.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네 번 공연했는데 저는 토요일에만 출연했어요. 일요일엔 나 대신 조명보조 하던 친구와 역할을 바꿨으니까요. 조명보조 하던 친구나 나 대신 행인 삼을 했어요." "어땠어요. 연기 좋았어요? 박수를 치던가요?" 깔깔깔 웃으면서 희정 씨가 물었고 역시 활짝 웃는 얼굴로 미상 씨가 대답했다. "토요일 저녁 뒤풀이에서 엄청 욕을 먹었어요. 사학년 선배가 연출이었는데 어이없는 표정으로 막말을 했죠." 돌연 미상 씨는 태도를 바꿔 그 연출가 선배의 표정과 대사를 연기했다. "야야, 니는 임마 행인이 아니라 행상이더라. 응? 무슨 행인이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지나가냐, 응? 행인 아니야, 행인! 그냥 슥 지나가는 거야. 왜 두리번거리며 마치 그 공간이 네 인생 전부를 차지하는 곳인냥 첨벙거려?" 선배의 말을 연기한 미상 씨는 즉시 본래의 자기로 돌아왔다. 정색을 한 미상 씨가 자신의 행인 연기에 대한 연출가 선배의 혹평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맞는 말이었어요. 제가 너무 오버했죠. 주인공 두 사람이 서 있는 거리 한쪽으로 지나가고 지나가고 두 번 지나가는 동안 내가 액션을 너무 크게 했어요." 대학교 신입생 미상 씨에서 사학년 선배 연출가로 변신했다가, 연극의 엑스트라 행인 삼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 미상 씨의 짧은 연기에 희정 씨는 배꼽 빠져라 웃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연기 좋은걸요." "토요일 뒤풀이에선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 일요일 쫑파티에선 엄청난 호평을 받았어요. 내가 아니라 다른 애가 나 대신 출연했는데 내게 연기 좋았다고 칭찬을 칭찬을 하는 겁니다. 어이가 없어서……." 의자에 앉은 미상 씨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던 희정 씨는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자신이 겪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온몸으로 연기하는 미상 씨의 무표정한 태도가 너무 웃겼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쓰러진 채 미상 씨에게로 얼굴을 돌린 희정 씨는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
- 생활·문화
-
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24회)
-
-
[이위발의 사람과 결(5)] 결핍과 욕망의 변주곡-전쟁
- 결핍과 욕망의 변주곡-전쟁 현대사의 시작을 알린 국가란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으로 국가의 주인이 왕이 아닌 시민임을 선포하면서 탄생했습니다. 그런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주권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두면서, 국경선도 단순한 선이 아닌 자원과 생존권이 직결된 날선 경계선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인 주권은 민주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주권이 누구에게 있고 어떻게 행사되는지에 따라 역사의 흐름이 바뀌어 왔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도 지도자 한 명의 야욕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지정학적 결핍의 산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륙국이 바다로 나가기 위해 부동항(바닷물의 표면이 얼지 않는 항구)을 갈구하고, 에너지 자원을 독점하여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려는 시도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경제적 풍요가 곧 국력인 시대에 자원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몰락과 정체성의 충돌이후 냉전 시대의 종식은 인류에게 평화를 약속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벽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파편화되고 날 선 정체성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문명의 충돌』을 쓴 사무엘 헌팅턴이 예견했듯이 현대의 전쟁은 문명과 문명, 종교와 종교, 인종과 인종 사이의 미시적인 균열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전쟁이 영토 확장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졌다면, 현대의 전쟁은 우리와 저들을 구분 짓는 혐오와 공포를 먹고 자라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정보를 공유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타자에 대한 적대감을 순식간에 증폭시키는 확성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고립된 집단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받기 위해 선택하는 손쉬운 방법은 공동의 적을 상정하고 무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쟁은 정치적 수단을 넘어 집단적 존재 증명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현대 전쟁은 기술 역설의 연속성을 논할 때 경제적 구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경고했던 군사 공업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는 현대 국가 경제의 거대한 축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파괴적인 행위인 동시에 누군가에겐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거대한 시장이기도 합니다. 무기 체계의 고도화는 전쟁의 문턱을 낮추는 역설을 낳았습니다. 드론과 미사일 기술의 발전은 피를 적게 흘리는 전쟁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정치 지도자들이 무력 사용을 결정할 때 느끼는 도덕적 부채감을 경감시키기도 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전쟁은 더 정교해지고, 더 은밀해지며, 결과적으로는 더 지속적인 형태를 띠게 된 것입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기를 만드는 행위가 다시 전쟁을 부르는 안보적 딜레마는 현대사가 직면한 가장 아픈 모순 중 하나입니다. 이렇듯 전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인간의 망각에 있습니다. 참혹한 전쟁을 겪은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전쟁의 고통은 추상적인 기록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평화가 길어질수록 그것을 당연한 공기처럼 여기는 세대는 전쟁을 일종의 게임이나 해결책으로 오판하기 쉽습니다. 현대사의 비극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배운 것을 너무 빨리 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전쟁은 인간의 이성이 마비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차가운 계산과 뜨거운 감정이 뒤섞여 합리적이라고 착각하는 순간에 터져 나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평화를 외치지만, 그 외침의 기저에는 상대를 굴복시켜야만 내가 안전할 수 있다는 원시적인 공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현대사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인간 본성의 결함이라기보다 우리가 구축한 현대 문명의 구조적 결함에 가깝습니다. 국가라는 틀, 자원의 한계, 정체성의 벽, 경제적 이윤, 이런 엔진들이 맞물려 전쟁이라는 기계를 계속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비극적인 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반전(反戰) 구호를 넘어, 국경과 이익을 초월한 새로운 인류적 연대의 틀을 고민해야만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일어나게끔 방치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때입니다. <필자 소개> 이위발 1959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지난밤에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 출간했습니다.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과 『솜솜한 인연』을 펴냈으며, 안동문화100선 『이육사』를 출간했습니다.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웹진 《엄브렐라》 주간과 한국디카시인협회 경북지부장을 맡아 활동 중입니다.
