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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이라크 불가항력·브렌트 112달러…나스닥 조정 문턱, 4주 연속 하락
- 뉴욕증시가 이라크의 불가항력 선언이라는 새 충격에 오후 들어 낙폭을 키우며 4주 연속 하락으로 마감했다. 나스닥은 사상 최고 대비 9.5% 빠져 조정권역 문턱에 섰고, 소형주 지수 러셀2000은 이미 조정권역에 진입했다. 20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S&P500지수는 1.51% 내린 6506.48로 마감했다. 나스닥은 2.01% 급락한 2만1647.61,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443.96포인트(0.96%) 내린 4만5577.47에 장을 닫았다. S&P500은 6개월래 최저 수준으로 밀렸다. 다우지수는 2023년 이후 처음으로 4주 연속 하락을 기록했고, 3월 한 달 낙폭이 6%를 넘어 2022년 이후 최악의 월간 성과를 향해 가고 있다. 이날 오후 낙폭을 결정적으로 키운 것은 이라크의 전면 불가항력 선언이었다. 이라크 석유부는 호르무즈 해협 항행 방해로 원유를 수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외국계 기업이 운영하는 모든 유전에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쿠웨이트 미나 알-아흐마디·미나 압둘라 정유소가 드론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도 겹쳤다. 브렌트유는 3.26% 뛴 배럴당 112.19달러에 마쳤으며, 장중 113달러를 돌파했다. 브렌트유는 이번 달에만 55%, 올해 들어 84% 폭등했다. 국채시장도 흔들렸다. 10년물 국채 금리가 4.39%까지 올랐고, 금리선물 시장에서는 올해 10월까지 연준이 최소 한 차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하루 만에 6%에서 30%로 급등했다. 금값은 이번 주 9.5% 급락해 2011년 이후 최악의 주간 하락을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에 채권이 팔리고 채권 대체 자산인 금까지 이탈 압력을 받은 것이다. S&P500 500개 종목 중 약 400개, 80%가 하락했다. 통상 방어주로 분류되는 유틸리티가 3.5% 넘게 떨어지며 낙폭을 주도했고, 리츠(부동산)와 IT도 2% 이상 밀렸다. 엔비디아와 테슬라는 각각 3% 내렸다. 수퍼마이크로컴퓨터는 미국 수출통제법 위반 관련 임직원 해임 및 공동창업자 기소 소식에 30% 폭락했다. [미니해설] 전쟁 3주 차, 시장이 새로 묻기 시작한 질문 "금리 인상 가능성" 이란 전쟁이 3주째로 접어들면서 시장의 공포 구조가 진화하고 있다. 초기에는 "유가가 오른다"가 핵심 공포였다. 그다음 주는 "유가가 스태그플레이션을 부를 것인가"였다. 이번 주 시장이 새로 꺼내 든 질문은 한 단계 더 위험하다. "연준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 아닌가." 금리선물 시장이 하루 사이에 금리 인상 확률을 6%에서 30%로 끌어올린 것은 단순한 투기적 베팅이 아니다. 유가 급등→물가 재점화→연준 정책 역전이라는 시나리오가 이제 '최악의 꼬리 리스크'가 아닌 '고려해야 할 현실 시나리오'로 격상됐다는 신호다. 모건스탠리는 "금리 인상 공포는 과도하다"고 진화에 나서며 연내 두 차례 인하 전망을 유지했다. 인하 시점은 기존 6·9월에서 9·12월로 미뤘다. UBS도 연말 증시 상승 전망을 유지하며 "지정학적 사건을 시장 타이밍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실패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낙관론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에너지 충격이 일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충격이 이란 너머로 번지고 있다 이날 시장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것은 이라크의 불가항력 선언이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라크가 이란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의 직접 당사국이 아닌 이라크마저 호르무즈 봉쇄 여파로 수출길이 막혀 불가항력을 선언했다는 것은, 이번 충격이 이란·이스라엘 분쟁의 틀을 넘어 중동 전역의 에너지 공급망 붕괴로 확산되고 있다는 신호다. 쿠웨이트 정유소 드론 공격까지 더해지면서 사우디, UAE, 카타르에 대한 이란의 보복 위협이 공허한 말이 아닐 수 있다는 공포가 되살아났다. 베어드의 로스 메이필드 전략가는 "지상군 파병이 현실화한다면 최소 몇 주 더 고유가·고휘발유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솔직히 말해 주식시장은 이런 규모의 이벤트를 충분히 반영할 만큼 하락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S&P500이 최고점 대비 7.3% 하락에 그쳐 다른 지수보다 선방한 것도 거꾸로 말하면 추가 하락 여력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80%의 종목이 하락하고, 방어주인 유틸리티마저 3.5% 내린 이날 장세는 투자자들이 더 이상 안전지대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값의 이례적 폭락도 주목해야 한다. 전쟁과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금은 통상 가장 강한 피난처다. 그런데 이번 주 금은 9.5% 급락해 2011년 이후 최악의 주간 성과를 냈다. 이는 채권 금리 급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이자를 주지 않는 금의 기회비용이 커진다. 다시 말해, 시장은 지금 전쟁의 공포보다 인플레이션 재점화와 금리 정책 불확실성을 더 큰 위험 요인으로 재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 관전 포인트—PMI·소비자심리·연준 발언이 방향을 가른다 다음 주 시장의 시선은 세 곳에 집중된다. 첫째, 화요일에 발표되는 구매관리자지수(PMI)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처음 나오는 주요 기업경기 설문인 만큼, 에너지 충격이 실물경제 체감에 얼마나 빠르게 전이됐는지를 보여줄 첫 번째 정량 신호가 된다. 둘째, 금요일 소비자심리지수다. 휘발유가 갤런당 3.91달러, 경유가 5.16달러로 오른 현실이 소비자 지갑과 심리를 얼마나 옥죄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한 주 내내 예정된 연준 위원들의 발언이다. 금리 인상 확률이 하루 만에 24%포인트나 뛴 상황에서 당국자들이 시장의 공포를 달랠지, 아니면 경계 발언을 추가할지가 증시 방향을 결정할 변수다. UBS와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연말 증시 상승 전망을 고수하며 장기 투자자에게 "시장을 지키라"는 조언을 유지했다. 유럽은 에너지 수입에서 중동 의존도가 10%에 불과해 충격에 상대적으로 더 강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경제권은 "가격 급등과 공급 부족이 동시에 덮치는 이중 충격"에 직면했다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분석했다. 페덱스는 3분기 매출 개선과 전망 상향으로 강세를 보였고, 룰루레몬은 실적 호조 흐름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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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이라크 불가항력·브렌트 112달러…나스닥 조정 문턱, 4주 연속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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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동맥 끊긴 신흥국⋯이란 전쟁에 산업·물가 동시 강타
- 이란 전쟁 여파로 세계 천연가스 공급망이 크게 흔들리면서 LNG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이 경제적 직격탄을 맞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19일(현지시간) 신흥국들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다시 닥친 가스 위기로 타격을 받고 있으며 산업 수요가 회복 불가능할 수도 있는 수준으로 위축될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2위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인 카타르는 최근 이란의 공격으로 LNG 수출능력의 17%에 해당하는 연 1280만톤 규모 설비가 손상됐고, 복구에는 3~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까지 겹치며 아시아 현물 LNG 가격은 최근 3년래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이에 카타르산 LNG의 80% 이상을 수입하는 아시아에서는 인도 기업들이 비료용 가스 공급을 제한하고 식당·호텔들이 휴업 위기에 몰렸으며, 파키스탄도 전력수급 불안을 경고하고 있다. 유럽 역시 2022년 가스대란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가운데 재고 재축적 부담과 아시아와의 물량 확보 경쟁에 직면했다. 한국 정부는 카타르산 의존도가 약 14% 수준이라며 대체 물량 확보가 가능하다고 설명하면서도 석탄·원전 활용 확대 등 대응에 나섰다. [미니해설] '제2의 가스 쇼크' 시작…신흥국, 왜 먼저 흔들리나 이번 가스 위기의 핵심은 원유보다 천연가스가 더 취약한 공급망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란의 공격으로 카타르 라스라판 단지의 LNG 설비 일부가 손상되면서 카타르 수출능력의 17%, 연간 1280만톤이 시장에서 빠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카타르에너지의 사드 알카비 CEO는 복구에 3~5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일시 차질이 아니라 글로벌 가스시장 구조 자체를 흔드는 충격이다. 카타르는 세계 2위 LNG 수출국이고, 이 시설이 멈추면 세계 가스 교역의 핵심 축 하나가 사실상 장기 훼손되는 셈이다. 게다가 모든 카타르 LNG 화물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설비 손상과 해협 리스크가 동시에 겹치면서 시장은 공급 감소를 단기 이슈가 아닌 장기 변수로 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곳은 역시 아시아 신흥국이다. 카타르산 LNG의 80% 이상이 아시아로 향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미 아시아 현물 LNG 가격은 전쟁 이후 두 배 가까이 뛰어 3년 만의 고점 수준에 올라섰다. 문제는 신흥국일수록 값비싼 현물 시장에서 유럽이나 동북아 선진국과 경쟁할 자금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계약 물량이 흔들리면 결국 비싼 가격을 감수하거나, 아예 수요를 줄여 공장과 발전소 가동을 축소하는 수밖에 없다. 로이터는 호르무즈 통항이 사실상 멈추고 카타르 출하가 중단되면서 아시아 전력회사들이 연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석탄발전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기후 대응을 이유로 석탄에서 가스로 옮겨간 국가들일수록 타격은 더 크다. 인도는 그 취약성이 가장 먼저 드러난 사례다. 로이터에 따르면 인도 기업들은 중동 충격으로 카타르 공급이 흔들리자 비료 부문을 포함한 국내 가스 공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어 식당·호텔 업계는 취사용 LPG 부족으로 영업 차질과 휴업 가능성을 경고했다. 다른 로이터보도에서는 "수천㎞ 떨어진 전쟁이 인도 가정의 식탁과 식당 메뉴를 좌우하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생활경제 충격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인도는 세계 4위 LNG 수입국으로, 공급의 약 3분의 2를 카타르·UAE·오만 등 중동에 의존한다. 즉 이번 위기는 단순한 연료비 상승이 아니라, 비료 생산·음식점 영업·물류비·가계생활비가 한꺼번에 흔들리는 복합 충격이다. 파키스탄도 상황이 가볍지 않다. 로이터는 파키스탄 전력의 약 10%가 LNG 발전에서 나오며, 특히 저녁 피크 시간대 전력망 안정에 LNG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미 카타르 공급 차질 이후 아시아 국가들이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파키스탄 같은 경제는 더 비싼 현물 화물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력난이 장기화하면 섬유 등 수출 제조업이 직접 타격을 입고, 이는 외화 수입 감소와 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LNG 현물 확보에 실패하며 정전과 공장 가동 차질을 겪었는데, 이번 충격은 공급선 자체가 장기 훼손됐다는 점에서 더 구조적이다. 유럽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EU는 전체 가스 수요의 4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했다. 이후 수입선을 다변화했고 러시아 비중은 2025년 13%까지 낮아졌지만, 그 대가로 LNG 의존도가 커졌다. 지금 유럽은 혹한기를 지나며 재고가 줄어든 상태에서 향후 몇 달 안에 저장고를 다시 채워야 하는 상황인데, 카타르 공급 차질과 아시아의 물량 사냥이 겹치면서 재충전 비용과 조달 난도가 동시에 올라가고 있다. 로이터는 유럽 가스 가격이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두 배로 뛰어 3월 19일 한때 메가와트시당 74유로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아직 2022년 정점보다는 낮지만, 유럽이 다시 "누가 더 비싼 값을 부르느냐"의 경쟁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한국과 대만도 예외가 아니다. 블룸버그와 로이터에 따르면 아시아 각국은 카타르산 손실분을 메우기 위해 미국산과 기타 스팟 물량 확보전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은 카타르산 의존도가 2026년 기준 약 14%로 상대적으로 낮고, 법정 비축 이상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가스발전 비중이 2025년 27%였다는 점에서 가격 충격까지 피할 수는 없다. 정부가 석탄발전 운영한도를 높이고 원전 정비를 앞당기겠다고 한 것은 가스 부족 자체보다 발전연료 믹스 재조정이 더 현실적인 대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급량 부족보다 가격 급등이 먼저 전기요금과 산업원가를 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사태의 승자와 패자도 뚜렷해지고 있다. 패자는 중동산 LNG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현물시장 경쟁력이 약한 남아시아·동남아 신흥국이다. 반대로 반사이익을 얻는 쪽은 미국과 러시아다. 로이터는 미국이 이미 유럽의 최대 LNG 공급국이 됐고, 카타르 공백이 길어질수록 미국산 화물의 협상력이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도 유럽 시장 상실 이후 중국으로의 가스 판매 확대를 노리고 있는데, 중동발 공급 불안은 중국의 러시아산 가스관 프로젝트 추진 명분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안보가 다시 지정학의 핵심 무기가 되는 순간, 천연가스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국가 간 힘의 균형을 바꾸는 전략 자산으로 돌아왔다고 봐야 한다. 이번 가스 쇼크가 더 위험한 이유는, 신흥국 산업 수요가 한번 꺾이면 쉽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비료·섬유·세라믹·식품 서비스처럼 가스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원가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면 가동률을 낮추거나 생산 자체를 줄여야 한다. 이는 곧 고용과 수출, 물가로 연쇄 전이된다. 2022년의 가스대란이 유럽 산업을 흔들었다면, 2026년의 충격은 신흥국 생활경제와 제조업 기반을 먼저 파고드는 양상이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카타르 설비 복구에 3~5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위기는 단기 가격 급등이 아니라 몇 년짜리 공급 재편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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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동맥 끊긴 신흥국⋯이란 전쟁에 산업·물가 동시 강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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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5개월째 유지했지만⋯정부, 중동 변수에 하방위험 다시 꺼냈다
- 정부가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정경제부는 20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 3월호에서 소비 등 내수 개선과 반도체 중심 수출 호조를 근거로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 연속 '경기 회복'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중동 상황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미국의 관세 부과 영향, 건설투자 회복 지연, 취약부문 고용 애로 등이 겹치며 물가 상승과 민생 부담 확대, 경기 둔화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경제동향 보고서에 사실상 '경기 하방 위험' 취지의 표현을 담은 것은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만이다. 정부는 아직 최근 지표에는 중동 리스크가 본격 반영되지 않았다고 보면서도 추가경정예산을 신속히 편성하고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중심으로 24시간 점검 체제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미니해설] 숫자는 회복을 가리키는데…정부가 8개월 만에 '하방위험'을 다시 꺼낸 이유 재정경제부가 20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 3월호에서 우리 경제에 대해 "소비 등 내수 개선과 반도체 중심 수출 호조로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 연속 '경기 회복'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미국의 관세 부과 영향, 건설투자 회복 지연, 취약부문 고용 애로 등을 이유로 물가 상승과 민생 부담 확대, 경기 하방 위험 증대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사실상 '경기 하방 위험'을 언급한 것은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만이다. 실제로 1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2.3% 증가했고, 2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28.7%, 일평균 수출액은 49.0% 늘었다. 반도체(161%), 컴퓨터(222%), 선박(41%)이 수출 증가를 이끌었다. 정부는 중동 충격의 확산을 막기 위해 추경을 신속히 편성하고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중심으로 24시간 모니터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3월 그린북에서 내놓은 메시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지표는 좋아지고 있지만, 바깥 충격이 커지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째 '경기 회복' 판단을 유지했다. 실제 수치만 보면 그렇게 볼 만한 근거가 적지 않다. 1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2.3% 증가했다. 내구재, 준내구재, 비내구재 판매가 모두 늘었다. 2월 소비 흐름도 카드 국내 승인액 증가율 확대와 소비자심리지수 상승을 감안하면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정부는 판단했다. 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12.1로 전월보다 1.3포인트 올랐고, 국내 카드 승인액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6.3% 증가했다. 내수가 바닥을 찍고 조금씩 회복되는 조짐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수출은 더 선명하다. 2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28.7% 증가했고, 조업일수를 감안한 일평균 수출액은 49.0% 급증했다. 주력 품목별로 보면 컴퓨터 수출이 222% 늘었고, 반도체는 161%, 선박은 41% 증가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가 다시 강하게 살아나면서 전체 경기지표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뜻이다. 물가도 아직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0% 올라 전월과 같은 상승률을 유지했다. 특히 석유류 물가는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2.4% 떨어졌다. 고용도 개선됐다. 2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3만4000명 늘어 1월 증가폭 10만8000명을 크게 웃돌았다. 숫자만 놓고 보면 경기 회복이라는 정부 표현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 보고서에 굳이 '경기 하방 위험 증대 우려'라는 표현을 넣었다.