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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8회)
- 2 '더파든'의 장 '더파든'의 고양이(1) 그날 사월의 지극히 평범한 날 아침에 운명의 문을 노크한 것은 두 마리의 고양이였다. 허민 그는 알아야 했다. 두 마리의 고양이 때문에 삼십 년 넘게 '담장 위의 인생'을 살아온 은퇴한 스파이에게 허락되었던 짧은 평화는 흔들릴 운명이 되었다. 골짜기를 가득 채웠던 골안개가 태양이 남쪽 방향에 자리 잡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말이다. 야속하도다. 고작 사월의 골안개 같은 평화라니. 그랬다. 하얀 털의 고양이 한 마리가 카페 앞 철제 펜스 울타리에 올라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저녁의 하늘 색과 같은, 푸름과 어둠의 경계 선상의 눈동자. 농장정원 '더파든'에 나타난 지 두 달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그의 아내가 '백설이'라 이름을 붙인 고양이. 그가 잠깐 커피잔에 눈을 주었다 들었을 때 '백설이'는 보이지 않았다. 요 며칠 아침마다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위치에 나타났다가 그의 시선을 흡입하고 나면 사라지는 고양이. 어떤 징조를 드러내는 고양이. 그리고 오후에는 푸른빛이 도는 회색의 고양이 '예나'가 마치 근무 교대라도 하 듯이 그 자리에 나타나 그의 시선을 받고는 사라졌다. "우연이 쌓이면 필연이 된다." 누가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우연은 없다. 우연은 필연의 한 부분이고, 필연의 한 과정일 뿐이다. 겪어본 사람들은 그것을 안다. 우연은 패자의 변명수단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 스파이들이 우연을 받아들이는 순간, 연민과 허영이 빗장을 열고 실패를 불러온다는 것. 실패는 죽음의 길을 연다는 것. 그들은 안다. 그러나 곧잘 잊는다. 그리고는 후회한다. 오늘 새벽에도 허민은 그 꿈을 꾸었다. 두 달 반 전부터 이틀에 한번 꼴로 그 꿈이 찾아왔다. 고양이 두 마리, '백설이'와 '예나'가 농장정원 '더파든'에 나타난 즈음에 시작된 꿈. 서른 번 가까이 같은 내용의 꿈이 반복되면서 이젠 꿈속의 인물이 누구인지, 어느 시대인지, 어떤 사연인지 구체화되고 있었다. 장렬하게 사라져간 고대 전사의 잊힌 서사가 완성되고 있었다. 꿈이 신화와 현실의 접점을 찾아내어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 내는 듯이. 흐릿한 첩보의 조각들이 맞추어져 하나의 선명한 정보가 완성되듯이 말이다. "이건 그저 그런 허튼 꿈이 아니야.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거야. 어떤 중대한 메시지를 보내오는 것이 분명해.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고대의 전쟁터였다. 힌두쿠시 어디쯤이라고 했다. 아마 고대의 박트리아, 지금의 북 아프가니스탄 지역일 것이다. 꿈 속의 주인공은 위대한 정복 왕이며 신의 아들(파라오)인 '알렉산드로스' 동방원정대의 백인대장(로카고스, Lochagos)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로카고스 레온티오스 타란디노스', 즉 타란토(고대 남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도시) 출신의 백인대장 레온티오스라고 불렀다. 그는 부하 아흔 일곱 명과 함께 남겨졌다. 박트리아 산악부족 연맹의 군대를 막아 신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힌두쿠시를 무사히 통과하도록 해야 했다. 얼마 전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에서 파라오로 받아들여져 '아문의 아들'로 불렸고, 또 파라오의 전통 왕호에 따라 '라의 아들'이라는 칭호도 사용됐다. 그리스식으로는 이를 '제우스-아몬의 아들', 곧 '제우스 신의 아들'로 이해했다. 신의 아들이 죽거나 다치면 안 된다. 신화가 위협받는다. 마지막 전투였다. 삼 주야를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못하고 싸웠다. 적은 포기할 줄 몰랐다. 그리고 영리했다. 시간은 그들의 것이었다. 한 번에 열댓 명 정도의 적이 일개미의 행렬처럼 끝없이 계곡과 산등성이와 바위와 관목의 그림자 사이를 통과하여 다가왔다. 적 열명을 죽이면 부하는 두 명이 죽었다. 이제는 마지막, 마침내 적장의 칼끝이 가슴에 닿았다. "지친 내 심장을 가져가라!" 심장의 요동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영혼을 붙잡고 있던 희미한 몸의 온기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빛이 채 가시지 않은 초저녁 하늘에는 빛이 사라져 가며 남기는 푸름과 검음의 경계에 실 같은 초승달이 떠 있었다. 고양이의 눈을 닮은 달이었다. 푸른 빛이 은은한 달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희미한 존재. 푸른 회색의 고양이. 고양이는 이제 곧 스러질 최후의 감각을 붙잡고 있는 전사의 가슴에 앉아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의 모습은 이제 막 전사의 몸을 떠나고 있는 영혼, 그 영혼의 심연으로 깊이 가라앉는 기억이 되고 있었다. 순간, 흩어져 있던 허민의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정보분석의 틀이 치열하게, 그러나 차갑게 가동하고 있었다. 우연과 필연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순백의 고양이 '백설이'의 눈. 푸름과 검음의 경계에 속하는 색깔의 눈. 초승달을 닮은 눈. 그리고 푸른 빛이 도는 회색의 고양이 '예나'의 모습. 이렇게 꿈 속에서 죽어가던 전사의 영혼, 그 영혼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소환되고 있었다.■ <편집자주>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 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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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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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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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6)] 휴스턴대, 30년 묵은 초전도체 기록 경신⋯상온 향한 압력 퀜칭 돌파구
- 전기를 보낼 때 저항이 완전히 사라지는 마법 같은 물질, 초전도체(Superconductor). 만약 이 물질이 우리가 숨 쉬고 생활하는 일상적인 온도와 압력에서 작동한다면 인류의 기술 문명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의 도약을 맞이하게 된다. 송전탑을 거치며 허공으로 사라지는 막대한 전력 손실을 없애고, 병원의 거대한 MRI 장비를 노트북 크기로 줄이며, 마찰 없이 달리는 자기부상 열차를 일상으로 만들 수 있다. 지난 백 년 동안 수많은 과학자가 이 궁극의 물질을 찾아 헤맸지만 자연의 벽은 높았다. 초전도 현상은 영하 100도를 밑도는 극한의 추위나 지구 대기압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끔찍한 압력 속에서만 조심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최근 국제 과학계가 이 견고한 자연의 장벽에 매우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들어냈다. 1993년 이후 무려 30년 넘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대기압 환경 초전도 최고 온도 기록이 마침내 깨진 것이다. 미국 과학 매체 사이언스뉴스와 피즈오알지(phys.org)는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이 경이로운 연구 결과를 지난 9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다이아몬드 압박 후 급속 냉각으로 구조 굳히는 마법 미국 휴스턴대 폴 추 교수 연구팀은 기존 초전도체 연구의 상식을 뒤집는 독창적인 실험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들이 선택한 물질은 1993년 대기압 상태에서 절대온도 133케이(영하 140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며 30년간 챔피언 자리를 지켜온 수은 기반 구리 산화물 화합물이다. 연구진은 이 오래된 화합물에 압력 퀜칭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물리적 훈련법을 적용했다. 실험의 원리는 몹시 까다롭지만 훌륭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두 개의 단단한 다이아몬드 사이에 화합물 시료를 끼워 넣고, 대기압의 10만 배에서 30만 배에 달하는 엄청난 압력으로 사정없이 짓눌렀다. 물질은 극단적인 압력을 받으면 내부 원자 구조가 빽빽하게 찌그러지면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는 특성을 지닌다. 진짜 마법은 그 다음 단계에서 일어난다. 연구진은 압력을 가한 상태에서 온도를 절대영도에 가까운 4케이(영하 269도)로 급격하게 얼려버린 뒤, 시료를 짓누르던 다이아몬드의 압력을 순식간에 풀어버렸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튼튼한 쇠 스프링을 떠올려 보자. 스프링을 손으로 꽉 누른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꽁꽁 얼려버리면, 손을 떼더라도 스프링은 원래의 느슨한 상태로 튕겨 나가지 못하고 찌그러진 모양 그대로 굳어버린다. 대장장이가 시뻘겋게 달궈진 쇠를 찬물에 담가 단단함을 고정하는 담금질과 똑같은 이치다. 온도가 너무 낮아 물질 내부의 원자들이 원래의 편안한 자리로 돌아갈 에너지를 얻지 못한 채, 초전도에 유리한 고압 구조 그대로 갇혀버리는 것이다. 그 성과는 눈부셨다. 압력이 완전히 사라진 평범한 대기압 상태에서도 이 화합물은 절대온도 151케이(영하 122도)까지 초전도 특성을 잃지 않았다. 30년 동안 누구도 넘지 못했던 기록을 무려 18도나 위로 끌어올린 쾌거다. 휴스턴대 폴 추 교수는 압력을 빼내는 속도가 조금만 빨라도 다이아몬드가 깨지거나 시료가 산산조각 나는 극도로 예민한 실험 과정을 회고하며 이 기술이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인지 설명한다. 플로리다대 제임스 햄린 교수는 최근 초전도 분야를 휩쓸었던 여러 논란과 달리 이번 성과는 기존의 탄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매우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실험 결과라고 평가했다. 우연의 시대 종말 선언하고 인공지능이 빚어내는 양자 메타물질 기록을 깬 것 못지않게 중요한 변화는 초전도체를 대하는 과학계의 근본적인 접근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날 학술지에는 휴스턴대 연구를 포함해, 오스트리아 그라츠공대 등 세계 각국의 물리학자 16명이 공동으로 집필한 상온 초전도체 탐색 전략 논문이 함께 실렸다. 이들은 물리학의 어떤 법칙도 상온 초전도체의 존재를 가로막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최근 수소 화합물 연구에서는 대기압의 200만 배라는 극단적 환경이긴 하지만 절대온도 260케이(영하 13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다. 이제 과학자들의 목표는 이 고압 상태의 기적을 우리가 사는 일상적인 대기압 환경으로 온전히 끌어내리는 데 맞춰져 있다. 과거의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수천 번, 수만 번 화합물을 섞고 끓이며 우연한 발견을 기다려야 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제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라는 강력한 나침반이 생겼다. 그라츠공대 크리스토프 하일 교수는 최근 폭발적으로 향상된 계산 능력 덕분에 무한대에 가까운 화학 원소 조합을 가상 공간에서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후보 물질을 정확히 짚어주면, 과학자들은 그 설계도에 따라 실험실에서 물질을 빚어내기만 하면 된다. 나아가 연구자들은 초전도체를 단순한 화학 물질의 혼합물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양자 메타물질로 다루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자연이 만들어준 구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벗어나, 나노미터 단위로 구조를 다듬고 불순물을 정밀하게 주입하며 초단파 레이저를 쏘아 초전도 상태를 인간이 직접 증폭시키겠다는 뜻이다. 바야흐로 초전도체를 우연히 줍는 시대가 끝나고, 목적에 맞게 인위적으로 건축하는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물론 이번 휴스턴대의 기록도 영하 122도라는 매서운 추위 속에 머물러 있다. 온도를 200케이 근처로 조금만 올려도 초전도 성능이 서서히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나, 아직 공장이나 발전소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상용화 단계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30년 동안 두꺼운 얼음에 갇혀 있던 초전도체 연구의 시계가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무기와 압력 퀜칭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나 다시 힘차게 돌기 시작했다. 전 세계 물리학자들이 전략적으로 연대하며 상온 초전도체를 향한 지도를 그려 나가는 지금, 인류를 에너지의 족쇄에서 영원히 해방시킬 궁극의 물질을 손에 넣는 일은 이제 막연한 기적이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으로 좁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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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6)] 휴스턴대, 30년 묵은 초전도체 기록 경신⋯상온 향한 압력 퀜칭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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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발의 사람과 결(4)] 속도의 유혹을 거부하는 사유의 불씨-풍요와 빈곤