-
- 생활·문화
-
[이위발의 사람과 결(5)] 결핍과 욕망의 변주곡-전쟁
-
-
김조민 시인의 시의 정원-책가도
- 책가도 이수국 나는 살았지만 죽은 사람 오크 향 원목 책장을 창문 앞에 세웠다 책을 좋아한 왕이 책가도(冊架圖)를 세워 일월오봉도를 가렸듯 햇살과 달이 가려진 방 창틈으로 들어온 빛이 어둠을 가른다 박물관 유리문 너머 책가도 가로와 세로의 배열 속, 그림 위에 꽂힌 천년의 페이지들 그림 속 책을 보던 왕과 유리문 안을 보는 내 눈이 책가도 위에서 만났다 그림 한구석 은밀히 쓴 화공의 이름이 흔들렸다 책장 바닥에 그늘 한 권을 괴자 몸이 중심을 잡는다 무너지던 중력을 다시 세운 건 한 권의 책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기대고 있는 책을 꺼내면 그들의 체온이 손끝을 타고 가슴으로 전해오고 작가를 지우며 작가를 꽂는다 이럴 때 사전을 거역하는 것은 유쾌한 일 문장이 자라는 시간 스위치를 켜면 책과 나는 조도가 같아져 수백 년 전 죽은 우린 서로 이마를 맞대며 이야기한다 눈감은 순간에도 새로운 이름이 눈을 뜨고 서로 다른 시계들이 태엽을 돌리면 한 곳에서 만나는 페이지 나는 죽었지만 살아있는 사람 바람과 함께 써가는 연대기 이곳에도 낱장 사이 기압골이 있어 새로운 바람이 분다 내 안의 책장을 만지면 나는 가끔 살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는 방식 며칠 전, 방 한구석에 위태롭게 쌓여 있던 책 무더기를 정리했습니다. 맨 아래에 깔려 있던 시집 한 권을 무심코 빼내자, 공들여 쌓은 탑이 맥없이 허물어지더군요.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낡은 표지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단 한 권의 책, 누군가 남긴 단 한 줄의 문장에 기대어 간신히 삶의 균형을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요. 최근 들어 문예지에 실릴 원고들을 읽고 다듬으며 고요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부쩍 늘었습니다. 종이 위를 서성이는 일은 때로 짙은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는 것처럼 막막합니다. 하지만 이따금 마음에 깊이 와닿는 문장을 만날 때면, 굳게 닫힌 창틈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을 마주한 듯 조용히 숨통이 트입니다. 종이 위에 남겨진 낯선 이의 체온을 가만히 더듬어 봅니다. 수백 년 전의 이야기든, 어제 쓰인 누군가의 고백이든, 그 문장들과 숨을 섞다 보면 차갑게 굳어 있던 제 안에서도 희미한 온기가 도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게 책장에 꽂힌 수많은 시간과 조용히 이마를 맞대며, 저는 오늘도 제가 온전히 살아있음을 실감합니다. 바닥에 흩어진 책들을 주워 다시 찬찬히 빈칸에 밀어 넣습니다. 반듯하게 꼿꼿이 세우려 애쓰기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도록 조금은 헐겁게 두기로 했습니다. 흔들리고 무너지면서도 누군가의 문장에 기대어 다시금 중심을 잡는 저 책장 속 풍경처럼, 우리의 퍽퍽한 일상도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조용히 흘러가고 있을 테지요. 어스름한 새벽빛이 밀려드는 이 시간, 저는 빈 노트 위에 저만의 어설픈 문장 하나를 가만히 적어 내려갑니다. <필자 소개> 김조민 프로필 2013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미래서정문학상, 조지훈문학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한국예술위원회 문학창작산실 지원금 수혜. 웹진 시인광장 디카시 주간, 유튜브 (시읽는고양이) 크리에이터. 주요 작품 시집 『힘없는 질투』, 디카시집 『편복의 잠』
-
- 생활·문화
-
김조민 시인의 시의 정원-책가도
-
-
[글로벌 핫이슈] 삼성에 반도체 맡겼던 머스크, AI시대 대비 반도체칩 직접 만든다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초대형 반도체 생산 공장 건설 계획을 7일 안에 시작한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머스크는 14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 "테라팹(Terafab) 프로젝트가 7일 이내에 시작된다"고 밝혔다. 웨이퍼 생산 능력에 따라 메가팹·기가팹 등으로 구분한다. 머스크가 언급한 '테라팹'은 월 10만개 이상의 웨이퍼 생산 능력을 갖춘 '기가팹'보다 훨씬 큰 규모가 큰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의미다. 다만 머스크는 해당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현황 등은 밝히지 않았다. 현재 테슬라는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과 협력해 칩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머스크는 이런 공급망만으로는 향후 필요한 물량을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TSMC, 마이크론 등 파트너사의 반도체 생산량을 최상의 시나리오로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완전자율주행(FSD)과 옵티머스(자사 휴머노이드 로봇)에 필요한 수요를 맞추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언급했다. 머스크는 그동안 원재료 대비 완제품 가격 비율을 뜻하는 '바보 지수(Idiot Index)'가 10이 넘으면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원칙을 유지해왔다. 반도체 자체 제조 역시 이러한 기준이 적용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월 테슬라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도 "향후 3~4년 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반도체 공급) 제약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테슬라 테라팹을 건설해야 한다"며 "매우 큰 규모의 시스템(logic), 메모리, 패키징을 모두 포함하는 생산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테라팹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칩 공급업체의 생산량에 제약받게 될 것"이라며 "메모리 반도체가 AI 시스템 반도체보다 더 큰 제약 요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머스크는 미국 내 건설되는 테라팹이 향후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전략적 조처라고도 덧붙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지정학적 위험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또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과 공장 건설을 협력할 가능성 역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시각도 있다. 머스크가 테라팹 구상을 언급한 지난해 11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TSMC가 업(業)으로 삼고 있는 엔지니어링과 과학, 예술적 숙련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 IT·과학
-
[글로벌 핫이슈] 삼성에 반도체 맡겼던 머스크, AI시대 대비 반도체칩 직접 만든다
-
-
트럼프, 韓·中·日 등 5개국에게 호르무즈해협 군함파견 요구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5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군함 파견을 사실상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여러 국가,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미국과 함께, 해협을 개방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군함을 보낼 것(will be sending War Ships)"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이미 이란의 군사 능력을 100% 파괴했지만, 그들이 아무리 심하게 패배했더라도 이 수로의 어딘가에 드론 한 두기를 보내거나, 기뢰를 떨어뜨리거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도부가 완전히 제거된 국가에 의해 호르무즈 해협이 더는 위협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바라건대 이 인위적인 제약(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영향을 받는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그리고 다른 국가들도 이곳으로 함정을 보낼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 글의 첫 문장은 여러 국가가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낼 것이라는 의미지만, 한국 등을 파견 대상국으로 지목한 문장에선 '바라건대(Hopefully)'라는 전제를 단 만큼 아직은 요구 수준인 가능성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 기간 이스라엘이 아닌 제3국에 대(對)이란 군사작전 동참을 명시적으로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사이에 미국은 (이란의) 해안을 폭격할 것이며 이란 선박과 함정들을 바다에서 계속 격침할 것"이라며 "어떤 방식이든 우리는 곧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되고, 안전하며,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 미군이 대이란 공습을 벌이는 동안, 한국 등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석유 수입에 차질을 빚는 주요 국가들이 군함을 보내 상선 호위 등의 임무를 수행해달라는 요구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미 해군의 호르무즈 해협 상선 호위 작전이 "아주 곧"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한국 등 다른 나라들의 군함 파견을 요구한 것은 미군의 인명피해 우려가 큰 호르무즈 호위 작전을 다른 나라들에 맡겨 조기에 시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명한 5개국 중 중국을 제외한 4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 차원에서 보다 공식적인 요구를 해올 경우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 및 양국 관계 측면과 중동 지역 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사이에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
- 경제
-
트럼프, 韓·中·日 등 5개국에게 호르무즈해협 군함파견 요구
-
-
[월가 레이더] S&P500, 유가 급등·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연저점 경신⋯3주 연속 하락
- 13일(현지시간) 뉴욕 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하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올해 들어 최저점을 경신했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사실상 봉쇄된 가운데 브렌트유가 배럴당 103달러를 돌파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된 영향이다. S&P500은 전일 대비 0.61% 내린 6,632.19로 마감했다. 최근 고점 대비 5% 하락해 연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으며, 약 1년 만에 처음으로 3주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 나스닥은 0.93% 떨어진 22,105.36,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19포인트(0.26%) 밀린 46,558.47로 장을 닫았다. 유가는 4주 연속 상승했다. WTI 선물은 3.11% 오른 배럴당 98.71달러로, 브렌트유는 2.67% 상승한 103.14달러로 마감했다. 브렌트유는 전날 2022년 8월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 선을 넘어선 데 이어 이날도 3자릿수를 유지했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호르무즈 해협은 적을 압박하는 도구로 계속 봉쇄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한편 연방법원은 이날 법무부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발부한 소환장 2건을 기각했다. 제임스 보즈버그 판사는 "소환장의 목적은 파월 의장을 압박하거나 사임시키려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하는 후임자를 앉히려는 정치적 간섭"이라고 판시했다. [미니해설] 유가 충격이 바꾼 방정식…'금리 인하 기대'도 흔들린다 월가의 공포는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다. 핵심은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브렌트유가 전쟁 발발 전 대비 42% 폭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재점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는 반면, 미국의 지난 4분기 GDP 성장률은 0.7%에 그쳤다.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꺾이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구도다. 이 상황이 연방준비제도(Fed)를 난처하게 만든다. 금리선물 시장은 올해 9월 금리 인하 기대를 거의 접었다. 마운트 루카스 매니지먼트의 데이비드 아스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유가가 반영하는 금리 경로가 지금 다시 의문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 이익은 양호하지만, 시장 심리가 유가 변수 앞에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 '저가매수' 러시…유가 ETF 매수 사상 최대 기관 투자자들이 유가 급등에 베팅을 축소하는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밴다 리서치에 따르면 13일 순수 유가 상장지수펀드(ETF) 매수 규모가 2억1100만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20년 5월 기록을 경신한 것으로, 미국 원유 펀드(USO)도 개인 순매수 역대 3위를 기록했다. 밴다는 "일부 기관들이 유가 급등을 되돌리려 했지만, 이번 주 만큼은 개인 투자자들이 '저가 매수'로 옳았다"고 평가했다. 에너지 섹터는 이날 0.8% 올라 유틸리티(+1.4%)에 이어 S&P500 11개 업종 중 두 번째로 강한 흐름을 보였다. 주간 기준으로도 에너지는 2.5% 상승하며 유일하게 뚜렷한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한 업종이 됐다. 반면 정보기술(IT)과 커뮤니케이션서비스는 각각 1.1% 하락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법원, 파월 소환장 기각…"트럼프의 정치적 간섭" 일침 이날 시장의 또 다른 변수는 연준 독립성 이슈였다. 보즈버그 판사는 법무부가 파월 의장에게 발부한 소환장을 전격 기각하면서 "소환장의 지배적인 목적은 파월을 압박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 따를 후임자를 위해 자리를 비우게 하려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판결문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 인하를 독촉하는 소셜미디어 게시물들이 일일이 인용됐다. 이번 판결은 연준 독립성 수호라는 측면에서 금융시장에 단기적 안도감을 제공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즉각 항소를 선언하면서 연준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연준이 유가 발 인플레이션에 맞서 금리 인하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행정부의 압박까지 겹친 이중고에 직면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어도비는 CEO 샨타누 나라옌의 퇴임 소식에 5% 이상 급락했고, 울타 뷰티는 부진한 실적 가이던스 여파로 12% 폭락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밈코인 '$TRUMP'는 상위 보유자 297명을 초청하는 독점 만찬 행사 발표 이후 24시간 만에 50% 이상 급등했다.
