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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보도] 남극의 방파제가 무너진다-스웨이츠 빙하 균열 가속, 해수면 3m 상승 시나리오가 현실로
- 2026년 1월, 영국 남극조사대(BAS)와 한국 극지연구소(KOPRI) 합동 연구팀이 남극 스웨이츠 빙하 본류에 1000m 깊이의 시추공을 뚫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호주 CSIRO는 동남극 쿡 빙붕에서 퇴적물 코어를 채취했고 국제 SWAIS2C 프로젝트팀은 로스 빙붕 초심도 시추에 성공했다. 남극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이례적 탐사는 하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구의 빙하 방파제는 언제, 어떻게 무너지는가.' 이 질문이 긴박해진 것은 최근 수년간 쏟아진 과학적 증거 때문이다. 2025년 가을, 40년간 '세계 최대 빙산'으로 불리던 A23a가 남대서양에서 빠르게 소멸했다. 1986년 서남극 필히너 론네 빙붕에서 분리된 이 빙산은 한때 무게 약 1조 톤, 면적 서울의 6.6배에 달했으나, 따뜻해진 바다를 만나 불과 수개월 만에 절반 이하로 줄었다. EU 코페르니쿠스 위성은 면적이 1770㎢까지 축소됐으며 수 주 안에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BAS 물리 해양학자 앤드류 마이어스 박사는 '바닷물이 너무 따뜻해 빙산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미 바다에 떠 있는 빙산이 녹는다고 해수면이 바로 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A23a를 주목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빙산의 소멸 속도는 지구 온난화가 남극의 얼음을 얼마나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시적 증거이자, 그 뒤에 숨겨진 훨씬 거대한 위기의 서막이기 때문이다. 서남극 빙붕이 무너지면 육상 빙하가 바다로 쏟아지고, 전 지구 해수면이 수 미터 치솟는 연쇄 붕괴가 시작된다. 2024년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된 연구는 파리협정 1.5℃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서남극 빙상 소실이 20세기 대비 3배 빨라진다고 경고했고 COP29(2024년 바쿠)에서는 해수면 상승 취약국들이 손실과 피해 기금 확대를 절박하게 요구했다. 남극의 빙하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의제다. 빙붕 붕괴의 연대기-역사가 증명하는 연쇄 반응 남극의 빙붕은 육상 빙하가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얼음 선반'이다. 두께 수백 미터에 달하는 이 얼음층은 뒤편 빙하들이 바다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댐의 수문' 역할을 한다. 빙붕이 사라지는 순간 억눌려 있던 육상 빙하는 중력을 따라 걷잡을 수 없이 바다로 쏟아진다. 이 공식은 이미 역사가 증명했다. 1995년 라르센 A 빙붕이 무너지자 그 뒤편 빙하의 이동 속도는 두 배 이상 빨라졌다. 2002년 라르센 B 빙붕은 면적 3,250㎢(제주도의 약 1.8배)가 단 5주 만에 소멸했으며,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붕괴 이후 인근 빙하 흐름이 급속히 가속됐다고 보고했다. 2017년 라르센 C에서 분리된 빙산 A-68(5,800㎢·제주도의 약 6배)은 빙붕의 구조적 안정성을 흔들어 장기적인 빙하 유출을 가속했다. 2022년 3월에는 '안전지대'로 여겨지던 동남극의 콩거 빙붕(1200㎢·서울의 약 2배)이 며칠 만에 완전히 붕괴했다. NASA 위성이 포착한 이 장면은 '남극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과학계의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냈다. 2025년 초에는 남극 반도 조지 6세 빙붕이 분리되면서 수백 년간 얼음에 덮여 있던 해저가 드러났고, 런던대 연구팀은 그 아래에서 성게·산호·문어·불가사리 등 고대 생태계가 생존해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생명체들이 급변하는 환경에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종말의 날 빙하' 스웨이츠-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남극 빙하 문제의 심장부에는 스웨이츠(Thwaites) 빙하가 있다. 한반도 면적에 맞먹는 이 거대한 빙하는 '종말의 날 빙하(Doomsday Glacier)'로 불린다. 