- 속도의 유혹을 거부하는 사유의 불씨-풍요와 빈곤 세계는 어느 때보다 거대한 풍요의 파도 위에 올라타 있습니다. 손가락 끝의 움직임만으로 지구 반대편의 물건이 대문 앞에 당도하고, 정보는 홍수처럼 밀려와 우리의 뇌를 잠식시키고 있습니다. ‘부(富)’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인격이 되고 권력이 된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찬란한 빛의 이면에는 기이한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물질은 차고 넘치지만, 정작 그것을 누리는 인간의 내면은 갈수록 메말라가는 '풍요 속의 빈곤'입니다. 우리사회의 물질만능주의는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많이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너의 가치는 네가 소유한 브랜드와 평수로 증명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끝없는 비교의 굴레로 밀어 넣습니다.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해 가속 페달을 밟는 동안, 우리는 정작 지탱해 주던 소중한 가치들은 길가에 흘리고 다닙니다. 마치 아궁이의 불씨가 꺼져가는 지도 모른 채, 화려한 철제 난로를 사 모으는 격입니다. 물질만능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인간을 인격이 아닌 재력으로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지향해야 할 태도는 조건 없는 환대와의 연결입니다. 자주 가는 시내 국밥집 식당 주인이 떠오릅니다. 그는 최신식 키오스크를 들여 인건비를 줄이는 대신, 손님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마주하며 친절하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곤 안부를 묻습니다. 그러자 손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가 지키고 있는 것은 단순한 영업이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라는 불씨입니다.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면 빈곤한 선택을 한 셈입니다.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된 세상에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를 멈추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곁을 내어주는 행위 자체는 위대한 저항입니다.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에 시간을 들이는 행위, 이것이 물질의 풍요에 매몰되지 않고 영혼의 풍요를 선택하는 파수꾼의 모습입니다. 파수꾼의 삶은 고단합니다. 남들이 화려한 축제장으로 달려갈 때 성벽 위에서 보잘것없는 불씨를 감싸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라는 비난 섞인 충고를 듣곤 합니다. 하지만 이 불씨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얼음 왕국이 되고 맙니다. 물질적 풍요는 육체를 편안하게 해 줄 순 있지만,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빈곤한 것은 우리의 지갑이 아닌 자신을 향한 성찰의 부재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불씨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측은지심, 불의 앞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양심의 가책,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감탄할 줄 아는 감수성 같은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풍요란 얼마나 가졌는가 보다 얼마나 남겼는가, 내 삶에 얼마나 많은 물건을 채웠는가 보다 내 영혼에 얼마나 많은 온기를 남겼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온기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지폈는가가 삶의 성패를 가릅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이라는 성벽 위에서 불씨를 지키는 파수꾼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씨란 거창한 시대정신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공감의 온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자아의 존엄, 그리고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정직한 노동의 가치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이 불씨를 끄려 합니다. 효율성이라는 차가운 바람을 불어넣고, 비교라는 폭우를 쏟아 붓습니다. "적당히 해라",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냉소적인 목소리들은 파수꾼의 어깨를 무겁게 만듭니다. 이제 우리는 물질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내면의 불씨를 꺼트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풍요는 통장의 잔고에 있지 않고, 타인의 슬픔에 공명할 수 있는 마음의 넓이에 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의 불씨를 되찾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곁의 사람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 친절하게 건네는 것입니다. <필자 소개> 이위발 1959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지난밤에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 출간했습니다.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과 『솜솜한 인연』을 펴냈으며, 안동문화100선 『이육사』를 출간했습니다.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웹진 《엄브렐라》 주간과 한국디카시인협회 경북지부장을 맡아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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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발의 사람과 결(4)] 속도의 유혹을 거부하는 사유의 불씨-풍요와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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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7회)
- 2 '더파든'의 장 '더파든'의 기록(2) 어느 누구도 그에게 직접 물어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의 내력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공감대를 가진 듯했다. 그리고 이 마을의 남자들, 한국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들 역시 아내들이 옮기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듯했다. 남자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를 대했다. 일종의 묘한 경계심이었다. 그에게 일부러 다가오지도, 먼저 악수를 청하지도 않았다. 어쩌다 그를 마주치면 목례를 하거나, "안녕하세요" 라고 짤막한 인사말을 건네는 게 전부였다. 그에게는 편안함이었다. 어쩌면 위장된 평화. 이렇게 그는 이 작은 골짜기 마을, '진골'의 일부가 되었다. 파도가 바닷가 백사장에 스미듯이. 뻐꾸기가 멧새와 알락할미새의 둥지에 탁란의 여건을 만들 듯이. 스파이가 작전목표에 안착하듯이 말이다. 매일 아침 여섯 시면 그는 카페로 나왔다. 그리고는 무슨 의식을 행하듯이 세 잔의 커피를 만들곤 했다. 통상 원두는 하루 전에 볶아 준비하였다. 워낙 소량이기에 750그램 가정용 전기로스터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원두를 볶을 때마다 에티오피아 재래시장의 커피 세리모니를 떠올렸다. 화덕의 불을 피워 원두를 볶고, 제베나(커피를 끓이는 바닥이 둥근 도기 주전자)를 데우던 흑인 아낙. 그녀의 주름 깊은 이마에 맺혀 있던 굵은 땀방울. 뜨거운 햇볕에 고스란히 드러났던 그녀의 고단한 삶의 무게. 그런데 왜 그 여인의 모습에서, 허민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삶의 무게를 떠올리게 되는 걸까? 먼저 커피 두 잔을 뽑아 대장소나무(농장정원 정면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백 년쯤 된 큰 소나무)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가져다 놓았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몫으로. '나랏일을 이유로 자식 노릇에 소홀했다'는 회환과 사죄,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일종의 위로의식. 그리고는 자신을 위해 진하디 진하게 커피를 내렸다. 이십 그램의 원두를 이십 초 간 이십 밀리리터의 양으로 뽑아내는 삼박자 커피. 통상 설탕을 듬뿍 넣어 농밀한 맛을 즐기는 커피, 리스트레토를 마시면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추억했다. 평생 가난한 농부의 삶을 산 그의 아버지가 정작 한국식 삼박자 믹스커피 마저 그다지 즐기지 않던 사람이라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커피는 농부들의 땀냄새를 맡고 고단한 노동과 삶의 무게를 마시는 것이니까. 이렇게 그만의 아침 의식이 끝나고 십분 후면, 그의 꼬맹아내가 강아지 '슈나'를 데리고 카페로 들어서곤 했다. 오늘은 '탄자니아 더블에이'를 쓸 참이었다. 카페인에 민감한 그의 아내는 진한 커피를 두 모금 정도 마시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는 크림치즈를 듬뿍 얹은 부드러운 빵에 살구잼을 발라 먹었다. 한 조각 반. 그러나 커피를 꽤 즐기는 그는 먼저 크레마 한 잔을 내리고, 그것을 베이스로 에스프레소 또는 리스트레토 두 잔을 더해 진한 커피를 만든 다음, 오렌지 마멀레이드 잼을 바른 딱딱한 바게뜨 류 빵과 함께 먹는다. 두 조각 반. 이것이 그가 회사에서 벗어난 이래 육 년째 아침마다 이어져 오고 있는 그들 부부만의 '커피 세리모니'였다. 마침 열어놓은 카페의 문 앞. 사월 초순의 이른 아침이면 늘 그렇듯 막 떠오른 태양의 빛살이 밤새 내려앉은 자욱한 골안개를 통과하면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케냐와 탄자니아 접경 킬리만자로 산자락의 커피나무 사이에서도 이렇게 아침안개가 피어오르곤 했지. 우아한 호수 '레이크 찰라(Lake Chala)'와 위대한 호수'레이크 지페(Lake Jipe)'에서 보내오던 안개. 탄자니아의 커피나무를 키우고, 체리의 달콤함 속에 커피의 다섯 가지 맛(신맛, 쓴맛, 단맛, 짠맛, 감칠맛)을 숨겨 풍성하게 하던 안개. 그런데 이제 나는 내 고향 진골의 골짝이 만드는 안개를 보고 있어." 축축한 흙냄새에 섞여 온갖 종류의 유기물질 입자들이 새로운 생명의 신호 마냥 이제 막 흩어지기 시작하는 안개 속을 부지런히 오가며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봄이 온 거야. 이제 겨울의 게으름과는 안녕을 고해야 할 걸. 따스한 공기가, 동해에서 불어오는 습기 머금은 해풍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간밤에 동해에서 불어와 바짝 마른 그라스 속에 머물고 있던 아침바람은, 악명 높은 양간지풍(사월 또는 십일월 영동지방에 몰아치는 강력한 바람. 건조한 공기를 동반하며 종종 거대한 산불을 일으켜 막대한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 바람이 양양과 간성 일대에 분다고 양간지풍, 또는 양양과 강릉 일대에 분다고 양강지풍이라고도 한다)에 들키기라도 할까 봐 납작 몸을 낮춘 채 보송한 솜털이 덮인 램스이어의 녹색 이파리를 희롱하고 있었다. 카페 출입구 앞에 벚나무의 꽃잎이 몇 조각이 날려와 있었다.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지는 것이다. 예외는 없다. 세상 일이 그렇다. 평화였다. 허민 그가 꿈꾸던, 아니 세상의 모든 스파이가 꿈꾸는 평화였다. 최소한 그날 아침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운명의 어느 쪽 문이 열릴지, 문 앞의 어떤 길을 내가 선택하게 될지, 그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 <편집자주>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 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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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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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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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6회)
- 2. '더파든'의 장 '더파든'의 기록(1) 벚꽃의 봉우리가 부풀었다. 내일이나 모레 정도면 팝콘처럼, 샴페인 방울처럼 터질 것이다. 다섯 번째 벚꽃이다. 허민이 이곳에 자리한지 오 년이 지났다. 햇수로는 육 년째. 자리했다기 보다 조용히 스며들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은근히 다가온 파도가 모랫벌에 스미듯, 여름밤 앞바다에서 불어온 따뜻한 해풍이 그라스에 안기 듯. 그리고 스파이들이 임무의 목표에 들 듯이. 이곳은 강릉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골짜기. 사람들이 '진골'이라 부르는 골짜기. 어떤 연유로 '진골'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도 없고, 그 연유를 궁금히 여기는 사람도 없이 그저 그렇게 불릴 뿐인, 기껏해야 이 킬로 남짓한 자그마한 골짜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흔하디 흔한 그런 골짜기. 대관령에서 동해를 향해 흘러내리는 수많은 산자락들은, 끝날 때쯤이면 이 같은 작은 골짜기를 만들고, 골짜기 안에 거의 예외 없이 완만한 경사의 구릉지를 형성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 구릉지에 밭을 일구어 감자, 옥수수, 배추 등 작물을 가꾸며 살았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다. 그러다가 오십여 년 전 어느날 그의 아버지는 이러한 작물 대신에 포도를 재배하기로 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캠벨 품종의 포도. 캠벨은 생식용 포도로 한국, 일본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된다. 발효될 때 생기는 노린내 비슷한 특유의 냄새와 맛 때문에 포도주로 만들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의 판단은 옳았고 작은 규모의 땅에서 기대 이상의 소득을 낼 수 있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포도를 가꾸기 시작했고 몇년 되지 않아 이 일대에는 꽤 큰 포도 생산단지가 형성되었다. 그가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이곳 주민들 중에 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진즉에 세상을 떠났고, 이후 세대 사람들도 일을 찾아 다른 지방으로 거처를 옮긴 후였다. 그를 아는 사람은 팔십 대 중반의 집안 아저씨가 유일하였다. 그러나 아저씨는 그의 히스토리에 대해 철저히 함구할 것이 분명하였고, 혹 무심코 그를 거론하더라도 '중앙무대에서 나라 일을 하던 사람이다' 정도로 얘기할 것이었다. 실제로도 그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을 터였다. 그는 거의 방치되어 잡초가 무성했던 아버지의 포도농장을 정리하여 나무와 꽃을 가꾸고 텃밭농사를 짖는 '농장정원'을 조성하고는, '더파든(TheFarden)'이라고 명명하였다. 농장(Farm)과 정원(Garden)의 합성어. 세상에서 유일한 정원이기에 정관사 '더(The)'를 붙였다. 그리고 '더파든(TheFarden)'이라고 디자인된 자그마한 간판도 세웠다. 물론 벚나무 서른 다섯 그루도 지형에 어우러지게 심어졌다. 삼십오 년만의 귀향이었다. 그리고는 농장정원 입구의 농기계창고를 손보아 손바닥만 한 카페를 만들었다. 퇴락한 네 평 반짜리 농기계창고가 컨츄리 풍의 정감있는 카페로 다시 태어나는 데는 세 달이면 충분하였다. 당초 그는 그와 꼬맹아내 두 사람의 '커피 세리머니'를 위해, 그리고 혹 찾아올지도 모르는 옛 친구와 만남의 장소로 이곳을 만들었다. 그러나 농장정원 '더파든' 안을 기웃거리며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오는 동네 아낙들을 외면할 수 없어 몇몇에게 커피를 대접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의도와 전혀 관계없이 어느덧 이곳은 여인들의 아지트가 되어 버렸다. 여자들은 이곳 남자들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에 대해 호기심을 넘어 어떤 묘한 심리적 동요를 느끼는 것 같았다. 