-
- 경제
-
[월가 레이더] S&P500, 유가 급등·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연저점 경신⋯3주 연속 하락
-
-
[증시 레이더] 유가 100달러 충격에 코스피 1.72% 급락⋯환율 1490원대 재진입
- 국제유가 급등 충격에 코스피가 13일 5,480선으로 밀려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96.01포인트(-1.72%) 내린 5,487.24에 마감했다. 장 초반 5,392.52까지 밀리며 5,400선이 무너졌지만, 오후 들어 한때 5,537.59까지 반등하며 낙폭을 줄였다. 코스닥은 장 초반 약세를 딛고 4.56포인트(+0.40%) 오른 1,152.96으로 상승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2.5원 오른 1,493.7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 상위에선 삼성전자(-2.34%), SK하이닉스(-2.15%), LG에너지솔루션(-3.91%), 삼성SDI(-3.00%)가 밀렸고, 두산에너빌리티(+2.90%), 한화에어로스페이스(+1.57%), 한국전력(+1.47%)은 올랐다. [미니해설] 유가가 흔든 서울증시…'중동 리스크'보다 무서운 것은 환율과 금리다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선으로 치솟자 국내 증시는 13일 '에너지 쇼크'의 직격탄을 맞았다. 코스피(-1.72%)는 5,487.24로 마감하며 이틀째 하락했고, 장 초반에는 5,392.52까지 밀리며 투자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었다. 다만 장중 낙폭을 상당 부분 만회해 한때 5,537.59까지 올라섰고, 코스닥(+0.40%)은 되레 상승 마감했다. 이날 장은 공포가 시장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국면이라기보다, 유가와 환율 충격을 반영하면서도 업종별로 온도차가 뚜렷했던 장세로 읽힌다. 원·달러 환율이 1,493.7원으로 뛰어오른 점도 외국인 수급과 위험자산 선호 심리를 동시에 압박했다. 이번 조정의 출발점은 중동 변수다. 로이터에 따르면 브렌트유는 12일(현지시간) 배럴당 100.46달러(+9.2%),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95.70달러(+9.7%)에 마감하며 모두 2022년 8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유지 의지를 밝히고, 유조선 공격과 공급 차질 우려가 겹치면서 시장은 단순한 지정학 뉴스가 아니라 '실제 원유 공급 쇼크'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유가가 오르면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시장은 곧바로 인플레이션, 무역수지, 기업 마진 악화 우려에 노출된다. 특히 한국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아 이번 충격이 다른 아시아 시장보다 더 빠르고 더 크게 주가와 환율에 번질 수밖에 없다. 간밤 뉴욕증시가 흔들린 것도 서울 증시의 부담을 키웠다. 다우지수는 약 1.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약 1.5%, 나스닥은 1.8% 밀렸고, 국제유가 급등과 사모신용 시장 불안이 동시에 위험자산 회피 심리를 자극했다. 여기에 시장은 연초까지만 해도 기대했던 미국의 금리인하 폭을 빠르게 축소하고 있다. 로이터는 전쟁 발발 전 50bp 정도로 반영되던 연내 연준 인하 기대가 20bp 수준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이는 유가 상승이 단순한 원자재 문제가 아니라, 다시 ‘고금리 장기화’ 우려로 번지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 증시가 이날 유가와 환율, 미국 증시 조정을 한꺼번에 반영하며 출발부터 3% 넘게 밀린 배경도 여기에 있다. 시가총액 상위주의 흐름은 이번 충격의 성격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삼성전자(-2.34%)와 SK하이닉스(-2.15%)는 장 초반 각각 4%대 낙폭을 보일 만큼 흔들렸고, LG에너지솔루션(-3.91%), 삼성SDI(-3.00%), LG화학(-2.78%) 등 2차전지주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국제유가 급등은 전기차와 배터리 밸류체인에 직접적인 호재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시장은 먼저 물류비, 원가, 환율, 글로벌 수요 둔화 가능성을 계산한다. 여기에 최근 AI 랠리로 가파르게 오른 반도체 대형주들은 외부 충격이 닥치면 차익실현의 1순위가 되기 쉽다. 즉 이날 약세는 기업 개별 실적보다, '유가 100달러 재진입이 가져올 거시 변수 재평가'가 대형 성장주 전반에 할인율 충격을 가한 결과에 가깝다. 반면 방산·원전·전력 관련 종목은 상대적으로 강했다. 두산에너빌리티(+2.90%), 한화에어로스페이스(+1.57%), 한국전력(+1.47%)이 오른 것은 시장이 이번 사태를 단순한 리스크 오프로만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중동 긴장이 장기화할수록 에너지 안보, 대체 전원, 국방 수요가 함께 부각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투자자금이 일부 방어적이면서도 정책 수혜 기대가 있는 업종으로 이동한 것이다. 코스닥(+0.40%)이 장 초반 2% 넘게 밀렸다가 플러스로 돌아선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공포가 컸지만 시장 전체가 일방적으로 무너지기보다는, 충격 속에서 수혜주와 낙폭과대주를 가려 담는 종목 장세가 동시에 나타난 셈이다. 이날 환율의 움직임도 증시에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원/달러 환율은 1,493.7원으로 올라 1,500원선에 다시 근접했다. 유가 급등 국면에서 한국 원화는 통상적으로 약세 압력을 크게 받는다. 원유 수입 부담이 커지면 경상수지와 물가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커지고, 달러 강세까지 겹치면 외국인 자금은 한국 주식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쉽다. 실제로 이날 코스피가 장 초반 급락한 뒤에도 완전한 반등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단순히 주가가 싸졌기 때문이 아니라, 유가와 환율이 아직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전쟁 뉴스’보다 ‘얼마나 오래 100달러 유가가 유지될 것인가’라는 더 본질적인 질문이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브렌트유가 100달러 안팎에서 머무를지, 아니면 다시 급등할지다. 둘째,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가 실제 물류 차질로 얼마나 확대되는지다. 셋째, 유가발 인플레이션 우려가 미국의 금리인하 기대를 얼마나 더 후퇴시킬지다. 이 세 변수 중 하나라도 악화하면 코스피는 반등보다 변동성 확대에 더 크게 노출될 수 있다. 반대로 유가가 진정되고 환율이 안정을 찾는다면, 이날처럼 장중 급락 뒤 낙폭을 회복하는 흐름이 바닥 다지기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결국 13일 서울 증시는 기업 실적 장세가 아니라, 중동발 에너지 가격이 자산시장 전체의 할인율을 다시 흔들기 시작한 첫 시험대였다.