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만이다. 왜일까. 핵심은 지금 나오는 지표가 아직 최근 중동 충격을 본격 반영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현재 발표되는 소비, 물가, 수출 수치는 중동 리스크가 본격화하기 전의 흐름을 상당 부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2월까지의 숫자는 괜찮지만 3월 이후는 다를 수 있다는 경고다. 조성중 경제분석과장도 이란 전쟁이 성장률과 물가에 미칠 영향에 대해 "사태가 얼마나 장기화하고 심화할지 예단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정부가 숫자보다 선행 위험을 먼저 보고 있다는 의미다. 가장 민감한 변수는 역시 국제유가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다. 중동 긴장이 길어져 국제유가가 오르면 수입물가가 뛰고, 그 부담은 곧바로 생산비와 물류비,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나아가 생활물가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이번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로 안정됐고 석유류 물가가 2.4% 하락한 것도, 결국 유가가 본격 반등하기 전의 결과일 뿐이다. 앞으로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이어가면 지금의 안정적인 물가 흐름은 유지되기 어렵다. 정부가 이번에 "물가 상승, 민생 부담 증가 및 경기 하방 위험 증대 우려"를 한 문장에 묶은 것도 이런 이유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통계보다 서민 체감에 먼저 반영된다. 소비 지표도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카드 승인액 전체는 6.3% 증가했지만 할인점 카드 승인액은 오히려 10.6% 감소했다. 이는 소비가 회복되더라도 모든 계층과 업태에 고르게 퍼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일부 서비스 소비나 온라인 소비는 살아나고 있지만 생활 밀착형 소비에서는 여전히 부담이 이어질 수 있다. 소비자심리지수 112.1 역시 숫자상으론 개선이지만, 중동 변수와 유가 충격이 체감되기 시작하면 다시 꺾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내수 회복은 아직 초기 단계이고, 외부 충격에 견딜 체력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수출 역시 구조적으로는 취약성이 남아 있다. 2월 수출 28.7% 증가, 일평균 수출 49.0% 증가라는 성적표는 매우 강하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반도체와 컴퓨터 같은 IT 품목 쏠림이 크다. 반도체 161%, 컴퓨터 222% 증가가 전체를 견인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회복의 폭이 넓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미국의 관세 부과와 통상환경 악화가 현실화하면 수출 회복세는 예상보다 빨리 둔화할 수 있다. 정부도 국제경제 상황에 대해 "중동상황, 주요국 관세 부과에 따른 통상환경 악화 등으로 국제금융시장 및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고 교역·성장 둔화가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수출이 좋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고용도 숫자와 체감 사이 간극이 있다. 2월 취업자 수가 23만4000명 늘어 1월의 10만8000명보다 크게 개선된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취약부문 중심의 고용 애로"를 공식 언급했다. 이는 전체 고용 증가가 일부 업종이나 연령대에 집중돼 있고, 건설·제조 일부나 취약계층에서는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건설투자 회복 속도 역시 정부가 별도로 우려하는 변수다. 건설은 고용과 내수, 지방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분야다. 이 부문이 기대만큼 살아나지 못하면 전체 경기 회복의 온기가 넓게 퍼지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이번에 단순 진단에 그치지 않고 대응책도 함께 내놨다. 중동 상황의 영향 최소화를 위해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신속히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중심으로 각 부문을 24시간 모니터링하면서 이상징후 발생 시 신속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는 이번 하방 위험을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 관리 대상 리스크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추경을 서두르겠다는 메시지는 유가와 환율, 금융시장 변동성이 민간의 자생 회복만으로 흡수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정부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3월 그린북은 '회복'과 '경고'가 동시에 담긴 보고서다. 1월 소매판매 2.3% 증가, 2월 소비자심리지수 112.1, 카드 승인액 6.3% 증가, 수출 28.7% 증가, 일평균 수출 49.0% 증가, 반도체 161% 증가, 컴퓨터 222% 증가, 소비자물가 2.0%, 취업자 23만4000명 증가라는 숫자들은 분명 회복을 가리킨다. 그러나 할인점 카드 승인액 10.6% 감소, 취약부문 고용 애로, 건설투자 부진, 미국 관세 리스크, 중동발 유가 급등 가능성은 그 회복의 바닥이 아직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정부가 8개월 만에 다시 ‘하방위험’을 꺼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좋아지는 중이지만, 동시에 매우 쉽게 흔들릴 수도 있는 회복 국면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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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5개월째 유지했지만⋯정부, 중동 변수에 하방위험 다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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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발 약세, 한강벨트로 번졌다⋯성동 103주 만에 하락 전환
- 서울 아파트 시장의 약세 흐름이 강남3구를 넘어 한강벨트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한국부동산원이 19일 발표한 3월 셋째 주(16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05% 올라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오름폭은 전주 대비 0.03%포인트 줄어 2월 첫째 주 이후 7주 연속 둔화했다. 특히 강남3구와 용산구의 약세가 4주째 이어진 가운데 성동구가 0.06%에서 -0.01%로 돌아서며 2024년 3월 둘째 주 이후 103주 만에 하락 전환했다. 동작구도 0.00%에서 -0.01%로 내려 57주 만에 약세를 보였다. 서초구는 -0.15%, 용산구는 -0.08%로 낙폭이 확대됐고 송파구는 -0.16%, 강남구는 -0.13%를 기록했다. 강동구도 -0.02%로 내림폭이 커졌다. 반면 중구(0.20%), 성북구(0.20%), 서대문구(0.19%), 영등포구(0.15%), 양천구(0.14%), 강서구(0.14%) 등 중저가 지역은 상대적으로 강세를 나타냈다. 시장에서는 5월 9일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와 공시가격 상승에 따른 보유세 부담 우려가 고가 주택지 매물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니해설] 한강벨트까지 번진 서울 아파트 조정장…세금·매물·수요 재편의 삼중 압력 강남3구에서 시작된 서울 아파트 가격 조정이 이제는 한강변 핵심 주거벨트로 번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서울 전체 매매가격이 여전히 상승하고 있지만, 시장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승장의 동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가 뚜렷하다. 서울 아파트값은 3월 셋째 주에도 0.05% 올라 플러스를 유지했지만 상승폭이 전주보다 0.03%포인트 줄었다. 2월 첫째 주 이후 7주 연속 오름폭이 축소됐다는 점은 단순한 숨 고르기를 넘어 시장 체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흐름의 핵심은 약세 지역의 확산이다. 그동안 조정의 중심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대출 규제, 가격 부담이 집중된 강남3구와 용산구였다. 실제로 서초구는 -0.15%, 강남구는 -0.13%, 송파구는 -0.16%, 용산구는 -0.08%를 기록하며 4주째 약세를 이어갔다. 주목할 지점은 이 하락 흐름이 더 이상 특정 초고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성동구가 103주 만에 하락 전환했고, 동작구도 57주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성동과 동작은 각각 강북권과 강남 접근성을 동시에 갖춘 대표적 한강벨트 지역으로 꼽힌다. 이들 지역의 약세 전환은 상급지 선호가 여전하더라도 가격 부담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수요가 더는 추격 매수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동산원도 시장 참여자의 관망세가 짙어졌다고 진단했다. 일부 단지에서 하락 매물이 등장하고, 가격을 낮춘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는 설명은 최근 서울 주택시장의 분위기를 압축한다. 급등기에 형성된 호가가 실제 거래가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매수자는 추가 조정을 기다리며 한 발 물러선 상태다. 반면 매도자 가운데서는 더 늦기 전에 처분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세금과 보유 부담이 있다. 우선 5월 9일로 예정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가 다주택자 매물 출회를 자극하고 있다. 세율이 다시 무거워지기 전에 매도를 선택하려는 수요가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점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이번 주간 가격 동향에는 아직 공시가격 열람 개시 영향이 반영되지 않았지만, 시장은 이미 다음 변수를 선반영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평균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18.67% 오르면서 일부 단지에서는 보유세가 최대 50%까지 늘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현금흐름이 제한적인 고령 1주택자에게는 세 부담이 체감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실거주 의지는 있지만 세금 증가를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 매도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번 조정은 단순한 가격 피로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제 변화, 보유비용 증가, 거래 심리 위축이 동시에 맞물리는 구조적 조정 성격을 띠고 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이 "강남3구발 가격조정 흐름이 인접 주요 자치구와 한강벨트로 확산하는 추세"라고 진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남의 약세가 주변 지역으로 전염되는 이유는 심리적 연동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서울 주택시장은 행정구역별로 나뉘어 보이지만, 실제 매수자들은 강남·용산·성동·동작·마포 등 인접 생활권을 묶어서 비교한다. 강남권이 밀리면 인근 상급지의 상대적 가격 매력도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반면 모든 지역이 약한 것은 아니다. 중구, 성북구, 서대문구, 영등포구, 양천구, 강서구처럼 상대적으로 중저가 매물이 많은 지역은 여전히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이는 서울 시장이 일괄 하락 국면에 들어섰다기보다, 가격대별·지역별 차별화가 심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고가 주택 밀집 지역에서는 세 부담과 매물 증가가 가격을 누르고, 중저가 지역에서는 실수요가 받쳐주며 상승이 이어지는 이중 구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의 중심축이 '상급지 추격 매수'에서 '가격 부담이 덜한 실거주 지역 선호'로 이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는 공시가격 현실화에 대한 시장 반응이다. 현재도 고가 지역에서는 관망세가 짙지만, 실제 보유세 예상치가 구체화되면 추가 매물이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그 매물이 어느 정도 가격 조정을 만들지 여부다. 아직 서울 전체 지표는 상승을 유지하고 있어 본격 하락장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상승폭 축소가 길어지고, 한강벨트 핵심지까지 약세 전환이 확인된 만큼 시장의 무게중심이 분명히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서울 아파트 시장은 지금 '전면 상승장'에서 '선별 조정장'으로 국면이 이동하는 초입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강남3구의 약세는 더 이상 국지적 현상이 아니며, 성동·동작 등 한강벨트의 변화는 그 파급력이 이미 확산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세금 부담과 매물 증가, 실수요 재편이라는 세 가지 변수가 동시에 작동하는 만큼 당분간 서울 주택시장은 지역별 온도 차를 키우면서 조정 압력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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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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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발 약세, 한강벨트로 번졌다⋯성동 103주 만에 하락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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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6회)
- 질퍽한 골목의 시학 -묵호 '논골'을 아세요? 이름은 땅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다. 마을 이름, 골목 이름, 고개 이름. 행정이 붙여주는 이름이 있고 삶이 스스로 만드는 이름이 있다. 앞의 이름은 지도 위에 있고 뒤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안에 있다. 지도가 바뀌어도 입안의 이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지명의 질긴 생명력이다. 묵호진동의 언덕 골목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논골'이라 불렀다. 공식 기록에도 구전에도 이 이름은 남아 있다. 동해시 지명지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산 중턱에 논이 있어서 생긴 이름.' 그러나 골목에서 오래 살아온 어르신들의 구전은 조금 다르다. 마을 절반은 뱃사람, 절반 위는 덕장으로 생계를 유지한 마을이라 '질퍽한 흙길 때문에 논골마을이라 불렸다.' 두 가지 해석 중 어느 쪽이 맞는가를 따지는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두 해석 모두 이 땅의 몸을 읽은 결과라는 사실이다. 물이 흐르는 골목 논골 골목이 왜 질퍽했는지를 이해하려면 언덕 꼭대기를 먼저 봐야 한다. 지금은 대부분 장소를 옮기거나 사라진 곳이지만 언덕 가장 높은 곳에는 덕장이 있었다. 오징어와 명태를 말리는 곳. 어부들이 잡아 온 생선을 묵호항에서 덕장까지 나르는 일이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바지게에 지거나 빨간 고무대야에 담아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짐은 무겁다. 그 과정에서 생선 더미에서 떨어지는 바닷물이 골목을 적셨다. 오징어는 특히 물기가 많다. 막 잡아 올린 오징어를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가파른 비탈을 오를 때, 흔들릴 때마다 바닷물이 튀고 흘렀다. 하루에 한 번이 아니었다. 풍어의 계절에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오르내렸다. 골목의 흙은 늘 젖어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젖어 있었다. 그것이 '논골'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이름 안에 당시 마을의 경제 전체가 들어 있다. 골목이 질퍽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선이 많이 오르내렸다는 뜻이고, 생선이 많이 오르내렸다는 것은 어획이 풍성했다는 뜻이고, 어획이 풍성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름 속에 풍요와 고단함이 함께 녹아 있다. 장화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도시의 언어 그래서 생긴 말이 있다. 앞서도 인용했지만, 이 말은 한 번으로 부족하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웃었다. 그러다가 멈췄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묵호에서만 통용되는 실용의 언어였다. 신발이 방수되지 않으면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골목. 젖은 신발로 하루를 보내면 발이 무르고 병이 든다. 장화는 이 마을에서 생존 도구였다. 그리고 이 말은 동시에 비틀린 유머다. 아내보다 장화가 더 필요하다는 과장은, 이 마을에서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웃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묵호 사람들은 그렇게 유머를 썼다. 슬프거나 고단한 것을 직접 말하지 않고, 과장하거나 뒤집어서 웃음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이 마을의 언어 습관이고 생존 미학이다. 논골담길 곳곳에 장화 그림과 장화 소품이 등장하는 것은 이 마을이 통과한 역사의 물질적 상징이다. 아이가 신던 작은 장화에 들꽃을 심어놓은 담벼락 위의 풍경은, 그 장화가 더 이상 질퍽한 골목을 걸을 필요가 없어진 시대를 살고 있는 마을이 과거에 바친 조용한 헌사다. 논골담길이라는 이름을 정하던 날이 생각난다. 2010년 봄, 한국문화원연합회 공모사업에 응모하기로 결심하고 지역 작가들과 머리를 맞댔다. 마을 이름이 논골이니 거기서 시작하자는 것은 금방 합의됐다. 문제는 그 뒤였다. '논골길'은 너무 밋밋했다. '논골마을길'은 길다. '논골산책로'는 이 마을의 결을 배신하는 이름이었다. 산책은 여유 있는 자들의 행위다. 이 골목은 여유가 아니라 생존으로 오르내린 사람들의 땅이다. 산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그 역사를 지우는 일이었다. 글 담당으로 참여한 김정호 작가와 긴 논의 끝에 '담(談)'이라는 글자를 끌어왔다. 이야기가 있는 길. 담장의 담(墻)이 아니라 이야기의 담(談).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소리로 읽으면 '담'은 담장으로도, 이야기로도 들린다. 이 중의성이 좋았다. 담장이 있는 골목이고, 이야기가 있는 골목이고, 그 이야기들이 담장 위에 그림으로 새겨지는 골목. 세 가지 뜻이 하나의 소리 안에 겹쳐 있었다. 논골담길. 입에 올려보니 발음이 자연스러웠다. 기억하기도 쉬웠다. 취재 기자들이 반응했다. "길 이름이 왜 이래요?"가 아니라 "이름이 좋네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이름은 첫 번째 기획이다. 좋은 이름은 설명하지 않아도 방향을 가리킨다. 논골 골목은 좁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어려운 곳이 많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간다. 보면 어느새 다른 골목으로 빠져 있다. 미로처럼 얽혀 있다. 처음 온 사람은 길을 잃는다. 나는 이것이 결점이 아니라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예측을 잃는다는 것이다. 예측을 잃으면 감각이 살아난다. 다음 모퉁이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발걸음이 느려진다. 느린 발걸음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한다. 논골담길을 처음 기획할 때 코스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다. 지도를 주되 헤매도록 내버려두자는 것. 나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완성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완성되는 과정을 돕는 것. 그것이 이 마을이 여행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었다. 실제로 논골담길에서 가장 좋은 장면을 만나는 사람들은 코스를 벗어난 곳에서 그것을 만난다. 해설사가 안내하는 경로 밖에 있는 담벼락, 예상치 못한 골목 끝에서 불쑥 열리는 묵호항의 전망. 길을 잃어야 찾게 되는 것들이 있다. 논골이 바로 그런 종류의 장소다. 질퍽함의 미학 물기가 있는 땅은 생명력이 있다. 