언제 부터인지 여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치르는 주부들의 전쟁, 남편과 아이들을 그들의 전쟁터로 출정시키고는 하나 둘 자연스럽게 그의 카페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다른 남자의 중저음 목소리를 즐겼다. "부인, 오늘 같이 뜨거운 여름날은 탄자니아가 어울릴 겁니다. 작열하는 열대 사바나의 태양에 달구어진 검붉은 흙. 그 흙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품은 커피지요. 한마디로 이열치열입니다." "파도의 비말 같은 부슬비가 내리는 오늘은, 자바 만델링을 에스프레소로 마시면 좋을 겁니다. 뭐 부인께서 즐기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괜찮겠고요." 여자들은 그가 추천하는 커피도 그렇지만, 그가 자신들을 부르는 '부인'이라는 호칭이 좋았다. 자신들에게는 꽤나 생소한 호칭에 어색해하면서도 감수성을 건드리는 미세한 어떤 흔들림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여자들끼리 만났을 때 그를 화제로 삼는 일이 점점 많아지더니 급기야 남자의 정체를 밝히는 공동 전선을 형성한 듯 다양한 얘기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훌륭한 정원사야. 나무와 꽃들을 대하는 섬세한 손길, 이런 사람을 그린핑거라고 부른다지. 이른 봄 잔설을 제치고 스노우드롭, 수선화, 크로커스, 무스카리가 어떤 순서로 고개를 내미는지, 어떤 순서로 피는지, 하루 중 언제 피어날지 알고 있더라니까 글쎄." "그의 왼쪽 귀 아래 턱수염에 숨겨진 깊고 긴 상처자국을 봤어? 턱과 아랫입술 사이에도. 위험한 일을 감당해온 사람인게 분명해. 왼쪽과 오른쪽 어깨의 높이가 달라. 그리고 서있을 때 오른쪽 어깨를 앞으로 하여 비스듬하게 서는 것 같아. 마치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 듯한 느낌." "두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 밖으로 들어난 그와 숨겨진 또 다른 그 사람. 뭔가 어둠의 세계로 이어진 듯한." "그는 말할 때 거의 완성된 문어체의 문장을 구사해. 뭔가 공적인 일을 하던 사람일 거야." 관심은 비밀의 문을 두드리지만, 비밀은 봉인되었고 침묵만이 답으로 남았다. ■ <편집자주>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 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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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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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희토류 가공 95% 장악한 중국⋯미사일·드론·F-35까지 '자석 공급망'이 서방 안보 흔든다
- 전 세계의 관심이 반도체와 무역 갈등에 쏠린 사이, 미국과 서방 방위산업의 치명적인 취약성이 다시 드러났다. 첨단 무기 체계의 핵심 소재인 희토류 가공 공급망이 사실상 중국에 장악돼 있기 때문이다. 미 안보·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Oilprice)는 5일(현지 시간) 보도에서 "희토류 공급이 중단되면 미사일도, 드론도, 첨단 전투기도 작동하지 않는다"며 서방 방위산업이 중국의 희토류 가공 능력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취약성은 2025년 10월 미·중 무역 갈등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제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즉각적인 맞대응 대신 '가공 희토류 수출 중단 가능성'이라는 조용한 압박을 가했다. 이후 미국의 관세 조치는 실제 시행되지 않았다. 가공 95% 장악한 중국…서방 방위산업의 '숨은 약점' 희토류는 이름과 달리 지구상에 널리 존재한다. 미국, 캐나다, 브라질, 그린란드 등에서도 충분한 매장량이 확인된다. 문제는 원광이 아니라 이를 금속과 자석으로 바꾸는 가공 단계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가공 시장의 약 90~95%를 장악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환경 규제와 비용 문제로 가공 산업을 축소하는 사이 중국은 제련·분리·합금화에 이르는 중간 가공 인프라를 구축했고, 그 결과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지위를 확보했다. 희토류 자석은 현대 산업과 군사 기술의 필수 부품이다. F-35 스텔스 전투기 한 대에는 약 435kg의 희토류가 들어가며, 차세대 구축함에는 2~2.5톤, 핵잠수함에는 약 1.5톤이 사용된다. 미사일 유도 시스템, 정밀 유도 폭탄, 드론 모터, 전기차 구동 장치, 풍력 터빈, 로봇 장비까지 거의 모든 첨단 기술이 희토류 자석에 의존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문제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줬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한 해 동안 약 120만 대의 드론을 생산했지만, 이 드론에 들어가는 자석 대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자석 수출을 제한할 경우 서방의 드론 생산과 미사일 체계는 즉각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또 다른 문제는 '탈중국 공급망'이 실제로는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 외 지역에서 희토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기업들 상당수도 중국산 분리 장비, 제련로, 화학 물질, 소모품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제련 공정에 필수적인 흑연 양극재 등 핵심 소모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공급된다. 중국이 이들 제품 수출을 제한하면 서방의 가공 공장 역시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27년 중국산 희토류 금지…북미 공급망 구축 '시간과의 전쟁' 희토류 공급망 재건이 쉽지 않은 이유는 기술 장벽 때문이다. 희토류 광물은 17개 원소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어 다단계 용매 추출 공정을 통해 분리해야 한다. 이후 섭씨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금속화 과정을 거쳐 합금으로 제조해야 하는데, 수천 단계에 이르는 정밀 공정이 필요하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 금속화 단계가 중국 외 지역에서 가장 재건하기 어려운 기술 역량이라고 지적했다. 단순한 투자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2027년 1월 1일부터 중국산 희토류를 사용한 소재를 미 국방 무기 체계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새로운 조달 규정을 시행할 예정이다. 해당 규정이 발효되면 중국산 희토류 자석을 사용하는 방산 기업은 주요 무기 프로그램에서 배제될 수 있다. 북미에서는 이러한 규정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공급망 구축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유클리드에 시설을 둔 리알로이스(REalloys)는 방위산업용 희토류 금속과 합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미 국방부 계약에 따라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캐나다 사스카추완의 희토류 가공 시설과 연계해 광산에서 자석까지 이어지는 '차이나 프리(China-free)' 공급망 구축을 추진 중이다. 사스카추완 연구위원회(SRC)가 구축한 희토류 가공 시설은 자동화 제련 공정과 AI 기반 공정 제어 시스템을 적용해 중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생산 체계를 목표로 한다. 이 시설은 2027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완공되면 중국 외 지역에서 가장 큰 중희토류 산화물 공급원이 될 전망이다. 중희토류는 특히 군사 기술에서 중요하다. 디스프로슘과 테르븀 같은 원소는 고온 환경에서도 자력을 유지할 수 있어 미사일 유도 장치, 전투기 엔진, 고성능 드론 등 방위산업 핵심 장비에 필수적이다. 이 원소가 포함되지 않으면 자석 성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문제는 시간이다. 모건스탠리는 향후 10년 동안 희토류 자석 수요가 3~5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전기차, 전력망, 방위산업, 로봇, 인공지능 산업이 동시에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급망은 여전히 중국에 집중돼 있다. 중국 정부는 희토류 가공 기술과 장비의 해외 이전을 제한하고 있으며, 특정 산업에 대해서는 최종 사용 인증 제도를 통해 사실상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2027년 미국의 방산 조달 규정이 시행되면 방위산업 기업들은 중국산 희토류를 대체할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상업 규모의 가공 능력을 갖춘 기업은 극히 제한적이다. 희토류 문제는 단순한 산업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 문제로 떠올랐다. 현대 전장의 핵심 무기 체계가 중국이 장악한 소재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방이 독자적인 희토류 가공 체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첨단 무기 체계의 운용 능력은 중국의 자원 통제 정책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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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희토류 가공 95% 장악한 중국⋯미사일·드론·F-35까지 '자석 공급망'이 서방 안보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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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4)] 존스홉킨스대 소행성 충돌 실험 생명체 생존 입증⋯우주 기원설 규명
-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인류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품어온 이 가장 근원적이고 오래된 질문에, 최근 아주 작고 질긴 생명체가 놀라운 해답의 실마리를 던졌다. 지구 생명체의 조상이 척박하고 차가운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온 외계 이민자일지 모른다는 매혹적인 가설이,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극단적인 물리적 충돌 테스트를 뚫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소행성 충돌과 같은 우주적 대재난 속에서도 생명체가 살아남아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이른바 암석 범종설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입증받은 것이다. 미국 정보기술 전문 매체 기즈모도와 과학 매체 아이에프엘사이언스(IFL)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과학자들이 국제학술지 'PNAS 넥서스'에 지난 3일(현지시간) 발표한 이 경이로운 연구 결과를 같은 일제히 보도했다. 지구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 중에서도 암석판스페르미아 가설(lithopanspermia hypothesis)은 가장 도발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가을날 민들레 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새로운 땅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듯, 광활한 우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개념이다. 수십억 년 전, 화성이나 다른 행성에 거대한 운석이 충돌했을 때 그 엄청난 폭발의 충격으로 행성 표면의 파편들이 우주 공간으로 튕겨 나간다. 만약 그 암석 파편 깊숙한 곳에 미생물이 숨어 살고 있었다면, 이들은 천연의 돌로 만든 우주선을 타고 수백만 년의 긴 세월을 캄캄한 진공 속에서 떠돌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불타는 유성우가 되어 쏟아져 내렸고, 그것이 오늘날 지구 생태계를 이룬 생명의 씨앗이 되었을 수 있다는 장대한 시나리오다. 이 매력적인 가설이 그동안 주류 과학계에서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충격이라는 물리적 한계 때문이었다. 행성의 중력을 이기고 우주로 튕겨 나갈 때 발생하는 폭발적인 압력, 그리고 지구 대기권을 뚫고 시속 수만 킬로미터로 땅에 격돌할 때의 파괴력을 그 연약한 단세포 생명체가 과연 견딜 수 있느냐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극한 환경에서 물질의 거동을 연구하는 엔지니어이자 이번 연구의 수석 저자인 KT 라메쉬는 "생명체는 한 행성에서 튕겨져 나와 다른 행성으로 이동한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생명의 기원, 특히 지구에서의 생명 기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는 매우 중요한 발견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진은 이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가혹한 조건의 무대를 실험실에 구현했다. 강철판 찢은 3기가파스칼의 충격…경이로운 세포의 방어력 연구진이 이 가혹한 우주 비행 선발 테스트에 올린 생명체는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Deinococcus radiodurans)라는 특수한 미생물이다. 칠레의 고지대 아타카마 사막처럼 춥고 건조하며 자외선과 우주 방사선이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극지에서 주로 발견되는 이 사막 박테리아는, 인간의 치사량보다 수천 배 강한 방사선에 노출되어도 살아남는 지구 최강의 생존력을 자랑한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코난 더 박테리움이라는 웅장한 별명으로 불릴 정도다. 이들은 방사선이나 물리적 충격으로 자신의 DNA가 산산조각 나더라도, 불과 몇 시간 만에 스스로 파괴된 유전 암호를 완벽하게 재조립하는 경이로운 복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연구진은 이 질긴 미생물을 두 장의 두꺼운 금속판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얇게 바른 뒤, 시속 약 483킬로미터의 속도로 특수 제작된 고속 발사체를 정면으로 충돌시켰다. 총알이 날아와 꽂히는 순간 발생하는 압력은 무려 1에서 3기가파스칼에 달했다. 숫자로만 들으면 체감이 어렵지만, 이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 해구 밑바닥에서 잠수함의 외벽을 짓누르는 수압의 약 10배에서 30배에 달하는 수치다. 엄지손가락 손톱만 한 면적 위에 코끼리 수백 마리가 동시에 올라타 짓밟는 것과 같은, 뼈와 살이 흔적도 없이 으스러져야 마땅한 극한의 압력이다. 그러나 전자현미경으로 확인한 충돌 직후의 결과는 연구진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연구를 주도한 존스홉킨스대 릴리 자오 교수는 첫 번째 압력 테스트에서 당연히 미생물들이 형체도 없이 터져 죽었을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사체의 충격 속도를 높이고 반복해서 때려도 이 작은 생명체들의 숨통을 끊어놓기는 역부족이었다. 약 1.4기가파스칼의 압력까지는 세포 손상조차 거의 없이 대다수가 온전하게 살아남았다. 압력을 한계치인 2.4기가파스칼까지 끌어올리자 그제야 일부 세포막이 찢어지고 내부 구조에 손상이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미생물의 60퍼센트 이상이 버젓이 목숨을 부지했다. 