-
- 경제
-
[증시 레이더] 유가 100달러 충격에 코스피 1.72% 급락⋯환율 1490원대 재진입
-
-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8회)
- 2 '더파든'의 장 '더파든'의 고양이(1) 그날 사월의 지극히 평범한 날 아침에 운명의 문을 노크한 것은 두 마리의 고양이였다. 허민 그는 알아야 했다. 두 마리의 고양이 때문에 삼십 년 넘게 '담장 위의 인생'을 살아온 은퇴한 스파이에게 허락되었던 짧은 평화는 흔들릴 운명이 되었다. 골짜기를 가득 채웠던 골안개가 태양이 남쪽 방향에 자리 잡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말이다. 야속하도다. 고작 사월의 골안개 같은 평화라니. 그랬다. 하얀 털의 고양이 한 마리가 카페 앞 철제 펜스 울타리에 올라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저녁의 하늘 색과 같은, 푸름과 어둠의 경계 선상의 눈동자. 농장정원 '더파든'에 나타난 지 두 달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그의 아내가 '백설이'라 이름을 붙인 고양이. 그가 잠깐 커피잔에 눈을 주었다 들었을 때 '백설이'는 보이지 않았다. 요 며칠 아침마다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위치에 나타났다가 그의 시선을 흡입하고 나면 사라지는 고양이. 어떤 징조를 드러내는 고양이. 그리고 오후에는 푸른빛이 도는 회색의 고양이 '예나'가 마치 근무 교대라도 하 듯이 그 자리에 나타나 그의 시선을 받고는 사라졌다. "우연이 쌓이면 필연이 된다." 누가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우연은 없다. 우연은 필연의 한 부분이고, 필연의 한 과정일 뿐이다. 겪어본 사람들은 그것을 안다. 우연은 패자의 변명수단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 스파이들이 우연을 받아들이는 순간, 연민과 허영이 빗장을 열고 실패를 불러온다는 것. 실패는 죽음의 길을 연다는 것. 그들은 안다. 그러나 곧잘 잊는다. 그리고는 후회한다. 오늘 새벽에도 허민은 그 꿈을 꾸었다. 두 달 반 전부터 이틀에 한번 꼴로 그 꿈이 찾아왔다. 고양이 두 마리, '백설이'와 '예나'가 농장정원 '더파든'에 나타난 즈음에 시작된 꿈. 서른 번 가까이 같은 내용의 꿈이 반복되면서 이젠 꿈속의 인물이 누구인지, 어느 시대인지, 어떤 사연인지 구체화되고 있었다. 장렬하게 사라져간 고대 전사의 잊힌 서사가 완성되고 있었다. 꿈이 신화와 현실의 접점을 찾아내어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 내는 듯이. 흐릿한 첩보의 조각들이 맞추어져 하나의 선명한 정보가 완성되듯이 말이다. "이건 그저 그런 허튼 꿈이 아니야.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거야. 어떤 중대한 메시지를 보내오는 것이 분명해.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고대의 전쟁터였다. 힌두쿠시 어디쯤이라고 했다. 아마 고대의 박트리아, 지금의 북 아프가니스탄 지역일 것이다. 꿈 속의 주인공은 위대한 정복 왕이며 신의 아들(파라오)인 '알렉산드로스' 동방원정대의 백인대장(로카고스, Lochagos)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로카고스 레온티오스 타란디노스', 즉 타란토(고대 남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도시) 출신의 백인대장 레온티오스라고 불렀다. 그는 부하 아흔 일곱 명과 함께 남겨졌다. 박트리아 산악부족 연맹의 군대를 막아 신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힌두쿠시를 무사히 통과하도록 해야 했다. 얼마 전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에서 파라오로 받아들여져 '아문의 아들'로 불렸고, 또 파라오의 전통 왕호에 따라 '라의 아들'이라는 칭호도 사용됐다. 그리스식으로는 이를 '제우스-아몬의 아들', 곧 '제우스 신의 아들'로 이해했다. 신의 아들이 죽거나 다치면 안 된다. 신화가 위협받는다. 마지막 전투였다. 삼 주야를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못하고 싸웠다. 적은 포기할 줄 몰랐다. 그리고 영리했다. 시간은 그들의 것이었다. 한 번에 열댓 명 정도의 적이 일개미의 행렬처럼 끝없이 계곡과 산등성이와 바위와 관목의 그림자 사이를 통과하여 다가왔다. 적 열명을 죽이면 부하는 두 명이 죽었다. 이제는 마지막, 마침내 적장의 칼끝이 가슴에 닿았다. "지친 내 심장을 가져가라!" 심장의 요동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영혼을 붙잡고 있던 희미한 몸의 온기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빛이 채 가시지 않은 초저녁 하늘에는 빛이 사라져 가며 남기는 푸름과 검음의 경계에 실 같은 초승달이 떠 있었다. 고양이의 눈을 닮은 달이었다. 푸른 빛이 은은한 달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희미한 존재. 푸른 회색의 고양이. 고양이는 이제 곧 스러질 최후의 감각을 붙잡고 있는 전사의 가슴에 앉아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의 모습은 이제 막 전사의 몸을 떠나고 있는 영혼, 그 영혼의 심연으로 깊이 가라앉는 기억이 되고 있었다. 순간, 흩어져 있던 허민의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정보분석의 틀이 치열하게, 그러나 차갑게 가동하고 있었다. 우연과 필연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순백의 고양이 '백설이'의 눈. 푸름과 검음의 경계에 속하는 색깔의 눈. 초승달을 닮은 눈. 그리고 푸른 빛이 도는 회색의 고양이 '예나'의 모습. 이렇게 꿈 속에서 죽어가던 전사의 영혼, 그 영혼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소환되고 있었다.■ <편집자주>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 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
- 생활·문화
-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8회)
-
-
美, 강제노동 카드로 새 관세 전선⋯한·중·일 포함 60개 경제주체 대상 301조 조사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12일(현지시간) 한국·중국·일본·유럽연합(EU)·영국·캐나다 등을 포함한 60개 경제주체를 상대로 '강제노동 생산품 수입 금지 미흡'을 문제 삼는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각 경제주체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 금지를 도입·집행하지 않은 행위와 정책이 미국 상거래에 부담을 주는지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조사는 지난 11일 한·중·일 등 16개 경제주체를 겨냥해 시작한 '과잉생산' 301조 조사와 병렬로 진행된다. USTR은 4월 15일까지 서면 의견과 공청회 출석 신청을 받고, 4월 28일부터 필요시 5월 1일까지 공청회를 연다.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나 수입 제한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월 24일부터 150일간 10%의 한시적 글로벌 관세를 부과한 가운데, 이번 301조 조사는 연방대법원의 기존 상호관세 무효 판단 이후 새 관세 체계를 짜기 위한 수순으로 해석된다. [해설 기사] 강제노동 명분, 관세의 본체…트럼프, 301조로 '포스트 상호관세' 재무장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꺼내든 카드는 무역법 301조였다. 12일 USTR이 개시한 이번 조사의 표면 명분은 '강제노동 생산품의 수입 금지 미흡'이다. 그러나 통상정책의 큰 흐름에서 보면, 이번 조치는 단순한 인권 압박이 아니라 지난달 무너진 상호관세 체제를 301조 기반의 새 관세 체계로 재구성하려는 후속 작업의 성격이 짙다. USTR은 60개 경제주체를 상대로 각국의 행위·정책·관행이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이며 미국 상거래를 제한하는지 따지겠다고 밝혔고, 조사 대상에는 한국·중국·일본은 물론 EU, 영국, 캐나다, 호주, 인도,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등 미국의 핵심 교역 상대가 대거 포함됐다. 이번 사안에서 먼저 짚어야 할 대목은 '조사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의 의미다. 미국이 문제 삼는 것은 각국이 자국 내 강제노동을 단속했느냐만이 아니다. 