건조한 땅에서는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 질퍽한 곳에서 식물이 무성해진다. 논골이 질퍽했던 것은 생선의 물기 때문이었지만, 그 질퍽함은 동시에 이 마을이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마을이 쇠퇴하면서 덕장이 사라지고 골목을 오르내리는 지게꾼이 사라졌다. 골목은 건조해졌다. 비가 올 때만 질퍽해지고, 비가 멈추면 곧 말라버리는 보통의 골목이 됐다. 사람이 줄고 집이 비면서 마을은 점점 건조해졌다. 논골담길이 시작됐을 때 골목에 다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작가들이 왔고 사진가들이 왔고 관광객들이 왔다. 골목이 다시 소리를 냈다. 발소리와 말소리와 웃음소리. 그것은 오징어 물기와는 다른 질퍽함이었지만, 마을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어떤 수분이었다. 문화 기획이 마을에 공급하는 것이 결국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아카이브로서의 지명 지명은 가장 오래된 형식의 아카이브다. 문자가 생기기 전부터 사람들은 장소에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 안에 지형이 있고 역사가 있고 삶의 방식이 있다. 논골이라는 이름 안에 오징어 물기로 젖은 골목이 있고, 지게를 진 남자들이 있고, 빨간 고무대야를 이고 오른 어머니들이 있다. 논문을 쓰면서 나는 지역문화 아카이브의 공공영역이라는 주제를 오래 붙들고 있었다. 아카이브가 공공의 것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전문가만 접근할 수 있는 보관소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를 찾아 읽을 수 있는 살아 있는 기록이 되려면. 논골이라는 이름은 그 답의 일부다. 별도의 데이터베이스가 없어도,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이 없어도, 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 역사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논골담길이라는 길 이름 속에 새겨지고, 해설사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벽화와 이야기로 거듭 태어날 때, 지명 아카이브는 공공의 것이 된다. 이름이 먼저 왔다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이름이 먼저 온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야기 발굴이 있었고, 먼저 마을의 삶이 있었고, 그것을 담을 그릇으로 이름이 만들어졌다. 역순이 아니었다. 이름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내용을 채운 것이 아니었다. 많은 마을 재생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름이 먼저 생기는 것이다. 00 아트빌리지, 00 감성마을, 00 문화거리. 이름이 그럴싸하면 마을의 현실이 거기 맞춰져야 한다는 압력이 생긴다. 마을은 이름의 틀에 끼워 맞춰지고, 결국 이름이 마을을 배신하거나 마을이 이름을 배신하는 사태가 온다. 논골담길은 반대였다. 마을이 먼저였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먼저 모였고, 그 이야기들이 어떤 성격인지를 확인한 뒤에야 이름을 붙였다. 그러니 이름이 마을을 배신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그 이름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논골은 오래전부터 그들의 입안에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 '담길'을 붙인 것뿐이었다. 논골 골목의 흙이 마르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집이 더 비고 사람이 더 떠나면, 언젠가는 오르내리는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름은 남는다. 논골이라는 이름이 남는 한, 한때 이 골목이 오징어 물기로 질퍽했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문화기획이 할 수 있는 일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을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시는 흥하고 쇠한다. 그것이 도시의 운명이다. 그러나 이름을 새기는 것,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가능하다. 묵호가 언젠가 지금과 전혀 다른 도시가 되더라도, 논골담길이라는 이름이 살아 있는 한 이 질퍽한 골목의 기억은 살아 있다. 이름이 집보다 오래 살고, 사람보다 오래 산다. 논골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이 마을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필자 소개> 조연섭 -문화 기획자, 브치 작가, 논골담길 기획 조연섭 작가는 숨겨진 원형을 발굴해 현대적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문화 기획자이자 작가다. 언더그라운드 방송 DJ와 아나운서를 거친 방송인 출신으로, 2004년 동해문화원 공채 사무국장으로 임용 한국문화원국장협의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하고 2025년 12월30일 퇴직했다. 그는 그동안 지역의 역사와 유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구 소멸 시대의 실천적 해법을 제시해 왔다. 그의 기획력은 공간 재생과 로컬 브랜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묵호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청와대에서 창조경제 성공 사례를 발표하며 문화 담론을 주도했다. 또한, 방치된 양조장을 커뮤니티 거점으로 복원한 '강원막걸리학교(막걸리 익는 홍월평)'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와 공동체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구축했다. 예술적 감각 또한 남다르다. 국가유산청 공모로 뮤지컬 '동해의 선선 심동로'와 '동해랑'을 기획하여 지역민에게는 자긍심을, 관광객에게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로컬 콘텐츠의 전형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원상 '창의 인재상'을 받았으며, 전국 문화원 임직원을 대상으로 추진한 지역 문화경영 고급 아카데미 전국 1위와 함께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공론장 '논골담길 커먼즈'와 함께 24시 문화 순환 체계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브런치 작가로서 《논골담길》, 《맨발 걷기》 등의 브런치 북을 발간하며, 현장의 기록을 글에 담아 사람과 공간을 잇는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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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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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6)] 소행성 류구에서 생명의 알파벳 5종 완전 발견
- 인류가 우주 공간에서 직접 퍼 올린 소행성 류구 암석 가루에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모든 유전 알파벳이 발견됐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탐사선 하야부사 2호(Hayabusa2)가 소행성 류구(162173 Ryugu)에서 채취해 지구로 귀환시킨 시료에서, DNA와 RNA를 구성하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우라실(U) 등 다섯 가지 핵심 염기가 모두 확인됐다. 해양연구개발기구(JAMSTEC) 소속 생물지구화학자 코가 토시키(Toshiki Koga) 박사가 이끈 연구팀이 이러한 분석 결과를 지난 16일(현지 시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천문학(Nature Astronomy)》에 발표했다(DOI: 10.1038/s41550-026-02791-z). 지구 생명체의 기원이 척박한 우주 공간에서 날아온 암석에 있다는 이른바 외인성 유기물 전달 가설(exogenous delivery hypothesis)에 또 하나의 강력한 물증이 더해진 셈이다. 이미 지난해 NASA의 오시리스-렉스(OSIRIS-REx) 탐사선이 소행성 벤누(Bennu)에서 가져온 시료에서도 동일한 5종 염기가 검출된 바 있어, 이번 류구 발견은 생명의 분자적 재료가 태양계 전역에 보편적으로 분포하고 있음을 독립적으로 재확인한 결정적 성과로 평가된다. 핵염기란 무엇인가…'생명의 알파벳'을 이해하는 기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DNA(디옥시리보핵산)와 RNA(리보핵산)라는 유전 물질을 설계도로 삼아 생명 활동을 영위한다. 이 정교한 설계도를 작성하는 글자가 바로 핵염기(nucleobase)다. 아데닌과 구아닌은 이중 고리 구조의 퓨린(purine)계, 시토신과 티민 그리고 우라실은 단일 고리 구조의 피리미딘(pyrimidine)계로 분류된다. DNA에서는 아데닌이 티민과, 구아닌이 시토신과 짝을 이루어 이중 나선 구조의 가로대를 형성하고, RNA에서는 티민 대신 우라실이 아데닌과 결합한다. 이들 5종 염기에 당(sugar)과 인산(phosphate)이 결합하면 뉴클레오타이드가 되고, 뉴클레오타이드가 사슬처럼 이어지면 DNA와 RNA라는 거대 분자가 완성된다. 또한 핵염기는 아데노신삼인산(ATP) 등 세포의 에너지 통화를 구성하는 데에도 핵심적으로 관여한다. 한마디로, 핵염기는 생명 현상의 정보 저장·전달·에너지 대사를 관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분자 부품이다. 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거대한 인쇄소를 떠올려 볼 수 있다. 타자기를 친 적이 없는 무인도에서 다섯 가지 핵심 알파벳이 새겨진 금속 활자 블록이 완벽한 세트로 발견된 것과 같다. 글을 쓰는 주체인 지적 생명체가 없더라도, 글자를 구성하는 블록 자체는 우주의 극한 환경에서 화학적 반응만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아미노산이 생명체의 벽돌이라면, 이번에 발견된 염기 5종은 그 벽돌을 어떻게 쌓을지 지시하는 건축 설계도에 해당한다. 20밀리그램의 기적…극소량 시료에서 끌어낸 5종 염기의 완전한 세트 코가 박사 팀이 분석에 사용한 류구 시료는 총 약 20밀리그램에 불과했다. 이는 하야부사 2호가 2018~2019년 류구 표면의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터치다운(착지) 방식으로 채취한 것으로, 첫 번째 지점의 시료와 두 번째 지점의 시료 모두에서 5종 염기가 검출됐다. 연구팀은 극소량 시료에 최적화된 추출 프로토콜을 새로 개발했는데, 뜨거운 물과 염산으로 유기물을 추출한 뒤 액체 크로마토그래피와 고해상도 질량분석법을 결합해 핵염기를 분리·동정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볼티모어카운티캠퍼스(UMBC)의 우주화학자 해나 맥레인(Hannah McLain) 박사(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소속)는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외부 전문가로서, 코가 박사 팀이 기존의 확립된 추출 공정을 극소량 시료에 맞춰 정밀하게 개량한 방법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연구팀은 동위원소 분석 등을 통해 검출된 핵염기가 지구 기원의 오염물질이 아니라 류구 고유의 물질임을 교차 검증했다. 46억 년의 타임캡슐 류구…지구 오염 원천 차단한 '순백의 증거' 이번 발견이 지니는 압도적인 학술적 가치는 샘플의 출처인 류구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류구는 태양계가 처음 형성되던 약 46억 년 전의 물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탄소질(C형) 소행성이다. 지구와 화성 사이의 궤도를 도는 이 팽이 모양의 천체는 지름 약 900미터로, 그 광물학적·원소적 조성이 가장 원시적인 운석 그룹인 CI 콘드라이트와 유사하다. CI 콘드라이트는 초기 태양계의 원소 조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어, 류구를 분석한다는 것은 곧 태양계가 막 태어나던 시절의 화학 조건을 직접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과거에도 지구에 떨어진 운석에서 아미노산이나 일부 염기가 발견된 적은 있다. 1969년 호주 빅토리아주에 떨어진 머치슨(Murchison) 운석이나 1864년 프랑스 남부에 떨어진 오르괴유(Orgueil) 운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운석들은 지구 대기권을 통과해 땅에 떨어지는 과정에서 지구의 토양 미생물이나 화학 물질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지구의 생명 물질이 묻은 것인지, 본래 우주에서 품고 온 것인지 확언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반면 류구 시료는 하야부사 2호가 우주 공간에서 직접 소행성 표면의 흙과 암석을 채취한 뒤, 완벽하게 캡슐에 밀봉하여 2020년 12월 5일 호주 우메라(Woomera) 사막에 착지시킨 것이다. 총 5.4그램의 시료는 극도로 엄격한 무균 환경에서 보관·분석되었다. 다만 2024년 11월 발표된 후속 연구에 따르면, 실험실 환경에서도 지구 미생물이 시료에 급속히 침투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류구 시료의 취급에 여전히 극도의 주의가 필요함이 재확인됐다. 그럼에도 우주 공간에서의 채취-밀봉이라는 과정 자체가 오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점에서 류구 시료의 과학적 신뢰도는 지상 수집 운석과는 비교할 수 없다. 소행성마다 다른 '화학적 레시피'…암모니아가 쥔 미지의 열쇠 코가 박사 팀은 류구의 분석 결과를 머치슨 운석, 오르괴유 운석, 그리고 NASA의 오시리스-렉스 탐사선이 소행성 벤누에서 채취해 온 시료와 정밀하게 대조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차이점이 드러났다. 류구는 퓨린계 염기(아데닌·구아닌)와 피리미딘계 염기(시토신·티민·우라실)의 비율이 엇비슷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퓨린 대 피리미딘 비율 약 1.1~1.2). 반면 머치슨 운석은 퓨린계 염기가 훨씬 풍부했고(비율 약 3.4), 벤누(약 0.55)와 오르괴유 운석(약 0.10)은 피리미딘계 염기를 더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머치슨 운석의 높은 퓨린 비율이 시안화수소(HCN) 중합 경로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는 한편, 류구·벤누·오르괴유에서 나타나는 낮은 퓨린/피리미딘 비율은 HCN 중합과는 다른 대안적 합성 경로가 주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발견은 따로 있었다. 류구, 베누, 오르괴유처럼 광물학적·원소 조성이 유사한 시료들에서 퓨린 대 피리미딘 비율이 암모니아 농도와 강한 역상관관계(R²=0.89)를 보였다는 것이다. 암모니아가 많을수록 피리미딘이 더 풍부해지는 패턴이었다. 연구 제1저자인 코가 토시키 박사는 "기존에 알려진 어떤 염기 합성 메커니즘도 이러한 관계를 예측하지 못했기에, 이는 초기 태양계 물질에서 핵염기가 형성되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경로가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퓨린/피리미딘 비율이 탄소질 소행성과 운석 간의 핵염기 화학적 차이를 구별하는 새로운 분자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뉴질랜드 빅토리아대학교 웰링턴캠퍼스의 모건 케이블(Morgan Cable) 박사는 이 암모니아-염기 비율 간 상관관계 발견을 '독특한(unique) 성과'로 평가하며, '이 발견이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분자들이 최초에 어떻게 형성되어 지구에서 생명의 탄생을 촉진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논평했다. 요소(Urea)의 발견과 'RNA 세계 가설'의 연결고리 이번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지만 과학적으로 중요한 또 하나의 발견은 류구 시료에서 상당량의 요소(urea)가 검출됐다는 점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살반(Salvan) 박사는 이 결과에 특히 높은 관심을 표명하며, '우리 연구팀은 오랫동안 요소가 RNA 구성 블록의 필수 전구체라고 제안해 왔으며, 이번 연구는 우주에서 직접 채취한 시료에 기반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이는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 중 하나인 'RNA 세계 가설(RNA World Hypothesis)'과 직결된다. RNA 세계 가설은 DNA와 단백질이 등장하기 이전에, RNA가 유전 정보의 저장과 촉매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최초의 자기 복제 시스템을 구성했다는 이론이다. 2026년 2월 《사이언스》에 발표된 최신 연구에서는 불과 45개 뉴클레오타이드로 구성된 초소형 RNA 효소(리보자임)가 다른 RNA 가닥을 복제하는 중합효소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이 밝혀져, 자기 복제 RNA 분자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류구에서 발견된 5종 핵염기와 요소는 이러한 RNA 세계의 출발점이 우주 공간에서 이미 준비되어 있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핵염기에 당류와 인산이 결합하면 RNA 분자가 조립될 수 있고, 요소는 이 과정의 핵심 전구체 역할을 한다. 초기 지구에 쏟아진 소행성들이 이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배달했다면, RNA 세계로의 진입 문턱은 종전의 예상보다 현저히 낮아지는 셈이다. 베누와의 비교…두 소행성이 완성하는 퍼즐 이번 류구 연구 결과는 지난 2025년 1월 발표된 벤누 시료 분석 성과와 짝을 이루며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의 대니얼 글래빈(Daniel Glavin) 박사팀이 이끈 베누 분석에서는 5종 핵염기뿐만 아니라 지구 생명체가 단백질 합성에 사용하는 20종 아미노산 가운데 14종, 그리고 예외적으로 풍부한 암모니아가 함께 검출됐다. 베누 시료에서는 이전에 어떤 운석이나 소행성 귀환 시료에서도 발견된 적 없는 15번째 단백질 구성 아미노산인 트립토판(tryptophan)이 잠정적으로 검출되기도 했다. 베누 시료의 질소 함유 헤테로고리 화합물 농도는 류구보다 5~10배 높았으며, 질소-15 동위원소 농축 패턴은 암모니아와 기타 질소 함유 용해성 분자들이 저온의 분자운(molecular cloud)이나 원시행성계 원반의 외곽 영역에서 형성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베누의 모체(parent body)가 목성 궤도 너머의 태양계 외곽, 즉 토성 궤도 이원(以遠)의 극저온 지역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결정적으로, 지구 오염 가능성이 배제된 순수 우주 시료에서 5종 핵염기가 확인된 것은 이제 류구와 베누, 두 곳에서 독립적으로 재현된 결과다. 코가 토시키 박사는 Sky & Telescope와 인터뷰에서 "류구와 베누라는 두 탄소질 소행성 모두에서 5종 핵염기가 검출되었다는 사실은, 이 분자들이 태양계 원시 천체들에 광범위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핵염기가 운석과 소행성 충돌을 통해 초기 지구에 전달되어 생명의 기원에 필요한 유기물 목록에 기여했을 가능성을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생명까지의 거리…여전히 남은 과학적 간극 류구와 베누의 발견이 아무리 흥분되는 성과라 하더라도, 핵염기의 존재가 곧바로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짚을 필요가 있다. 코가 박사 자신도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결과가 류구에 생명이 존재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생명에는 핵염기 외에도 당류(리보스, 디옥시리보스), 인산 화학, 세포막을 구성하는 지질, 에너지 기울기, 그리고 자기 복제로 나아가는 경로 등 훨씬 더 많은 요소가 필요하다. 핵염기가 더 큰 생체 시스템에 어떻게 통합되었는지, 소행성 충돌이라는 극단적 에너지 환경에서 이 분자들이 의미 있는 양만큼 온전하게 지구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도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또한 류구와 베누의 화학 조성이 서로 다르듯, 어느 하나의 소행성이 초기 태양계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핵심적인 메시지는 분명하다. 생명의 설계도 분자가 생물학적 과정 없이도 우주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합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 탄생에 필요한 분자적 전제조건이 지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태양계 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충족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음 목적지…하야부사 2호의 연장 임무와 MMX의 화성 위성 탐사 이 연구 성과를 낳은 하야부사 2호는 아직 임무를 끝내지 않았다. 류구 시료 캡슐을 지구에 투하한 뒤 남은 연료로 연장 임무(Hayabusa2#, SHARP)에 돌입한 이 탐사선은 2026년 7월 S형 소행성 토리후네(98943 Torifune, 구 2001 CC21)에 고속 근접 비행(플라이바이)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 플라이바이는 소행성 충돌 궤도 유도 기술의 시험대로, 지구방위(Planetary Defense) 기술 개발에 직접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후 2031년에는 직경 수십 미터에 불과한 초소형 고속 회전 소행성 1998 KY26과 랑데부할 계획이다. 