단지 그 자체가 위험해서가 아니라 서남극 빙상 전체의 흐름을 막는 '코르크 마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영 공동연구팀(ITGC)은 스웨이츠가 무너지면 뒤편 빙하들이 연쇄 붕괴하며 전 지구 해수면이 최대 3~4.5미터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오리건주립대 빙하학자 에린 페팃은 스웨이츠의 상태를 '처음에는 천천히 균열이 번지는 차 앞유리와 같다-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다'고 묘사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중심의 국제 공동연구팀은 NASA 위성 ICESat-2 자료를 분석해 스웨이츠 빙붕 동쪽 구간에서 균열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한 번 시작되면 스스로 가속하는 '자기 강화적 피드백 루프'가 형성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 번 부서진 빙붕이 다시 복원된 사례는 과학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2026년 2월, 해양수산부와 극지연구소는 한·영 공동연구팀이 스웨이츠 빙하 934미터 아래 지반선(빙하와 바다가 만나는 경계) 부근의 바다를 직접 관측한 결과를 공개했다. 지반선 아래 바닷물의 온도·염분 분포가 매우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었으며 이는 따뜻한 심층수가 빙하 하부로 활발히 유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빙하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녹을 수 있다는 징조다. 영국 남극연구소(BAS)·노섬브리아대 연구팀이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한 분석(2024)에 따르면 국제사회가 파리협정 1.5℃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서남극 빙상의 소실 속도는 20세기 대비 3배 빨라진다. 논평을 게재한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 타이무어 소하일 교수는 '빙상 소실을 막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도미노의 시작-지구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IPCC 6차 평가보고서(AR6)는 남극 서부 빙상이 불안정 붕괴할 경우 수세기에 걸쳐 해수면이 2~3미터 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해수면 상승: 2억 명의 거주지가 사라진다 유엔 해수면 상승 과학 패널은 2100년까지 1미터 상승 시 전 세계 2억 명 이상이 거주지를 잃을 것으로 분석했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에 따르면 서해안·제주 연안의 해수면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4~7㎜씩 상승해왔으며 해수면이 1미터 오를 경우 서울 면적의 1.6배에 해당하는 국토가 침수된다. 기후 도미노-폭염·한파·홍수의 악순환 빙붕과 해빙의 소멸은 지구의 '에어컨' 기능을 약화시킨다. 얼음이 태양 복사를 반사하는 알베도 효과가 줄면 바다와 대기가 더 많은 열을 흡수하고 이것이 다시 얼음 소멸을 가속하는 양의 되먹임 고리가 형성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북극 기온이 최근 50년간 세계 평균의 4배 속도로 상승했다고 보고했다. 제트기류가 불안정해지면 중위도 지역에 폭염·한파·집중호우가 뒤섞여 발생한다. 또한 빙하에서 녹아 나온 대량의 담수가 바다로 유입되면 대서양 해양 순환(AMOC)을 교란해 유럽의 이상한파와 아시아 몬순 변동을 초래할 수 있다. 식량 위기와 섬나라의 존망 해수면이 오르면 방글라데시·베트남·이집트 등 저지대 농경지에 염수가 침투해 식량 생산 기반이 무너진다. 제트기류 불안정화로 인한 작물 수확량 감소는 곡물 가격 폭등으로 직결된다. 남태평양의 키리바시·투발루(평균 해발 약 2m)·몰디브는 국가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 옥스팜의 2022년 보고서는 기후 취약국들이 선진국에 비해 평균 4배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다고 분석했다. 온실가스 배출에 가장 적게 기여한 나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기후 불의(Climate Injustice)가 현실화되고 있다. 세계의 대응-과학 탐사에서 국제 협력까지 국제사회는 남극의 위기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기 위해 탐사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공동 주도하는 국제스웨이츠빙하협력(ITGC)은 현장 조사·수중 로봇·위성 분석·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총동원해 스웨이츠 빙하의 미래를 예측해 왔다. 2026년 1월에는 BAS·한국 극지연구소·호주 CSIRO 등이 남극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추 탐사를 실시했다. NASA의 ICESat-2 위성은 2018년부터 빙붕 균열을 고해상도로 추적하며 붕괴 예측 모델을 정밀화하고 있다. 과학의 경보는 국제 정치 무대로 전달됐다. 2015년 파리협정은 1.5℃ 목표를 설정했지만 연구자들은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경로로는 빙상 소멸을 막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COP29(2024년 바쿠)에서 해수면 상승 취약국들은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기금 확대를 촉구했다.