공식 공지문 문구를 보면, 핵심 쟁점은 각 경제주체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집행했는가"에 맞춰져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이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고 해서 곧바로 '강제노동 활용국'으로 낙인찍혔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식 기준의 수입 차단 제도를 각국이 얼마나 갖추고 있고 실제로 집행하느냐를 문제 삼겠다는 것이다. USTR도 의견 수렴 항목에서 각 경제주체가 강제노동 수입금지 제도를 유지하거나 도입 중인지, 또 그 금지조치가 실제로 집행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묻겠다고 밝혔다. '강제 노동 301조'와 '과잉생산 301조'는 한 세트 이 대목은 통상적으로도 중요하다. 미국은 이미 거의 100년에 걸쳐 강제노동 생산품의 수입 금지를 법체계에 두고 있고, USTR은 이번 관보 초안에서 그 제도가 단순한 인권 규범이 아니라 경제·안보 문제와 직결된다고 못 박았다. 강제노동을 활용한 생산은 인위적으로 비용을 낮춰 미국 기업과 노동자를 왜곡된 경쟁에 밀어 넣는다는 것이 미국의 논리다. USTR은 또 현재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이 강제노동 관련 보류명령(WRO) 54건과 적발 결정 8건을 운용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번 조사가 선언적 문제 제기가 아니라, 미국이 이미 갖고 있는 수입통제 체계를 다른 교역상대국에도 사실상 확장하려는 시도임을 보여준다. 관세정책의 시간표를 보면 더 선명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0일 백악관 포고문을 통해 무역법 122조를 발동했고, 이에 따라 2월 24일부터 150일간 전 세계 수입품에 10%의 한시적 추가관세를 부과했다. 백악관은 이 조치의 종료 시점을 7월 24일로 명시했다. 122조는 본래 국제수지 문제를 이유로 최대 150일 동안 한시적 수입할증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한 조항이다. 반면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불합리·차별적 관행이 미국 상거래에 부담을 준다고 판단될 경우 보다 정교하고 지속적인 보복 조치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시한이 짧은 122조의 10% 글로벌 관세를 깔아둔 뒤, 그 만료 전에 301조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가별·사안별 관세 체계를 새로 짜는 것이 훨씬 유연한 전략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강제노동 301조'는 전날 착수한 '과잉생산 301조'와 한 세트로 봐야 한다. USTR은 3월 11일 구조적 과잉생산 및 제조업 과잉공급 문제를 이유로 한국·중국·일본·EU·대만·베트남·인도 등 16개 경제주체에 대한 별도 301조 조사도 시작했다. 관보 초안에 따르면, 이 조사 역시 4월 15일까지 의견서를 받고 5월 5일부터 공청회에 들어간다. 한국은 강제노동 이슈와 과잉생산 이슈 두 갈래 모두에서 미국의 새로운 301조 통상 압박망 안에 들어간 셈이다. 이 점에서 이번 조치는 특정 국가를 겨냥한 단발성 제재라기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광범위한 동맹·우방까지 포괄하는 전면적 통상 재배치에 나섰다는 신호로 읽힌다. 강제노동, 왜 관세 새 명분이 됐나? 미국이 왜 하필 '강제노동'을 새 관세 명분으로 택했는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의제는 보호무역 논리를 인권과 공급망 윤리의 언어로 감싸는 효과가 있다. USTR은 관보 초안에서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 인권선언 등을 거론하며 강제노동 근절이 거의 보편적 국제 규범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통상 논리로 귀결시킨다. 강제노동이 개입된 상품은 인위적으로 값이 싸고, 이 때문에 미국 수출품은 가격 경쟁에서 밀리며 미국 노동자의 임금과 생산이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 즉 도덕적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작동 방식은 철저히 산업정책과 통상보복의 문법에 가깝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USTR의 평가 기준이 생각보다 공격적이라는 점이다. 관보 초안은 캐나다·멕시코·EU가 강제노동 생산품의 수입 또는 판매를 막기 위한 조치를 도입했지만, "강제노동 수입금지 조치를 채택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한 나라로 보기는 어렵다"고 적시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이제 단순 입법이나 원칙 선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본다. 실제 차단 실적과 제도 집행력이 따라오지 않으면 조사와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준이 적용될 경우, 동맹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 통상정책의 잣대는 훨씬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조사 범위 포괄성'이 관건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조사 범위의 포괄성이다. 이번 조사는 특정 품목 몇 개를 찍어 겨냥하는 구조가 아니다. USTR은 공개 의견 수렴 항목에서 "각 경제주체 제품에 대한 관세의 수준과 범위", "수입 제한의 수준과 범위", "추가 관세가 덮을 적정 교역 규모"까지 직접 묻고 있다. 이는 조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미국이 품목별·국가별로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폭넓게 설계할 수 있음을 뜻한다. 아직 한국의 어떤 산업이 직접 표적이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국이 사안별 조사 틀을 통해 언제든 압박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재량 공간’을 확보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태생적 시한부 122조⋯절차상 외피 갖춘 301조 절차상 일정도 촘촘하다. 강제노동 관련 301조 조사는 4월 15일까지 의견서와 공청회 출석 신청을 받은 뒤, 4월 28일부터 필요시 5월 1일까지 공청회를 연다. 이후 마지막 공청회 종료 7일 뒤까지 반박 의견을 접수한다. 로이터는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가 7월 임시 글로벌 관세 만료 전에 이번 301조 조사와 구제조치 제안을 마무리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결국 4~5월 여론수렴, 6~7월 판단, 7월 말 새 조치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법적 논란이 컸던 일괄 상호관세 대신, 절차적 외피를 갖춘 301조 조사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적으로도 파장은 작지 않다. 2월 20일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기존 글로벌 관세를 위법하다고 판단한 뒤, 행정부는 122조 10% 할증관세로 일단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122조는 태생적으로 시한부다. 따라서 행정부가 더 오래가고 더 선별적인 관세 체계를 갖추려면 301조 같은 별도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 강제노동과 과잉생산은 그런 점에서 가장 활용하기 쉬운 명분이다. 하나는 인권과 노동, 다른 하나는 산업정책과 공급과잉을 내세우지만, 두 조사 모두 최종 목적지는 추가 관세 또는 수입 제한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조사의 본질은 '강제노동 단속' 그 자체보다, 트럼프식 통상전쟁의 2막이 어떻게 설계되는가에 있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이지만, 통상에서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과잉생산 조사에 이어 강제노동 조사까지 동시 노출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 실사와 원산지 관리, 대미 수출전략, 통상 외교 대응을 한꺼번에 재점검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인권의 언어로 시작된 이번 조사 끝에서 실제로 모습을 드러낼 것은, 결국 새로운 관세의 얼굴일 가능성이 크다.
