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러인덱스 1.77% 폭락 100.8…스위스프랑 3.6% 급등, 2015년 이후 최대 단일일 상승폭
  • 유로 2% 강세 1.1226달러·1년9개월 만에 최고…엔화도 2% 절상 144.79엔
  • 미-독 10년물 금리 격차 170bp 확대·3월 CPI 2.4% 예상 하회…달러 신뢰 구조적 균열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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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와 유로 지폐. 달러화 가치가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락가락한 관세정책으로 급등락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관세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이 달러에 새로운 상처를 남겼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가치가 또다시 폭락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강도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전날보다 1.77% 급락한 100.8을 기록했다. 2024년 9월 이후 최저치다. 불과 하루 전인 9일, 관세 90일 유예 발표에 힘입어 달러가 반등하는가 싶었지만 시장은 24시간도 안 돼 다시 달러를 팔기 시작했다. 3일 관세 발표, 4일 주가 폭락, 9일 유예, 10일 달러 재폭락. 격동의 한 주였다.


달러 대 세계…안전통화의 일제 반격


이날 주요 안전통화들이 달러에 맞서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스위스프랑의 움직임이 가장 극적이었다. 3.6% 급등한 달러당 0.82635스위스프랑에 거래됐다. 단일 거래일 상승폭으로는 2015년 1월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2015년 1월은 스위스 국립은행(SNB)이 유로화와의 환율 상한 제도를 전격 폐지해 스위스프랑이 수분 만에 20% 가까이 폭등한, 외환시장 역사에 남은 충격의 날이었다. 그 이후 최대 일일 상승이라는 수식이 붙는다는 것은, 지금 달러 신뢰 위기가 시장에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엔화는 2% 강세를 기록하며 달러당 144.795엔으로 마감됐다. 유로화는 장중 2% 이상 뛰어 한때 1.1226달러까지 치솟으며 2023년 7월 9일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종 거래가는 1.1221달러로 마감됐다. 하루 상승폭으로도 2022년 이후 가장 컸다. 영국 파운드는 1.13% 오른 1.29720달러를 기록했다.


역외시장에서 중국 위안화는 0.49% 강세를 보이며 달러당 7.307위안에 거래됐다. 전날 기록한 사상 최저치 7.4288위안에서 일부 회복한 것이다. 이달 누적으로 달러는 엔화 대비 3.46%, 스위스프랑 대비 6.5% 가까이 하락했다.


'셀 아메리카' 심화…주식·채권·달러의 동반 이탈


이날 달러 폭락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는 전날 관세 유예 이후 시장이 보낸 이중적 신호에 있다. 9일 주가는 2008년 이후 최대 폭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국채 수익률은 내려오지 않았고, 이날 달러는 다시 폭락했다. 단기 안도 랠리가 달러 신뢰의 구조적 균열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들은 "주식, 달러(대안 준비통화 대비), 채권시장에서 미국 자산 가격의 동시 붕괴가 진행 중"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이 달러 유동성을 비축하는 방향이 아니라, 미국 자산 자체를 적극적으로 매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전통적인 금융 위기 국면에서 달러와 미국 국채는 안전항으로 부각된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공식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ING 외환 전략팀은 "유로-달러 환율의 대규모 랠리는 거의 전적으로 달러에 대한 신뢰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단기 금리 격차만으로는 이 움직임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리 차이라는 펀더멘털 논리가 아닌, 달러 자산 자체에 대한 심리적·구조적 신뢰 이탈이 이번 급락을 이끌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유럽이 새 안전자산…독일 분트로 자금이 쏠리다


달러 이탈의 반사이익을 누린 것은 유럽이었다. 미국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는 동안, 유럽의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분트)에는 대규모 매수 자금이 몰렸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와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의 격차는 이번 주에만 30bp 급등해 170bp로 벌어졌다. 최근 한 달 사이 가장 크게 확대된 수준이다.