최근 1998 KY26은 중력 외의 가속이 관측되는 '암흑 혜성(dark comet)'일 가능성이 제기되어 더욱 과학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소행성 시료 귀환 탐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JAXA는 2026년 회계연도에 화성 위성 탐사선 MMX(Martian Moons eXploration)를 발사할 예정이다. 이 탐사선은 화성의 두 위성 가운데 안쪽 위성인 포보스(Phobos)에 착륙하여 표면 물질 10그램 이상을 채취한 뒤 2031년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보스가 포획된 소행성인지, 아니면 화성에 거대 충돌이 일어나 생겨난 파편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핵심 목표로, 만약 전자라면 류구·벤누에서와 유사한 유기물이 발견될 수 있고, 후자라면 화성의 원시 물질에 대한 창을 열게 된다. 나아가 JAXA는 2030년대에 혜성으로부터의 시료 귀환을 목표로 하는 차세대 소천체 시료 귀환 미션(NGSR)도 구상 중이다. 우주는 생명의 씨앗으로 가득 찬 역동적 공간 태양계 형성 초기, 소행성들이 탄생한 위치나 겪어온 열과 물의 작용 등 진화 역사가 제각각이었다. 우주의 다양한 환경에서 각기 다른 비율로 유기물이 합성되었고, 이 다채로운 화학적 다양성을 품은 거대한 암석들이 초기 지구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면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최적의 '원시 수프(primordial soup)'를 완성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호주 커틴대학교의 지구화학자 클리티 그라이스(Kliti Grice) 교수는 《더 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이번 성과의 의미를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 행성 생명의 이야기는 지구의 고대 진흙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주를 떠돌던 차갑고 원시적인 암석의 화학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척박한 암석 덩어리 위에서도 생명의 설계도 분자가 자연적으로 조립될 수 있다면, 적당한 온도와 물을 갖춘 외계의 어느 행성에서도 생명이 싹트지 못할 이유는 없다. NASA의 오시리스-렉스 프로젝트 과학자 제이슨 드워킨(Jason Dworkin) 박사가 남긴 물음이 여운을 남긴다.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제이슨 드워킨(Jason Dworkin) 박사는 "오시리스-렉스의 데이터는 생명의 가능성으로 가득 찬 태양계의 그림에 굵직한 붓질을 더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구에서만 생명을 보고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하는 이유, 그것이야말로 진정 매혹적인 질문이다"고 말했다. 우주는 텅 비어 있는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언제든 생명을 피워낼 준비를 마친 유기물 씨앗들로 가득 찬 역동적인 공간으로서의 본질을 증명해 내고 있다. 【논문 출처】 Toshiki Koga et al., “A complete set of canonical nucleobases in the carbonaceous asteroid (162173) Ryugu,” Nature Astronomy (2026). DOI: 10.1038/s41550-026-02791-z 관련 핵심 선행 논문 • Y. Oba et al., “Uracil in the carbonaceous asteroid (162173) Ryugu,” Nature Communications 14, 1292 (2023). • D.P. Glavin et al., “Abundant ammonia and nitrogen-rich soluble organic matter in samples from asteroid (101955) Bennu,” Nature Astronomy (2025). • Prebiotic organic compounds in samples of asteroid Bennu indicate heterogeneous aqueous alteration, PNAS (2025). 참고 보도 및 기사 Space.com, Phys.org(AFP), C&EN(미국화학회), The Conversation, Smithsonian Magazine, Sky & Telescope, Gizmodo, ZME Science, The Register, Nature Asia, Scimex, JAMSTEC 보도자료, JAXA IS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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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6)] 소행성 류구에서 생명의 알파벳 5종 완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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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獨 '스웜 바이오택틱스', 생체 로봇 바퀴벌레 개발⋯전장 침투의 신지평
- 하늘을 뒤덮은 드론이 현대전의 양상을 바꾼 지 불과 몇 년 만에, 이제 전장의 눈은 인간의 시야가 닿지 않는 '미시적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다. 독일 카셀(Kassel) 소재의 방산 스타트업 스웜 바이오택틱스(SWARM Biotactics)가 살아있는 바퀴벌레와 최첨단 로봇 기술을 결합한 '바이오 하이브리드(Bio-Hybrid)' 정찰 로봇을 선보이며 전 세계 국방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더 디펜스 포스트, 펀자브 케사리 등 외신들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기술은 이미 실험실을 벗어나 NATO 동맹국과의 현장 실증을 완료한 단계에 이르렀다. SF가 현실로…'사이보그 곤충'의 탄생 전장에 바퀴벌레를 투입한다는 발상은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 기술적 배경은 생각보다 오래되고 깊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이미 2006년부터 'HI-MEMS(Hybrid Insect Micro-Electro-Mechanical Systems)' 프로그램을 통해 곤충의 신경계에 전자 장치를 이식하는 연구를 추진해 왔다. 미시간대, 코네노대, 유니콘별레 등 다양한 곤충을 대상으로 원격 조종 실험에 성공했으나, 배터리 수명과 소형화의 벽을 넘지 못해 실전 배치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스웜 바이오택틱스는 이 20년 간의 연구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결정적으로 한 발 더 나아갔다. 2024년 창업한 이 회사는 불과 1년 만에 총 1300만 유로(약 223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술을 연구실에서 건져내 실전 배치 단계로 이행시켰다. 슈테판 빌헬름(Stefan Wilhelm) CEO는 지난 2월 "1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술이 오늘날 NATO 고객에게 현장 테스트를 완료한 상태로 배치되고 있다"고 밝혔다. 어떻게 작동하나…'백팩' 속에 집약된 첨단 기술 이번에 공개된 기술의 핵심은 바퀴벌레의 등에 장착되는 초소형 전자 '백팩'에 있다. 주로 사용되는 곤충은 마다가스카르 휘싱바퀴벌레(Madagascar Hissing Cockroach)로, 체구가 크고 내구성이 강하며 최대 3g의 페이로드를 운반할 수 있어 이 임무에 최적화된 종이다. 통제된 환경에서 2~5년까지 생존할 수 있어 장기 임무에도 적합하다. 백팩에는 다섯 가지 핵심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첫째, 생체전자 신경 인터페이스(Bioelectronic Neural Interface)를 통해 바퀴벌레의 더듬이에 부착된 전극에 미세한 저전압 전기 자극을 가해 이동 방향을 유도한다. CBS 뉴스 60 Minutes에 출연한 빌헬름 CEO는 이를 "바퀴벌레에게 백팩을 지워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살짝 넌지시(nudge)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둘째, 모듈형 센서 페이로드다. 백팩은 임무 성격에 따라 마이크로 카메라, 마이크, 환경 센서(가스·온도 감지), 보안 통신 모듈 등을 자유롭게 교체·조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한 군집 내에서도 개체별로 역할을 분담할 수 있어, 어떤 바퀴벌레는 영상을 찍고, 다른 바퀴벌레는 통신 중계나 위치 파악을 담당하는 식이다. 셋째, 엣지 AI 처리 칩과 군집 자율성 소프트웨어가 탑재되어 있다. 초소형 AI 칩이 수집된 데이터를 사전 필터링해 통신 부하를 줄이고, 군집 조율 알고리즘을 통해 수십 마리의 바퀴벌레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다. 작전 지휘관은 개별 바퀴벌레를 일일이 조종할 필요 없이 목표 지점만 지정하면 군집이 자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전략적 함의…드론이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을 장악하다 군사 전문가들이 이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존의 소형 드론이나 지상 로봇은 붕괴된 건물 내부, GPS 신호가 차단된 지하 시설, 잡초가 무성한 붕괴 현장 등 접근 불가능한 환경에서 물리적 한계를 노출한다. 반면 바퀴벌레는 이러한 환경을 자연스럽게 통과한다. 음향·시각적 신호가 거의 없어 적의 방공망이나 감시 체계에 탐지될 확률이 극히 낮으며, 별도의 배터리나 연료 없이 생체 에너지로 움직이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도 기계식 로봇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빌헬름 CEO는 CBS 인터뷰에서 "이 기술은 다른 어떤 시스템도 제공할 수 없는 능력을 부여한다"며, "거의 탐지가 불가능하고,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되며, 거의 무제한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기계식 로봇은 공장 생산에 의존하지만, 생체 로봇은 원리적으로 번식을 통해 규모를 확장할 수 있어, 대량 배치 시 비용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이점이 있다는 평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기술이 독일 국방비 대폭 확대와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2029년까지 국방비를 1750억 달러(약 262조 원) 규모로 증액하고 NATO 권고 GDP 대비 3.5% 목표를 충족할 계획이며, 빠른 구매 절차를 위한 새로운 법률도 추진 중이다. 스웜 바이오택틱스는 이러한 독일의 방산 혁신 가속화 정책의 직접적 수혜자로 꼽힌다. 전장 너머…재난 구조·산업 검사까지 '이중 용도' 플랫폼 이 '사이보그 바퀴벌레'의 쓰임새는 비단 전쟁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웜 바이오택틱스는 처음부터 군사 정찰, 재난 구조, 산업 시설 검사라는 세 가지 핵심 활용 분야를 제시했다. 지진이나 폭발로 붕괴된 건물에서 매몰된 생존자를 찾는 임무가 대표적이다. 겹겹이 쌓인 잔해 사이를 뚫고 들어가 생존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내장된 센서로 화학물질 누출 여부나 산소 농도 등 환경 데이터를 수집해 구조팀에 전달함으로써 인명 구조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화학물질, 열, 방사선 등 위험한 환경에서도 바퀴벌레는 강한 생존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구역에서의 임무 수행에 특히 강점을 보인다. 한편, 스웜 바이오택틱스는 바퀴벌레에 국한하지 않고 향후 메뚜기와 베짱이 등 다른 곤충으로의 확장도 검토 중이며, 비둘기나 상어 등 더 큰 생물체에 센서를 장착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리적 쟁점과 미래 전망 물론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동물 복지 문제가 가장 먼저 제기되지만, 독일 동물보호법상 곤충은 포유류와 달리 보호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법적 제약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상황이다. 빌헬름 CEO는 "바퀴벌레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며, 임무를 잘 수행하려면 건강하고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며 동물 복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더 민감한 문제는 무기화 가능성이다. 빌헬름은 현재 회사가 정찰과 감시에 집중하고 있으며 폭발물 탑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으나, 미래에 법적 틀 안에서 그러한 활용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사이버 보안 취약성, 무허가 감시 오남용 가능성, 생물무기 규제 프레임워크의 부재 등은 국제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바이오 로보틱스가 더 이상 SF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드론이 하늘을 지배한다면, 바이오 로봇은 적의 발밑과 벽 너머의 정보를 장악할 것이다. 모리츠 슈트루비(Moritz Strube) CTO는 "우리의 목표는 어떤 지형, 위협, 임무에도 적응할 수 있는 확장 가능한 이중 용도 정보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미래 비전을 밝혔다. '살아있는 기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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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獨 '스웜 바이오택틱스', 생체 로봇 바퀴벌레 개발⋯전장 침투의 신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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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금리 2연속 동결⋯한은 '2.50% 장기 고정' 시나리오 부상
-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두 차례 연속 동결하면서 한국은행 역시 당분간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연준은 17~18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정책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관세와 에너지 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 기대 상승 가능성을 주요 배경으로 지목했다. 이에 따라 한미 금리 격차는 1.25%포인트(p)로 유지됐다. 한국은행도 유가 급등과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압력을 고려해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할 전망이다. 2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1% 상승하며 8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특히 원유(9.8%)와 제트유(10.8%) 가격이 크게 올랐다. 원/달러 환율은 19일 장중 1,500원을 돌파하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중동발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한은의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미니해설] 미국 금리에 묶인 한국, 선택지는 좁아졌다…'고유가·환율·집값' 3중 압박 미국 연준의 연속 금리 동결은 단순한 '숨 고르기'가 아니라 글로벌 통화정책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신호로 읽힌다. 특히 이번 결정은 한국은행의 정책 공간을 크게 제약하며, 사실상 '금리 동결 장기화' 시나리오를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준 '인플레 경계' 신호⋯금리 인하 기대 후퇴 연준은 이번 FOMC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유지했다. 표면적으로는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결정이지만, 그 배경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제롬 파월 의장은 "코로나19, 관세 충격에 이어 이제는 에너지 충격이라는 새로운 불확실성에 직면했다"고 언급하며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의 재확산 가능성을 강하게 경고했다. 실제로 연준은 올해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 전망을 2.5%에서 2.7%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금리 인하 사이클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한국에 그대로 '정책 제약'으로 전이된다는 점이다. 현재 한미 금리 격차는 1.25%포인트 수준이다. 만약 한국은행이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경우, 이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이는 외국인 자금 유출과 원화 약세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이미 1,500원선을 넘나들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금리를 낮추는 순간 환율 상승 압력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환율 1,500원 압박⋯한은 통화정책 공간 축소 여기에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더해지며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국제 유가는 급등했고, 이는 곧바로 한국의 수입물가를 자극했다. 2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1% 상승하며 8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원유, 나프타, 제트유 등 에너지 관련 품목 가격이 두 자릿수에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다. 더 주목할 점은 이 수치에 '전쟁의 직접 영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3월 들어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는 50% 이상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은 곧 소비자물가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가격은 시차 없이 휘발유, 경유 등 생활물가에 반영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수입물가 상승은 향후 물가 상승의 '전조'에 가깝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율 변수도 정책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최근 환율 상승은 단순한 달러 강세가 아니라 '위험 회피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중동 리스크 확대와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증가 속에서 달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충격에 더욱 취약하다.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경우, 원화 가치 하락과 자본 유출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배경이다. 고유가·집값 변수 겹쳐⋯'금리 동결 장기화' 불가피 여기에 국내 요인까지 겹쳐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시장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주택가격 상승세가 비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리를 낮출 경우 다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정책 부담이다. 결국 한은은 '물가·환율·부동산'이라는 세 가지 변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한은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강화되고 있다. 금통위원들은 최근 발언에서 "특정 방향의 정책 신호를 주기보다 데이터와 대외 여건을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점도표에서도 6개월 후 기준금리를 2.50%로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사실상 '동결 장기화'에 대한 내부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의미한다. 중동 전쟁 장기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다만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가장 큰 리스크는 '전쟁의 장기화'다. 만약 이란 사태가 단기간에 종료되지 않고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중앙은행은 경기 부양과 물가 안정이라는 상충된 목표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NH금융연구소는 전쟁이 1년 이상 지속될 경우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통화정책 환경은 '선택지가 줄어든 상태'로 요약된다. 금리를 내리자니 환율과 물가가 부담이고,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 둔화가 우려된다. 동결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지만, 그것이 최선의 해법은 아니다. 이번 연준의 결정은 한국은행에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다. 지금은 방향을 바꾸기보다 버티는 구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버티기의 비용은 점점 커지고 있다. 고유가, 고환율, 고금리라는 '3중 압박' 속에서 한국 경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향후 정책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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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금리 2연속 동결⋯한은 '2.50% 장기 고정' 시나리오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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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레이더] 코스피 5.04% 급등, 5900선 재돌파⋯'20만 전자·100만 닉스' 동반 회복