-
- 경제
-
美, 강제노동 카드로 새 관세 전선⋯한·중·일 포함 60개 경제주체 대상 301조 조사
-
-
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22회)
- 제22회 초코는 미상 씨를 만난 순간 자신과 미상 씨의 운명적 관계를 눈치챈 듯했다. 순한 눈빛으로 고분고분하였고 자신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이전의 주인에게 돌아가려 찡찡대지도 않았다. 미상 씨가 가지고 간 케이지에 차문하게 들어앉았고 조수석에 자리한 뒤엔 가만히 앞을 바라보았다. 초코를 데리러 가기 전 입양을 논의할 때, 희정 씨와 미상 씨는 '돈을 주고 고양이를 사고 싶지는 않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초코 보호자 역시 그런 신조를 가진 사람이었다. '아무리 고양이라지만 식구를 남의 집에 보내면서 돈을 받을 수는 없다'는 뜻을 문자로 보내주었다. 그래서 절충과 거래는 쉬웠다. 그럼에도 희정 씨는 돈 일만 원은 주고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고양이가 잘 큰다는 속설도 있고 하니 이쪽에서는 인사치레로 현금 일만 원을 드리기로 하고, 미상 씨는 자주 초코 사진을 보내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나중에 자신이 예비신부라고 밝힌 초코의 이전 주인은 그러한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 예비신부와 함께 아기 고양이 이동장을 들고 나타난 청년은 예비신랑이었다. 그들은 집 앞 길가 수풀 속에서 길고양이가 낳은 뒤 버린 새끼 고양이 일곱에다가, 시골집 천정에서 울고 있는 갓 난 길고양이 새끼 넷을 같은 날에 거두어, 그들 열하나를 하나둘 입양 보냈다고 한다. 오늘까지 남은 셋 가운데 하나가 까미라면서, 이젠 초코가 된 아기 고양이를 가리켰다. "까미는 언제나 뒤처진 아이였어요. 그래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초코를 조수석에 넣어둔 뒤 돌아서서 인사하는 미상 씨에게 예비신부가 또 말했다.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보니 까미가 마당에 있는 나무를 벅벅 긁던데." 그 말은 슬픈 말로 들렸다. 지난 오십 일 동안 갓 난 생명을 돌본 사람이 그 생명을 남의 품으로 떠나보내는 마지막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예비신부는 포장한 종이상자와 편지 한 통을 미상 씨에게 주었다. "까미한테 주는 먹거리 하고, 이 편지는 까미에게 전하는 이야기에요." 미상 씨는 그렇게 들었기에 먹거리 선물은 초코의 간식거리고 편지는 초코에게 전하는 인삿말이려니 생각했다. 그 편지를 고양이가 읽을 수 없으니, 편지의 내용을 미상 씨가 초코에게 전해달라는 말인 줄로 이해했다. 빌라에 도착하자마자 희정 씨네 집에 들른 미상 씨는 초코와 함께 예비신랑신부가 준 두 가지 선물을 다 풀어놓았다. 자신이 선택한 아기 고양이 초코를 받아든 희정 씨는 기쁨으로 어쩔 줄 몰랐다. "사진보다 더 이쁘고 깨끗해요." 초코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그런 올블랙 아기 고양이는 희정 씨와 미상 씨를 감동케 했고 행복하게 했다. 미상 씨가 말했다. "초코는 첨부터 날 자기 반려자로 받아들이는 눈치였어요." 예비신부가 건네준 선물상자와 편지를 펼쳐본 미상 씨는 크게 놀랐다. "이건 정말 너무 진한 감동이에요." 먹거리라는 선물은 초코 간식이 아니라 미상 씨에게 주는 선물이었고, 편지 또한 초코에게 전하는 편지가 아니라 미상 씨에게 쓴 편지였다. _____ 안녕하세요! 까미를 새로운 식구로 맞이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까미를 분양하는 저로써는 많은 감정이 드는 날이네요. 까미는 많이 순해 키우실 때 불편하시진 않으실 거에요. 지금 쓰고 있는 애칭보단 보호자 님이 지어주시는 이쁜 이름으로 행복한 추억 만드시며 평안하고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가끔 까미의 일상 사진을 공유해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 애기라서 그런지 잠을 많이 잡니다. 아픈 건 아니니 걱정 마세요. 까미는 항상 다른 아이들에게 음식을 뺏겨 덩치가 작습니다. _____ 초코 간식인줄 알았던 종이상자에 담긴 선물은 김 가루를 입힌 튀김 과자였는데, 고급한 종이상자에 고급한 디스플레이로 치장한 맛있는 과자였다. 희정 씨는 환하게 웃고 있는 미상 씨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 살아가노라면 야박하고 째째한 사람 투성인데 가끔은 이런 천사와 만나게 돼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희정 씨가 또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인간을 사랑하게 되나 봐요. 미상 씨…… 감사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빨리 보내야겠어요. 초코 사진도 같이 보내야겠군요." 초코를 안고 침대 아래에 앉은 희정 씨가 어서 사진을 찍으라고 미상 씨를 재촉한다. 그러면서 다시 감탄한다. "정말 천상에서 하강한 천사가 분명해요. 그 예비신랑신부라는 사람 두 분 다 말입니다."■
-
- 생활·문화
-
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22회)
-
-
국제유가, 이틀째 급등세 브렌트유 배럴당 100달러 돌파
- 국제유가는 12일(현지시간) 중동전쟁 장기화 우려 등 영향으로 2거래일 연속 급등했다. 이날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4월물 가격은 전거래일보다 9.7%(8.48달러) 오른 배럴당 95.73달러에 마감됐다. WTI 선물은 장중 11% 이상 오르며 97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북해산 브렌트유 5월물은 9.2%(9.48달러) 오른 100.4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브렌트유 선물이 종가 기준으로 100달러선 위에서 마감한 것은 2022년 8월 이후 3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지난 9일에는 장중 배럴당 100달러선을 넘어섰다. 국제유가가 급등세를 보인 것은 이란의 새로운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물론 페르시아국가내 미군기자에 대한 공격지속 등 전선 확대의 의지까지 내비쳤기 때문이다. 모즈타바는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는 지렛대는 반드시 계속 사용돼야 한다"며 "적이 거의 경험이 없고 매우 취약할 다른 전선들을 여는 것에 대한 검토도 이뤄졌다"면서 전선 확대 의지도 보였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간 군사충돌은 이날도 이어졌다. 이날 이라크 남부 항구에서 유조선 2척이 이란에 의한 공격을 받았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와 함께 에너지 수송 요충인 호르무즈해협은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이란 외무부 차관인 마지드 타흐르-라반치는 AFP와 인터뷰에서 "일부 국가들은 이미 해협 통과 문제에 대해 우리와 논의했으며 우리는 그들과 협력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장관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미국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을 호위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서 “현재 이 지역의 미군 자산이 이란 공격 능력을 파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라이트 장관은 이달말까지 유조선 호위를 위한 준비가 완료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이날 발표한 월간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충돌후에 페르시아만 연안국가의 석유생산량이 하루 1000만 배럴(전세계 소비량의 10%)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IEA는 “원유 수송이 빠르게 재개되지 않은 한 공급 급감은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앞서 IEA는 회원국이 석유비축 협조방출에 합의했다 발표했다. 라이트 미국 에너지장관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의 석유방출에 따른 공급완료까지 120일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비축유 방출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라이스퓨처스그룹의 선임애널리스트 필 플린은 “호르무즈해협이 무기한으로 봉쇄가 지속된다면 주요산유국에 의한 추가 감산과 생산중단을 불러일으키고 IEA에 의한 석유비축유 협조방출이 가격을 억제하는 것은 곤란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BCA리서치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협조방출은 불충분한 조치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수송을 미국선박으로 제한하는 ‘존스법’의 적용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한편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국제금값은 달러강세 등에 이틀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물 금가격은 1.0%(53.3달러) 내린 온스당 5125.8달러에 거래름 마쳤다.