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는 남극 환경 보호 의정서를 통해 광물 개발을 금지하고 과학 조사 협력을 규정하고 있으며 한국도 당사국으로 참여해 세종기지(1988년)·장보고기지(2014년) 운영을 통해 극지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주요국의 적응 대책도 본격화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수 세기에 걸친 방조제 기술을 업그레이드한 '델타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며 미국 마이애미는 10억 달러 규모의 해안 보호·도로 높이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피지는 국민 이주 계획을 공식화했고 투발루는 뉴질랜드와 사상 최초의 국가 차원 '기후 이주 협약'을 체결했다. 방글라데시는 해안 방재림(맹그로브 숲)을 조성하고 부유식 학교·병원을 구축하며 적응력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적응(Adaptation)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방조제가 아무리 높아도 전 세계 탄소 배출이 줄지 않으면 결국 의미를 잃는다. 현재 남극·그린란드 빙하의 연간 소실로 인한 해수면 상승 기여는 연간 약 3.7㎜ 수준이지만, 스웨이츠 빙하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이 수치는 수배로 치솟을 수 있다. 빙상 소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 남극의 얼음은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녹고 있다. ITGC는 스웨이츠 빙하의 이번 세기 내 급격 붕괴 가능성을 현재로서는 낮게 평가하면서도 22~23세기에 걸쳐 스웨이츠와 서남극 빙상 대부분이 사라질 가능성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뚜렷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다트머스대 연구팀은 현재 탄소 배출이 지속될 경우 2300년까지 서남극 빙상이 완전히 붕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가 서 있는 땅의 높이를, 마시는 물의 염도를, 농사짓는 땅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는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남극 빙붕의 균열은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가장 거대하고 느린 경보음이다. 그것이 느리다고 해 덜 절박한 것은 아니다. [기자의 시각] -남극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이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무거웠던 문장은 '빙상 소실을 막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호주 과학자의 경고였다. 파리협정 1.5℃를 지켜도 서남극 빙상의 소실 속도가 3배 빨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게 약속을 지켜도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무력감에 빠질 이유는 없다. 감축(Mitigation)과 적응(Adaptation)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동시 추진해야 할 과제다. 한국은 남극조약 당사국이자 세종·장보고 두 기지를 운영하는 극지 연구 역량국이다. 2026년 1월 한·영 공동 스웨이츠 시추가 보여주듯, 과학적 기여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해안 침수 시나리오에 기반한 도시계획 재설계, 해양 인프라 강화, 기후 취약 지역 사전 이주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남극은 지구 반대편의 먼 이야기가 아니다. 서해안 갯벌이 잠기고, 제주 해안 마을이 침식되며, 여름 폭염과 겨울 한파가 예측 불가능해지는 현상의 근원이 바로 남극의 얼음에 있다. 빙붕의 균열이 보내는 경보를 '미래 세대의 문제'로 유예하는 순간, 대응의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지금 행동하는 것만이 '느린 재앙'에 대한 유일한 답이다. 【 주요 출처 및 참고자료 】 · ITGC(국제스웨이츠빙하협력) 연구 보고 / NASA ICESat-2 위성 관측 데이터 2018~2025 · Nature Climate Change(BAS·노섬브리아대, 2024) / IPCC 6차 평가보고서(AR6) / IMBIE 빙상질량균형보고(2021) ·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환경부·기상청) / 해양수산부·극지연구소 스웨이츠 시추 보도자료(2026.2) · 가디언·BBC·AFP·지디넷코리아·서울신문·MBC·YTN·기후에너지경제 2024~2025 보도 · 유엔 해수면상승과학패널(2021) / WMO 2024 기후현황 보고서 / 옥스팜 기후 취약국 경제피해 보고(2022) · 다트머스대 WAIS 붕괴 모델 연구(코페르니쿠스지) / 뉴스스페이스 남극 시추 종합보도(2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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