- 코스피가 18일 반도체주 급등에 힘입어 5% 넘게 상승하며 5,900선을 재돌파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284.55포인트(5.04%) 오른 5,925.03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126.62포인트(2.24%) 상승한 5,767.10으로 출발해 장중 상승폭을 확대했다. 오후 2시 34분에는 코스피200선물 급등(5.08%)으로 프로그램 매수호가 효력을 5분간 정지하는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닥은 27.44포인트(2.41%) 오른 1,164.38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10.5원(-0.70%) 내린 1,483.1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7.53%)와 SK하이닉스(8.87%)가 급등하며 각각 20만 원, 100만 원을 회복했다. 현대차(4.41%), 기아(4.66%) 등 주요 종목도 동반 상승했다. [미니해설] 반도체가 끌고 외국인이 밀었다…'5% 급등장'의 구조적 의미 코스피가 하루 만에 5% 넘게 급등하며 5,900선을 회복한 배경에는 단순한 기술적 반등을 넘어선 '수급·업종·매크로' 3박자의 결합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업종이 시장의 중심축으로 복귀하면서 상승장의 질이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수급 측면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수세가 결정적이었다. 장중 외국인은 현물과 선물 시장에서 동시에 매수 우위를 보였고, 기관 역시 1조 원대 대규모 순매수를 기록하며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반면 개인은 2조 원 이상 순매도에 나서며 전형적인 '상승장 수급 구조'가 형성됐다. 이는 단기 반등이 아닌 추세 전환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업종별로는 반도체 '투톱'의 폭발력이 시장을 압도했다. 삼성전자(7.53%)와 SK하이닉스(8.87%)가 급등해 각각 208,500원과 1,056,000원으로 마감하면서 각각 '20만 전자', '100만 닉스'를 회복해 투자심리가 급격히 개선됐다. 이는 단순한 가격 반등이 아니라 글로벌 메모리 업황 개선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특히 미국 마이크론이 실적 기대감 속 4.50% 상승한 점은 국내 반도체주에도 강한 상승 모멘텀으로 작용했다. 자동차, 2차전지 등 시가총액 상위 업종도 동반 상승하며 시장 전반의 '리스크 온' 분위기를 강화했다. 현대차(4.41%), 기아(4.66%) 등 완성차 업종은 글로벌 수요 회복 기대가 반영됐고, LG화학(4.07%), 삼성SDI(4.11%) 등 배터리 관련주도 상승 흐름에 합류했다.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0.43%)는 차익실현 매물 영향으로 소폭 하락했다. 이날 장중 사이드카 발동은 시장 과열 신호이면서 동시에 강한 매수세의 증거로 읽힌다. 코스피200 선물이 5.08% 급등하며 프로그램 매수호가가 일시 정지된 것은 지난 10일 이후 6거래일 만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의미하지만, 반대로 시장의 방향성이 '상방'으로 기울어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매크로 환경도 증시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유조선 통행이 일부 재개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완화됐다. 이에 따라 국제 유가 상승 압력이 다소 진정됐고, 이는 글로벌 증시 전반의 투자심리 개선으로 이어졌다. 간밤 뉴욕증시 역시 다우(0.10%),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0.25%), 나스닥(0.47%)이 일제히 상승하며 국내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환율 역시 증시에 우호적인 흐름을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10.5원(-0.70%) 하락한 1,483.1원을 기록하며 외국인 자금 유입 여건을 개선했다. 달러인덱스가 100선 아래로 내려오며 약세 흐름을 보인 점도 위험자산 선호를 자극한 요인이다. 다만 중동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환율의 하방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향후 시장의 핵심 변수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다. 시장은 금리 동결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나, 연준이 중동발 인플레이션 압력과 경기 둔화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힌트가 제시될 경우, 글로벌 유동성 환경이 다시 한 번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이유정 하나은행 연구원은 "연준이 중동 사태로 인한 물가 상방 압력과 성장 둔화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해 향후 정책 경로에 신중한 태도를 견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시장 전반의 관망 심리는 환율의 하락 폭을 제한할 요인"이라며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지속되는 점도 환율의 하방 경직성을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코스피 급등은 단순한 이벤트성 반등이 아니라,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와 외국인 수급 회복, 매크로 불확실성 완화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평가된다. 다만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과 이벤트 리스크를 감안할 때, 향후 시장은 '속도 조절 속 추세 확인'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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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레이더] 코스피 5.04% 급등, 5900선 재돌파⋯'20만 전자·100만 닉스' 동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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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까? 말까?(132)] "체중 20% 감량 효과"⋯비만 치료제의 반전, 끊으면 '근육'부터 빠질 수 있다
- 비만 치료제로 각광받는 '오젬픽(Ozempic)' 계열 약물이 강력한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는 가운데, 복용 중단 이후 체중이 빠르게 다시 증가하고, 체중 감소 중에서 근육량과 지방량의 비율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의료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과학 전문 매체 사이언스 얼럿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이 학술지 이클리니컬메디슨(eClinicalMedicine)에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와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 등 GLP-1 계열 약물을 중단한 환자들은 1년 내 감량 체중의 약 60%를 다시 회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부 환자는 감량 체중의 약 25% 수준을 유지하는 경향도 확인됐다. 문제는 감량 및 재증가된 체중의 '질'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치료 기간 동안 줄어든 체중의 최대 40~60%가 근육 등 제지방(lean mass)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연구를 공동 주도한 브라얀 부디니 연구원은 "체중이 다시 늘어날 때 지방 비율이 더 높아진다면 건강 상태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GLP-1 계열 약물은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높이는 호르몬을 모방해 체중 감소를 유도한다. 실제로 일부 환자는 체중의 20% 이상을 감량하는 효과를 경험한다. 그러나 위장 장애, 고가의 비용, 처방 제한 등의 이유로 환자의 절반가량이 1년 내 복용을 중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총 48건의 기존 연구를 검토한 뒤, 100명 이상이 참여한 무작위 대조시험(RCT) 등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6개 연구(총 3200여 명)를 선별해 분석했다. 이들 연구는 약물 중단 이후 최대 52주까지 체중 변화를 추적했다. 분석 결과, 체중은 약물 중단 직후 빠르게 증가한 뒤 점차 증가 속도가 둔화되는 패턴을 보였다. 약 60주 이후에는 증가세가 정체되며, 최종적으로 감량 체중의 약 75% 수준까지 회복되는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식습관 개선이나 호르몬 변화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근육과 지방의 회복 속도 차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개발된 고효능 약물일수록 근육 보존 효과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단순한 약물 의존이 아닌 장기적인 체중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복용 중단 시 용량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방식과 함께 식이요법 및 운동을 병행해야 체중과 체성분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 저자인 스티븐 루오 연구원은 "약물에만 의존하기보다 식습관과 운동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는 약물 중단 이후에도 건강한 체중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비만 치료제의 효과뿐 아니라 '이후 관리'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향후 치료 가이드라인과 처방 전략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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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까? 말까?(132)] "체중 20% 감량 효과"⋯비만 치료제의 반전, 끊으면 '근육'부터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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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발의 사람과 결(5)] 결핍과 욕망의 변주곡-전쟁
- 결핍과 욕망의 변주곡-전쟁 현대사의 시작을 알린 국가란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으로 국가의 주인이 왕이 아닌 시민임을 선포하면서 탄생했습니다. 그런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주권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두면서, 국경선도 단순한 선이 아닌 자원과 생존권이 직결된 날선 경계선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인 주권은 민주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주권이 누구에게 있고 어떻게 행사되는지에 따라 역사의 흐름이 바뀌어 왔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도 지도자 한 명의 야욕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지정학적 결핍의 산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륙국이 바다로 나가기 위해 부동항(바닷물의 표면이 얼지 않는 항구)을 갈구하고, 에너지 자원을 독점하여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려는 시도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경제적 풍요가 곧 국력인 시대에 자원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몰락과 정체성의 충돌이후 냉전 시대의 종식은 인류에게 평화를 약속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벽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파편화되고 날 선 정체성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문명의 충돌』을 쓴 사무엘 헌팅턴이 예견했듯이 현대의 전쟁은 문명과 문명, 종교와 종교, 인종과 인종 사이의 미시적인 균열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전쟁이 영토 확장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졌다면, 현대의 전쟁은 우리와 저들을 구분 짓는 혐오와 공포를 먹고 자라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정보를 공유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타자에 대한 적대감을 순식간에 증폭시키는 확성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고립된 집단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받기 위해 선택하는 손쉬운 방법은 공동의 적을 상정하고 무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쟁은 정치적 수단을 넘어 집단적 존재 증명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현대 전쟁은 기술 역설의 연속성을 논할 때 경제적 구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경고했던 군사 공업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는 현대 국가 경제의 거대한 축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파괴적인 행위인 동시에 누군가에겐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거대한 시장이기도 합니다. 무기 체계의 고도화는 전쟁의 문턱을 낮추는 역설을 낳았습니다. 드론과 미사일 기술의 발전은 피를 적게 흘리는 전쟁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정치 지도자들이 무력 사용을 결정할 때 느끼는 도덕적 부채감을 경감시키기도 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전쟁은 더 정교해지고, 더 은밀해지며, 결과적으로는 더 지속적인 형태를 띠게 된 것입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기를 만드는 행위가 다시 전쟁을 부르는 안보적 딜레마는 현대사가 직면한 가장 아픈 모순 중 하나입니다. 이렇듯 전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인간의 망각에 있습니다. 참혹한 전쟁을 겪은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전쟁의 고통은 추상적인 기록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평화가 길어질수록 그것을 당연한 공기처럼 여기는 세대는 전쟁을 일종의 게임이나 해결책으로 오판하기 쉽습니다. 현대사의 비극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배운 것을 너무 빨리 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전쟁은 인간의 이성이 마비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차가운 계산과 뜨거운 감정이 뒤섞여 합리적이라고 착각하는 순간에 터져 나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평화를 외치지만, 그 외침의 기저에는 상대를 굴복시켜야만 내가 안전할 수 있다는 원시적인 공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현대사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인간 본성의 결함이라기보다 우리가 구축한 현대 문명의 구조적 결함에 가깝습니다. 국가라는 틀, 자원의 한계, 정체성의 벽, 경제적 이윤, 이런 엔진들이 맞물려 전쟁이라는 기계를 계속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비극적인 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반전(反戰) 구호를 넘어, 국경과 이익을 초월한 새로운 인류적 연대의 틀을 고민해야만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일어나게끔 방치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때입니다. <필자 소개> 이위발 1959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지난밤에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 출간했습니다.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과 『솜솜한 인연』을 펴냈으며, 안동문화100선 『이육사』를 출간했습니다.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웹진 《엄브렐라》 주간과 한국디카시인협회 경북지부장을 맡아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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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발의 사람과 결(5)] 결핍과 욕망의 변주곡-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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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유가 5% 급락에 기술주 되살아나⋯뉴욕증시, 3주 낙폭 만회 시도