이 격차 확대는 복합적 의미를 담는다. 미국 국채 수익률이 오른 동시에 독일 국채 수익률은 안전자산 수요 유입으로 내려갔다. 두 방향에서 동시에 힘이 작용해 격차를 키운 것이다. 세계 자금의 안전자산 선호가 미국에서 유럽으로 이동하는 '자본 재배치'가 수치로 가시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이자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인 프랑수아 빌르루아 드갈로는 이날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직언을 쏟아냈다. "최근 몇 주간 벌어진 일들이 미국 통화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유예 발표에 대해서는 "경제적 합리성과 약간의 현실주의로 되돌아가는 출발점"이라고 평가했지만, "예측 불가능성이 미국 내 신뢰와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도 함께 내놓았다. ECB 정책위원이 공개 석상에서 달러 신뢰 훼손을 직접 거론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3월 CPI 2.4%…인플레이션 완화가 오히려 달러를 추가 압박


이날 발표된 미국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달러에 또 하나의 하방 변수를 더했다. 헤드라인 CPI는 전년 대비 2.4% 상승으로 시장 예상치(2.6%)를 크게 밑돌았다. 에너지 가격 하락이 전체 물가 수준을 끌어내리는 데 기여했다.


예상보다 낮은 물가는 금리 인하 기대를 높이고 그에 따라 달러 약세 압력으로 이어진다. 관세발 경기 냉각에 대응해 연준이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시장의 계산이 강화됐다. 단기 국채 금리는 내려가는 방향을 가리키며 달러 매도 명분을 추가했다.


역설적인 구도가 펼쳐진다. 관세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공포가 달러를 약하게 만들었고, 이날은 관세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낮게 나왔다는 사실이 다시 달러 약세를 이끌었다. 관세 정책의 파급이 어떤 방향으로 해석되든 달러에는 불리하게 작동하는 구조다. 물가가 오르면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로 달러 이탈이, 물가가 내리면 금리 인하 기대로 달러 약세가 진행되는 것이다.


중국 위안화…절하 카드를 잠시 거뒀지만


위안화는 이날 하루 반전을 연출했다. 전날 달러당 7.4288위안이라는 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졌던 위안화가 이날 7.307위안으로 강세 전환됐다. 시장에서는 중국 당국이 절하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위안화 정책은 이번 무역 전쟁에서 베이징이 쥔 압박 수단 중 하나다. 달러당 7.2위안은 중국 당국의 심리적 저항선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 선은 이미 크게 뚫렸다. 위안화 절하를 더 허용하면 관세로 높아진 수출 비용을 상쇄할 수 있지만, 과도한 절하는 자본 이탈과 금융 시스템 불안, 미국의 '환율 조작국' 지정이라는 보복 카드를 자극한다. 이날의 반등이 방향 전환인지 일시 조정인지를 두고 시장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달러 신뢰 이탈의 본질…예측 불가능성이 통화를 허문다


전문가들이 이번 달러 급락에서 단순한 환율 조정 이상의 무게를 읽어내는 이유는, 그 원인이 전통적인 펀더멘털보다 훨씬 근본적인 곳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그렉 마이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달러 약세에는 더 경보적인 해석이 있다"며 "탈달러화"를 거론했다. 미국 기관들이 구조적으로 덜 신뢰받게 됐다면, 글로벌 자본은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고, 이는 달러의 준비통화 지위 자체를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러 패권은 경제력과 함께 제도적 신뢰 위에 서 있다. 열흘 간격으로 관세를 발표했다가 유예하는 과정, 트루스소셜 게시글 하나로 전 세계 시장이 뒤집히는 현실이 그 신뢰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빌르루아 드갈로 총재의 "예측 불가능성이 미국의 신뢰와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발언은 이 흐름을 압축한다.


4월 한 달 동안만 달러는 엔화 대비 3.46%, 스위스프랑 대비 6.5% 가까이 무너졌다. 달러인덱스 100이라는 수준은 2025년 달러 약세의 속도와 강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그 선이 무너지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단순한 환율 수치의 변화가 아니라 달러 패권에 대한 시장의 판정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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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워치(82)] 트럼프 오락가락 관세정책에 달러가치 하룻만에 급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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