실험 과정에서 가장 경이로웠던 사실은, 반복된 충돌의 엄청난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미생물을 감싸 보호하던 단단한 강철판이 먼저 찢어지고 부서져 내렸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하고 물렁물렁한 생물학적 세포의 끈질김이,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강도를 이겨낸 순간이었다. 화성에서 온 인류의 조상…심우주 탐사의 새로운 딜레마 이 경이로운 실험 결과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대자연이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빚어낸 생명체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극단적인 물리적 폭력을 견뎌내도록 유연하고 강력하게 적응해왔다는 것이다. 만약 1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생물이 혜성 충돌이라는 우주적 규모의 타격을 이겨낼 수 있다면, 인류의 족보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수십억 년 전, 거대한 강이 흐르고 따뜻한 대기를 가졌던 화성에서 최초로 발생한 생명이 거대한 운석 충돌을 타고 우주로 튕겨 나와, 푸른 별 지구로 이주해 온 우리의 진짜 조상일 가능성은 이제 뜬구름 잡는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과학적 시나리오가 되었다. 반대로, 과거 지구를 강타했던 거대 소행성 충돌의 여파로 튕겨 나간 지구의 미생물들이 우주를 떠돌다 목성의 얼음 위성인 유로파나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의 바다에 떨어져 자신들만의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 하지만 강철보다 질긴 이 생명력은 인류의 미래 우주 탐사에 아주 무겁고 까다로운 딜레마를 던진다. 미국 항공우주국이나 유럽우주국은 화성 탐사선인 퍼서비어런스나 각종 우주 탐사 장비를 우주로 쏘아 올릴 때, 혹시 모를 오염을 막기 위해 반도체 클린룸보다 수백 배 더 철저한 무균실에서 장비를 조립하고 살균 처리한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하게 멸균 처리를 하더라도, 이번 실험에서 확인된 것처럼 생명력이 강한 지구의 극한 미생물 한두 마리가 탐사선 구석에 묻어 우주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들은 로켓이 발사될 때의 엄청난 진동과 압력을 비웃듯 견뎌낼 것이고, 척박한 화성의 자외선 폭격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확률이 매우 높다. 우주 과학계에서는 이를 행성 간 교차 오염이라고 부르며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만약 훗날 인류가 화성의 땅을 깊숙이 파 내려가 마침내 꿈에 그리던 외계 생명체의 흔적이나 살아있는 미생물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그 생명체가 화성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진짜 외계 토착 생명체인지, 아니면 수십 년 전 우리가 보낸 탐사선 바퀴에 묻어간 지구 미생물이 화성 환경에 적응해 번식한 후손인지 구별하는 것은 악몽처럼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생명의 기원을 찾고 우주의 신비를 풀려는 우리의 순수한 탐사 행위 자체가, 역설적으로 외계의 순수한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과학적 진실을 가려버리는 치명적인 오염원이 될 수 있다는 뼈아픈 역설이다. 지구 생명은 과연 우주에서 날아왔는가. 이번 존스홉킨스대의 충돌 실험 하나만으로 암석 범종설이 완벽하고 완전무결하게 증명된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 소행성이 우주를 가로지르는 궤도의 역학, 수백만 년 동안 이어지는 절대 영도에 가까운 극저온과 우주 방사선의 쉴 새 없는 폭격 등 미생물이 살아남기 위해 검증하고 넘어야 할 변수들은 여전히 태산처럼 쌓여 있다. 그러나 강철판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파괴적인 충격 속에서도 살아남아 증식을 준비하는 박테리아의 끈질긴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철학적 통찰을 안겨준다. 생명이라는 현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지구라는 좁고 안전한 온실 속에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주는 생명이 살 수 없는 차갑고 텅 빈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명의 씨앗들이 소행성과 혜성이라는 바위를 타고 끊임없이 궤도를 교차하며 수정되는 거대하고 역동적인 생명의 바다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생명의 기원을 묻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우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위대함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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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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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4)] 존스홉킨스대 소행성 충돌 실험 생명체 생존 입증⋯우주 기원설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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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5회)
- 1 스파이의 장 스파이와 평화(2) 며칠 후 그는 경포호수의 산책로를 걸었다. 강릉 경포호수의 벚꽂은 아름답다. 경포대 정자를 둘러싼 벚꽃도 좋지만, 호수 둘레길을 따라 늘어선 벚꽃이 물에 비친 정경은 마치 호수가 수면 위로 벚꽃을 들어 나에게 바치는 듯한 착각을 준다. 아름답다 못해 신비감에 젖게 한다. 마침 벚꽃 축제기간.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연인과 또는 혼자서 봄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모두들 행복해 보였다. 허민과 그의 아내와 강아지 '슈나'도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행복해지기로 했다. 순간 작은 바람이 일면서 눈 앞 자욱하게 벚꽃 잎이 날렸다. 왜 벚꽃은 지는 것이 아니라 산산히 부서지는 것일까? 날리는 벚꽃 잎을 보며, 허민은 문득 그가 영국에 잠깐 근무하던 시절 만났던 '알렉세이' 생각이 났다. 현장작전 전문이었던 그에게, 회사가 잠깐 선심을 쓴 시기였다. 직전 작전에서 그는 오른발 뒤꿈치에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요즘 시대에 부비트랩 같은 유물에 다 당하다니. 발 뒤꿈치 부상의 후유증은 상당기간 몸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이는 곧 현장 투입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 사고는 한국 모 대학 인류문명학 교수의 국적세탁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필리핀을 거쳐 레바논까지 갔었다. 베이루트 항 부두 구석진 곳의 한 창고에 진입했을 때 어두운 모퉁이에 설치되어 있던 사냥용 덫에 걸렸다. 왼발 뒤꿈치 3센티미터 정도가 잘려나갔다. 마침 특수전용 안전화를 신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레바논 범죄조직 '샤리카트 알 아르즈(Sharikat al-Arz al-Mutawassit)'의 창고였다. 덕분에 레바논 경찰은 엄청난 양의 대마합성 각성제인 '캡타곤'을 압수했다. 그들이 직전 삼 년 간 압수한 양을 훨씬 웃돌았다. 당시 경찰 특수작전팀 ISF의 팀장이었던 '카림 알 하다드'는 나중에 경찰청장이 되었다. '알렉세이'는 러시아 대사관 공보담당 참사, 허민은 한국 대사관의 공보담당 서기관이었다. 각국 대사관의 공보담당 중 상당 수는 그 나라 정보기관 출신이다. 대외활동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영국 외교부에서 개최한 여왕 생일축하 행사에서 처음 만났다. 그 후 두 사람은 가까워져 서로 집으로 초대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같은 국제학교를 다닌 데다 두 사람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게 그들을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허민은 KMA, '알렉세이'는 '프룬제(Frunze)'를 졸업했다. 스파이의 세계에서 절대적 적은 없다. 절대적 동맹도 없다. 그러나 친구는 있다. 비록 어느 훗날 적으로 만나 총구를 겨눠야 하는 운명에 처해질 때도 프로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한다. 그것이 스파이 사회에서의 우정이다. "은퇴를 하면 호젓한 시골에 농장을 갖고 싶다네. 농장 가득하게 벚나무를 심는 거야. 왕벚꽃나무 백 그루. 벚나무 사이 사이에 작은 밭을 일구어 채소를 심고 말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벚꽃 그늘에서 우유를 듬뿍 넣은 홍차를 마시는 그런 꿈을 꾸지." 어느 날 문득 '알렉세이'가 말했다. 허민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테라스에서 코냑을 마실 때였다. 그날따라 왠지 '알렉세이'의 눈빛이 공허해 보였다. 얼마 후 허민은 귀국하였다. 그리고 일년쯤 되었을 때 '알렉세이'가 영국으로 망명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후 벚꽃철이 되면 허민은, 영국 어느 시골 농장의 벚꽃나무 그늘 아래에서 홍차를 마시는 '알렉세이'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그의 평화를 기원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알렉세이'가 스코틀랜드 시골 농장에서 독극물이 든 홍차를 마시고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상세한 사망경위에 대한 영국 정부당국의 공식 발표는 없었다. 다만 몇 군데 탐사보도 매체에서 정원의 야외탁자 위 찻잔에서 검출된 방사능 물질 폴로늄을 근거로 러시아 정보기관을 거론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더 이상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세계의 대부분 나라와 정보기관은 국가정보활동과 관련되는 한 그 어떤 사항도 확인하지 않는다.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오직 NCND(Neither Confirm Nor Deny)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주 희귀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와 정보기관도 있다. 그 나라의 정보기관과 스파이는 정치적 희생물이 될 뿐이다. '알렉세이'의 가족에 대한 소식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스코틀랜드 농장에 벚나무가 심어져 있었는지,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는지, 벚꽃이 피어 있었는지, 야외탁자가 벚나무 아래에 놓여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날 저녁 그와 그의 아내는 주문진 항의 생선회센터에서 대게 찜을 먹었다. 모처럼 소맥도 몇 잔 말아 마셨다. 시원한 소맥이 가져오는 느긋한 취기를 즐기면서 허민은 결심했다. "그래. 벚나무를 심는 거야. 아버지의 포도밭을 농장정원으로 만드는 거야. 왕벚나무와 함께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겹벚나무를 마주 보게 심는 거야. 지형에 어울리게 여러 품종의 목련을 심고 때죽나무, 팥배나무, 복자기, 산수유를 배합해야지. 과실이 열리는 살구와 체리와 호두나무를 빠트리면 안 돼. 그리고 나무들 사이 사이에 작은 밭을 일구어 꽃과 채소를 심어 가꾸는 거야. 알리움, 히야신스, 수선화 같은 구근 류와 수십 종의 붓꽃을 심어야지. 그리고 코스모스, 봉숭아, 과꽃 씨앗을 여기 저기 흩어 뿌려 온통 꽃마을을 만들 테야. 땀 흘려 일 한 날 저녁에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소설책도 좀 보다가 잠자리에 들 때면, 기분 좋은 피로감과 함께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오겠지. 평화라는 선물에 감사하는 기도." 사월의 주문진 밤 바다는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했다. 파도는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순순히 백사장에 스며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편집자주>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 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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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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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까, 말까(131)]'영원한 화학 물질'의 저주⋯몸속 노화 앞당기는 PFAS의 실체