-
- 경제
-
국제유가, 이틀째 급등세 브렌트유 배럴당 100달러 돌파
-
-
[월가 레이더] 유가 100달러에 무너진 뉴욕증시⋯다우 739P 급락, 4만7000선 붕괴
- 뉴욕증시가 12일(현지시간) 이란 전쟁 장기화와 국제유가 폭등 충격에 다시 무너졌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739.42포인트(1.56%) 내린 4만6677.85에 마감, 올해 처음 4만7000선을 내줬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52% 하락한 6672.62, 나스닥지수는 1.78% 떨어진 2만2311.98로 거래를 마쳤다. 세 지수 모두 2026년 종가 기준 최저치다. 도화선은 유가였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유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브렌트유 선물은 9.22% 급등한 배럴당 100.46달러에 마감했다. 2022년 8월 이후 첫 100달러 위 종가다. WTI도 9.72% 오른 95.73달러를 기록했다. 전날 하루에만 선박 7척이 추가 피격됐고,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장관은 미 해군이 유조선 호위 준비가 아직 안 됐다고 시인했다. IEA의 역대 최대 4억 배럴 방출 결정과 미국의 1억7200만 배럴 전략비축유 방출 발표도 시장을 달래지 못했다. 업종별로는 S&P500 11개 업종 중 8개가 하락했다. 에너지주(쉐브론·엑손모빌)만 신고가를 썼고, 금융·기술주가 약세를 주도했다. 오라클만이 예외였다. 2027회계연도 매출 전망을 900억 달러로 상향하며 9% 급등했다. [미니해설] 비축유 쏟아도 유가 잡히지 않은 이유…문제는 물량이 아니라 물류 이번 장세의 핵심은 유가 100달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인플레이션과 금리 경로를 동시에 흔든다는 데 있다. WSJ에 따르면 2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하루 새 3.634%에서 3.759%로 뛰었다. 지난 5월 이후 최대 일간 상승폭이다. CME 페드워치 기준 연내 금리 동결 가능성은 불과 이틀 전 24%에서 45%로 치솟았고, 이란 전쟁 발발 직전(4%)과 비교하면 시장의 계산은 완전히 뒤집혔다. 비탈 놀리지의 애덤 크리사풀리는 "이란이 경제 혼란을 전략 무기로 활용하는 방식이 먹히고 있다"며 "테헤란의 강경 지도부는 유가를 레버리지 삼아 트럼프를 협상 테이블로 밀어붙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초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밝혀 일시적 유가 진정을 이끌었지만, 하메네이의 봉쇄 고수 발언이 나오자 그 효과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IEA 4억 배럴과 미국 1억7200만 배럴의 방출 발표가 시장을 진정시키지 못한 이유도 구조적이다. 숫자만 보면 초대형 대응이지만 WSJ는 미국 전략비축유가 대통령 결정 후 시장 도달까지 최소 13일이 소요되고, 최종 소비지까지는 그보다 훨씬 더 걸린다고 짚었다. CNBC도 실제 정제제품과 해상 운송 리스크는 여전히 별개 문제라고 전했다. 시장이 묻는 것은 "얼마를 푸느냐"가 아니라 "언제, 어디까지 공급이 정상화되느냐"다. 원유를 시장에 던지는 것과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더 무서운 이유는 원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해협을 통해 글로벌 원유 공급의 약 20%, LNG의 상당 부분이 오간다. WSJ는 이란 측 보도를 인용해 홍해·수에즈 항로 차단 가능성까지 거론됐다고 전했다. 항로가 이중으로 막힌다면 원유는 물론 정제유·LNG·화학 원료 운송까지 연쇄 차질이 불가피하다. 에너지주가 신고가를 쓰는 동안 지수 전체가 하락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에너지기업에는 호재일 수 있지만 경제 전체에는 악재이기 때문이다. 연준도 손발 묶였다…'스태그플레이션 딜레마' 재등장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를 동시에 자극한다는 점에서 연준도 선뜻 움직이기 어려운 국면이다. CNBC가 인용한 무디스의 마크 잰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은 전쟁이 인플레이션과 고용 중 어느 쪽을 더 훼손할지 확인할 때까지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선물 시장은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 아메리프라이즈의 앤서니 사글림베네 수석 전략가는 "에너지 비용이 현 수준에서 지속된다면 소비자 체감 경기를 짓누르고 중간선거를 앞두고 구매 여력 이슈가 전면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그는 "가계 재무 건전성과 고용 여건은 현재로선 양호하고, 에너지를 제외한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은 유지되고 있다"며 구조적 붕괴보다는 일시적 충격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실제로 S&P500의 연고점 대비 낙폭은 아직 4% 남짓이다. 시장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전쟁 변수를 빠르게 가격에 반영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브렌트유의 선물 곡선이 '백워데이션(근월물 프리미엄)' 구조로 급격히 전환된 것은 시장이 단순한 일회성 충격이 아닌 장기 공급 차질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WSJ에 따르면 연초 배럴당 60달러대 초반에 머물던 브렌트유 근월물이 100달러를 돌파하는 동안, 연말·내년 계약 가격도 올라갔지만 상승폭은 근월물의 절반에 못 미쳤다. 이 구조는 "당장의 공급 공백은 심각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해소될 것"이라는 시장의 이중적 판단을 반영한다. 이날 뉴욕증시는 세 가지를 확인시켰다. 첫째, 비축유 방출만으로는 전쟁 프리미엄을 지울 수 없다. 둘째, 유가 100달러는 금리 인하 기대 후퇴와 밸류에이션 부담으로 직결된다. 셋째, 오라클처럼 실적으로 증명하는 종목에만 프리미엄이 붙는 종목 선별 장세가 본격화됐다. 전쟁이 끝나면 반등은 빠를 수 있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다면, 이날의 739포인트 하락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
- 경제
-
[월가 레이더] 유가 100달러에 무너진 뉴욕증시⋯다우 739P 급락, 4만7000선 붕괴
-
-
[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5회)
- 오래 있어야 해! 주민들은 나를 몰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이 골목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이 언덕에서 살지도 않았고, 이 바람을 수십 년 맞으며 살지 않았다.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그 낯섦을 지워주지는 않았다. 오늘날 불확실성 사회에서는 오히려 어떤 분들에게는 그 사실이 경계의 이유가 되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사람이 국가 예산을 들고 우리 골목에 들어왔다. 그 시선이 틀리지 않았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처음 주민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조용히 들릴까 말까 전해오는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고, 본인의 일에 집중한 나머지 무관심한 분들이 있었고, 마을이 변하기를 바라는 지켜보는 분들이 있었다. 찬성하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적어도 초반에는. 반대는 생각보다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나타났다고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분은 없었다. 그 이유 안에 이 골목의 역사가 있었고, 상처가 있었고, 이전에 왔다 간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논골도 전에 뭔가를 하겠다고 왔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기억이 우리를 향한 일부의 불신으로 쌓여 있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탓할 수 없었다. 불신은 아무 이유 없이 생기지 않는다. 어려운 것은 무관심이었다. 일부의 부정적인 눈빛은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무관심은 에너지 자체가 없다.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게 아니라, 두드리는 소리조차 닿지 않는 느낌. 그 골목을 오가면서 나는 종종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누군가의 시선 안에 아예 들어오지 못하는 존재.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 무관심과 시선이 겹치는 순간이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것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때였다. 반대도 아니고 무관심도 아닌, 그냥 이게 되겠냐는 표정. 말로 하지 않아도 읽혔다. 이 골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외지에서 온 사람 하나가 예산 몇 푼 들고 들어와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느냐. 그 표정 앞에서 나는 기획서를 꺼낼 수 없었다. 기획서는 마을 주민들에게는 믿음의 언어가 될 수 없고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은 설득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그것을 나는 그때 배웠다. 설득은 논리로 하지만, 믿음은 시간이 흐른 뒤 신뢰로 만든다. 나는 시간을 써야 했다. 회의하는 대신 골목을 걸었다. 발표하는 대신 집 앞에 앉아 있었다.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는 대신, 그냥 여기 있었다. 그 버팀이 기획보다 먼저였다. 전환점은 작은 데서 왔다. 어느 오후, 골목 위쪽 빈터에서 혼자 무언가를 메모하고 있었다. 한 할머니가 지나가다 멈추셨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셨다. 이 골목을 좋은 그곳으로 만들어보려 한다고 했다. 한참 나를 보시다가 한마디 하셨다. "오래 있어야 해." 많은 말이 아니었다. 오래 있어야 한다. 그 짧은 한마디가 그때 내가 들은 가장 긴 이야기였다. 이 골목에 왔다가 떠난 사람들, 약속하고 사라진 사람들, 무언가를 가져가고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은 사람들. 할머니는 그 역사 전체를 그 짧은 한마디에 담아서 나에게 건네신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제로 오래 있었다. 고 김인복 통장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는 내가 들어갈 수 없는 문을 알고 있었다. 어느 집이 경계심이 강한지, 어느 분이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마음이 열리는지. 그 지식은 수십 년 이 골목에서 쌓인 것이었다. 어떤 기획서에도 쓸 수 없는 종류의 지식. 그가 먼저 들어가 이야기를 꺼내주면,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소개받은 자리에서 나는 많이 말하지 않았다. 듣는 쪽이었다. 이 골목에서 살았던 이야기, 예전에 여기가 어떠했는지,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았는지. 