- 뉴욕증시가 사흘째 이어진 불안 장세를 털고 반등에 성공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내려오자 그동안 전쟁 리스크와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에 짓눌렸던 기술주가 일제히 살아나면서 지수를 끌어올렸다. 16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387.94포인트(0.83%) 오른 4만6946.41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01% 상승한 6699.38, 나스닥지수는 1.22% 뛴 2만2374.18에 마감했다. 3대 지수가 모두 1% 안팎의 반등을 기록한 것은 3주 만이다. 유가 급락이 신호탄이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5.28% 내린 배럴당 93.50달러에 마감했고, 브렌트유는 2.84% 떨어진 100.2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이 이란 유조선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일부 용인하고, 다국적 선박 호위 구상도 곧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가를 눌렀다. 브렌트유가 100달러 선 위에 간신히 걸쳐 있다는 점은 여전히 부담 요인이다. 유가가 밀리자 기술주가 곧바로 반응했다. 메타는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 보도 속에 2% 넘게 올랐고, 엔비디아는 GTC 콘퍼런스 개막 기대를 타고 1% 이상 상승했다. S&P500 11개 업종이 모두 상승권에 들었다. 다만 반등의 질은 충분치 않았다. 다우는 장중 600포인트 이상 오르다 종가 기준 상승폭이 크게 줄었고, S&P500·나스닥도 장중 고점보다 오름폭이 축소됐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거래량은 모두 평균을 밑돌았다. 월가는 이를 추세 반전이 아닌 숨 고르기 성격의 반등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미니해설] "유가만 꺾이면 산다"는 월가…그러나 이번 반등도 아직은 미완 이날 반등의 본질은 실적 기대나 경기 자신감의 회복이 아니었다. 유가 급등세가 일단 진정됐다는 안도감이었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브렌트유는 105달러를 넘봤고 WTI도 100달러를 웃돌았다. 이 수준의 유가는 단순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아니다. 연준의 금리 경로, 기업 마진, 소비 심리, 운송비와 항공유, 심지어 미국 내 정치 변수까지 동시에 건드리는 복합 충격이다. 주가가 본격적으로 살아난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이 사실상 거의 끝났다"는 발언 직후가 아니었다. 유가가 내려오기 시작한 뒤였다. 시장이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정학 뉴스 헤드라인이 아니라 90~100달러대 유가의 고착이라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유가가 높은 수준에서 오래 머물면 휘발유 가격과 물류비가 오르고, 소비 둔화와 기업 이익 하향이 뒤따른다. 연준 입장에서도 성장 둔화 조짐이 보여도 유가가 인플레이션 기대를 자극하면 금리를 서둘러 내릴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유가 100달러 시대, 연준보다 더 큰 변수로 올라섰다 원래 이번 주 시장의 중심축은 연준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유가를 100달러 위로 밀어 올리면서 금리보다 유가가 더 중요한 변수로 자리를 바꿨다. 미국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통행 보호에 나서고, 동맹국들과의 해상 호위 협의가 진행된다는 소식은 분명 안도 재료다. 그러나 실제로 물류 흐름이 얼마나 빠르게 정상화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다른 나라들의 참여가 "덜 열성적"이라고 표현했다. 브렌트유가 100달러선 위에 남아 있는 한 증시는 매일 유가를 확인하며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반등의 축은 결국 메가캡 기술주였다. 메타의 구조조정 가능성은 비용 통제 기대를, 엔비디아의 GTC 개막은 AI 투자 지속성에 대한 기대를 자극했다. 최근 시장은 AI 관련주를 무조건 사들이는 국면에서 벗어나, 누가 진짜 승자이고 누가 과잉투자의 희생양이 될지를 가려내는 선별의 장으로 이동했다. 이날 반등은 'AI 회의론 해소'가 아니라 '실적과 현금창출력이 받쳐주는 AI 핵심주 재평가'에 가깝다. 거래량이 약했다는 점은 이번 반등의 한계를 분명히 말해준다. 추세 전환으로 평가받으려면 가격뿐 아니라 거래량이 동반돼야 한다. 그러나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거래량은 모두 평균을 밑돌았다. 다우가 한때 600포인트 넘게 올랐다가 종가 387포인트 상승으로 줄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자자들이 "너무 많이 밀렸으니 되사는" 단기 매매에는 나섰지만, 전쟁·유가·연준이라는 세 개의 큰 변수가 정리되기 전까지는 강한 방향성 베팅을 자제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번 반등의 진짜 시험대는 '유가 하락의 지속성'이다 연준의 통화정책도 결국 유가의 그림자 아래 놓여 있다. 시장은 경기 둔화와 금리 인하 기대를 동시에 가격에 반영해 왔다. 하지만 중동발 에너지 충격이 장기화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성장 둔화 우려는 커지는데 물가도 함께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형 충격이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하루 반등했어도 완전히 편안해하지 못한 이유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브렌트유가 100달러 아래로 안착하느냐. 둘째,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물동량 회복으로 이어지느냐. 셋째, 이번 주 엔비디아 GTC와 각종 AI 이벤트가 다시 위험자산 선호를 자극하느냐다. 전쟁 뉴스는 헤드라인을 흔들고, 유가는 밸류에이션을 흔들며, 기술주는 그 사이에서 반등의 선봉에 선다. 16일 뉴욕증시 반등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도 분명하다. 아직은 추세 반전이 아니라, 유가와 공포가 잠시 숨을 고른 틈을 탄 반사 반등에 가깝다. 월가는 지금도 "끝났는가"보다 "버틸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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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유가 5% 급락에 기술주 되살아나⋯뉴욕증시, 3주 낙폭 만회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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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레이더] 코스피, 반도체 쌍끌이에 1%대 반등⋯코스닥은 1%대 하락
- 코스피가 16일 장중 급등락을 거듭하는 널뛰기 장세 끝에 1%대 상승 마감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62.61포인트(1.14%) 오른 5549.85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23.58포인트(0.43%) 오른 5510.82로 출발해 한때 5561.42까지 올랐지만 상승폭을 대부분 반납하며 장중 5500선 아래로 밀리기도 했다. 반면 코스닥은 14.67포인트(-1.27%) 내린 1138.29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1497.5원(+3.8원)으로 올라 고유가와 환율 부담이 시장 전반을 짓눌렀다. 삼성전자(2.94%)와 SK하이닉스(7.03%)가 강세를 이끌었지만 현대차(-2.13%), 기아(-1.40%), LG에너지솔루션(-0.81%), 한화오션(-3.65%)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 다수는 약세를 보였다. [미니해설] 반도체만 웃은 날…코스피 반등 속 드러난 증시의 불안한 균열 코스피가 16일 하루 종일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크게 흔들리다가 결국 1% 넘는 상승률로 거래를 마쳤다. 마감 수치만 보면 반등에 성공한 하루였지만, 시장 내부를 들여다보면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반도체 대형주가 지수를 끌어올렸을 뿐 자동차, 2차전지, 방산, 바이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 상당수는 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코스닥은 오히려 1% 넘게 밀렸다. 겉으로는 반등, 속으로는 편중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장세였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62.61포인트(1.14%) 오른 5549.85에 마감했다. 출발도 나쁘지 않았다. 장 초반 5510선에서 시작한 지수는 한때 5561.42까지 올라 반등 기대를 키웠다. 하지만 추가 상승 탄력이 붙지 않으면서 이내 상승폭을 줄였고, 한때 5500선 아래로 내려앉는 등 불안한 흐름을 노출했다. 투자자들이 어느 한쪽으로 확신을 갖고 매수하기보다, 장중 유가와 환율, 해외 변수에 반응하며 짧게 사고파는 흐름이 강했다는 뜻이다. 이날 시장을 흔든 가장 큰 배경은 여전히 중동발 리스크였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와 미국의 이란 공습 여파가 이어지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의 고공행진을 지속했고, 이는 한국 증시에 이중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나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이고, 다른 하나는 원/달러 환율 급등이다. 실제로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0원을 넘어섰다가 1497.5원(+3.8원)에 마감했다. 주간거래 장중 환율이 1500원을 넘은 것은 금융위기 국면이던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한국 시장 입장에서는 외국인 자금 흐름을 흔들고 수입물가 부담을 키우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그런데도 코스피가 플러스로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 대형주의 힘이 컸다. 삼성전자는 2.83% 오른 188.700원으로 마감했고, SK하이닉스는 7.03% 급등해 974,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는 지수 방향을 가르는 핵심 축이 다시 반도체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인공지능(AI) 서버,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수요 기대가 이어지면서 다른 업종이 흔들려도 반도체가 지수를 떠받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강한 상승은 단순한 기술적 반등을 넘어 시장이 다시 AI 메모리 성장 스토리에 프리미엄을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날 장세를 건강한 상승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도체 두 종목의 상승이 지수를 끌어올렸지만, 시장 전반의 체력은 오히려 약했다. 현대차(-2.13%), 기아(-1.40%) 등 자동차주가 밀렸고, LG에너지솔루션(-0.81%), 삼성SDI(-1.29%) 등 2차전지주도 부진했다. 두산에너빌리티(-0.75%), 한화에어로스페이스(-0.81%), 한화오션(-3.65%), 현대로템(-2.67%) 등 방산·중공업주도 약세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1.51%)를 비롯한 바이오주도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코스피 상승은 시장 전체의 위험 선호 회복이라기보다 일부 대형 기술주의 독주에 가까웠다. 코스닥의 부진은 이런 불균형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코스닥은 14.67포인트(-1.27%) 내린 1138.29에 장을 마쳤다. 통상 코스닥은 성장주와 중소형주의 투자심리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코스닥이 약하다는 것은 개인투자자 중심의 위험 선호가 충분히 살아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형 반도체를 제외하면 투자자들이 아직 중소형 성장주 전반으로 매수 범위를 넓히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코스피의 반등이 시장 전체의 낙관론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해외 증시 여건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지난주 말 뉴욕증시 3대 지수는 모두 하락 마감했다. 다우지수(-0.2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0.61%), 나스닥(-0.93%)이 일제히 밀린 것은 중동 불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국 성장 둔화 우려와 인플레이션 재가열 가능성이 겹쳤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가 흔들리면 한국 시장은 통상 외국인 수급과 환율 경로를 통해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날 국내 증시가 장 초반 상승폭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린 것도 이런 대외 변수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환율은 지금 한국 증시의 가장 민감한 변수 중 하나다. 1,500원에 근접한 환율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심리적 압박을 준다. 수입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외국인 입장에서는 환차손 우려가 확대된다. 물론 일부 수출주는 환율 상승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유가 급등과 함께 움직이는 환율 상승은 대체로 경기 불안과 위험 회피 심리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만 해석하기 어렵다. 당국 개입 경계감과 수출업체 네고 물량이 상단을 다소 눌렀지만, 유가가 쉽게 안정되지 않으면 환율은 다시 1500원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날 국내 증시는 '지수 반등'과 '시장 불안'이 동시에 나타난 하루로 요약된다. 코스피(1.14%)는 올랐지만, 코스닥(-1.27%)은 내렸고, 지수 상승의 과실도 반도체에 집중됐다. 삼성전자(2.94%)와 SK하이닉스(7.03%)가 아니었다면 코스피도 훨씬 약한 흐름을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반도체 중심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 확인됐지만, 동시에 시장 전체가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안정될 수 있는지다. 둘째,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다시 돌파할지 여부다. 셋째, 반도체 외 업종으로 매수세가 확산될 수 있는지다. 이 세 조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아직 명확히 해소되지 않았다. 현재 시장은 반도체의 강한 실적 기대와 중동 리스크, 고유가, 고환율이라는 거센 역풍이 맞부딪히는 국면에 놓여 있다. 지수는 올랐지만 투자자들이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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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레이더] 코스피, 반도체 쌍끌이에 1%대 반등⋯코스닥은 1%대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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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전쟁發 유가 폭등⋯석유제품·화학업계 직격탄,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
-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촉발한 국제유가 급등이 국내 제조업 전반을 압박하는 가운데, 석유제품 산업이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반되는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산업연구원은 16일 발표한 '미국·이란 전쟁의 리스크 확산과 한국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전망을 내놨다. 유가, 개전 이후 40% 폭등…"한국, 구조적 취약성 노출"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지정학적 불안이 고조되면서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는 개전 이전 배럴당 72달러에서 지난 6일 103달러까지 치솟았다. 불과 수일 만에 40% 이상 급등한 수치다. 문제는 한국의 에너지 수입 구조가 이 같은 충격에 유독 취약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전체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으며, 수입 물량 대부분이 이란·이라크·오만 등을 잇는 해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분쟁이 확대돼 해협 통행이 제한될 경우 에너지 공급망 불안과 원가 상승 압력이 동시에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가 10% 오르면 제조업 생산비 0.71%↑…석유제품은 6.3% '직격' 산업연구원의 정량 분석 결과,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때 국내 제조업 평균 생산비는 약 0.71%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만 보면 완만해 보이지만, 업종별 편차는 극명했다. 가장 큰 직격탄을 맞는 곳은 석유제품 산업이다. 생산비 증가율이 6.30% 에 달해 주요 제조업 가운데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원유를 핵심 원료로 사용하는 산업 특성상, 원유 가격 상승이 생산 원가로 곧바로 전이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어 화학제품 산업이 1.59%, 고무·플라스틱 산업이 0.46% 의 생산비 증가가 예상됐다.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산업군이 집중적으로 타격을 받는 양상이다. 직접 무역 충격은 제한적…그러나 간접 파장은 '불가피' 한국 전체 수출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3%에 불과해, 교역 단절에 따른 직접적인 수출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으로 해상 물류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운송비 상승, 납기 지연, 공급망 교란 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수출 경쟁력에 간접적이지만 광범위한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경고했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유의해야"…맞춤형 산업 대응 체계 주문 보고서가 가장 무게를 두고 경고하는 시나리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국제유가 상승이 장기화하면 원자재 가격 상승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이는 동시에 기업 수익성을 악화시켜 글로벌 경기 둔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 최악의 시나리오는 금리 인하도 금리 인상도 손쉽게 선택할 수 없는 정책 딜레마를 초래한다. 홍성욱 산업경제데이터분석실장은 "국제유가 상승 장기화에 따른 제조업 비용 증가와 물가 상승 압력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산업별 에너지 의존도와 공급망 구조를 면밀히 고려한 맞춤형 산업 대응 및 기업 지원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번 보고서는 현재 진행형인 미·이란 전쟁 상황을 배경으로 작성된 것으로, 전황 전개에 따라 분석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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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전쟁發 유가 폭등⋯석유제품·화학업계 직격탄,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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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역습(200)] 사하라의 모래폭풍, 유럽 하늘을 덮치다⋯'붉은 비'가 드러낸 기후위기의 민낯