- 프라이팬의 눌음 방지 코팅, 패스트푸드 포장지, 우비 등 방수 재킷, 청소용 세제 등 우리가 매일 접하는 평범한 생활용품들이 '영원한 화학 물질(Forever Chemicals)'이라 불리는 독성 물질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잇따른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월 25일 노화 분야 국제 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에이징(Frontiers in Aging)'에 발표된 새 연구는 이 문제를 한층 더 심각하게 다룬다. 연구에 참여한 326명 중 무려 95%의 혈액에서 PFAS(과불화알킬 및 폴리불화알킬 물질) 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이미 광범위한 노출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PFAS란 무엇인가⋯왜 '영원한' 화학 물질인가 PFAS는 1950~60년대에 개발된 합성 화학 물질군으로, 물·기름·열·부식에 강한 특성 덕분에 수십 년간 산업계와 소비재 시장에서 폭넓게 활용되어 왔다. 문제는 이름 그대로 자연계에서 분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토양과 수원에 축적되고, 먹이사슬을 타고 올라와 결국 인간의 혈류에 안착한다. 과학전문매체 사이언스 얼럿은 26일(현지시간) 모든 PFAS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견고한 탄소-불소 골격 때문에 이들이 분해되는 데 최대 천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또한 업계는 분자 구조를 약간만 변형하여 유사한 결과를 가져오는 완전히 새로운 PFAS를 만들어 기존 국제 규제를 우회할 수 있으며, 1만2000여 종의 변종이 여전히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상하이 교통대 과학자들이 진행한 이번 연구는 11종의 PFAS 중 특히 과불화노난산(PFNA)과 과불화옥탄술폰아미드(PFOSA) 두 물질에 주목했다. 이 두 성분의 혈중 농도가 높을수록 생물학적 노화, 즉 실제 나이보다 세포와 장기가 더 빠르게 늙어가는 현상이 뚜렷이 관찰됐다. 왜 중년 남성이 가장 취약한가 연구팀이 1999~2000년에 수집된 전국 대표 표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50~64세 중년 남성 집단에서 PFAS로 인한 가속 노화 효과가 가장 두드러졌다. 상하이교통대 의대의 리샹웨이(Xiangwei Li) 교수는 그 이유로 생활 습관을 지목했다. "흡연과 같은 생활 습관 요인이 노화 지표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데, 남성의 경우 이런 요인들이 오염 물질의 유해 효과를 복합적으로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공동 저자인 쉬야첸(Ya-Qian Xu) 박사는 생물학적 맥락을 더했다. 중년은 신체가 노화 관련 스트레스 요인에 민감해지는 '취약한 생물학적 창(sensitive biological window)'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화학 물질 노출이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강한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의 공백-유럽은 움직이는데, 한국은? 국제 사회의 반응은 엇갈린다. 프랑스는 의류와 화장품에 PFAS 사용을 이미 전면 금지했으며, 유럽연합(EU)도 유사한 규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반면 미국과 한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여전히 제도적 공백이 크다. 연구팀은 개인 차원의 위험 감소 방법으로 포장 식품 소비를 줄이고, 패스트푸드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행위를 피할 것을 권고했다. 열이 가해질수록 포장재에서 PFAS가 더 많이 용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합 오염의 시대, 연구는 이제 시작 리샹웨이 교수팀은 후속 연구로 PFAS가 다른 환경 오염 물질과 상호작용할 때 발생하는 누적 건강 위험을 모델링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화학 물질이 아니라 수십 종의 오염 물질에 동시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편의를 위해 용인해온 화학 물질들이 우리 몸속에서 시계를 빠르게 돌리고 있다. '영원한 화학 물질'의 저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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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까, 말까(131)]'영원한 화학 물질'의 저주⋯몸속 노화 앞당기는 PFAS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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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179)] '달, 강한 자기장' 논쟁 50년 만에 종결⋯아폴로 달 암석 재분석
- 달의 자기장이 과거에 강했는지, 아니면 미약했는지를 둘러싼 50년 논쟁이 옥스퍼드대학교 과학자들의 새로운 분석으로 매듭지어졌다. 영국 옥스퍼드대 지구과학과 연구진은 26일(현지시간) 아폴로 임무로 채집된 달 암석을 재검토한 결과, 초기 달에는 지구보다 강한 자기장이 존재한 시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극히 짧은 예외적 현상이었으며, 대부분의 기간에는 약한 자기장이 유지됐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에 게재됐다. 달의 자기장은 달 내부에 '다이너모(dynamo)'라 불리는 자기장 생성 메커니즘이 작동했는지 여부와 직결된다. 이는 달 내부 구조와 열 진화, 형성 역사 전반을 이해하는 핵심 단서다. 그동안 일부 아폴로 암석에서는 매우 강한 고(古)자기 신호가 검출돼 "초기 달에 강력한 자기장이 존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면 달의 작은 핵과 빠른 냉각 속도를 고려하면 장기간 강한 자기장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반론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을 통해 양측 주장이 모두 일정 부분 타당하다는 절충적 해석을 제시했다. 달 형성 이후 약 35억~40억 년 전, 특정 시기에는 지구보다 더 강한 자기장이 형성됐지만, 이는 매우 단속적이고 일시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달의 자기장은 약한 상태였으며, 강한 자기장은 예외적 화산 활동과 연계된 현상이었다는 설명이다. 핵심 단서는 고(高)티타늄 현무암이다. 연구진은 달 내부 깊은 곳의 티타늄이 풍부한 물질이 용융되면서 일시적으로 강력한 자기장을 생성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고티타늄 암석의 형성과 강한 자기장 기록이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달 내부의 화산 활동이 단속적 다이너모를 촉발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과거 해석에는 '표본 편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드러났다. 아폴로 임무는 비교적 평탄한 '마레(Mare)' 지역에 착륙했는데, 이 지역은 고티타늄 현무암이 풍부하다. 우주비행사들이 상대적으로 이들 암석을 많이 채집하면서, 지구로 가져온 표본 역시 강한 자기장 신호를 보존한 암석 비중이 과도하게 높아졌다. 그 결과 달이 오랜 기간 강한 자기장을 유지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개발한 모델은 이러한 표본 편향을 정량적으로 검증했다. 만약 달 표면에서 무작위로 암석을 채집했다면, 강한 자기장 사건을 기록한 표본을 확보할 확률은 극히 낮았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공동저자인 존 웨이드 옥스퍼드대 부교수는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단 여섯 번만 착륙했다면, 평탄한 지역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 역시 표본 편향을 겪었을 것"이라며 "아폴로가 마레 지역에 집중한 것은 우연이었고, 착륙지가 달랐다면 우리는 달이 줄곧 약한 자기장만 가졌다고 결론 내렸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달 자기장 형성사를 '강하거나 약하거나'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단속적으로 강해졌다가 약해지는 '간헐적 다이너모' 모델로 재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달 내부의 열·화학적 진화 과정을 새롭게 조명하는 단서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의 관건은 검증이다. 공동저자인 사이먼 스티븐슨 박사는 "어떤 유형의 암석이 어떤 자기장 세기를 보존하는지 예측할 수 있게 됐다"며 "향후 아르테미스 임무는 이 가설을 시험하고 달 자기장 역사를 더욱 정밀하게 밝힐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폴로가 남긴 표본은 인류가 달을 이해하는 토대가 됐다. 그리고 반세기 만에, 그 표본을 다시 들여다본 과학은 달 내부의 숨은 역사를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번 연구는 달 탐사의 과거와 미래가 하나의 과학적 연속선 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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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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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179)] '달, 강한 자기장' 논쟁 50년 만에 종결⋯아폴로 달 암석 재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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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4회)
- 1 스파이의 장 스파이와 평화(1)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끝내 그를 파괴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날 저녁, 아내는 그가 좋아하는 송이뭇국을 끓였다. 그의 고향 칠성산에서 나는 송이를 가늘게 찟어 넣은 뭇국. 국물 한 숟가락이 막 목줄을 타고 내릴 때 그의 아내가 무심한 듯 말했다. "회사가 당신을 버렸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봐야겠지." "회사가 당신을 버린 것이 아니야. 나에게 돌려준 거지. 이제 당신은 온전한 내 것이 된거야." "고마워." "그런데 회사는 나빠. 그동안 자기들 맘대로 사용해 놓고, 지 살겠다고 폐기처분하더니, 급기야 완전히 부숴 버리려고까지 했잖아." "응." "이제는 걱정 마. 내가 데리고 있을게. 그동안 너무 애 많이 썼어. 나와 우리 두 아들을 위해, 그리고 당신의 대의를 위해. 난 당신의 대의를 존중해, 누가 뭐라해도…" "고마워." "그나 저나 우리 이쁜이 '슈나'가 좋아하겠네. 이젠 매일 아침 아빠랑 산책도 할 수 있고 말야. 그치 '슈나'야…?" 순간 강아지 '슈나'가 펄쩍 뛰어 올라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코끝이 뜨끈해졌다. 이제 허민은 그가 '꼬맹 아내'라고 부르는 여인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그의 삼십년 스파이 인생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해온 여인. 며칠 아니 몇 달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불면과 불안이라는 친구와 익숙해 질 때쯤에 홀연 나타나는 남자를 평생 기다리며 살아온 여인. 법과 윤리의 국경을 넘나드는 회색의 경계지대에서 돌아와준 내 남자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곧 자기가 위로 받는 것이라고 믿었던 여인. '스파이의 여자'라는 말보다 '스파이의 아내'라는 말이 어울리는 여인. 그리고 그는 매일 아침 그와 그의 아내가 '슈나'라고 부르는 검은 색 미니어쳐 슈나우저 종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따금 바다에 갈 때면 백사장 파라솔 아래에서 그는 맥주를 마시고, 강아지 '슈나'는 아빠를 대신하여 낚싯대를 살필 것이다. 그가 독서하는 서재의 책상 밑에서 낮잠을 자고, 티브이를 볼 때도 옆을 지키는, 늙은 스파이의 완벽한 일부. 은퇴한 스파이의 평화를 완성하는 '스파이의 개'. 강아지 '슈나'가 그와 함께할 것이다. 이렇게 스파이들의 로망, 그러나 갖기 어렵다는 평화의 문이 허민 그에게 열리고 있었다. 다음 날 오후에 그는 꼬맹아내, 강아지 '슈나'와 함께 강릉의 한적한 바닷가 백사장에서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힘차게, 때로는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그저 선선히 모랫벌에 스며드는 파도. 파도는 다가올 때 이미 스며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러할 것인데, 우리는 쉽게 욕심을 놓지 못한다. 그러다가 때론 갯바위에 던져지기도 한다. 그러면 부숴지는 것이다. 하얗게 부숴지는 파도는 장열하다. 그러나 아프다. 허민은 스며들기로 했다. 스파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람처럼 움직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스파이의 길인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곳의 펜션에 방을 구했다. 강아지와 함께 투숙할 수 있는 애견펜션. 펜션의 여주인은 자기도 강아지를 키운다며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지내라 했다. 그는 열흘치 방값을 선불하며 청소는 알아서 할테니 주인이 신경 쓸 일이 없을 것이라 했다. 욕실용품이 필요하면 메모를 남기겠다고 했다. 조용히 지내게 그냥 내버려 두어 달라는 말이었다. 동해의 아침해는 일찍 솟는다. 이론적으로는 15분이라지만 실제로는 훨씬 빠르다. 동해의 아침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이 깨어 본 사람들은 이를 잘 안다. 허민과 그의 아내는 이른 아침해가 잠을 깨운 날은 해변을 걷고, 바람이 잠을 깨운 새벽에는 해맞이를 했다. 아침밥은 인근 카페에서 갓구운 크로아상과 진한 커피를 마시거나, 순두부식당에서 해결했다. 강릉의 두부는 간수 대신에 바닷물을 써서 응고시킨다. 수백년 전부터 해오던 방식이다. 낮에는 가지고 온 책을 읽거나 노트북과 핸드폰을 가지고 놀다가 지루해지면, 바닷가와 솔숲을 산책했다. 점심은 보통 건너뛰고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하루는 아내의 식성을 따른 얼큰한 한식, 하루는 그가 즐기는 이탈리안을 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탈리안 음식기호를 놀리는 아내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전생에 로마 사람이었던 것 같아. 천부장 '트리부누스 밀리툼'은 아니더라도 백부장 '켄투리아'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꿈도 그런 꿈을 꾼다니까. 정말 재미있는 것이 꿈 속에서는 나는 이탈리아 말을 잘 하고 잘 알아듣는단 말야." 스파이의 평화가 열리고 있었다. ■ <편집자주>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 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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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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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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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3)] 전력 먹는 하마 된 데이터센터, '유리'와 'DNA'로 구원할까