그 이야기들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이 골목의 사람이 되어갔다. 외지인이 아니라, 적어도 이 골목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 믿음은 그렇게 생겼다. 설득이 아니라 동행으로. 지금 돌이켜보면 그 초반의 무관심과 불신이 논골담길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처음부터 모든 주민이 열렬히 환영했다면, 나는 기획서대로 밀어붙였을 것이다. 반대와 무관심이 없었다면 나는 멈추지 않았을 것이고, 멈추지 않았다면 골목의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저항이 속도를 늦추었고, 그 느린 속도가 이 골목과 나 사이에 실제 관계를 만들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시간은 기획자를 두 가지 방향으로 몰고 간다. 포기하거나, 더 깊이 들어가거나.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선택이라기보다 오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오기가 없었다면 논골담길도 없었다. 이 골목은 나를 시험했다. 오래 있을 사람인지. 그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실제로 오래 있는 것. 지금도 묵호는 명소다. KTX, ITX 등 교통문화 개선 효과도 크다. 그러나 잠자던 묵호를 깨운 논골담길이 시작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나 홀로 여행지로 뜬 묵호도 결국 오래가려면 오래 머무는 여행, 16년 전 논골에서 만난 할머니의 부탁, "오래 있어야 해"를 선택해야 한다. <필자 소개> 조연섭 -문화 기획자, 브치 작가, 논골담길 기획 조연섭 작가는 숨겨진 원형을 발굴해 현대적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문화 기획자이자 작가다. 언더그라운드 방송 DJ와 아나운서를 거친 방송인 출신으로, 2004년 동해문화원 공채 사무국장으로 임용 한국문화원국장협의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하고 2025년 12월30일 퇴직했다. 그는 그동안 지역의 역사와 유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구 소멸 시대의 실천적 해법을 제시해 왔다. 그의 기획력은 공간 재생과 로컬 브랜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묵호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청와대에서 창조경제 성공 사례를 발표하며 문화 담론을 주도했다. 또한, 방치된 양조장을 커뮤니티 거점으로 복원한 '강원막걸리학교(막걸리 익는 홍월평)'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와 공동체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구축했다. 예술적 감각 또한 남다르다. 국가유산청 공모로 뮤지컬 '동해의 선선 심동로'와 '동해랑'을 기획하여 지역민에게는 자긍심을, 관광객에게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로컬 콘텐츠의 전형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원상 '창의 인재상'을 받았으며, 전국 문화원 임직원을 대상으로 추진한 지역 문화경영 고급 아카데미 전국 1위와 함께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공론장 '논골담길 커먼즈'와 함께 24시 문화 순환 체계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브런치 작가로서 《논골담길》, 《맨발 걷기》 등의 브런치 북을 발간하며, 현장의 기록을 글에 담아 사람과 공간을 잇는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 사회
-
[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5회)
-
-
[퓨처 Eyes(125)] 휴스턴대, 30년 묵은 초전도체 기록 경신⋯상온 향한 압력 퀜칭 돌파구
- 전기를 보낼 때 저항이 완전히 사라지는 마법 같은 물질, 초전도체(Superconductor). 만약 이 물질이 우리가 숨 쉬고 생활하는 일상적인 온도와 압력에서 작동한다면 인류의 기술 문명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의 도약을 맞이하게 된다. 송전탑을 거치며 허공으로 사라지는 막대한 전력 손실을 없애고, 병원의 거대한 MRI 장비를 노트북 크기로 줄이며, 마찰 없이 달리는 자기부상 열차를 일상으로 만들 수 있다. 지난 백 년 동안 수많은 과학자가 이 궁극의 물질을 찾아 헤맸지만 자연의 벽은 높았다. 초전도 현상은 영하 100도를 밑도는 극한의 추위나 지구 대기압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끔찍한 압력 속에서만 조심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최근 국제 과학계가 이 견고한 자연의 장벽에 매우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들어냈다. 1993년 이후 무려 30년 넘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대기압 환경 초전도 최고 온도 기록이 마침내 깨진 것이다. 미국 과학 매체 사이언스뉴스와 피즈오알지(phys.org)는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이 경이로운 연구 결과를 지난 9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다이아몬드 압박 후 급속 냉각으로 구조 굳히는 마법 미국 휴스턴대 폴 추 교수 연구팀은 기존 초전도체 연구의 상식을 뒤집는 독창적인 실험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들이 선택한 물질은 1993년 대기압 상태에서 절대온도 133케이(영하 140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며 30년간 챔피언 자리를 지켜온 수은 기반 구리 산화물 화합물이다. 연구진은 이 오래된 화합물에 압력 퀜칭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물리적 훈련법을 적용했다. 실험의 원리는 몹시 까다롭지만 훌륭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두 개의 단단한 다이아몬드 사이에 화합물 시료를 끼워 넣고, 대기압의 10만 배에서 30만 배에 달하는 엄청난 압력으로 사정없이 짓눌렀다. 물질은 극단적인 압력을 받으면 내부 원자 구조가 빽빽하게 찌그러지면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는 특성을 지닌다. 진짜 마법은 그 다음 단계에서 일어난다. 연구진은 압력을 가한 상태에서 온도를 절대영도에 가까운 4케이(영하 269도)로 급격하게 얼려버린 뒤, 시료를 짓누르던 다이아몬드의 압력을 순식간에 풀어버렸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튼튼한 쇠 스프링을 떠올려 보자. 스프링을 손으로 꽉 누른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꽁꽁 얼려버리면, 손을 떼더라도 스프링은 원래의 느슨한 상태로 튕겨 나가지 못하고 찌그러진 모양 그대로 굳어버린다. 대장장이가 시뻘겋게 달궈진 쇠를 찬물에 담가 단단함을 고정하는 담금질과 똑같은 이치다. 온도가 너무 낮아 물질 내부의 원자들이 원래의 편안한 자리로 돌아갈 에너지를 얻지 못한 채, 초전도에 유리한 고압 구조 그대로 갇혀버리는 것이다. 그 성과는 눈부셨다. 압력이 완전히 사라진 평범한 대기압 상태에서도 이 화합물은 절대온도 151케이(영하 122도)까지 초전도 특성을 잃지 않았다. 30년 동안 누구도 넘지 못했던 기록을 무려 18도나 위로 끌어올린 쾌거다. 휴스턴대 폴 추 교수는 압력을 빼내는 속도가 조금만 빨라도 다이아몬드가 깨지거나 시료가 산산조각 나는 극도로 예민한 실험 과정을 회고하며 이 기술이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인지 설명한다. 플로리다대 제임스 햄린 교수는 최근 초전도 분야를 휩쓸었던 여러 논란과 달리 이번 성과는 기존의 탄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매우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실험 결과라고 평가했다. 우연의 시대 종말 선언하고 인공지능이 빚어내는 양자 메타물질 기록을 깬 것 못지않게 중요한 변화는 초전도체를 대하는 과학계의 근본적인 접근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날 학술지에는 휴스턴대 연구를 포함해, 오스트리아 그라츠공대 등 세계 각국의 물리학자 16명이 공동으로 집필한 상온 초전도체 탐색 전략 논문이 함께 실렸다. 이들은 물리학의 어떤 법칙도 상온 초전도체의 존재를 가로막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최근 수소 화합물 연구에서는 대기압의 200만 배라는 극단적 환경이긴 하지만 절대온도 260케이(영하 13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다. 이제 과학자들의 목표는 이 고압 상태의 기적을 우리가 사는 일상적인 대기압 환경으로 온전히 끌어내리는 데 맞춰져 있다. 과거의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수천 번, 수만 번 화합물을 섞고 끓이며 우연한 발견을 기다려야 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제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라는 강력한 나침반이 생겼다. 그라츠공대 크리스토프 하일 교수는 최근 폭발적으로 향상된 계산 능력 덕분에 무한대에 가까운 화학 원소 조합을 가상 공간에서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후보 물질을 정확히 짚어주면, 과학자들은 그 설계도에 따라 실험실에서 물질을 빚어내기만 하면 된다. 나아가 연구자들은 초전도체를 단순한 화학 물질의 혼합물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양자 메타물질로 다루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자연이 만들어준 구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벗어나, 나노미터 단위로 구조를 다듬고 불순물을 정밀하게 주입하며 초단파 레이저를 쏘아 초전도 상태를 인간이 직접 증폭시키겠다는 뜻이다. 바야흐로 초전도체를 우연히 줍는 시대가 끝나고, 목적에 맞게 인위적으로 건축하는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물론 이번 휴스턴대의 기록도 영하 122도라는 매서운 추위 속에 머물러 있다. 온도를 200케이 근처로 조금만 올려도 초전도 성능이 서서히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나, 아직 공장이나 발전소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상용화 단계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30년 동안 두꺼운 얼음에 갇혀 있던 초전도체 연구의 시계가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무기와 압력 퀜칭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나 다시 힘차게 돌기 시작했다. 전 세계 물리학자들이 전략적으로 연대하며 상온 초전도체를 향한 지도를 그려 나가는 지금, 인류를 에너지의 족쇄에서 영원히 해방시킬 궁극의 물질을 손에 넣는 일은 이제 막연한 기적이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으로 좁혀지고 있다.
-
- IT·과학
-
[퓨처 Eyes(125)] 휴스턴대, 30년 묵은 초전도체 기록 경신⋯상온 향한 압력 퀜칭 돌파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