- 기후 변화로 사하라 사막에서 일어난 먼지 구름이 약 9일 만에 북유럽까지 널리 퍼진 것으로 나타났다. 12일(현지시간) 미 항공우주국(나사·NASA)에 따르면 2026년 3월, 사하라 사막에서 일어난 겨울 바람은 대규모 먼지 구름을 일으켜 지중해를 향해 북상시켰고, 이 먼지는 유럽 전역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했다. 특히 수분을 머금은 기압계와 맞물리면서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일부 지역에는 흙빛을 띤 이른바 '더러운 비'가 쏟아졌다. NASA는 유럽 하늘에서 내린 것은 단순한 봄비가 아니라, 북아프리카의 사막이 실어 보낸 미세한 입자들이었다고 밝혔다. NASA가 이날 공개한 3월 1일부터 9일까지의 먼지 농도와 이동 경로를 담은 애니메이션은 이 현상의 규모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는 대기 기둥 안에 포함된 먼지의 양을 뜻하는 '먼지 기둥 질량 밀도(dust column mass density)'가 반영됐다. 이 자료는 NASA의 고다드 지구관측시스템(GEOS) 모델 계열을 바탕으로 제작됐으며, 위성 관측 자료와 대기 중 물리 과정을 설명하는 수학적 방정식을 결합해 산출됐다. 영상에 따르면 북서아프리카에서 발원한 먼지 기둥은 한 갈래로는 대서양 서쪽으로, 다른 한 갈래로는 지중해 북쪽으로 흘러들었다. 며칠 사이 먼지층은 서유럽 하늘 전역으로 번졌고, 남부 잉글랜드에서는 태양이 떠오르고 지는 순간마저 음산한 색조로 물들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알프스에서는 마터호른 주변까지 먼지층이 스며들며, 고산 지대의 청명한 하늘마저 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먼지가 공중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폭풍과 만나 비와 함께 지표로 떨어졌고, 거리와 차량, 창문과 지붕 위에는 갈색 잔여물이 얇게 내려앉았다. 포르투갈 기상청이 '폭풍 레지나(Storm Regina)'로 명명한 저기압계가 이베리아반도를 통과하면서, 3월 초 스페인 남부와 동부, 프랑스 일부, 영국 남부에는 이른바 '피의 비(blood rain)' 현상까지 나타났다고 전해졌다. 대기 중 먼지가 강수와 결합할 때 기상이 어떻게 일상의 감각을 바꾸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지중해 상공에서는 보다 높은 고도에서 '먼지 낀 권운(dusty cirrus)' 구름대도 발달했다. 스위스 연방기상기후청 메테오스위스에 따르면, 대기 중 먼지 입자는 얼음 결정이 맺히는 응결핵 역할을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이 구름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는지, 또 날씨와 기후, 나아가 태양광 발전 효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분석은 사하라발 먼지가 에너지 시스템에도 적잖은 충격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NASA의 메라-2(MERRA-2), 모디스(MODIS) 관측 자료, 기타 위성 산출물을 활용해 헝가리 태양광 발전에 미치는 공중 먼지의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먼지가 많은 날 태양광 발전 성능은 46%까지 떨어졌고, 먼지 농도가 낮은 날의 75% 이상과 비교하면 급격한 저하가 확인됐다. 연구진은 그 가장 큰 원인으로 먼지가 권운의 형성과 반사도를 강화해 태양광 패널에 도달하는 복사 에너지를 줄였다는 점을 지목했다. 사하라 사막의 먼지는 이제 더 이상 남쪽 하늘에만 머무는 현상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럽에서는 겨울철 먼지 유입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연구자들은 북서아프리카의 평년보다 건조한 상태와, 사하라에서 북쪽으로 바람을 더 자주 밀어 올리는 기상 패턴을 그 배경으로 제시했다. 유럽 하늘을 붉고 탁하게 물들인 이번 현상은,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위기가 단지 기온 상승이나 폭염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드러낸다. 사막의 먼지는 국경에 관계없이 이동했고, 비의 색을 바꾸고, 설산의 풍경을 흐리게 만들었으며, 태양광 발전의 효율마저 떨어뜨렸다. 기후 변화로 인한 기후의 역습은 때로 불길한 붉은 비의 형태로, 때로는 보이지 않는 대기 입자의 그림자로 우리 일상과 산업의 한복판에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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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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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역습(200)] 사하라의 모래폭풍, 유럽 하늘을 덮치다⋯'붉은 비'가 드러낸 기후위기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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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강제노동 카드로 새 관세 전선⋯한·중·일 포함 60개 경제주체 대상 301조 조사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12일(현지시간) 한국·중국·일본·유럽연합(EU)·영국·캐나다 등을 포함한 60개 경제주체를 상대로 '강제노동 생산품 수입 금지 미흡'을 문제 삼는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각 경제주체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 금지를 도입·집행하지 않은 행위와 정책이 미국 상거래에 부담을 주는지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조사는 지난 11일 한·중·일 등 16개 경제주체를 겨냥해 시작한 '과잉생산' 301조 조사와 병렬로 진행된다. USTR은 4월 15일까지 서면 의견과 공청회 출석 신청을 받고, 4월 28일부터 필요시 5월 1일까지 공청회를 연다.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나 수입 제한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월 24일부터 150일간 10%의 한시적 글로벌 관세를 부과한 가운데, 이번 301조 조사는 연방대법원의 기존 상호관세 무효 판단 이후 새 관세 체계를 짜기 위한 수순으로 해석된다. [해설 기사] 강제노동 명분, 관세의 본체…트럼프, 301조로 '포스트 상호관세' 재무장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꺼내든 카드는 무역법 301조였다. 12일 USTR이 개시한 이번 조사의 표면 명분은 '강제노동 생산품의 수입 금지 미흡'이다. 그러나 통상정책의 큰 흐름에서 보면, 이번 조치는 단순한 인권 압박이 아니라 지난달 무너진 상호관세 체제를 301조 기반의 새 관세 체계로 재구성하려는 후속 작업의 성격이 짙다. USTR은 60개 경제주체를 상대로 각국의 행위·정책·관행이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이며 미국 상거래를 제한하는지 따지겠다고 밝혔고, 조사 대상에는 한국·중국·일본은 물론 EU, 영국, 캐나다, 호주, 인도,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등 미국의 핵심 교역 상대가 대거 포함됐다. 이번 사안에서 먼저 짚어야 할 대목은 '조사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의 의미다. 미국이 문제 삼는 것은 각국이 자국 내 강제노동을 단속했느냐만이 아니다. 공식 공지문 문구를 보면, 핵심 쟁점은 각 경제주체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집행했는가"에 맞춰져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이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고 해서 곧바로 '강제노동 활용국'으로 낙인찍혔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식 기준의 수입 차단 제도를 각국이 얼마나 갖추고 있고 실제로 집행하느냐를 문제 삼겠다는 것이다. USTR도 의견 수렴 항목에서 각 경제주체가 강제노동 수입금지 제도를 유지하거나 도입 중인지, 또 그 금지조치가 실제로 집행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묻겠다고 밝혔다. '강제 노동 301조'와 '과잉생산 301조'는 한 세트 이 대목은 통상적으로도 중요하다. 미국은 이미 거의 100년에 걸쳐 강제노동 생산품의 수입 금지를 법체계에 두고 있고, USTR은 이번 관보 초안에서 그 제도가 단순한 인권 규범이 아니라 경제·안보 문제와 직결된다고 못 박았다. 강제노동을 활용한 생산은 인위적으로 비용을 낮춰 미국 기업과 노동자를 왜곡된 경쟁에 밀어 넣는다는 것이 미국의 논리다. USTR은 또 현재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이 강제노동 관련 보류명령(WRO) 54건과 적발 결정 8건을 운용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번 조사가 선언적 문제 제기가 아니라, 미국이 이미 갖고 있는 수입통제 체계를 다른 교역상대국에도 사실상 확장하려는 시도임을 보여준다. 관세정책의 시간표를 보면 더 선명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0일 백악관 포고문을 통해 무역법 122조를 발동했고, 이에 따라 2월 24일부터 150일간 전 세계 수입품에 10%의 한시적 추가관세를 부과했다. 백악관은 이 조치의 종료 시점을 7월 24일로 명시했다. 122조는 본래 국제수지 문제를 이유로 최대 150일 동안 한시적 수입할증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한 조항이다. 반면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불합리·차별적 관행이 미국 상거래에 부담을 준다고 판단될 경우 보다 정교하고 지속적인 보복 조치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시한이 짧은 122조의 10% 글로벌 관세를 깔아둔 뒤, 그 만료 전에 301조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가별·사안별 관세 체계를 새로 짜는 것이 훨씬 유연한 전략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강제노동 301조'는 전날 착수한 '과잉생산 301조'와 한 세트로 봐야 한다. USTR은 3월 11일 구조적 과잉생산 및 제조업 과잉공급 문제를 이유로 한국·중국·일본·EU·대만·베트남·인도 등 16개 경제주체에 대한 별도 301조 조사도 시작했다. 관보 초안에 따르면, 이 조사 역시 4월 15일까지 의견서를 받고 5월 5일부터 공청회에 들어간다. 한국은 강제노동 이슈와 과잉생산 이슈 두 갈래 모두에서 미국의 새로운 301조 통상 압박망 안에 들어간 셈이다. 이 점에서 이번 조치는 특정 국가를 겨냥한 단발성 제재라기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광범위한 동맹·우방까지 포괄하는 전면적 통상 재배치에 나섰다는 신호로 읽힌다. 강제노동, 왜 관세 새 명분이 됐나? 미국이 왜 하필 '강제노동'을 새 관세 명분으로 택했는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의제는 보호무역 논리를 인권과 공급망 윤리의 언어로 감싸는 효과가 있다. USTR은 관보 초안에서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 인권선언 등을 거론하며 강제노동 근절이 거의 보편적 국제 규범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통상 논리로 귀결시킨다. 강제노동이 개입된 상품은 인위적으로 값이 싸고, 이 때문에 미국 수출품은 가격 경쟁에서 밀리며 미국 노동자의 임금과 생산이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 즉 도덕적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작동 방식은 철저히 산업정책과 통상보복의 문법에 가깝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USTR의 평가 기준이 생각보다 공격적이라는 점이다. 관보 초안은 캐나다·멕시코·EU가 강제노동 생산품의 수입 또는 판매를 막기 위한 조치를 도입했지만, "강제노동 수입금지 조치를 채택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한 나라로 보기는 어렵다"고 적시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이제 단순 입법이나 원칙 선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본다. 실제 차단 실적과 제도 집행력이 따라오지 않으면 조사와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준이 적용될 경우, 동맹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 통상정책의 잣대는 훨씬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조사 범위 포괄성'이 관건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조사 범위의 포괄성이다. 이번 조사는 특정 품목 몇 개를 찍어 겨냥하는 구조가 아니다. USTR은 공개 의견 수렴 항목에서 "각 경제주체 제품에 대한 관세의 수준과 범위", "수입 제한의 수준과 범위", "추가 관세가 덮을 적정 교역 규모"까지 직접 묻고 있다. 이는 조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미국이 품목별·국가별로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폭넓게 설계할 수 있음을 뜻한다. 아직 한국의 어떤 산업이 직접 표적이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국이 사안별 조사 틀을 통해 언제든 압박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재량 공간’을 확보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태생적 시한부 122조⋯절차상 외피 갖춘 301조 절차상 일정도 촘촘하다. 강제노동 관련 301조 조사는 4월 15일까지 의견서와 공청회 출석 신청을 받은 뒤, 4월 28일부터 필요시 5월 1일까지 공청회를 연다. 이후 마지막 공청회 종료 7일 뒤까지 반박 의견을 접수한다. 로이터는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가 7월 임시 글로벌 관세 만료 전에 이번 301조 조사와 구제조치 제안을 마무리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결국 4~5월 여론수렴, 6~7월 판단, 7월 말 새 조치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법적 논란이 컸던 일괄 상호관세 대신, 절차적 외피를 갖춘 301조 조사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적으로도 파장은 작지 않다. 2월 20일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기존 글로벌 관세를 위법하다고 판단한 뒤, 행정부는 122조 10% 할증관세로 일단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122조는 태생적으로 시한부다. 따라서 행정부가 더 오래가고 더 선별적인 관세 체계를 갖추려면 301조 같은 별도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 강제노동과 과잉생산은 그런 점에서 가장 활용하기 쉬운 명분이다. 하나는 인권과 노동, 다른 하나는 산업정책과 공급과잉을 내세우지만, 두 조사 모두 최종 목적지는 추가 관세 또는 수입 제한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조사의 본질은 '강제노동 단속' 그 자체보다, 트럼프식 통상전쟁의 2막이 어떻게 설계되는가에 있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이지만, 통상에서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과잉생산 조사에 이어 강제노동 조사까지 동시 노출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 실사와 원산지 관리, 대미 수출전략, 통상 외교 대응을 한꺼번에 재점검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인권의 언어로 시작된 이번 조사 끝에서 실제로 모습을 드러낼 것은, 결국 새로운 관세의 얼굴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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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강제노동 카드로 새 관세 전선⋯한·중·일 포함 60개 경제주체 대상 301조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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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유가 100달러에 무너진 뉴욕증시⋯다우 739P 급락, 4만7000선 붕괴
- 뉴욕증시가 12일(현지시간) 이란 전쟁 장기화와 국제유가 폭등 충격에 다시 무너졌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739.42포인트(1.56%) 내린 4만6677.85에 마감, 올해 처음 4만7000선을 내줬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52% 하락한 6672.62, 나스닥지수는 1.78% 떨어진 2만2311.98로 거래를 마쳤다. 세 지수 모두 2026년 종가 기준 최저치다. 도화선은 유가였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유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브렌트유 선물은 9.22% 급등한 배럴당 100.46달러에 마감했다. 2022년 8월 이후 첫 100달러 위 종가다. WTI도 9.72% 오른 95.73달러를 기록했다. 전날 하루에만 선박 7척이 추가 피격됐고,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장관은 미 해군이 유조선 호위 준비가 아직 안 됐다고 시인했다. IEA의 역대 최대 4억 배럴 방출 결정과 미국의 1억7200만 배럴 전략비축유 방출 발표도 시장을 달래지 못했다. 업종별로는 S&P500 11개 업종 중 8개가 하락했다. 에너지주(쉐브론·엑손모빌)만 신고가를 썼고, 금융·기술주가 약세를 주도했다. 오라클만이 예외였다. 2027회계연도 매출 전망을 900억 달러로 상향하며 9% 급등했다. [미니해설] 비축유 쏟아도 유가 잡히지 않은 이유…문제는 물량이 아니라 물류 이번 장세의 핵심은 유가 100달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인플레이션과 금리 경로를 동시에 흔든다는 데 있다. WSJ에 따르면 2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하루 새 3.634%에서 3.759%로 뛰었다. 지난 5월 이후 최대 일간 상승폭이다. CME 페드워치 기준 연내 금리 동결 가능성은 불과 이틀 전 24%에서 45%로 치솟았고, 이란 전쟁 발발 직전(4%)과 비교하면 시장의 계산은 완전히 뒤집혔다. 비탈 놀리지의 애덤 크리사풀리는 "이란이 경제 혼란을 전략 무기로 활용하는 방식이 먹히고 있다"며 "테헤란의 강경 지도부는 유가를 레버리지 삼아 트럼프를 협상 테이블로 밀어붙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초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밝혀 일시적 유가 진정을 이끌었지만, 하메네이의 봉쇄 고수 발언이 나오자 그 효과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IEA 4억 배럴과 미국 1억7200만 배럴의 방출 발표가 시장을 진정시키지 못한 이유도 구조적이다. 숫자만 보면 초대형 대응이지만 WSJ는 미국 전략비축유가 대통령 결정 후 시장 도달까지 최소 13일이 소요되고, 최종 소비지까지는 그보다 훨씬 더 걸린다고 짚었다. CNBC도 실제 정제제품과 해상 운송 리스크는 여전히 별개 문제라고 전했다. 시장이 묻는 것은 "얼마를 푸느냐"가 아니라 "언제, 어디까지 공급이 정상화되느냐"다. 원유를 시장에 던지는 것과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더 무서운 이유는 원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해협을 통해 글로벌 원유 공급의 약 20%, LNG의 상당 부분이 오간다. WSJ는 이란 측 보도를 인용해 홍해·수에즈 항로 차단 가능성까지 거론됐다고 전했다. 항로가 이중으로 막힌다면 원유는 물론 정제유·LNG·화학 원료 운송까지 연쇄 차질이 불가피하다. 에너지주가 신고가를 쓰는 동안 지수 전체가 하락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에너지기업에는 호재일 수 있지만 경제 전체에는 악재이기 때문이다. 연준도 손발 묶였다…'스태그플레이션 딜레마' 재등장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를 동시에 자극한다는 점에서 연준도 선뜻 움직이기 어려운 국면이다. CNBC가 인용한 무디스의 마크 잰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은 전쟁이 인플레이션과 고용 중 어느 쪽을 더 훼손할지 확인할 때까지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선물 시장은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 아메리프라이즈의 앤서니 사글림베네 수석 전략가는 "에너지 비용이 현 수준에서 지속된다면 소비자 체감 경기를 짓누르고 중간선거를 앞두고 구매 여력 이슈가 전면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그는 "가계 재무 건전성과 고용 여건은 현재로선 양호하고, 에너지를 제외한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은 유지되고 있다"며 구조적 붕괴보다는 일시적 충격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실제로 S&P500의 연고점 대비 낙폭은 아직 4% 남짓이다. 시장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전쟁 변수를 빠르게 가격에 반영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브렌트유의 선물 곡선이 '백워데이션(근월물 프리미엄)' 구조로 급격히 전환된 것은 시장이 단순한 일회성 충격이 아닌 장기 공급 차질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WSJ에 따르면 연초 배럴당 60달러대 초반에 머물던 브렌트유 근월물이 100달러를 돌파하는 동안, 연말·내년 계약 가격도 올라갔지만 상승폭은 근월물의 절반에 못 미쳤다. 이 구조는 "당장의 공급 공백은 심각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해소될 것"이라는 시장의 이중적 판단을 반영한다. 이날 뉴욕증시는 세 가지를 확인시켰다. 첫째, 비축유 방출만으로는 전쟁 프리미엄을 지울 수 없다. 둘째, 유가 100달러는 금리 인하 기대 후퇴와 밸류에이션 부담으로 직결된다. 셋째, 오라클처럼 실적으로 증명하는 종목에만 프리미엄이 붙는 종목 선별 장세가 본격화됐다. 전쟁이 끝나면 반등은 빠를 수 있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다면, 이날의 739포인트 하락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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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유가 100달러에 무너진 뉴욕증시⋯다우 739P 급락, 4만7000선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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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5회)