- 스마트폰에서 '클라우드(Cloud)' 아이콘을 누를 때, 우리는 흔히 하늘에 떠 있는 푹신하고 가벼운 구름을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의 클라우드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그것은 축구장 몇 배 크기의 거대한 창고 안에서, 에어컨이 뿜어내는 매서운 냉기를 맞으며 굉음을 내고 돌아가는 수십만 대의 시커먼 철제 서버(Server)들이다. 우리가 무심코 저장하는 유튜브 영상, 인스타그램 사진, 챗GPT와 나눈 대화들은 모두 이 물리적인 서버의 하드디스크에 쌓인다. 그리고 이 기계들이 과열되어 불타지 않게 식히는 데만 천문학적인 전기가 소모된다. 바야흐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시대, 인류는 지식을 축적할수록 지구가 뜨거워지는 무서운 역설에 직면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경고는 섬뜩하다. 현재 전 세계 전력의 1.5%를 먹어 치우는 데이터센터는 불과 4년 뒤인 2030년, 그 수요가 두 배로 폭증할 전망이다. 이때 뿜어져 나오는 탄소 배출량은 약 25억 톤. 미국 전체가 1년 동안 내뿜는 매연의 절반에 육박하는 양이다. 이 거대한 에너지 재앙을 막기 위해 전 세계 과학자들은 실리콘과 반도체를 버리고, 가장 원초적인 물질인 '유리(Glass)'와 생명의 설계도인 'DNA'에서 궁극의 해법을 찾고 있다. 아무도 안 보는데 전기를 먹는다? '콜드 데이터'의 딜레마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려면 우리가 생산하는 데이터의 성격을 뜯어봐야 한다. 현재 전 세계 데이터의 최대 80%는 '콜드 데이터(Cold Data)'로 분류된다. 당장 오늘 꺼내볼 일은 없지만, 법적 의무나 백업을 위해 지워서는 안 되는 정보들이다. 은행의 15년 전 이체 내역, 병원의 옛날 X레이 사진, 혹은 당신이 10년 전 헤어진 연인과 주고받은 메일함 속 편지들이 모두 콜드 데이터다. 현재 이 콜드 데이터는 대부분 하드디스크(HDD)나 자기 테이프에 저장된다. 진짜 비극은 여기서 발생한다. 하드디스크는 데이터를 그저 '가만히' 쥐고 있는 데도 끊임없이 전기를 먹는다. 테이프 역시 16~25도의 쾌적한 온도를 365일 내내 유지해 줘야 곰팡이가 슬거나 망가지지 않는다. 심지어 10여 년이 지나 수명이 다하면, 데이터를 새 테이프에 옮겨 적고 헌 테이프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과거의 기억을 숨 쉬게 하려고 오늘날의 막대한 에너지를 태우고 있는 셈이다. 영원히 깨지지 않는 기억…유리에 새기는 '5차원(5D) 메모리'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교의 피터 카잔스키(Peter Kazansky) 교수는 투명한 '유리'에서 이 전력 낭비를 멈출 마법을 찾아냈다. 보통 종이에 펜으로 글씨를 쓰면 가로와 세로, 2차원(x, y)으로 정보가 기록된다. 책을 여러 장 겹치면 깊이가 생겨 3차원(z)이 된다. 카잔스키 교수는 특수한 초고속 레이저를 유리에 쏴서 미세한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여기에 빛이 튕겨 나가는 '방향(편광)'과 빛의 '밝기(강도)'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추가했다. 이것이 바로 '5차원(5D) 데이터 저장' 기술이다. 비유하자면, 하나의 점(Pixel) 안에 글자 하나만 적는 게 아니라, 그 점이 뿜어내는 빛의 색깔과 반짝임의 정도에 따라 수십 권의 책을 압축해서 구겨 넣는 식이다. 이 '메모리 크리스털(Memory Crystal)'의 위력은 엄청나다. CD만 한 5인치 유리판 한 장에 자그마치 360테라바이트(TB)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 고화질 영화 약 7만 편 분량이다. 가장 위대한 점은 '전력 소모가 0'이라는 것이다. 데이터를 새길 때만 레이저를 쏘기 위해 전기가 필요할 뿐, 한 번 새겨진 유리는 전원 플러그를 뽑아도 1만 년 이상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다. 끓는 물에 넣어도,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안전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2017년부터 이 기술을 차세대 저장 장치로 점찍고 '프로젝트 실리카(Project Silica)'를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값비싼 특수 유리가 아닌, 집에서 쓰는 내열 오븐용 유리(보로실리케이트)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성공해 상용화의 문턱을 한층 낮췄다. 찻숟가락 하나면 전 세계 데이터를 품는다…'DNA 저장소' 유리와 함께 꼽히는 또 다른 혁신은 놀랍게도 생명체의 유전 정보가 담긴 'DNA'다. 컴퓨터가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은 '0'과 '1'의 조합이다. 과학자들은 이 디지털 언어를 DNA를 구성하는 4개의 알파벳(A, T, G, C)으로 번역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예컨대 00은 A, 01은 C, 10은 G, 11은 T로 규칙을 정한다. 그리고 컴퓨터 파일의 0과 1 배열에 맞춰 실제 인공 DNA 분자를 합성해 액체나 분말 형태로 보관하는 것이다. 나중에 데이터가 필요할 때는 유전자 검사를 하듯 DNA 염기서열을 읽어내 다시 0과 1로 번역하면 그만이다. DNA 저장의 가장 큰 무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압축률'이다. DNA 단 1그램(g)에는 무려 215페타바이트(PB)의 데이터가 들어간다. 이론적으로 찻숟가락 하나 분량의 DNA 분말만 있으면 전 세계 모든 데이터센터의 정보를 다 담을 수 있다. 또한 매머드 화석에서 수만 년 전 DNA를 추출하듯, 냉각 장치 없이 서늘한 곳에 두기만 하면 수천 년을 버틴다. 자연이 만들어낸 궁극의 USB인 셈이다. 기술의 장벽, 그리고 남겨진 '선택의 문제' 물론 당장 내년 백업을 유리나 DNA에 할 수는 없다. 유리에 저장된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는 아직 기존 하드디스크에 한참 못 미친다. DNA 저장은 데이터를 기록(합성)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과 긴 시간이 든다. 아일랜드 더블린 공과대학의 타니아 말릭(Tania Malik) 교수는 "이 혁신적 기술들이 기존의 저장 장치를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상당한 인프라 교체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기술적 한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데이터를 대하는 '태도'다. 우리는 언젠가 완벽한 영구 저장 장치를 갖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매일 쏟아내는 수백억 개의 의미 없는 스팸 메일과 흔들린 사진들까지 영원히, 지구의 에너지를 축내며 보관해야 할까? 데이터 폭증 시대, 과학기술은 무한한 저장 공간을 약속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기술은 인류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후세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잊어야 하는가." 유리와 DNA라는 영원의 기록장치 앞에서, 진정으로 걸러내야 할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인류의 정보에 대한 맹목적인 탐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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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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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3)] 전력 먹는 하마 된 데이터센터, '유리'와 'DNA'로 구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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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3회)
- 1 스파이의 장 버려진 스파이(2) 얼마되지 않아 진짜로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그가 분석파트로 옮긴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그의 짤막한 보고서 한 건 때문에 난리가 났다. A4용지 삼분의 이 분량의 짤막한 보고서. '앞으로 대통령에게 올리는 모든 보고서는 이렇게 작성하라'는 대통령실 지시와 함께, 그가 작성한 보고서가 샘플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긴 보고서는 거들떠보지 않아 그동안 비서실에서 별도 요약을 하거나 구두보고를 해왔는데, 그의 보고서에는 완전히 반해 버렸다는 것이다. 다음 날 열린 안보장관 회의의 대통령 지시사항은 그의 보고서 내용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보고서를 들고 가서 그대로 읽었던 것이다. 그의 보고서는 짧다.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데이터를 거론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긴박한 작전현장에서 행동을 결정할 때 이것저것 생각이 길어지면 내가 적에게 당한다. 순식간에 판단하고, 판단과 행동이 동시에 이루어져야한다. 살아남기 위해 체화된 그의 사고와 행동의 방식이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그 후 그의 경력은 탄탄대로였다. 2년도 채 되지 않아 부부서장이 되고 6개월 후 특별인사에서 부서장으로 승진하더니, 대통령실 비서관으로 불려갔다. 1년 10개월 후 회사에 복귀하면서는 '바이스 디렉터' 세컨드맨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부회장'이라 불렀다. 그와 그의 아내는 행복했다. 이대로 쭉 나아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행운은 오래가지 않는다. 스파이에게는 더욱 그렇다.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잊는 순간에 위기가 찾아온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어느 이른 봄 날이었다. 그가 운동을 마치고 휴게실 소파에 앉아 막 생수병을 입으로 가져가려 할 때였다. 대형 TV 모니터에 그 사건을 알리는 자막이 뜨고 있었다. 그의 부하들이었다. 해외도 아니었다. 국내였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아니, 큰 문제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희생의 제물을 찾고 있었다. 그들의 정치 굿판에 올릴 제물. 언론의 지면과 화면을 채워 줄 뉴스거리, 광고단가를 올리기 위한 저열한 수단. 누구도 그들이 요구하는 제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군다나 그들이 배고픈 하이에나의 무리라면. 농경의 여신 '데메테르'의 저주를 받아 끝없는 굶주림으로 결국은 자기의 몸까지 먹어버리는 그리스 신화의 '에리식톤(Erysichthon)' 같은 존재라면. 그는 기꺼이 그들의 제물이 되어주기로 했다. 버텨봐야 추해지고 상처만 깊어진다. 머뭇거리지 말아야한다. 판단과 동시에 행동이 이루어져야한다. 그는 자기 발로 걸어서 사라졌다. 스스로 사라진다는 자존감이 그나마 위로로 주어졌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곧 정권이 바뀌면서 새로이 칼자루를 쥐게된 자들은 신선한 먹잇감이 필요했다. 정권 초기부터 희생제물을 바치는 자욱한 연기로 온 세상을 덮기로 했다. 서초동의 언덕은 그들의 골고다가 되었다. 회사 출신들만 사백여 명이 불려나가 곤욕을 치렀다. 그중 사십여 명은 더 큰, 말 하기도 슬픈 그런 아픔을 겪었다. 그런데 그들을 더욱 슬프게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서초동 언덕배기에 웅거하고 있는 자들의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인 소위 증거자료라고 하는 것들. 그들의 발목을 잡고 손목을 비틀고 목덜미를 조으는 것들은 모두 회사에서 제공한 것들이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조직. 충성을 했던 조직. '목숨까지 바치겠다, 모든 것을 무덤까지 가져 가겠다'는 '진실의 방' 선서를 요구했던 회사가 그들을 요리하라고 식자재와 레시피까지 제공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요리되어 차례 차례 하이에나 무리들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졌다. 종이조각도 가죽신발도 양념만 잘하면 화려한 요리가 된다. 그 남자 '허민'도, 동료들의 '허밍'도, 코드네임 '벌새'도, 미국인들의 친구 '험비'도 버려졌다. 버려진 스파이가 되었다. ■ <편집자주>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 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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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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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C] 美 해역 심해에 버려진 '유독성 드럼통' 2만7천 개⋯50년 만에 화학물질 유출 확인
- 미국 정부 기관과 기업이 수십 년 전 심해에 투기한 독성 화학 폐기물이 현재까지 해저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어스닷컴이 보도했다. 녹슨 드럼통 주변에서 확인된 백색(브루사이트) 고리는 강알칼리성 화학물질이 유출되며 형성된 흔적으로, 해저 퇴적층과 미생물 군집에 장기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스크립스 해양연구소(Scripps Institution of Oceanography) 연구진은 로스앤젤레스 인근 샌피드로 분지(San Pedro Basin) 약 58제곱마일(약 150㎢) 해역을 대상으로 심해 조사를 실시했다. 무인 잠수정이 음향 탐지와 카메라를 활용해 해저를 정밀 스캔한 결과, 이 일대에서 7만4천여 개의 잔해 목표물이 확인됐고, 이 가운데 약 2만7천 개가 드럼통 형태로 파악됐다. 연구진은 일부 드럼통 주변 퇴적층에서 어두운 진흙과 대비되는 흰색 경화 고리와 분말 흔적을 발견했다. 퇴적 코어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이 백색 고리는 강알칼리성 폐기물이 유출되며 형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퇴적층의 산성·알칼리성을 나타내는 pH 수치는 약 12에 달해, 일반 해수(pH 약 8)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해수 속 마그네슘은 이 강염기성과 반응해 퇴적물을 단단한 테두리 형태로 굳혔다. 특히 수산화마그네슘 광물인 브루사이트(brucite)가 형성되며 고리를 장기간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다. 연구진은 이 광물이 매우 느린 속도로 용해되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알칼리성 환경이 수천 년간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했다. 미생물 생태계 변화도 뚜렷했다. 백색 고리 인접 퇴적층에서는 유전자 물질이 거의 검출되지 않았으며, 통상적인 해저 미생물 군집과는 전혀 다른 조성이 나타났다. 강알칼리 환경에서 생존하는 알칼리성 세균이 우세를 차지했고, 미생물 다양성은 현저히 감소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질소와 황의 순환 과정에 영향을 미쳐 해저 저서 생물에도 파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그동안 드럼통 내용물로 의심됐던 살충제 DDT는 이번 분석에서 새로운 유출원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DDT는 1972년 미국에서 사용이 금지됐으나 해저 퇴적층 전반에 걸쳐 높은 농도로 남아 있었으며, 드럼통과의 거리와는 무관한 분포를 보였다. 미 환경보호청(EPA) 기록에 따르면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남부 캘리포니아 연안에는 최소 14곳의 심해 투기 지점이 운영됐다. 정유 부산물, 화학 폐기물, 저준위 방사성 물질, 군사용 폭발물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사용된 얇은 강철 드럼은 장기 해저 보관을 전제로 제작되지 않아 현재 대부분 부식된 상태다. 연구진은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드럼통 주변에서 백색 고리가 관찰됐다고 밝혔다. 이는 일부 드럼이 이미 내용물을 유출했음을 시사한다. 다만 어떤 드럼이 여전히 밀봉 상태인지, 어떤 물질이 추가로 확산됐는지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특히 퇴적층 내 금속이 용출돼 어류와 패류 등 먹이사슬로 이동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정화 작업 역시 난제로 남아 있다. 수심 약 900미터(3,000피트)에 이르는 해역에서의 작업은 로봇 장비에 의존해야 하며, 부주의한 조치는 오히려 부식된 화학물질을 더 넓게 확산시킬 위험이 있다. EPA는 추가 조사와 시료 채취를 진행 중이나, 전체 폐기물의 성분과 양에 대한 완전한 목록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PNAS Nexus'에 게재됐다. 녹슨 드럼과 그 주변의 백색 고리는 과거 산업 폐기물 투기가 해저 화학 환경을 장기적으로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증거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정밀 지도화와 신중한 표본 채취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개입에 따른 위험과 방치의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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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C] 美 해역 심해에 버려진 '유독성 드럼통' 2만7천 개⋯50년 만에 화학물질 유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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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2회)
- 1 스파이의 장 버려진 스파이(1) 그의 이름은 허민. 그의 동료들은 그를 '허밍(Humming)'이라고 불렀다. 목숨이 걸린 위험한 임무에도 콧노래를 부르며 달려드는 그를 보면 벌새 허밍버드(Hummingbird)가 연상된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그의 코드네임은 '벌새'가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CIA 특수작전팀 친구들은 그를 '험비(Humvee)'라고 불렀다. 작전지에서 왼쪽 어깨와 오른팔 관통상을 입고도 중상을 입은 CIA 파트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반 이탈한 그에게 이 이름을 주었다. 그들의 존경을 담은 이름이었다. 미군의 고기동 다목적 차량(HMMWV,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의 애칭 험비(Humvee). 그가 파키스탄의 미군 후송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추가 수술을 위해 귀국할 때 미국인 친구들은 그에게 험비의 상용 버전인 허머(Hummer)를 선물했다. 그가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사랑하는 동료에게 새생명을 선물한 은인에 대한 아주 작은 선물이라고 우기는 데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틀 후 그가 한국의 권위 있는 대학병원의 수술대 위에 있을때 파트너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 허머(Hummer)가 그의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어떻게? 괜히 천하의 CIA이겠는가? 3개월 후 그는 회사에 복귀했다. 업무와 재활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주어진 업무는 현장요원들의 보고서를 분류하여 평가부서에 전달하는 간단한 일이었다. 한두 시간이면 충분한 업무를 마치고는 곧바로 재활 및 적응훈련장으로 직행하여 저녁 늦게까지 땀을 흘렸다. 어깨의 회복은 순조로웠다. AK47 칼리시니코프의 7.62미리 탄두가 견갑대의 핵심구조를 용케 피해 구멍만 내고 빠져나간 덕분이었다. 문제는 오른팔이었다. 탄두가 상완부를 관통하며 근육과 힘줄, 신경계통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 때문에 회복이 더디었다. 회사의 재활치료 전문가는 최대 6개월을 더 지켜보자고 했다. "부상 부위에 대한 초동 처치와 후속 수술은 완벽했음. 재활치료 과정에서 치료 프로그램의 설계와 운용도 효율적이었음. 특히 치료와 재활에 임하는 대상자의 의지와 노력은 경이로웠음. 그러나 탄두가 상완부를 관통하며 심부 연부조직을 광범위하게 손상시킨 데다 굴곡과 신전 기능을 담당하는 힘줄과 말초신경이 부분적으로 절단된 것이 제한요소로 작용하였음. 이로 인해 손가락의 미세 운동과 감각 피드백이 저하되었으며, 방아쇠 압력 조절과 격발 후 복귀 동작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음. 이는 단발사격은 가능하나 연속사격 시 총기 조작의 일관성이 무너지고 오 조작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의미임. 실제로 특수환경 하 사격활동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부각되었음. 탄창 교환과 슬라이드 볼트 조작, 그리고 장전 불량 발생 시 즉각적인 조치 능력에 있어 동작 지연과 오류가 동반되는 사례가 수차 확인되었음. 결론적으로 대상자는 장기간 재활과 훈련에도 불구하고 정밀사격, 특히 근접전투 상황에서 임기표적에 대한 즉각적인 총기조작 같은 스트레스 하 반복 사격 능력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임. 다시 한번 치료와 재활, 이어진 복귀훈련 과정에서 보인 대상자의 경이로운 의지와 노력에 대해 경의를 표함. (복무적성평가위원회)" 보고서 한 장으로 그의 현장 경력은 끝났다. 이제 버마(미얀마) 아웅산에서 28살 터질듯한 장단지에 토카레프의 7.62미리 탄두를 영접하지 않아도 된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밀림의 벌목지에서 남북 합동으로 인질 구출 작전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연길에서 시작하여 내몽골을 거쳐, 네팔에서 모사드의 특별기를 구걸하여 탄자니아로 날아가는 일은 영화에서나 볼 것이다. 거기 탄자니아 커피농장 외진 곳에, 미사일 기술자 남편의 탈북 성공을 기다리다 죽은 가여운 북한 여인의 무덤을 만드는 일 따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불가능할 것이라는 인질 구출 협상에 성공하고도, 다른 경쟁 무장세력의 기습공격 같은 것, 상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AK 탄두가 신체 두 군데를 동시에 통과하는 행운은 더 더군다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정말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그에게 정보분석 파트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회사는 그가 아내 다음으로 사랑하는 글록17을 데려가고 가장 혐오하는 노트북을 안겨주었다. 외부 반출 절대 엄금 및 외부환경 작동 불능, 세이프박스 노트북. 회사를 그만 두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아내와 두 아들을 둔 가장이. 생계형 스파이에게 선택은 없다. 회사만이 선택하고 결정한다.■ <편집자주>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 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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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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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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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 신기술(221) 유기·무기 결합한 차세대 하이브리드 소재 개발⋯방사선 검출 속도 획기적 향상
- 미국 오클라호마대학교 연구진이 기존 통념을 뒤집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소재를 개발해 고속 방사선 검출 기술의 지평을 넓혔다. 오클라호마대는 최근 유기·무기 성분을 결합한 층상(2D) 할라이드 페로브스카이트 기반의 신소재를 설계해, 방사선에 노출될 때 나타나는 발광 효율과 속도를 크게 개선했다고 밝혔다고 웹사이트 PHYS.org가 최근 보도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화학회 학술지인 「저널 오브 아메리칸 케미컬 소사이어티(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게재됐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특정한 원자 배열을 지닌 결정성 물질로, 태양전지와 광전자소자 분야에서 주목받아 왔다. 그간 연구는 주로 무기 구조에서 나타나는 특성에 집중돼 왔으나, 이번 연구는 하이브리드 구조 속 유기 성분의 역할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연구팀은 유기 분자인 '스틸벤(stilbene)'을 맞춤형 층상 페로브스카이트 구조에 도입했다. 그 결과, 단독 유기 분자 대비 최대 5배 높은 발광 효율을 달성했다. 특히 유기 성분에서 발생하는 발광은 무기 성분보다 반응 속도가 빠르다는 특성을 지녀, 고에너지 방사선 검출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논문 제1저자인 무함마드 S. 무함마드(화학·생화학과 대학원생)는 "무기와 유기 구조를 하나의 하이브리드 소재로 결합함으로써 각각의 강점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었다"며 "고속 방사선 검출에는 빠른 섬광(scintillation) 특성이 필수적인데, 유기 구조가 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공동 저자이자 책임 연구자인 바이람 사파로프 교수는 "유기와 무기 구조의 발광 특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특정 응용 분야에서는 발광 수명과 속도가 핵심 변수"라며 "이번 설계 전략을 통해 유기 성분의 발광 효율을 최대 5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소재는 안정성 측면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다수의 방사선 검출 소재는 환경 노출 시 성능 저하를 막기 위해 보호용 캡슐화가 필요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하이브리드 소재는 별도의 보호 장치 없이 공기 중에서 1년 이상 안정성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해당 소재가 현재 상용 고속 방사선 검출기와 견줄 만한 성능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향후 발광 효율을 추가로 개선할 경우, 기존 최첨단 검출기를 능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연구는 무기 구조 중심이던 페로브스카이트 연구 패러다임을 확장해, 유기 성분의 기능적 잠재력을 체계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고속 중성자, 엑스선, 감마선 검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 가능성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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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 신기술(221) 유기·무기 결합한 차세대 하이브리드 소재 개발⋯방사선 검출 속도 획기적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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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1회)
- 하이브리드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는 은퇴한 스파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다. 스파이는 대의의 깃발 아래 활동한다. 그 대의가 국가든 이념이든 정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의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종종 스파이들은 버려진다. 때로는 제거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총과 칼이 동원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라는 도구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의의 깃발이 다시 올랐을 때, 스파이는 그들을 버렸던 세상의 싸움에 다시 나선다. 스파이의 숙명이다. 주인공 허민은 육십 대 초반 나이의 버려진 스파이다. 동해안의 소도시에 은거하여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대의의 깃발이 올랐다. 신물질 마약의 탄생을 막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종래의 마약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였다면 신물질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야기는 강릉의 조그만 농장 정원 '더파든'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힌두쿠시산맥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 부족장의 딸 '자흐라', 전 CIA 부국장으로 비정부기구 STC(Save the Cat)의 집행위원인 '코르맥 오로크', 태양신 '라'의 현신으로 물리학 교수이며 STC의 설립자인 '엘리아스 워드' 그리고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신 '바스테트'의 눈인 세상의 수많은 고양이들이 스파이의 여정에 함께 한다. <편집자주> 더파든의 스파이-프롤로그 그는 오늘 새벽에 또 그 꿈을 꾸었다. 대략 두 달 반 전부터 이틀에 한 번꼴로 찾아오는 꿈. 그 고양이 두 마리가 농장 정원 '더파든(The Farden)'에 나타난 즈음에 꿈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어떤 우연과 필연의 연결고리일 수도 있다는 그런 불안한 예감을 주는 꿈. 고대의 전쟁터에 있었다 아마 힌두쿠시 어디쯤일 것이다 하늘의 문은 닫히고 땅의 어둠은 깊다 삼 주야를 싸웠다 투구가 깨어지고 갑옷의 줄도 잘렸다 피와 땀에 절은 가슴에 적장의 칼끝이 닿았다 이제 날카로운 칼은 해진 옷을 뚫고 가슴을 헤집을 것이다 "지친 내 심장을 가져가라" 희미한 심장의 온기마저 사라지면 영혼은 서늘한 밤하늘에 이를 것이다 기우는 달과 푸른 별빛이 아득하리라 깃털처럼 가벼워진 영혼 이내 훌훌 나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가슴 먹먹한 나의 집으로 그리고 대의의 깃발을 들었던 그곳으로…… 운명이 우리를 찾는가? 우리가 운명의 문을 여는가?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 순간에도 운명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곧잘 잊는다. 그러나 운명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 운명에 끌려가지 않고 운명 속으로 담담히 걸어 들어가는 사람. '운명'을 '자유 의지'로 승화시키는 사람. 그리하여 운명을 자신의 서사로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남기는 '운명적 서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이제 나는 자신의 운명 속으로 담담히 걸어 들어간 어떤 전직 스파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 전직 스파이가 누구인가요?"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당신이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해두자. 이미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일 수도 있겠고, 언젠가 당신이 읽었을 신문 기사의 배후에 존재하였던 익명의 헌신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SNS나 탐사보도 매체에 잠시 올랐다가 바로 사라져 버린(어디에서 기사 삭제에 개입했을 수도, 팩트 체크에 실패했을 수도 있는) 기사의 주인공이거나 외신 발 카더라 소식에 등장하는 인물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당신 주변에 있을 수 있는, 또는 있었던 일이라고 해두자. 어차피 이 이야기는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이니까. ■ 작가 프로필 김남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GMU)에서 공부했다. 육군과 국가기관에서 31년간 국가의 업무에 봉직하였다. 은퇴 후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대학교에 강좌를 열고 본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라보이는 강의실에서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테러리즘과 범죄정보에 대해 강의하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준 아담한 땅에 농장 정원 '더파든'을 가꾸면서 가드닝 잡지에 정원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저것 섞어 사실 같으면서 사실 아닌 이야기를 꾸미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허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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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스파이 소설 '더파든의 스파이'(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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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2)] 뇌 속 '청소부' 깨우니 치매 단백질이 사라졌다⋯항체 주사 대체할 '알약' 길 열려