- 오래 있어야 해! 주민들은 나를 몰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이 골목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이 언덕에서 살지도 않았고, 이 바람을 수십 년 맞으며 살지 않았다.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그 낯섦을 지워주지는 않았다. 오늘날 불확실성 사회에서는 오히려 어떤 분들에게는 그 사실이 경계의 이유가 되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사람이 국가 예산을 들고 우리 골목에 들어왔다. 그 시선이 틀리지 않았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처음 주민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조용히 들릴까 말까 전해오는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고, 본인의 일에 집중한 나머지 무관심한 분들이 있었고, 마을이 변하기를 바라는 지켜보는 분들이 있었다. 찬성하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적어도 초반에는. 반대는 생각보다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나타났다고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분은 없었다. 그 이유 안에 이 골목의 역사가 있었고, 상처가 있었고, 이전에 왔다 간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논골도 전에 뭔가를 하겠다고 왔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기억이 우리를 향한 일부의 불신으로 쌓여 있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탓할 수 없었다. 불신은 아무 이유 없이 생기지 않는다. 어려운 것은 무관심이었다. 일부의 부정적인 눈빛은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무관심은 에너지 자체가 없다.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게 아니라, 두드리는 소리조차 닿지 않는 느낌. 그 골목을 오가면서 나는 종종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누군가의 시선 안에 아예 들어오지 못하는 존재.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 무관심과 시선이 겹치는 순간이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것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때였다. 반대도 아니고 무관심도 아닌, 그냥 이게 되겠냐는 표정. 말로 하지 않아도 읽혔다. 이 골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외지에서 온 사람 하나가 예산 몇 푼 들고 들어와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느냐. 그 표정 앞에서 나는 기획서를 꺼낼 수 없었다. 기획서는 마을 주민들에게는 믿음의 언어가 될 수 없고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은 설득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그것을 나는 그때 배웠다. 설득은 논리로 하지만, 믿음은 시간이 흐른 뒤 신뢰로 만든다. 나는 시간을 써야 했다. 회의하는 대신 골목을 걸었다. 발표하는 대신 집 앞에 앉아 있었다.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는 대신, 그냥 여기 있었다. 그 버팀이 기획보다 먼저였다. 전환점은 작은 데서 왔다. 어느 오후, 골목 위쪽 빈터에서 혼자 무언가를 메모하고 있었다. 한 할머니가 지나가다 멈추셨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셨다. 이 골목을 좋은 그곳으로 만들어보려 한다고 했다. 한참 나를 보시다가 한마디 하셨다. "오래 있어야 해." 많은 말이 아니었다. 오래 있어야 한다. 그 짧은 한마디가 그때 내가 들은 가장 긴 이야기였다. 이 골목에 왔다가 떠난 사람들, 약속하고 사라진 사람들, 무언가를 가져가고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은 사람들. 할머니는 그 역사 전체를 그 짧은 한마디에 담아서 나에게 건네신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제로 오래 있었다. 고 김인복 통장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는 내가 들어갈 수 없는 문을 알고 있었다. 어느 집이 경계심이 강한지, 어느 분이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마음이 열리는지. 그 지식은 수십 년 이 골목에서 쌓인 것이었다. 어떤 기획서에도 쓸 수 없는 종류의 지식. 그가 먼저 들어가 이야기를 꺼내주면,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소개받은 자리에서 나는 많이 말하지 않았다. 듣는 쪽이었다. 이 골목에서 살았던 이야기, 예전에 여기가 어떠했는지,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았는지. 그 이야기들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이 골목의 사람이 되어갔다. 외지인이 아니라, 적어도 이 골목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 믿음은 그렇게 생겼다. 설득이 아니라 동행으로. 지금 돌이켜보면 그 초반의 무관심과 불신이 논골담길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처음부터 모든 주민이 열렬히 환영했다면, 나는 기획서대로 밀어붙였을 것이다. 반대와 무관심이 없었다면 나는 멈추지 않았을 것이고, 멈추지 않았다면 골목의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저항이 속도를 늦추었고, 그 느린 속도가 이 골목과 나 사이에 실제 관계를 만들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시간은 기획자를 두 가지 방향으로 몰고 간다. 포기하거나, 더 깊이 들어가거나.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선택이라기보다 오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오기가 없었다면 논골담길도 없었다. 이 골목은 나를 시험했다. 오래 있을 사람인지. 그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실제로 오래 있는 것. 지금도 묵호는 명소다. KTX, ITX 등 교통문화 개선 효과도 크다. 그러나 잠자던 묵호를 깨운 논골담길이 시작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나 홀로 여행지로 뜬 묵호도 결국 오래가려면 오래 머무는 여행, 16년 전 논골에서 만난 할머니의 부탁, "오래 있어야 해"를 선택해야 한다. <필자 소개> 조연섭 -문화 기획자, 브치 작가, 논골담길 기획 조연섭 작가는 숨겨진 원형을 발굴해 현대적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문화 기획자이자 작가다. 언더그라운드 방송 DJ와 아나운서를 거친 방송인 출신으로, 2004년 동해문화원 공채 사무국장으로 임용 한국문화원국장협의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하고 2025년 12월30일 퇴직했다. 그는 그동안 지역의 역사와 유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구 소멸 시대의 실천적 해법을 제시해 왔다. 그의 기획력은 공간 재생과 로컬 브랜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묵호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청와대에서 창조경제 성공 사례를 발표하며 문화 담론을 주도했다. 또한, 방치된 양조장을 커뮤니티 거점으로 복원한 '강원막걸리학교(막걸리 익는 홍월평)'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와 공동체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구축했다. 예술적 감각 또한 남다르다. 국가유산청 공모로 뮤지컬 '동해의 선선 심동로'와 '동해랑'을 기획하여 지역민에게는 자긍심을, 관광객에게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로컬 콘텐츠의 전형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원상 '창의 인재상'을 받았으며, 전국 문화원 임직원을 대상으로 추진한 지역 문화경영 고급 아카데미 전국 1위와 함께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공론장 '논골담길 커먼즈'와 함께 24시 문화 순환 체계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브런치 작가로서 《논골담길》, 《맨발 걷기》 등의 브런치 북을 발간하며, 현장의 기록을 글에 담아 사람과 공간을 잇는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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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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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21회)
- 제21회 미상 씨가 '코코아'와 '초콜릿'이라 이름 지은 갓 난 고양이는 길고양이 새끼였다. 임보 여인이 자신의 대문간에 놓아둔 숨숨집을 들여다보니 앵앵대는 길고양이 새끼 두 마리가 있더라고 한다. 본래는 세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죽고 두 마리가 남았다. 그러면서 카카오 대신 얘들을 입양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희정 씨와 미상 씨는 의논 끝에 절충안을 전했다. "카카오를 포기할 순 없어요. 지금은 카카오가 어리고 너무나 외로워하길래 거기로 위탁했지 곧 데리고 올 겁니다. 그리고 갓 난 얘 둘도 우리가 입양하겠어요." 장차 고양이 세 녀석과 반려하기로 미상 씨는 결심했다. 코코아와 초콜릿을 '코코'와 '초코'라 줄여 부르기로 하고 얼른 데려오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임보 여인은 갓 난 고양이도 갓 난 고양이지만 어미 길고양이를 생각해 적어도 사십 일이 지난 뒤 데려가라고 한다. "그땐 너무 늦지 않겠어요? 자기 어미도 사람 얼굴도 다 알아볼 텐데." "괜찮아요. 성묘도 분양하는데요 뭘. 어미 젖을 충분히 먹는 편이 건강에 좋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됩니다. 간난이를 데리고 가시면 보살피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기다렸는데 한 달 뒤 슬픈 일이 벌어졌다. 갓 난 고양이의 어미 고양이는 임보 여인의 손을 탄 자신의 새끼들을 물고 어디론가 이소했고, 그러한 사실은 하룻밤이 지난 뒤에야 발견됐다. 싸늘한 가을날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 임보 여인이 부른 고양이 탐정의 지난한 탐문 수사 끝에 한 달 된 오누이 고양이는 근처에 있는 삼층집 옥상에서 발견됐다. 옥상 구석에 쌓아둔 빈 화분 틈에서 밤을 지낸 코코와 초코는 정상이 아니었다. 코코는 겨우 살아 있었지만 초코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코코만 안고 집으로 돌아온 미상 씨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사진을 통해 정이 든 만치 순하고 예쁘던 초코의 이미지가 눈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 미상 씨를 말리며 희정 씨가 말했다. "어쩔 수 없어요. 고양이도 고양이의 운명이 있으니 초코는 초코의 일생을 살고 떠나간 겁니다." "그래도 내가 이름을 지어준 녀석이잖아요. 이름이 없다면 몰라도 이름을 가졌다면 잊기 어려운 존재라는 사실이 명백하죠." 미상 씨가 말하는 자신의 슬픔과 눈물의 이유에 대해 희정 씨가 대답했다. "기도합시다. 초코를 위해 기도해요." 기도를 마친 희정 씨가 말했다. "코코도 혼자 둬선 안 되겠어요. 내가 또 다른 초코를 찾아볼 게요." 울적한 목소리로 미상 씨가 대답했다. "좋아요. 그런데 너무 똑같은 애를 찾으려 애쓰진 말아요. 떠나간 초코는 떠나간 초코고 새로운 초코는 새로운 초코니까요." “알았어요. 그럼 고동색 초코가 아니라 새까만 초코, 검은 고양이 초코, 올블랙 초코를 찾아볼게요.” 사흘 뒤 희정 씨는 태어난 지 한 달 된 올블랙 아기 고양이를 고양이 카페에서 찾았다. 이쪽 정황을 설명하자 저쪽에서는 대환영이었다. "우리 까미를 잘 돌봐주실 분을 만나 기뻐요." 이쪽에서 '초코'라고 이름 지어둔 올블랙 아기 고양이를 저쪽에서는 '까미'라 불렀다. 그 아기 고양이 초코를 데려오기 위해 미상 씨는 승용차를 몰고 충남 천안시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천안시 성환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예비 신랑신부를 만났고 그들로부터 올블랙 아기 고양이를 건네받았다. 아기 고양이는 즉시 '초코'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됐으며 코코의 동생이 되었다. 코코와 초코는 둘 다 소년 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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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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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한중일 포함 16개 경제권 '301조 조사' 착수⋯관세전쟁 재점화
-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중국·일본 등 16개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가 부과될 수 있어 글로벌 통상 갈등이 다시 격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는 11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한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을 포함한 16개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에는 싱가포르, 스위스, 노르웨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대만, 방글라데시, 멕시코, 인도 등도 포함됐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의 무역에 부담을 주는 외국 정부의 불공정 관행에 대해 추가 관세나 수입 제한 등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통상법이다. 그리어 대표는 이번 조사와 관련해 "특정 경제권의 제조업 구조적 과잉 생산능력과 과잉 생산과 연계된 정책과 관행을 집중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불공정 무역 행위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조치가 연방대법원 판결로 무효화된 이후 새로운 관세 부과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IEEPA 관세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오자 모든 무역 상대국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법 301조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정부는 150일 동안 적용되는 10% 관세가 만료되는 7월 하순 이전에 조사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사 일정은 3월 17일 의견 접수 창구 개설을 시작으로 4월 15일 의견 제출 마감, 5월 5일 공청회 등을 거쳐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USTR은 강제노동 생산 제품 수입 금지와 관련한 별도의 301조 조사도 12일부터 추가로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니해설] 트럼프 '301조 카드' 다시 꺼냈다…세계 무역질서 흔드는 관세 전략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301조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한 16개 경제권을 겨냥한 무역법 301조 조사가 시작되면서 글로벌 통상 질서가 다시 긴장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조사는 기존 상호관세 조치가 법적 제동에 걸린 이후 새로운 관세 부과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이번 조사에서 각국의 제조업 구조적 과잉 생산능력과 이에 따른 무역 왜곡을 핵심 쟁점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문제 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이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 독자적으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통상법이다. 1974년 제정된 이 법은 상대국의 법과 정책, 관행이 미국 기업과 산업에 피해를 준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부과나 수입 제한 등 다양한 제재를 가능하게 한다. 301조 조사 대상에 한국 포함…통상 압박의 새로운 신호 이번 조사 대상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싱가포르, 스위스, 노르웨이, 동남아 주요 국가, 인도, 멕시코 등이 포함됐다. 사실상 세계 주요 제조업 국가 대부분이 조사 범위에 들어간 셈이다. 그리어 USTR 대표는 "주요 무역 파트너들이 시장 수요와 맞지 않는 생산 능력을 구축해왔다"며 "과잉 생산능력은 과잉 생산과 지속적인 무역 흑자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속적 무역흑자와 미사용 생산능력 등을 중심으로 구조적 과잉 생산의 증거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미국은 제조업 보조금 정책,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 환경 규제, 시장 접근성 등 광범위한 요소를 검토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서비스세, 의약품 가격 정책, 수산물 및 농산물 시장 개방 문제 등도 추가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이 301조를 활용한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중국을 겨냥한 무역전쟁이다. 당시 미국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기술 이전 강요 문제를 이유로 301조 조사를 실시했고, 중국산 제품에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그 결과 미국으로 수입되는 중국 제품의 약 75%가 관세 대상이 됐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이 조치를 유지하면서 중국산 전기차에 100%, 태양광 제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중국 견제 정책을 이어왔다. 301조가 미국 통상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301조보다 더 강력한 조치로는 '슈퍼 301조'가 있다. 이는 불공정 무역국을 우선협상대상국(PFC)으로 지정해 집중적인 협상과 보복 조치를 가능하게 한 제도다. 1989년 도입됐다가 폐지됐지만 이후 여러 차례 행정명령을 통해 부활했다. 한국 역시 과거 슈퍼 301조의 압박을 경험한 바 있다. 1997년 미국은 자동차 수입 장벽 문제를 이유로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의 대형차 중심 자동차세 제도가 미국 자동차 수출에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협상 과정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까지 겹치며 한미 통상 갈등이 크게 확대됐다.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가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약 1년간 협상 끝에 한국이 자동차 세제를 개편하면서 분쟁이 마무리됐다. '과잉 생산능력' 명분으로 글로벌 제조업 겨냥 이번 301조 조사는 글로벌 제조업 구조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미국은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 과잉이 세계 제조업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철강, 태양광 등 주요 산업에서 생산능력 확대가 가격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동아시아 제조업 국가들이 정부 보조금과 산업 정책을 통해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조사에서 이러한 산업 정책이 불공정 무역 행위로 규정될 가능성도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을 포함한 주요 수출국들은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현재 150일 동안 전 세계 수입품에 대해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 조치는 7월 하순 만료된다. USTR은 이 시점 이전에 301조 조사 결론을 내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새로운 관세 체계를 도입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즉 기존 관세 정책이 법적 논란에 휘말리자 보다 강력하고 명확한 통상 압박 수단으로 301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강제노동 생산 제품의 수입 금지를 겨냥한 별도의 301조 조사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 조치는 약 60개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가 단순한 통상 분쟁을 넘어 글로벌 제조업 패권 경쟁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이 산업 정책과 공급망 구조까지 문제 삼기 시작하면서 향후 통상 갈등의 범위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된 점은 향후 글로벌 경제 질서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수 있다.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는 새로운 통상 환경이 형성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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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한중일 포함 16개 경제권 '301조 조사' 착수⋯관세전쟁 재점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