- 인류에게 '암(Cancer)'이 정복해야 할 산이라면, '알츠하이머 치매'는 서서히 차오르는 물과 같다. 전 세계 고령화 속도와 비례해 환자 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물을 퍼낼 확실한 바가지조차 갖지 못했다. 최근 FDA 승인을 받은 '레켐비' 같은 항체 치료제들이 등장했지만,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과 뇌부종 같은 부작용, 그리고 정맥 주사라는 번거로움은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그런데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공동 연구진이 최근 이 장벽을 한 번에 허물 수 있는 '뇌 속의 숨겨진 스위치'를 찾아냈다. 외부에서 비싼 용병(항체)을 투입하는 대신, 우리 뇌가 본래 가지고 있던 '청소부'를 깨워 치매 원인 물질을 스스로 없애는 혁신적인 치료법의 길이 열린 것이다. 뇌 속의 '쓰레기 소각장'을 다시 가동하라 알츠하이머병은 뇌 속에 '아밀로이드 베타(Aβ)'라는 독성 단백질 찌꺼기가 쌓이면서 시작된다. 마치 하수구가 막히면 집안이 물바다가 되듯, 이 찌꺼기가 신경세포 사이를 막아 기억과 인지 기능을 파괴한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의 뇌에는 이 찌꺼기를 잘게 잘라 없애는 천연 효소, '네프릴리신(Neprilysin)'이 존재한다. 일종의 '단백질 가위'이자 뇌 속의 '자체 소각장'이다. 문제는 나이가 들거나 치매가 시작되면 이 가위가 녹슬고 소각장이 멈춰버린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멈춰버린 이 소각장을 다시 가동할 '전원 스위치'를 찾아냈다. 바로 뇌의 해마(Hippocampus) 부위에 있는 '소마토스타틴 수용체(SST1, SST4)'다. 연구진이 유전자 조작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는 명확했다. 이 스위치(SST 수용체)를 제거하자, 청소부(네프릴리신)가 사라졌고 쥐의 뇌에는 순식간에 쓰레기(아밀로이드)가 쌓였다. 반대로 약물을 통해 이 스위치를 강제로 'ON' 시키자, 네프릴리신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뇌 속에 쌓여있던 독성 단백질이 분해되어 사라졌다. 실험 쥐의 기억력 또한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탱크 대신 오토바이…'혈액-뇌 장벽'을 뚫어라 이번 연구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진짜 이유는 '약의 형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외부 물질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혈액-뇌 장벽(BBB·Blood-Brain Barrier)'이라는 아주 촘촘한 검문소를 가지고 있다. 현재 시판되는 항체 치료제들은 분자의 크기가 거대하다. 비유하자면 '탱크'와 같다. 화력은 좋지만 덩치가 너무 커서 이 좁은 검문소(BBB)를 통과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고용량을 혈관에 쏟아부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뇌혈관이 터지거나 붓는 부작용이 생긴다. 반면, 연구진이 타깃으로 한 SST 수용체는 '소분자 화합물(Small molecule)'로 자극할 수 있다. 소분자는 항체에 비해 크기가 매우 작다. 탱크가 아니라 날렵한 '오토바이'다. 검문소(BBB)를 아주 쉽게 통과해 뇌 속 깊숙한 곳까지 약효를 전달할 수 있다. 연구를 주도한 페르 닐손 박사는 "우리가 찾은 방식은 주사 바늘이 필요 없다"며 "환자가 집에서 물과 함께 삼키는 작은 '알약(Pill)' 하나로 뇌 속의 청소 시스템을 가동해 치매를 치료하는 미래가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치료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은 물론, 환자의 삶의 질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변화다. 실패 확률 낮은 '익숙한 길'로 간다 신약 개발은 흔히 '도박'에 비유된다. 10년을 연구해도 실패할 확률이 90%가 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성공 확률이 높은 '익숙한 길'을 택했다. 연구진이 찾아낸 SST 수용체는 'G단백질 연결 수용체(GPCR)'라는 거대한 단백질 가문에 속한다. 이 가문은 제약업계에서 가장 연구가 많이 된, 일종의 '베스트셀러 타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처방되는 의약품의 약 30~40%가 바로 이 GPCR을 조절하는 약물이다. 즉, 맨땅에 헤딩하듯 새로운 물질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안전성과 작동 원리가 검증된 시스템을 이용해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만든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번 동물 실험에서 부작용은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치매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 치료는 '외부의 힘'으로 억지로 찌꺼기를 긁어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뇌가 본래 가지고 있던 '자정 능력(Self-cleaning)'을 복원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치료법임을 증명했다. 1년에 수천만 원이 드는 주사제가 아니라, 매일 아침 비타민처럼 챙겨 먹는 알약으로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세상. 뇌 속의 작은 스위치 하나가 그 거대한 변화의 문을 열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 알츠하이머와의 전쟁에서 인류는 이제 '방패'가 아닌 '검'을 쥘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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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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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2)] 뇌 속 '청소부' 깨우니 치매 단백질이 사라졌다⋯항체 주사 대체할 '알약' 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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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헝가리 '괴드 스캔들' 확산⋯삼성SDI 배터리공장 판결 놓고 외교통상장관 발언 논란
- 헝가리 괴드(Göd) 지역의 삼성SDI 배터리 공장을 둘러싼 환경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쿠리아(Kúria·헝가리 대법원)의 관련 결정 공개 시점과 시야르토 페테르 외교통상장관의 발언 경위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했다고 현지매체 hvg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헝가리 대법원은 삼성SDI 괴드 공장의 통합환경사용허가와 관련한 결정을 지난 2월 3일 선고했으나, 해당 사실은 일주일 뒤인 2월 10일에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대법원은 이번 결정에서 공장의 허가를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이를 취소했던 부다페스트 인근 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하급심 법원은 재심리를 진행하게 됐다. 그러나 시야르토 외교통상장관은 정부 측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쿠리아가 금요일 결정으로 공장의 환경허가를 유효하다고 인정했다"고 언급하며, 관련 보도가 이를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법원 공지에 따르면 실제 선고일은 2월 3일로 확인된다. 또한 결정문은 당일 당사자들만 열람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일반에 공개되기 전까지 외부에서 이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장관이 공개 이전에 해당 결정을 인지했는지, 또 결정 내용을 정확히 전달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 홈페이지에는 공지 게시 시각이 명시돼 있지 않아, 장관 발언과의 시간적 선후 관계는 분명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번 논란은 앞서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괴드 공장 내 일부 공정에서 발암 물질이 기준치를 크게 초과한 농도로 검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보도에 따르면 관련 사실이 충분히 공론화되지 않았으며, 정부가 이를 인지하고도 공장 가동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야당 측은 공장 운영과 관련한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장관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형사책임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번 결정으로 기존 취소 판결을 무효화하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으나, 공장은 현재까지 정상 가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안은 환경 안전 문제와 사법 절차의 투명성, 그리고 정부 고위 인사의 발언 정확성이라는 세 가지 쟁점을 동시에 안고 있어 향후 정치·사회적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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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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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헝가리 '괴드 스캔들' 확산⋯삼성SDI 배터리공장 판결 놓고 외교통상장관 발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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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176)] 태양의 포효, 초강력 플레어 4번 분출⋯전 지구적 통신·전력망 비상
- 인류의 근원적 생명 에너지원인 태양이 거대한 전자기적 요동을 일으키며 지구를 향해 강력한 경고장을 날렸다. 2일(현지시간) 미 항공우주국(나사·NASA)은 지난 2월 1일부터 2일 사이에 무려 네 차례에 걸친 강력한 태양 플레어(Solar Flare)가 분출됐으며, 이에 따른 전 지구적 우주 기상 변화에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태양 활동 극대기에 접어든 태양이 보여준 이례적이고도 위협적인 '연쇄 폭발'로 기록될 전망이다. 24시간 동안 네 번의 거대한 불꽃 NASA의 태양활동관측위성(SDO)에 포착된 이번 현상은 단순한 폭발 그 이상이었다. 2월 1일 오전 7시 33분(미 동부 표준시 기준) 첫 번째 폭발을 시작으로, 같은 날 오후 6시 37분과 7시 36분에 연달아 강력한 에너지가 우주 공간으로 쏟아져 나왔다. 광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2일 오전 3시 14분, 네 번째 대폭발을 일으키며 정점에 달했다. 폭발의 강도는 가히 파괴적이다. NASA가 분류한 이번 플레어의 등급은 다음과 같다. △1차 폭발: X1.0 등급, △2차 폭발: X8.1 등급 (가장 강력), △3차 폭발: X2.8 등급, △4차 폭발: X1.6 등급이다. 태양 플레어는 강도에 따라 B, C, M, X 등급으로 나뉘는데, 이번에 발생한 X등급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최상위 수준'을 의미한다. 특히 두 번째 발생한 X8.1 등급은 최근 수년간 관측된 플레어 중 손꼽히는 위력을 지닌 것으로, 지구 자기장과 대기권에 상당한 물리적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수치다. '우주 폭풍'이 지구에 미치는 실질적 위협 태양 플레어는 태양 표면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에너지 방출 현상으로, 이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X선과 자외선은 빛의 속도로 이동하여 약 8분 만에 지구에 도달한다. 이 고에너지 입자들은 지구 상층 대기의 전리층을 교란해 직접적인 피해를 야기한다. 첫째, 통신 및 내비게이션 장애다. 강력한 전자기파는 단파 통신을 두절시키며, 항공기 및 선박 운용에 필수적인 GPS 신호 오차를 증폭시킨다. 특히 고위도 지역을 비행하는 항공기들의 경우 통신 두절(Radio Blackout) 가능성이 커져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둘째, 전력망의 과부하 문제다. 플레어에 이어 동반될 수 있는 지자기 폭풍은 지상의 송전 시설에 유도 전류를 발생시켜 변전소 변압기를 손상시키거나 대규모 정전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1989년 캐나다 퀘벡주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건이 바로 이 태양 활동의 결과였다. 셋째, 우주 자산과 인류의 안전이다.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수천 개의 인공위성은 정밀 회로 손상 위험에 노출되며,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체류 중인 우주비행사들은 유해 방사선 피폭 위협으로 인해 안전 구역으로 대피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상시 감시 체제 가동⋯인류의 대응은? NASA는 현재 전용 관측 위성군을 통해 태양 대기부터 지구 주변 자기장까지 전 영역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미 해양대기청(NOAA) 산하 우주기상예측센터(SWPC)는 즉각적인 경보를 발령하고 각국의 전력 및 통신 관계자들에게 대비책 마련을 권고했다. 전문가들은 "태양의 박동은 인류가 구축한 디지털 문명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다"며, "우주 기상은 이제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변수"라고 입을 모은다. 태양이 내뿜은 네 번의 포효는 지구 곳곳에서 아름다운 오로라를 만들어내기도 하겠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강력한 에너지는 현대 기술 문명에 대한 엄중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정부와 관련 기관은 향후 수일간 이어질 수 있는 추가 지자기 교란에 대비해 비상 연락망을 점검하고, 정밀 기기 운용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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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176)] 태양의 포효, 초강력 플레어 4번 분출⋯전 지구적 통신·전력망 비상



